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극적 저항
Description
■ 신문 한 장에 담았던 청년들의 간절한 꿈
1991년, 군복을 입은 청년들이 마음을 모아 작은 신문 한 장을 만들었습니다. 군인이기 전에 양심을 가진 인간이고 싶었던 그들은 군 내부의 인권을 위해 목소리를 냈지만, 세상이 건넨 대가는 혹독했습니다. 저자 서재호와 동료들은 신문 〈애국군인〉을 발행했다는 이유로 기무사에 연행되었고, 국방부 영창과 대전교도소의 차가운 독방을 마주해야 했습니다. 이 책은 그 시절 청년들의 순수했던 열정과, 국가라는 거대한 벽 앞에서 온몸으로 견뎌야 했던 시린 계절의 기록입니다.

■ 2024년 비상계엄의 밤, 과거와 현재가 만나다
이 이야기를 다시 꺼내게 된 건 35년 만에 다시 마주한 2024년 12월밤의 비상계엄 때문이었습니다. 국회 앞을 지키던 사병들의 망설이는 눈빛 속에서, 저자 서재호는 먼지 쌓인 낡은 군복을 입고 서 있던 자신의 청춘을 발견했습니다. 그때 무슨 일이 있었냐는 딸 유월의 물음에, 저자는 비로소 굳게 닫혔던 기억의 상자를 열었습니다. 부녀의 대화로 채워진 이 기록은 딱딱한 역사를 넘어,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에게 민주주의의 가치를 온화한 목소리로 들려줍니다.

■ 이념의 벽을 넘은 인간적 연대, 그리고 치유의 여정
책 곳곳에는 저자가 옥중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안영기, 강용주 선생처럼 긴 세월을 견뎌온 이들과 좁은 방에서 나누었던 대화는, 차가운 담장 안에서도 사람 사이의 온기가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보여줍니다.
또한, 몸과 마음이 상한 동료의 곁을 끝까지 지키려 했던 친구들의 이야기는 '함께한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하게 합니다. 저자는 이제 지난 고통을 억지로 지워야 할 흉터가 아니라, 자신이 살아온 정직한 삶의 흔적으로 받아들입니다. 그 담담한 기록이 저마다의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조용한 위로로 닿기를 바랍니다.
저자

서재호

1965년 부산에서 나고 자랐다. 전두환 군부독재 시기인 1985년 대학에 입학 후 학생운동을 했다. 군 입대 후에는 군민주화 운동을 하다 옥고를 치렀다.
기무사, 국방부 영창, 교도소를 거치며 몸이 상하고 오랜 기간 마음을 다쳤다. 함께 활동했던 동료들도 마찬가지다. 세월이 흐른 후 국가로부터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받고 명예 회복되었다. 그렇지만 사과해야 할 이들은 여전히 침묵하고 있다.
2024년 12월, 한밤중에 내려진 비상계엄 사태를 TV를 통해 지켜봤다. 국회 앞 사병들의 곤혹스러움과 머뭇거리는 눈빛에서 35년 전 나의 모습이 보였다.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군민주화라는 숙제를 마주하며, 먼지 쌓인 기억의 상자를 열어 이 책을 써 내려갔다.

목차

*추천의 글
- 외로운 용기에서 민주주의의 보루로 | 문재인
- ‘붉은 방’에서 ‘빛의 광장’으로 | 이동일
- 미래가 과거에게 | 백승휘
- 편집자의 글 | 김수연

*여는 글
- 낡은 기록, 젊은 물을

*닫는 글
- 침묵을 깨고, 다시 봄볕 아래 서서

*부록
- 〈애국군인〉 및 권대현 관련 언론보도 등 일지
- 〈애국군인〉 사건 연표
- 첨부자료

01 공포
02 입대
03 체포
04 붉은 방
05 영창
06 재판
07 독방
08 단식
09 출소
10 복권
11 청테이프
12 보상
13 나가며

출판사 서평

1987년 6월 항쟁 이후 한국 사회는 민주주의의 길로 나아가는 듯 보였다. 그러나 그 변화의 물결이 미치지 못한 공간이 있었다. 바로 군대였다. 사회가 자유와 인권을 말하기 시작했을 때도, 병영은 여전히 폐쇄적 질서와 폭력이 일상화된 채 정권의 이해에 복무하던 영역으로 남아 있었다. 『소극적 저항』은 그 민주주의의 사각지대에서 벌어진 한 사건을 다시 불러낸다.
이 책이 다루는 ‘애국군인 사건’은 1991년 부산에서 발생했다. 군의 정치적 중립, 병영 내 폭력 중단, 군인의 인권을 요구하는 유인물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둔갑했고, 평범한 청년들은 국가의 적으로 만들어졌다. 오늘날에는 상식으로 여겨지는 문장들이 당시에는 처벌의 근거가 되었고, 저자와 동료들은 그 대가로 청춘의 시간을 감옥에서 보내야 했다. 권력이 조직의 위기를 넘기기 위해 어떻게 개인을 희생시키는지, 이 책은 그 작동 방식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소극적 저항』은 저항을 거창한 행동으로 그리지 않는다. 부당한 명령에 따르지 않는 태도, 침묵에 가담하지 않는 선택, 인간의 존엄을 훼손하지 않겠다는 결단이 어떻게 민주주의의 최소한을 지켜냈는지를 보여준다. 이 책에서 ‘소극적 저항’은 회피가 아니라, 가장 낮은 자리에서 권력의 폭주를 멈추는 윤리적 판단이다.
책의 후반부에서 저자와 딸 유월의 대화는 과거의 사건을 현재로 불러온다. 아버지의 기억과 딸의 질문이 만나는 지점에서, 독자는 국가 폭력이 개인과 가족, 그리고 다음 세대에까지 남기는 흔적을 마주하게 된다. 이는 과거를 정리하기 위한 회고가 아니라, 다시는 같은 질문 앞에서 침묵하지 않기 위한 선택이다.
『소극적 저항』은 민주주의가 제도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그것은 각자의 자리에서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가를 고민했던 이름 없는 선택들의 축적 위에 놓여 있다. 이 책은 그 선택들을 오늘의 언어로 다시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