밤새 여진이 있었어

밤새 여진이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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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2021년 『현대시』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한 최필립의 첫 시집 『밤새 여진이 있었어』가 타이피스트 시인선 011번으로 출간되었다. 등단 당시 “붕괴하거나 금세 사라져 버리는 세계에 대한 불안의 정동을 효과적으로 재현하고 있다”는 평을 받은 최필립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보이지 않는 균열에 대한 집요한 관찰과 끊임없는 재구성, 과거와의 끈질긴 연결을 통해 다른 차원으로 진동하는 감각의 세계를 써 내려간다.

『밤새 여진이 있었어』는 감정의 파편과 현실의 균열을 정직하게 응시하는 시집이다. 한 번의 진동으로 끝나지 않는 감정, 말해지지 않은 잔향, 부서진 세계의 조용한 떨림이 그의 시 안에서 여진처럼 이어진다. 그 진동은 절망의 복기이자 희망의 변주이며, 감정의 기록이자 감각의 사전이다. 이 시집을 관통하는 ‘진동’의 감각은 결국 “우리가 여전히 살아 있다는 증거”로 작동할 것이다.
저자

최필립

저자:최필립
2021년『현대시』로등단했다.음악의3요소는에코와필과소울이라고생각한다.

목차


1부내가너의잡음을이해한다고해도괜찮아?
그건어떤의미였고
밤새여진이있었어
천착하는마음
게겐샤인
계속밀려나기
청어
알리바이
부싯돌을부딪치며
당신은멋져
석촌호수
북채로가린얼굴
새로운기후
실새삼은웃을때칭칭소리를내지
파레이돌리아
모르는얼굴인데초인종소리만듣고문을열어버렸어

2부네가장성해벌써이름이었다는걸
비주기노스탤지어
푸성귀다듬기
마른껍질이있는정물화
테라코타
덩굴장미
조소
곁에서표류하고있었고
피상에서
산탄총의문제
스칸디나비아
넘어지는송곳들
흔들의자위에떠오른별자리
고개베는큰칼로
차나무밭
성춘향은이몽룡을모른다

3부영원을위한맥거핀
변장술
아르무아
히에로파니
편안한상태
유실점
소년소녀귀가기
Psst...!
circuit
기우
물총새는뛰어들어서
바구니가득증류하는
마루가부러지고희디흰
조영술
아스키연애
영원을위한맥거핀

산문_노스탤지어와몇가지장면

출판사 서평

“밤새여진이있었어너는못들었겠지,여긴우리뿐이니까”

균열을통해서만드러나는세계
파편으로완성되는투명의미학

2021년『현대시』를통해작품활동을시작한최필립의첫시집『밤새여진이있었어』가타이피스트시인선011번으로출간되었다.등단당시“붕괴하거나금세사라져버리는세계에대한불안의정동을효과적으로재현하고있다”는평을받은최필립시인은익숙한문법을낯설게만들면서우리가잃어버린감각을되찾게한다.한번의진동으로끝나지않는감정,말해지지않은잔향,부서진세계의조용한떨림이그의시안에서여진처럼이어진다.

흔들리고남은것들위에내려앉은언어

밤새여진이있었어너는못들었겠지여긴우리뿐이니까몸에가득한주저흔은칼날이흔들린만큼남아있고영원히집에갇힌사람들이울부짖고저중에우리가낳고기른아이도있을까
-「밤새여진이있었어」중에서
둘만의고립된공간(“여긴섬이고우리뿐이야”)에서조차소통이단절되어있고,‘여진’이라는말에는관계의균열이이미시작되었으나한쪽만이그것을인지하고있는비대칭적상황을암시한다.즉단순한파괴의잔해가아니라,상실의한가운데에서도끊임없이이어지는감정의파동을보여주는것이다.최필립의시는절망이후의감각,즉‘멈추지않는감정의잔향’을탐구한다.그의시에는붕괴의이미지가자주등장한다.

붕괴는도미노를상상하는것처럼쉽게일어났다

(중략)

흰꽃으로장식한관을방부처리하는일나는
지지않기위해얼마나많은붕괴를상상했던가
-「계속밀려나기」중에서

「계속밀려나기」에서세계의붕괴는돌발적사건이아니라,이미오래전부터내재된구조의흔들림이다.그는무너짐을비극으로만그리지않는다.오히려붕괴의장면은언어가다시태어나는자리이며,불안정한균형속에서도언어를지탱하려는시인의윤리가있다.

먼지낀구석에앉아불난집을그리는아이

잘안보이지?이제흐릿해서

마비된손가락으로또래들이들을수없다던음역을어루만졌다
보기좋게깨진가족사진속웃는것처럼보여
모르는얼굴이
-「파레이돌리아」중에서

시집의중반부에실린「파레이돌리아」는무의미한형상속에서의미를찾아내는심리적현상을제목으로한다.“오래된거실//먹다남은맛살처럼눅눅한/붉은물감이흐르고”,“먼지낀구석에앉아불난집을그리는아이//잘안보이지?이제흐릿해서.”불에탄집,불분명한그림자,모호한윤곽.최필립의시는이렇듯사라진것의흔적과잔상으로세계를다시구성한다.그는선명한해석대신흐릿함속에서감각의윤곽을세우며,불안을통해언어의생명력을되살린다.

흐릿한윤곽속에서감각을세우는일

터널끝에가닿았는데공백을포함합니까
빛이명맥을멈추는데우리는돌아갑니까
-「비주기노스탤지어」중에서

손잡이가거꾸로매달리고있다뼈들이제대로작동하는지궁금하다너는이불보를개고습관처럼청귤차를마신다꿀꺽이며밤은찾아온다숲으로간다성에로가득한편백나무숲에서
나는너를잃어버리고
-「마른껍질이있는정물화」중에서

1부에서“붕괴”에주목했다면,이어지는2부에서는붕괴와유사한개념으로서‘비틀림’과‘반복’이다뤄진다.“터널끝에가닿았는데공백을포함합니까/빛이명맥을멈추는데우리는돌아갑니까”(「비주기노스탤지어」)라는질문속에서,화자는과거로회귀하는것이아니라미래를향해나아가면서도끊임없이뒤를돌아본다.여기서주목해야할것은,최필립의시에서‘노스탤지어’는단순한향수가아니라“비주기적”이라는점이다.규칙없이불규칙하게찾아오는기억의파편들이현재를교란시키면서,시간은선형적으로흐르지않고“비틀림의반복”을통해“가정은훨씬행복해질수있다고”역설한다.일반적으로시에서이미지는은유를통해의미를확장하지만,최필립의시에서는이미지자체가분열하고파편화되어새로운관계망을형성한다.능청스럽고도정교한이언어감각은3부‘영원을위한맥거핀’에이르러‘영원’이라는관념을호명해낸다.

붕괴이후에도,인간의목소리로

네일을하고싶었어?
물든손톱으로친구를할퀴고?
상처가예쁘니까괜찮다고하고싶었어

우리의영혼을망친죄로
더는시를쓰지않는다고거짓말했는데
-「아스키연애」중에서

특히주목할만한것은최필립시의음악성이다.“음악의3요소는에코와필과소울이라고생각한다”는시인의약력에들어간문장처럼,이시집에는독특한리듬감이흐른다.“풀피리필릴리립”(「아스키연애」)처럼의성어를실험적으로활용하는가하면,“베버리지,베버리지”(「바구니가득증류하는」)처럼단어를리듬처럼반복하며음악을창조한다.재즈의즉흥성과클래식의구조미,노이즈의실험성이어우러진최필립의시는‘최필립’이라는이름자체가하나의악기처럼울린다.이상하고도아름다운이언어들을돌아보고탐구하게만든다.

『밤새여진이있었어』는감정의파편과현실의균열을정직하게직면하는시집이다.그는무너진세계를재건하지않는다.대신잔해위에서여전히남아있는온기를감지하고,그흔들림속에서말의구조를세운다.보이지않는균열에대한집요한관찰과끊임없는재구성,과거와의끈질긴연결덕분에최필립의시세계는내내진동하는중이며,다시금새롭게태어난다.그것은절망의복기이자희망의변주이며,감정의기록이자감각의사전이다.이시집을관통하는진동은결국“우리가여전히살아있다는증거”로작동할것이다.

시인의말

깨진유리조각을거울처럼들고내얼굴을비춰보았다.
투명해서무엇이든담을수있을것같았다.

2025년10월
최필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