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이여 안녕: 어느 젊은 예술가의 초상

물질이여 안녕: 어느 젊은 예술가의 초상

$20.00
저자

형린(LynnHyeong)

저자:형린(LynnHyeong)
형린LynnHyeong서강대학교철학과를졸업하고동국제대학원에서국제관계학석사학위를취득했다.현대예술분야연구원으로서국립아시아문화전당개관준비등다양한프로젝트를수행한뒤,2015년파리로거주지를옮겼다.이후파리15구의오래된집'르라브라브(LeLabLab)'에서회화,설치,공연을아우르는창작활동에몰두하며,파리8대학교조형예술학부'예술과미디어를통한에콜로지'학과에서생태예술전공으로석사학위를취득했다.
그의작업은파리,부다페스트,소피아,런던,타이중등지의전시와프로젝트로확장되었으며,생드니의창작커뮤니티[60AdaDa]의일원으로다수의단체전에참여했다.파리의갤러리'앙프레시옹(Impressions)'에서개인전을개최하며,동명의연구서를예술작품으로구현했다.
현재형린은대만타이중동해대학교의강사이자레지던시아티스트로서현대예술을강의하고있다.삶의구원과환희를전하는예술의본질적물음을중심에두고,'르라브라브2(LeLabLab2)'로명명한작업공간과강의자체를하나의예술적실천으로확장하고있다.

목차

1장.미지의세계로데려가는미지의기술
1.젊은예술가의초상
2.사그라든심원의불씨로부터
3.새로운생,새로운세계를낳는태동
4.집속의집,르라브라브LeLabLab

2장.흰날갯짓의파동을따라서
1.살갗을스치는무수한흰날개들
2.죽은자와촉각의대화
3.이경이로운물질의나라

3장.만지고만져지는사물들의촉수속
1.혼돈을타고,뚫고나오라
2.세계를맞아들이는환희
3.소리의사원에서

4장.결국사랑을말할수밖에
1.무지개의약속
2.중세의방을지키는눈동자

5장.바닷길로먼항해를떠날때
1.깊음,기쁨과기품이있는곳으로
2.시간의물결속으로보내는나무그림

출판사 서평

“예술이아니었다면끝내세상에매개될수없었을사람.예술이사람을,사랑을구원한다는것은진짜다.”

파리15구막다른골목,지붕에구멍이뚫린채105년을버텨온집,저자는이집을"르라브라브(LeLabLab)"라부르며8년을살았다.이책은그집에서일어난일들의기록이다.정원지하실에서발견한,이미세상을떠난인도피리연주자의방치된그림들을되살려낸영혼의협업.코로나봉쇄속에서나눈이방인아티스트들과의교류.그리고마침내,오래된나무판에그린그림한점을노르망디의바다에흘려보낸순간까지창작과실험,고통과환희의순간들을컬러도판100여컷과함께담아냈다.
8년의여정,그림한점을바다로흘려보내다
2024년5월,저자는프랑스에서의마지막작업〈슬픔이여안녕,PlusdeChagrin〉을완성한다.버려진나무마룻바닥에수개월간빗물과물감을섞어만든이그림을,그는노르망디해안(북위48도59분28.7초,서경1도33분57.8초)에직접놓아바다로떠나보냈다."그것을바다에보내는순간,예술은소유가아니라순환이라는것을깨달았다"고저자는말한다.이장면을끝으로파리에서의여정은마무리되고,저자는삶의무대를대만으로옮긴다.
철학에서예술로,그리고사랑까지
책에는2015년파리에서만난대만인사진작가마이크(MikeOu)와의사랑,그리고2019년결혼에이르는과정도담겨있다.그렇게저자는이세상에'매이는'기쁨을배운다."예술이아니었다면끝내세상에매개될수없었을사람.예술이사람을,사랑을구원한다는것은진짜다"라는저자의고백이책전반을관통한다.가족들조차믿기어려워했던그결혼은,떠돌던삶이마침내한장소와한사람에게자발적으로'매이는'이야기로완결된다.

책속에서

P26
그무렵,한편으로나는프랑스파리로떠날준비를하고있었다.퇴직금과가능한모든것을쏟아,당분간어떻든생존할수있을것이었다.신세진어느지인에게이불길을전하고,나는프랑스로떠났다.그분은내가다시한국에돌아오지않을것같다고했다.나는그럴지모른다고생각했다.어쩌면그럴수있을지도모르겠다고.그것은나에게생존과존엄을위한유일한선택이었다.

P34
그사고가일어났던밤이었다.세상은마치모든것이잠든듯고요했지만,나는침대에누운채내몸전체를덮고있는짙고무거운어둠을또렷이느끼고있었다.그리고그어둠속에서,내안에서멈추지않고울려퍼지는한얼음처럼차가운목소리가있었다.
“너는이제끝났어.”
“너는이제끝났어.”
“너는이제끝났어.”
그목소리는단순한속삭임이아니었다.그것은내몸깊숙한곳,뼛속까지파고들며내존재전체를얼어붙게만들었다.내몸깊숙한어느심연에서울려퍼지는그냉소에가득찬소리가반복되었다.‘끝이아니라고,그게아니라고.’나는내뜻대로움직이지않는입술을가다듬으려애쓰며고개를저었다.그말의공명은곧내가태어나고자란이땅을떠나야하며,언젠가떠날것이라는절박한갈망으로변했다.나는그언제이루어질지모르는갈망을붙잡고살아남으려애썼다.그리고말그대로생존하기위해온힘을다했다.

P46
이집은정확히1900년에지어진것으로,지하실,반지하의스튜디오,1층거실과작은부엌,그리고2층의두개방으로이루어져있었다.지붕에는이미내가들어가기오래전부터구멍이뚫려천으로그구멍을가려놓고있었다.때때로집주인트리스탕(Tristan)은지붕위에올라가그구멍을메우고는했다.나는옆집지붕에사다리를타고올라가,햇빛을쬐고,나무들에둘러싸여작업을했다.이곳은주로덴마크인들이그들커뮤니티를통해서처음파리에와서머무는곳이었다.나는트리스탕이처음으로맞아들인한국인손님이었다.트리스탕은미국의방송국NBC에서사진기자를오래하며전세계를돌아다녔다고했다.그리고그의큰아들이코펜하겐에살고있어서가끔씩트리스탕을찾아왔다.바로옆에같은정원을끼고있는그의집은크고작은카메라들과삼각대로가득차있었다.

p132
창작의길은예측불허,지극히유동적이다.하나의행위가다음행위를낳고,다음행위를낳고,다음행위가이전의행위를바꾸고,이후의행위가최초의구성을바꾼다.이렇게원인과결과가뒤섞이며현재,과거,미래가여러층위로포개진다.이렇게예술가는애정어린관찰자가된다.그관찰속에서관습적인상징에서탈피한,살아꿈틀거리는관계의형상이피어난다.예술은곧그가놓인환경이기도하다.흙,미생물,사람.살아있는것과껍질에싸여있는씨앗과같다.그씨앗이어느자궁속에서숨쉬다,마침내나타나게된다.그렇게예술작품은살아있는생태계다.탄생과재탄생을거듭하며,변신하는물질의숨결을품는다.예술계역시살아있는생태계다.그속에서다양한정치·사회적힘들이얽혀나간다.예술가는그스스로그생태계의안과밖에서나타나고사라지는생물이다.여러힘들의역동과역경속에서햇빛,바람,토양,그생태계의지도를그려나가는생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