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길은 여름으로

우리의 길은 여름으로

$16.80
저자

채기성

저자:채기성
2019년서울신문신춘문예에단편소설「앙상블」이당선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2021년장편소설『언맨드』로제17회세계문학상을수상했으며,2022년장편소설『반음』으로아르코문학창작기금을받았다.2025년『못갖춘마디』로제23회사계절문학상우수상을수상했다.2024년첫소설집『우리에게있어서구원』,장편소설『부암동랑데부미술관』을펴냈다.

목차

눈오는길
경모와해원
해원과해령
말없는아이
마주침
세정과해원
해령과연서
경모의기도
세정이해원에게
해원의일들
세정과정욱
경모의여름
해령의마음
오래전의편지
세정의사명
자전거
라디오
그여름의일
기대없이사는일
연서의시선
뒷모습
빈자리에남은것
셋의낮과밤
DeliveryFailureNotice
시간속에머무는일
이어지는삶
해령과해원의계절
5개월후,여름

작가의말

출판사 서평

기억속에봉인된과거의날들
찬란한만큼아프게부서졌던우리들의여름

고등학생이던해원과경모는자전거를사이에두고마주선다.파업으로버스가다니지않는하굣길,해원이경모를불러세웠기때문이다.집까지태워달라고.같은마을에사는해원과경모는얼굴만알뿐말을나눈것은그날이처음이다.핸들이제멋대로움직이는자전거때문에망설이던경모는급하다는말에차마거절하지못하고해원을태워집으로달리지만결국우려대로사고가나고만다.내리막길에서휘청이던자전거가가드레일을들이받은것이다.그일로경모는죄책감에휩싸인다.해원을온전한상태로집까지데려다주지못했기때문이다.그날해원의아버지가돌아가셨다.
이후해원과경모는다시성당에서마주치고,일주일에한번함께버스를타고집으로향하며낯선감정을키워간다.어느날,내려야할곳을지나치는바람에집으로가는지름길인덤불숲으로들어선둘은‘그날의일’에대해처음으로대화를나눈다.자전거가가드레일을들이받는바람에해원은발목에,경모는어깨에생긴,다른자리의같은상처에대해.해원이경모의어깨위상처를어루만지는순간,그것은증오의기록에서훈장으로변모한다.
그러나낯선감정을키워가던둘은모종의사건으로인해멀어지고,경모는수사가되어스페인의수도원으로떠난다.얼마후집에들른경모는해원과친구들이지켜보는앞에서가족까지끊어내겠다선언하며한국의짐을모두정리한뒤다시스페인으로떠난다.그러고7년,고향인군에서지원하는이주민지원센터에서해원과경모는속절없이마주치고만다.

소멸해가는고향에서다시만난사람들
고통과혼돈속에서찾아가는간절한기도와위안

해원이고향인가흘면으로돌아온것은이혼후생계때문이기도하지만그이면을들여다보면엄마에대한죄책감과그리움이더크다는것을알수있다.평생을남편의의처증과폭력에시달리는엄마를보며자란해원은몇가지굳게다짐한게있다.엄마처럼은살지않겠다는것.동생인해령만큼은폭력앞에노출되지않도록하겠다는것.두사람에대한마음이클수록해원의언어들은더욱가차없어진다.자신의이혼을반대하는엄마를향해언어라는칼을곧추세우곤사정없이그어내렸다.일방적으로희생하는연애를하는해령을향해서는날카롭게벼린표창을던졌다.그러나해원은죄책감을해소할길이없다.엄마는이미돌아가셨고,해령과의사이에쌓인높다란성벽은허물어질기미를보이지않는다.해원이이제마음을다할수있는대상은이주민지원센터를찾는외국인노동자들뿐이다.그들이처한상황에과하게몰입하고,당사자보다더분노하고,관련기관을찾아가생떼쓰듯해결을요구하는해원은,그래서더경모에게는위태로워보인다.
어머니의병환때문에안식년휴가를내고집으로돌아온경모는이주민지원센터에서일하며해원과마주치지않기위해노력한다.지우고싶은,지웠다고생각한그여름의기억이자꾸만떠오르기때문이다.“좋아하는마음이있어”라고자기안의감정을지칭하듯고백했던경모는결국해원을배신하고수사가되어스페인으로떠났다.해원에게는한마디설명도없이.마지막만남이후7년의세월이흘렀지만잊은줄알았던그여름의빛은시도때도없이찾아들고,도려내지못한채시들었던감정은또다시불꽃처럼피어나경모를당황케한다.그리하여경모는한번더,마지막이라는심정으로다짐하는것이다.이제스페인으로돌아가면다시는한국에오지않겠다고.안식년휴가를끝내고수도원으로돌아간경모는자신의다짐처럼모든연락수단을끊어버린다.

“아낀다는게어떤건지알아?
좋은마음이깎여나가지않게,그마음을지켜주는거야.”

해령은엄마가돌아가신후다니던병원에한달휴가를내고집으로돌아온다.만나기만하면서로를상처내기바쁜언니해원이이미엄마집에서살고있지만어쩔수없다.해령에게는쉴곳이,자신을완전히내려놓을곳이필요하다.현재해령은아무런의욕도없이무기력의바다에서둥둥떠다니는중이다.엄마가살아있을땐그렇지않았다.엄마의기대를채우기위해자신의영혼을갉아먹으면서까지채찍질했다.엄마의욕망을자신의욕망으로삼았으며,엄마의의지에기대한발짝한발짝지친몸을이끌고힘겹게앞으로나아갔다.그러나이제는그럴필요가없어졌다.
그렇게무의미한나날을보내던어느날,해령은마을초입에서혼자울고있는아이를발견한다.돌아가신할머니집에버려진아이,연서.연서를데리고왔던아빠는현재실종상태다.연서는아동일시보호소로보내지고,해령은자주연서를만나러간다.불안때문에툭하면말문을닫는아이,두려움앞에웅크리고앉은연서가꼭자기자신처럼느껴져서다.해원의반대에도불구하고연서의위탁부모를신청한것도그런이유때문이다.연서에게다른시간의기회를주고싶어서.하지만위탁부모가되는것은그리녹록지않다.해령은연서에게완전한가족을만들어줄수없는싱글이기때문이다.
세정과정욱은고향인가흘면으로돌아온뒤하루가멀다하고다툼을벌인다.군청의별정직공무원인정욱에반해리조트에서3교대로일하는세정은근무시간이일정치않기때문이다.생활의균형을원하는정욱에게세정은대출금을갚기위한어쩔수없는선택이라는논리로맞선다.그들부부가기어이돌이킬수없는길로들어서게된것은정욱이연서의위탁문제를꺼냈을때다.연서를데려와키우자는정욱과반대하는세정.그런세정을가혹하게몰아세우는정욱.정욱을가만히바라보기만하던세정은마침내이혼을결심한다.

인간에게타인이란어떤존재일까?
오랜질문에대한깊은사유로서의소설

『우리의길은여름으로』에등장하는인물들은각각타인을위해희생을감내하고도죄책감을떨쳐내지못한다.미처돌보지못한마음혹은의도를빗나간결과때문이다.누군가는매일타인을떠올리며후회하고,또누군가는매일그를잊기위해안간힘을쓴다.타인을위해기도하고,타인을위해떠나고,또타인을위해자신의삶을바치기를주저하지않는다.말하자면이소설은,인간에게타인이란어떤존재일까에대한거듭되는사유에다름아니다.

“태어나는순간부터홀로존립할수없고반드시누군가의돌봄을통해서만성장을시작해야하는인간에게타인이란어떤존재일까.인간의삶은타인으로인해채워지는걸까,아니면스스로의미를찾아가는걸까.어쩌면우리는타인과의관계라는굴레안에서상처받으면서도기대와사랑으로삶을채워가는건아닐까.때로는타인과불화하면서또때로는타인에게헌신하면서,그렇게삶의의미를찾아가고있는게아닐까.꽤오래전부터해온생각을이소설에담았다.”(「작가의말」중에서)

선명한이미지와내밀한열기로가득한이소설이어쩌면잊고있었을지도모를‘당신의여름’으로데려가주기를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