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에 관한 살인적 농담

예술에 관한 살인적 농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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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사실, 모두가 연기하며 살고 있지 않나요?
예술과 돈, 욕망을 낱낱이 비추는 악인들의 연극

가장 역동적인 작가 설재인이 보여주는 가장 한국적인 욕망
우리 모두 이 소설로부터 무죄일 수 없다
가장 한국적인 욕망과 가장 평범한 잔혹성
설재인이 선보이는 불편하고 매혹적인 스릴러

『그 변기 위의 역학』 『월영시장』 『범람주의보』 등 장르를 뛰어다니며 자신만의 문학적 세계관을 구축하고 있는 작가 설재인이 신작 장편소설 『예술에 관한 살인적 농담』을 나무옆의자에서 선보인다. 예술대학에서 연극을 전공한 ‘구아람’은 졸업한 뒤 콜센터에서 상담원으로 일하고 있다. 연극에 대한 열정으로 청춘을 바쳤으나 예술은 정신적인 만족감을 주었어도 돈을 주진 않았다. 늘 가난에 허덕이던 아람은 설상가상으로 집에 불이 나서 대학 동기인 ‘정소을’의 오피스텔에 얹혀살게 된다. 소을은 숱한 오디션 낙방으로 예술인의 길에서 강제로 멀어져 청소년 상담사로 일하고 있다. 하지만 세 칸짜리 방이 있는 오피스텔에 살며 집 청소 대행 서비스에 돈을 아끼지 않는 소을은 어떤 상담인지는 몰라도 아람보다는 훨씬 더 경제적으로 넉넉한 듯했다. 예술이 본인들의 인생을 망쳤다면서 소을과 함께 자조하며 동거하기를 한 달. 어느 날 소을이 밤늦게까지 귀가하지 않는다. 그리고 갑자기 소을의 남자친구라고 주장하는 ‘김석원’이 찾아온다. 그는 특목고를 자퇴하고 여행 다니는 영상을 업로드해 유명해진 청소년 유튜버다. 충격은 소을이 미성년자와 연애하고 있었다는 것뿐만 아니었다. 사실 그가 부잣집 딸이었다는 것. 심지어는 아람 몰래 오피스텔 전세금을 빼 석원과 세계 일주를 계획하고 있었다는 것 또한 아람에게 충격이었다. 가장 절친한 친구가 “가난하고 핍박받는 예술가”(43쪽) 연기를 하며 살았다는 사실에 아람은 배신감으로 치를 떨며 조용히 읊조린다. “개 같은 년.”(45쪽) 아람은 가난을 공유하는 동지가 아닌, “가난과 고난을 연기하는”(43쪽) 소을과 끝장을 볼 생각을 한다. 하지만 곧 더욱 놀라운 일이 발생한다. 오피스텔 관리인이 찾아와 건물 지하에서 소을의 사체가 발견됐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시체 손가락에 ‘구아람’ 세 글자가 적혀 있다고.
지하실로 내려가 보니 소을은 피 웅덩이 한가운데 엎어져 있었고 오른손 검지의 끝에는 구아람 세 글자가 쓰여 있었다. 오열하는 석원과 얼어 있는 관리인, 황망하게 서 있는 아람에게 건물 청소부가 다가와 말한다. 천만 원만 주면 어떤 사람도 경찰서에 가지 않게 “정리”(49쪽)해주겠다고. 관리인에겐 10만 원만 청구될 예정이었기에 아람과 석원이 합의해 나머지 금액을 지불해야 했다. 백만 원 이상 낼 수 없다고 딱 버티는 석원에게 아람은 말한다.

“네가 죽였구나?”
아람은 불쑥 물었다. 자신의 상식선에서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여자 친구가 죽었고 다잉 메시지로 제삼자의 이름을 썼는데 어떻게 여기서 태연히 시그니처 커피를 마시며 흥정을 벌일 수가 있나? 그러나 김석원은 화살이 자신에게 돌아오자마자 버럭 화를 냈다. 나이도 어린 것이 싹바가지 없이……. 그래서 아람은 더 크게 소리를 질렀다.
“네가 죽인 게 아니면, 왜 신고를 안 하는데?” (55쪽)

그러자 석원은 사체에 이름이 쓰인 룸메이트보다 여행 다녀온 남자 친구가 용의선상에 오르겠냐면서 역정을 내며 당장 경찰에 신고하자고 으름장을 놓는다. 결국 가난이란 죄에 살인이라는 죄목을 더할 수 없었던 아람이 전 재산을 털어 890만 원을 청소부에게 지불한다.
저자

설재인

말을최대한줄인채사람을염탐하는몹시음침한사람.
2019년소설집『내가만든여자들』로작품활동을시작했다.소설집『내가만든여자들』『사뭇강펀치』『월영시장』『드롭,드롭,드롭』장편소설『세모양의마음』『붉은마스크』『너와막걸리를마신다면』『우리의질량』『강한견해』『내가너에게가면』『딜리트』『범람주의보』『캠프파이어』『소녀들은참지않아』『별빛창창』『그변기의역학』『계란프라이자판기를찾아서』『정성다함생기부수정단』『우연이아니었다』『뱅상식탁』『드림라운드』『열일곱의사계』경장편소설『레드불스파』,에세이『어퍼컷좀날려도되겠습니까』가있다.

목차

아람
형근
아람
형근
아람
민욱

작가의말

출판사 서평

가난이불지핀욕망의화차
선인없이악인들만이탑승한다

소을의장례식장에는그에게상담을받던‘부티’나는학생들과그부모들이가득했다.영정을보며“선생님없이내가어떻게사느냐”(59쪽)며진심으로섧게우는그들을통해아람은소을이했던‘상담’에대해알게된다.소을은명문대심리학과석사출신이라고학력을위조한후,예술에빠졌다가현실의벽에부딪히고그허상에질려대학원에가서새삶을산‘정신차린탕아’를연기했다는거였다.8학군아이들에게그거다헛것이라고,예술은인생망하는지름길이라며자신의과거를나락으로비추며진로를바꾸도록설득하는일을하고있던거였다.자식이돈도안되는예술에빠질까걱정하던부모들은아람에게같이일하던선생님이냐며,혹시소을이하던과외를이어서맡아줄수있느냐묻는다.
아람은조소한다.소을은과거에맡았던학생중하나를언급하며“재능하나없는데도연기학원안보내주면죽어버리겠다면서손목을그었던아이라고소을은신랄하게비웃었”(60쪽)는데,그런멸시를모르면서울고나있는순진한학생들.부티나는차림새로본인자녀가아람처럼되지않게해달라고읍소하는학부모들.이모두가아람에게는일종의기회였다.
빈자가부자를이길수있는유일한방법이있다.빈자와같은나락에떨어지고싶지않다고읍소하는이들을내려다보며조소하기.아람은기꺼이부자가두려워하는빈자의삶을거울로비춰겁주기로한다.이미나락에있는아람은그두려움에서자유로우므로빈자의삶을무기삼아휘두른다.계속예술을꿈꾼다면너의부모님이아니라나와같은궁한삶을살게될거라고학생들을겁준다.그렇게처음으로부자들에게서돈을착취한다.

그리고지금빈소에찾아온희민은명문외고이름이적힌과잠을입고있었다.장례식장에서조차벗기싫은상징.그래,그것이그들의‘살수있음’인것이다.그러고보니‘살다’란단어의정확한정의가뭘까.아람은궁금해졌다.지금의아람에게‘살다’는그저……그저,890만원의동의어일뿐인데.(60쪽)


“아아,이런생각은정말하고싶지않지만
아무래도돈이좀있는애들이착해.”

누구나한때아끼고사랑했던것을증오하고,증오했던것을다시사랑하는경험을한다.아람은학생들이가진예술에대한애정을죽이고돈만을좇는사람으로만드는과외를한다.학력과경력을위조해소을을연기하며사는것이다.그렇게콜센터에서일할때와는비교할수없을정도로많은돈을번다.하지만빈곤에대한수치심은돈이없기에이뤄질수없었던욕망을떠올리게하고,어떤기제를자극해인간을괴물로만든다.아람은“돈있는집안애들이착하다”(242쪽)는말을한다.빈곤으로고통받다가우연한계기로죽은친구의직업을가로채잠시빈곤으로부터한계단올랐을뿐인데도내려다보며가난한자들을능멸한다.마치자학하듯이.
나락에닿아본사람은나락에다시금잡아먹힐까하는불안을지니고산다.그리고가끔은원망하는사람을나락으로빠뜨리는방식으로불안과겨룬다.가난에서잠시벗어난아람은가난했던본인을착취한석원에대한업화를뒤늦게온몸으로느끼며이기지못할감정을키운다.그리고홀연히소을의사체를청소했던청소부와합의한다.김석원을찾아내‘정리’하자고.
소설초반부가지나면청소부의과거가드러나기시작한다.청소부‘박형근’은사실의대를지망했으나4수를하면서도의대진학에실패해물리학과에입학한대학생이었다.그는입버릇처럼“내가피를못봐서의대에못갔어”(87쪽)라고말하고다니는사람이었다.서른살이되어도졸업하지못하고변변한생업을갖지못한그는본인이혐오한가난한삶에빠질까두려웠다.그렇게젊은청소부를구한다는구인광고를보고입사해,시체청소부로일하게된것이었다.아람과형근은석원이유튜브촬영차내려가있는시골‘당롱리’로함께향한다.각자의목적을이루기위해서.
『예술에관한살인적농담』은결코예술에몸담았다가현실에배반당한사람의절규만을그리지않는다.한국인이라면모두가가지고있을계급비교,가난,입시트라우마를조준한다.그들을악인으로살게끔만든한국의사회구조를조명한다.우리는무엇때문에그리도고통받았느냐고.무엇이우리를모두패배자로만들었느냐고.이곳은선인이존재할수있는곳이맞느냐고.

죄없는자는아무도없다!
불편해서끝까지보게되는치명적인악인들의연극

이소설에서돋보이는것은본인의욕망에충실한인물들뿐이아니다.그인물들의심리와행동을그리는욕설섞인적나라한묘사에있다.하지만거북한비속어가결코불편하지않고통쾌하게읽히는것은우리모두인물이표현하는수준의감정을겪어보았기때문이다.

개새끼.형근은타이머앱을실행하고는히죽대며육성으로초를세는김석원앞에서비로소알게되었다.자신의정체성은오롯이실패에만뿌리를두고있었다는것을.수능대박을칠뻔했던사람,의대에갈뻔했던사람,대학교에서인기많은오빠가될뻔했던사람,실망한부모를청소부라는남다른수입원으로멋들어지게이길뻔했던사람.자신은그‘뻔’을믿으며살아오고있었다.원래는‘될놈’이었으나스스로딱히죽어라매달리지않아‘되지않았다’라고스스로에게최면을걸며,그렇게자위하던인간이었다.그걸이제야깨달았다.(110쪽)

당롱리는석원이유튜브를촬영하는곳이자아람과형근이석원을‘정리’하기위해찾아가는농촌이다.그리고전교생30명중25명이서울에서유학을온학생들인지역유일의중학교‘당롱중학교’가있는시골이기도하다.농어촌전형등대학입시에서유리한조건을얻기위해주소지를미리옮겨자녀를전학시킨학부모들의욕망이빼곡히얽혀있는곳이다.욕망이가득하다는건곧돈이가득하다는것이다.당롱리는입시에침흘리는학부모들의돈이없으면묘지와같은곳이기에,마을주민들은그들이떠날것을가장두려워한다.아람과형근은당롱리에내려가석원이사기꾼이라면서떼인돈을받으러왔다고마을에소문을내사람들의불안을자극한다.멀리서울에있지만그소문을들은부모들이낭패를뻔하게당하고있을리가없다.그들의메신저단톡방엔이미석원을처분하라는열광이가득하다.

그유튜버는마치피리부는사나이처럼,당롱리에타의로갇혀무료해하던중학생쥐떼들을몰고감히입시파멸의길로향하는중이었다.
아람은학부모회장이보여준학부모단톡방의열광적인내용을들여다보았다.죽여요,죽여.그냥있었어도죽이고싶었는데,심지어사기꾼이었어?당장쫓아내,수단과방법을가리지말고.(149쪽)

이소설에등장하는인물들은주연뿐아니라조연과얼굴조차등장하지않는엑스트라마저욕망에가득차행동한다.언뜻일그러진듯보이지만,우리의행동중대부분은악의축에가까우며선이라일컫는것도대개속을들여다보면빈약하기짝이없다.인간이이렇게행동하는슬프고도익숙한이유는십중팔구돈과얽혀있다.우리는돈때문에치졸해지고돈때문에웃음지으며돈때문에많은것을포기하며산다.설재인은작중인물들처럼아주솔직한마음을작가의말에서털어놓는다.

그러면서가끔궁금해한다.내가만약돈이많다면…….원래많았거나아니면책한권이대박나서떼돈을벌었거나아니면대단한직업을가진투잡러였다거나혹은백번양보해소설쓰기전의직업을때려치우지않았다거나(이경우엔소설을쓰지않고자살했을확률이좀더높긴하다)…….그랬다면강퍅하고치졸한서사대신세상을아름답게보는문장들을기록할수있었을까?(‘작가의말’중에서)

소설속등장하는인물들그어떤이들도싫어하지않는다는작가의말에서우리는부정할수없는공감대를이루고야만다.“왜냐하면이들을미워하는순간이세상거의모든사람을증오해야할정도로이들이품은악의수준은평범”(268쪽)하기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