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역사가 단선적으로, 결정론적으로 나아간다고 믿는 진보 담론은 역사 속 우발성과 잠재적 가능성들을 무시하여, 그 과정에서 폭력에 희생되는 “으깨진 새”들을 은폐한다. 이들을 외면한 채, 체제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기보다 그 안에서 탈정치화, “관용” 등을 도모한 결과는 포퓰리스트 권력자가 스스로를 외설적 광대와 악당과 같이 만듦으로써 오히려 정치적 지배를 강화하는 “최악 만들기”와 파국에 대한 “도착적 부인”이다.
그 결과, 우리는 전진하다 보면 결국 출발점으로 되돌아오는 뫼비우스의 띠 위에 서 있다. 안온하다고 믿어온 '관리된 세계'라는 정상성이 실은 전쟁과 포퓰리즘, 생태적 재앙으로 말미암은 파멸이라는 필연적 '고정점'으로 우리를 이끌고 있다. 이 막다른 길을 벗어나기 위해, 슬라보예 지젝은 역사를 단선적 진보가 아닌 실현되지 못한 우발적 가능성들이 중첩된 '홀로그램'으로 사유할 것을 제안한다.
파국을 필연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숙명론적 포기가 아니다. 오히려 재앙이 이미 발생한 미래의 일부임을 인정하고, 그 운명을 소급하여 바꾸기 위해 불가능해 보이는 행동을 감행하는 용기이다. 기만적인 낙관주의를 거부하고 "희망이 없더라도 가능한 모든 방식으로 행동"할 때, 역설적으로 진정한 희망의 단초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결과, 우리는 전진하다 보면 결국 출발점으로 되돌아오는 뫼비우스의 띠 위에 서 있다. 안온하다고 믿어온 '관리된 세계'라는 정상성이 실은 전쟁과 포퓰리즘, 생태적 재앙으로 말미암은 파멸이라는 필연적 '고정점'으로 우리를 이끌고 있다. 이 막다른 길을 벗어나기 위해, 슬라보예 지젝은 역사를 단선적 진보가 아닌 실현되지 못한 우발적 가능성들이 중첩된 '홀로그램'으로 사유할 것을 제안한다.
파국을 필연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숙명론적 포기가 아니다. 오히려 재앙이 이미 발생한 미래의 일부임을 인정하고, 그 운명을 소급하여 바꾸기 위해 불가능해 보이는 행동을 감행하는 용기이다. 기만적인 낙관주의를 거부하고 "희망이 없더라도 가능한 모든 방식으로 행동"할 때, 역설적으로 진정한 희망의 단초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진보에 반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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