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아메리카식민화와약탈을고발한갈레아노의명저
금서에서필독서로!
출간50주년기념스페셜에디션을저본으로한스페인어최초완역본
『라틴아메리카의열린혈맥』은1971년출간되자마자여러나라에서‘금서’가되었다.군사정권은이책이민중의저항의식을자극할까두려워했다.하지만금서조치는역설적으로이책의영향력을확대했다.이후이책은1970-1980년대라틴아메리카의학생운동과지식인담론에서‘각성의서(書)’,‘필독서’로읽혔다.
2009년4월18일,미주기구(OAS)정상회담에서베네수엘라의차베스대통령은미국의오바마대통령에게이책을선물하면서,“이책은우리라틴아메리카역사에서기념비적인작품이다.우리가역사를배울수있도록해줬다.”라고말했고,이후하루만에아마존베스트셀러2위에올랐다.
이사벨아옌데(칠레소설가·언론인)는이책이“라틴아메리카의‘혈맥’을열었을뿐아니라수세기동안이어진불의에대한사람들의마음과눈,생각을열어주었다.”고했다.아룬다티로이(인도소설가·사회운동가)역시“갈레아노는부서진이야기들을엮어내는거장이다.그가쓴『라틴아메리카의열린혈맥』은정말아름다운책이다.30년전에쓰인이책은오늘날인도에도깊은교훈을전한다.”며그영향력을역설한다.
에두아르도갈레아노의책『라틴아메리카의열린혈맥』은라틴아메리카의빈곤과저개발이우연이나능력부족의산물이아니라,15세기발견시대부터현재에이르기까지유럽과미국중심의세계자본주의체제에의해자원이체계적으로수탈당한직접적인결과라고말한다.
이책의핵심은대륙전체를‘피흘리는신체’로바라보는은유에있다.‘열린혈맥(venasabiertas)’은단순한문학적표현을넘어,지난수세기동안지속된구조적착취의본질을드러낸다.한국에는그동안『수탈된대지』(범우사,1988년초판/현재절판)로소개돼왔는데,그것은‘빼앗긴땅’이라는뜻으로,‘혈맥이열려있는땅’‘피흘리는대륙’과는뜻이멀다.다시말해,‘열린혈맥’은라틴아메리카대륙이금,은,설탕,고무,구리,석유등풍부한자원을끊임없이외부세계에공급하며피흘려온역사를상징하는은유다.
갈레아노는이작품을통해16세기유럽의정복이래500년에걸쳐지속된라틴아메리카에대한수탈의역사를고발한다.그는대륙의자원과민중의피(생명과노동력)가유럽과북미의제국주의중심부로끊임없이유출되는구조적착취를묘사한다.이책은단순한역사서가아니라,파편적이고시적인문체로억압받는자들의목소리를복원하는‘기억의정치학’을실천하는해방문학이다.갈레아노는금과은의약탈에서시작해설탕과노예무역,석유와주석,그리고바나나와커피같은단일작물경제로이어지는착취의연대기를추적한다.이러한과정은라틴아메리카의종속을심화시키고현대세계자본주의체제의불평등한토대를마련했다.
갈레아노는수탈의역사에서도아이티혁명,원주민봉기,노동자파업등민중의저항과연대가끊임없이이어져왔음을강조한다.오늘날신자유주의와디지털자본주의라는새로운형태로착취구조가지속되는상황에서,이책은세계경제의불평등을성찰하게하는유효한거울로기능한다.
따라서,이책은다음같은핵심질문과그에대한대답으로구성된다.
라틴아메리카의자원착취가외부강대국의자본축적에어떻게기여했는가?
라틴아메리카국가들의독립이후경제적종속성이어떻게지속되거나심화되었는가?
원주민과노동자들이경험한착취와저항이라틴아메리카역사에남긴유산은무엇인가?
이책은전통적인역사서형식에서벗어난다.사건의연대가아니라자원의흐름과권력의이동을중심으로삼아서사를전개한다.갈레아노는각자원을매개로해서생산지와소비지,남과북,식민지와제국사이의관계를추적한다.이책에는다양한통계와역사적사실이인용되지만,차가운데이터그대로제시되지않는다.그의분석은경제사적이지만,글은간결하면서도문학적이다.이런점에서이책은학술서와문학작품의경계를넘나드는독특한형식의비평서라고할수있다.갈레아노는아이러니와풍자를통해제국의논리를비판한다.자원수탈을기술하면서동시에기술수탈이정당화되는담론의위선을드러낸다.이책에서이루어진분석은단순한과거회고가아니라,세계화시대의불평등구조를해부하는역사적틀로읽힌다.
착취의연대기:자원을통해본수탈의역사
라틴아메리카의풍요로운자원은축복이아니라저주였다.부의역설이다.포토시은광의번영이볼리비아의극심한빈곤으로이어지고,브라질의‘금의시대’가포르투갈과영국의부를살찌웠다.“우리의부는다른자들의번영을부양하기위해항상우리의빈곤을창출해왔다.”라고갈레아노는지적한다.
착취는식민시대의직접적인약탈에서시작해독립이후자유무역,외국인투자,불공정한교역조건,외채라는더정교한형태로진화했다.다국적기업과국제금융기구(IMF,세계은행)는이구조를유지하고강화하는핵심행위자다.
경제적수탈은원주민대학살,아프리카노예강제동원,그리고현대노동자들의비참한삶이라는막대한인적희생을동반했다.책서두의“태풍의중심에있는1억2천만명의아이들”이라는표현은이러한비극이미래세대까지이어지고있음을시사한다.
라틴아메리카역사상파라과이의프란시아-로페스정권,과테말라의아르벤스정부,칠레의아옌데정부등자주적인산업화와사회개혁을시도했던사례들은예외없이외부세력의개입과내부지배계급의배신으로파괴되었다.또한,라틴아메리카자유무역연합과같은현대의경제통합노력은진정한의미의공동발전을이루기보다,이미시장을장악한다국적기업이더큰규모로이익을극대화하고,브라질같은지역강국이‘하위제국주의’역할을수행하는발판이되고있다.
결론적으로,이책은라틴아메리카의역사를종속과저항의변증법으로해석하며,진정한해방은외부지배구조를타파하고내부의구조적모순을해결하는근본적인변혁을통해서만가능하다고주장한다.
금과은,그리고죽음
에두아르도갈레아노는『라틴아메리카의열린혈맥』의서두에서유럽의탐험과정복이인류사에남긴참혹한장면을기록한다.그것은발견의이야기이전에약탈과피의서사다.1492년콜럼버스가도착한이후불과수십년만에아메리카대륙의원주민인구는급격히감소했다.멕시코에서는약2,500-3,000만명에이르던원주민이한세기만에100만명으로줄고,카리브해의섬들에서는원주민이거의멸종하다시피했다.원인은전쟁만이아니었다.강제노동,유럽인이가져온전염병,그리고끊임없는굴욕이그들의삶을갉아먹었다.
정복자들은황금빛신화를좇았다.볼리비아안데스에있는포토시는탐욕이집중된상징적공간이었다.해발고도가5,000여미터에이르는‘부의산(CerroRico)’은16세기이후200여년동안유럽의부를지탱한심장이었다.수많은원주민이미타(mita)라불리는강제노동제도에따라미로처럼얽힌비좁은갱도로끌려들어갔고,많은수가다시햇빛을보지못했다.어린이부터노인에이르기까지하루12시간넘게산소부족과추위,붕괴위험에서끊임없이은광석을파냈다.그들의목숨값은은1그램의가치보다가벼웠다.역설적으로포토시의번영은그곳의죽음을의미했다.유럽으로실려나간은은에스파냐제국의재정과유럽의초기자본주의발전을뒷받침했지만,은을생산한볼리비아땅에는부가남지않았다.포토시의피로세워진것은마드리드궁전이고,런던금융가였다.
금또한마찬가지였다.멕시코와페루금광은에스파냐왕실의보물창고를채웠지만,금을캐낸자들은자신의굶주림조차해결하지못했다.금은유럽에서화려한성당과궁정의장식물이되었지만,금을캐기위해희생된사람들의이름은어디에도기록되지않았다.아스테카와잉카의찬란한문명은유럽의탐욕앞에서무너졌고,그들의신전은돌무더기로남았다.
정복자들은단순히자원을약탈한것이아니라세계질서를바꾸어놓았다.‘신의이름으로’시작된정복은‘시장과이윤의이름으로’이어졌다.갈레아노는식민지약탈을단순히과거의폭력으로보지않고,세계경제의구조적기원으로읽어냈다.에스파냐와포르투갈이가져간금과은은유럽의자본축적을가능케했고,그자본은산업혁명과제국주의의기반이되었다.오늘날세계경제의불평등은바로이시기에이루어진피의약탈에서시작되었다.
오늘날우리가소비하는금,은,리튬,석유상당부분은여전히남반구에서흘러나온다.포토시의산이울부짖던시절처럼자원은여전히‘열린혈맥’을통해흘러나간다.갈레아노의글은라틴아메리카의과거를이야기하지만,피의흐름은현재진행형이다.정복시대는끝났지만,착취논리는여전히다른이름으로작동한다.결국‘금과은,그리고죽음’은단지16세기의이야기가아니라근대자본주의의원죄를드러내는은유다.
설탕과노예,그리고삼각무역
정복자들이금과은을수탈하기위해라틴아메리카의혈맥을찢어놓은뒤에그대륙에서새롭게흘러나온‘피’는설탕이었다.16세기말부터19세기초까지설탕은세계시장을지배한‘하얀금’이었다.브라질북동부와카리브해의섬들은사탕수수로뒤덮였다.태양과비가풍부한이땅은사탕수수재배에이상적이었으나,그풍요가현지인에게는축복이아니라저주였다.유럽의식민세력은원주민을강제노동에동원했고,그들은앞에서언급한은광산에서처럼죽어나갔다.인구가급감하자유럽은새로운‘노동력’을찾아나섰다.아프리카노예무역이시작되었다.아프리카에서끌려온흑인노예는약1,200만명이상으로추산되는데,상당수가브라질과카리브해로보내졌다.노예선은지옥그자체였다.쇠사슬에몸이묶인상태로수개월동안좁은선창에갇힌노예들은질병과굶주림을겪었다.항해중죽은노예는바다에버려졌다.오늘날대서양어딘가에는설탕의달콤함을위해희생된무수한생명이잠겨있다.
이끔찍한시스템은단순한인신매매가아니라세계자본주의의초석을이룬삼각무역이었다.유럽상인들은아프리카흑인을‘구입’해아메리카로실어날랐다.그리고아메리카에서노예를이용해재배한사탕수수와담배,면화,커피등을유럽으로보냈다.이익은유럽금융과산업자본으로축적되었다.순환의핵심은명확했다.가치생산은남반구에서,이윤축적은북반구에서이루어졌다.아메리카의자원과노동,아프리카의인력,유럽의자본과무기,이셋이맞물리며근대세계체제가형성되었다.
카리브해의사탕수수농장은산업적플랜테이션(plantation)시스템의원형이었다.이곳에서흑인노예들은해가뜰때부터질때까지사탕수수를베고압착기에서즙을짜고끓여서설탕덩어리를만들었다.온몸에상처가나고,더위와채찍질로쓰러져죽는일이다반사였다.
설탕은단지하나의상품이아니었다.그것은자본주의적근대의원형이었다.유럽귀족이차와커피에설탕을타서즐긴‘문명’의달콤함은라틴아메리카농장에서채찍질당하며중노동을하던흑인의절규위에세워졌다.
설탕은라틴아메리카사회구조에도깊은상처를남겼다.플랜테이션소유주는엄청난부를축적했고,부는정치권력으로이어졌다.반면에농장노동자와노예는인간이하대우를받았다.이런구조는이후커피,카카오,바나나로이어지는단일작물재배(monoculture)경제의토대를마련했다.결국설탕은라틴아메리카를‘세계시장의농장’으로만들었다.생산은있지만자립이없었다.이익은외부로흘러갔고,지역사회에는가난과불평등만남았다.오늘날설탕은세계경제의중심상품이아니지만,과거에설탕을통해형성된구조는여전히반복된다.21세기에도남반구농민은세계시장의가격에따라생존을걸고일하며,다국적기업은그들의노동으로막대한이윤을얻는다.
석유와주석
19세기후반과20세기초,라틴아메리카는여전히세계자본주의의주변부였다.금과은,설탕을통해쌓인유럽의부는산업혁명과제국주의확장을통해새로운형태로변환되었다.중심에는석유와광물자원이자리했다.
멕시코,베네수엘라,브라질등은20세기들어석유를세계시장에공급하며새로운경제중심이되었다.그러나갈레아노가지적하듯,생산의통제권은결코현지인손에있지않았다.미국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