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읽고,만들고,나누는사람들
작가,독자,편집자,북인플루언서가함께쓴봄의무늬
봄이깊어져갈수록세상은약속이라도한듯이조도를높인다.얼었던땅이녹고꽃망울이터지는그풍경앞에서희망을말하는일은봄을맞이하는가장익숙한습관이다.하지만각자의방문을걸어잠그고,홀로마주하는봄의민낯은그리화려하지만은않다.세상이환해질수록누군가의그늘은더짙어지고,꽃이피어나는소란뒤에는반드시꽃이지는쓸쓸함이따라오기때문이다.
스물두명의저자가함께한『좋은것들은이토록시시콜콜』은바로그봄의진짜얼굴을채집한기록이다.직업도,나이도,사는곳도다른저자들은‘일기’라는가장솔직하고정직한형식을빌려각자의봄을통과한다.온몸으로봄이라는계절을마주하며남긴예순여섯편의기록은막연한낭만대신,손에잡힐듯거칠고생생한삶의물성을품고있다.
‘일기’는동음이의어가많은단어다.일기라는말들에는일기를일기로만드는여러표정이숨어있다.날마다적는일기는그날의공기와마음의날씨인일기(日氣)을담는그릇이다.밤마다단숨에써내려가는일기(一氣)의기록이자,오늘위에세우는작은기념비하나(一基)이기도하다.그렇게생의한시절,즉일기(一期)를건너며남기는이흔적들은결국우리가하루하루쌓아올린삶의두께이고,거기에우뚝한마음의탑이된다.
스물두명의저자가하루하루쌓아올린이탑의재료는매끈하기만한대리석이아니다.낡은재킷의보풀,퇴근길택시차창밖의풍경,떼어내도끈적하게남는스티커자국,귤껍질안쪽에붙어있는귤락같은것들이다.저자들은그토록사소하고연약한것들이야말로,우리삶을지탱하는가장단단한실체임을이야기한다.
누군가에게는꽃놀이를가는계절이지만,누군가에게는여느때처럼치열하게견디고살아내야하는현장인봄.저자들이포착한그봄의정경은놀라울만큼구체적이다.벚꽃대신비가끊임없이쏟아지는낯선도시에서이방인의고독을감각하고,도서물류센터의난로앞에서언손을녹이며노동하는봄을적는다.요양원에계신할머니의희미해지는기억을붙잡으며봄을맞이하는손녀,먼저떠난아버지를향해부치지못할편지를쓰며‘살아있는게곧기억하는일’임을되새기는딸,도심한복판에서마주한죽은고라니와이별을겹치는마음,택시안에서기사님이건네는사탕한알에기대어울음을삼키는퇴근길의모습은우리들삶과아주가까이맞닿아있어서더욱먹먹하게다가온다.
김이섬시인의문장에서빌린책제목은이러한이야기들의핵심을꿰뚫는다.거창한성공이나깨달음은봄바람처럼금세날아가버리지만,매일반복되는사소한루틴과작고다정한물건들은끝내우리곁에남아내일을살게한다.헌책방의묵은종이냄새,우연히발견한귤한알,친구와나누는싱거운농담,낡은이불의익숙한감촉까지.책장을한장두장넘기다보면,우리가무심코지나쳤던이‘시시콜콜한것들’이실은삶의슬픔을견디게하는가장강력하고다정한방패라는생각이든다.
내밀한각자의방에서쓰인이이야기들이책이라는문을열고바깥세상으로나간다.남의일기장을훔쳐보는짜릿한즐거움끝에,우리는결국자신의지난봄을마주하게될것이다.『좋은것들은이토록시시콜콜』은‘봄(spring)’과‘봄(seeing)’에관한책이자,‘바라봄’에관한책이다.타인의일기장너머로흐르는봄을보고,그에흔들리는마음을보고,마침내자신의봄을바라보게될것이다.잠시숨을고르면‘바라봄’은곧‘바라,봄’,즉우리곁에따뜻한봄이오기를바라는기도가되기도할테다.스물두명의우리가각자의방식으로앓고,견디고,사랑하며통과한이봄의기록이당신의봄에봄바람같고봄비같은안부로가닿기를바란다.
편집자의말
여기,스물두사람이각자의방에서기록한봄이도착했습니다.우리는이책으로써봄이라는계절을만끽하고,더불어무언가를가만히들여다보는‘봄(seeing)’을경험하게될것입니다.흐르는계절을보고,흔들리는마음을보고,타인의일기장너머로나를봅니다.
그것은누군가의봄을엿보는일이자,당신의봄을마주하는‘바라봄’이됩니다.잠시숨을고르면‘바라,봄’,즉우리곁에더따뜻한봄이오기를바란다는기도가되기도하겠지요.
일기는‘읽기’와발음도비슷합니다.우리가쓴일기가여러분의읽기로이어지는순간,이사소하고사적인기록들은비로소완성됩니다.
혼자하는말놀이로풀어낸이글처럼,일기란결국마음가는대로뜻닿는대로쓰고읽으면그만아닐까요.정해진형식도,정답도없이.그저자유롭게펼쳐주시기를바랍니다.
이토록시시콜콜하고,좋은것들이가득한봄날에.
―이현호(시인,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