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 포인트

제로 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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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기후는 임계점을 넘어섰고, 트럼프는 다시 백악관에 돌아왔다. 가자에서는 학살이 실시간으로 중계되고, 디지털 영주들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우리의 대화를 사유지로 만들었다. 헤겔이 '인륜'이라 부른 것-예의범절, 정직, 사회적 연대 같은 사회를 지탱해 온 불문율-은 우리 눈앞에서 무너지고 있다.
지젝은 이 풍경에 ‘제로 포인트’라는 이름을 붙인다. 제로 포인트는 ‘바닥’이 아니다. 상황은 더 나빠질 수 있고, 틀림없이 더 나빠질 것이다. 제로 포인트란 우리가 기존 체제 안에서는 출구를 발견할 수 없는 하강 나선에 갇힌 그 시점이다.
트럼프의 외설적 포퓰리즘은 ‘도둑질을 멈춰라!’라는 구호 아래 ‘향유의 도둑질’ 논리를 가동하며, 그를 떠받치는 디지털 봉건 영주들의 사유화된 공유지에서 우리는 지대를 바치는 ‘생산이용자’로 전락한다. 자국의 환상이 헛되다는 진실을 피하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이스라엘은 가자를 파괴하는 현실 속으로 도피한다. 그리고 지젝은 “팔레스타인인들에게 귀 기울여야 한다”라고 말함으로 인하여 공격받는다. 이 모든 풍경의 한가운데에서 지배 이데올로기는 우리에게 마지막 남은 수치심과 존엄마저 빼앗으려 든다.
『제로 포인트』는 이러한 현실을 위로하지 않는다. 분명한 대안을 약속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분명한 대안이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진정한 용기라고 말한다. 베케트의 문장처럼- “다시 시도하라. 다시 실패하라. 더 나은 실패를 하라.”
저자

슬라보예지젝

헤겔변증법,라캉정신분석,마르크스주의비판이론을결합해독자적인사유체계를구축해온슬로베니아출신철학자이다.
슬로베니아류블라냐대학교철학과의선임연구원이며,스위스유럽대학원(EuropeanGraduateSchool,EGS)에서철학및정신분석을가르치고있다.또한미국뉴욕대학교의독일학분야국제석좌교수직함을보유하고있다.
주요저서로『진보에반대한다』,『잉여향유』,『멈춰라,생각하라』,『이데올로기의숭고한대상』등이있다.

목차

-『제로포인트』에대하여
1부:다시원점으로-제로포인트-다잘될겁니다…농담입니다!-모든말이동등하지는않다-히스테리환자들이꿈만꾸는것-허공에흩어진세계-메타버스의영웅들-죽음의경련
2부:말하기에적절한때는언제인가?-분석하지말것,언급하지말것-모두가들을때말할것,아무도없을때철회할것-듣지않을것,멈추지않을것-다시또,요약:안전선을넘어투쟁의현장으로
-2023년10월17일,프랑크푸르트도서전개막식연설
-가자를위한철학은무엇인가?:『제로포인트』,그리고슬라보예지젝의사유행보에관하여

-주석

출판사 서평

가자에서는학살이실시간으로중계된다.우크라이나의도시는폐허가된다.트럼프는다시백악관에돌아왔고,유럽곳곳에서극우가약진한다.메타버스의영주들이우리의대화를감시하고,기후는임계점을넘어선다.
그런데우리는,무엇을할수있는가?
슬라보예지젝은이질문앞에서멈춰선다.『제로포인트』는답을서둘러내놓는책이아니다.오히려답이없다는사실을직시할때비로소시작될수있는사유의자리,그‘제로포인트’로우리를데려간다.

[다시,처음부터]
‘제로포인트’는1922년레닌이쓴비유에서온다.새로운산정상에오르려다후퇴한등반가는시작점,즉영점으로되돌아간다.그것은패배가아니다.‘처음부터다시시작하는’힘과유연성을잃지않는한,등반가는결국실패하지않는다.베케트의문장처럼-‘다시시도하라.다시실패하라.더나은실패를하라.’
지젝이말하는제로포인트는그러나바닥이아니다.상황은더나빠질수있고,틀림없이더나빠질것이다.제로포인트란우리가기존체제안에서는출구를발견할수없는하강나선에갇힌그시점이다.자본주의의종말보다세계의종말을상상하기가더쉬워진시대,우리가도달한것은바로이지점이다.

[지젝,가자앞에멈춰서다]
이책의2부는한사건에서출발한다.2023년10월17일,지젝은프랑크푸르트도서전개막식연단에섰다.하마스의공격을무조건적으로비판하면서도‘팔레스타인인들에게귀기울여야한다’고말한그의22분짜리연설은,헤센주반유대주의담당관에의해거듭방해받았다.그가말한것은균형잡힌중도의입장이고,바로그래서그는공격받았다.
2부「말하기에적절한때는언제인가?」는그사건이후지젝이일기처럼써내려간가자에관한에세이들이다.사건이끝난뒤지나고나서명확성을부여하는회고대신,혼란과절망한가운데에서사고가전개되는과정을그대로보여준다.라캉의수치심,마렉에델만의유산,푸코의이란,진실과허구의변증법-지젝특유의철학적수사는가자라는구체적비극앞에서다시한번현실과날카롭게충돌한다.

[그저행동만할수는없다]
‘말만하지말고뭔가해!’이말은지혜처럼들린다.지젝은이‘어리석은지혜’를뒤집으라고말한다.뭔가하지만말고제대로된말을해.상황에올바른이름을붙이고진실을말하는일은,행동만큼혹은그보다더중요하다.이스라엘이가자지구를파괴하는것도,러시아가우크라이나를파괴하는것도,환상이헛되다는진실을피해‘잔혹한현실’속으로도피한결과다.우리에게부족한것은행동의의지가아니라,우리가무엇을보고있는지를정확히명명할언어다.
이책의부제‘그저행동만할수는없다,우리는올바른말을해야한다’가가리키는곳이바로여기다.트럼프와메타버스,코스트코가이즈와시진핑의신보수주의,푸틴의‘전통적가치’와가자지구의잔해사이를종횡무진가로지르는에세이들은결국하나의같은질문을향한다.우리는지금보고있는것의이름을부를수있는가?

[가자를위한철학]
한국어판에는정치철학자배세진이‘가자를위한철학은무엇인가?’라는주제의해제를더하였다.알튀세르-발리바르의이론전통위에서지젝을읽는이해제는,지젝철학의특징을‘현행성actualité의철학-체계를구축하지않고매정세에온힘을다해개입하는철학-’으로짚어낸다.그리고묻는다.가자학살을실시간으로목도하는우리에게좌절할시간이있는가?행동하기에적절한때는언제이고,적절한장소는어디인가?
답은다소평범하지만그래서무거워진다.바로‘오늘날,지금여기.’그리고이‘지금여기’를우리는지젝을따라‘제로포인트’라부를수있을것이다.

[영점에서다시]
『제로포인트』는위로하지않는다.분명한대안이있다고약속하지도않는다.다만출구가보이지않는다는사실을인정하는데서,모든것을다시사유해야한다는자리에서,사유와행동이다시가능해진다고말한다.
영점은끝이아니라시작이다.다만우리는그곳에도착한적이있다는사실부터인정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