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끝으로더듬어보면유리?
내일의예보가만져진다”
유리,눈,나무,손끝으로더듬는?
깨지기쉬운삶의가장투명한예보
2003년『조선일보』신춘문예에당선되며작품활동을시작한천수호의네번째시집『내일의유리예보』가타이피스트시인선015번으로출간되었다.천수호는그동안삶의복잡한결을생생한감각과상상력으로포착하고,보이는세계너머들리는사물의기척에귀기울이며,병과죽음,이별과애도의장면속에서관계의의미를다시묻는시세계를펼쳐왔다.이번시집에서시인은유리,눈,나무,살구,손끝같은사물의표면을통해깨지기쉬운삶이품은불안과긴장,그리고그럼에도계속감각하려는마음을투명하고도서늘하게그려낸다.
이번시집에서시인은세계를향해손을뻗는다.그러나그손끝은번번이투명한벽에가닿는다.사랑하는사람과의이별,죽음이후에도남아있는기억,인간과인간사이의거리,그리고자기자신에대한끝없는질문까지.시인은우리가끝내닿을수없는것들을오래응시한다.그러나『내일의유리예보』는닿을수없음앞에서멈추는시집이아니다.오히려끝내닿을수없음을알면서도다시손을내미는마음,보이지만만질수없는세계의표면을조심스럽게더듬어보려는태도의기록이다.
『내일의유리예보』에서유리는단순한사물이아니다.유리는나와세계사이에놓인얇은막이며,보이는것과만질수없는것사이의경계이고,이미지나간통증이뒤늦게손끝에닿는감각이다.그것은이해했다고생각하는순간다시멀어지는타인의내면이며,살아있는사람과떠난사람사이에놓인투명한경계이기도하다.이시집에서중요한것은확실히보는일이아니라조심스럽게더듬는일이다.눈으로확인할수없는것,말로설명할수없는것,이미지나갔지만아직몸에남아있는것을손끝으로감지하는일.『내일의유리예보』라는제목은바로그감각을품고있다.
잠깐멈춘다허공에두눈?
손끝으로더듬어보면유리?
내일의예보가만져진다
-「유리뒤에서」중에서
표제시「유리뒤에서」는시집전체의문제의식을가장선명하게보여주는작품이다.유리창을사이에둔설움은그치지않고이어지며,화자는그투명한막앞에서멈추어선다.여기서유리는단순한차단의장치가아니다.그것은인간이세계를인식하는방식자체를상징한다.우리는서로를바라볼수는있지만완전히도달할수는없다.타인의마음을이해했다고믿는순간에도,슬픔을지나왔다고생각하는순간에도,세계는다시한겹의투명한막너머로물러난다.그럼에도사람들은손끝으로유리를더듬으며내일을예감한다.천수호의시는그불가능한접촉의순간에서인간존재의고독과,그고독속에서도계속감각하려는마음을길어올린다.
이시집의슬픔은하나의감정으로단순화되지않는다.슬픔은마음속에만머물지않고눈,나무,살구,손가락,우물,벌레,유리같은사물의표면으로옮겨간다.감정은사물이되고,사물은다시감정의모양을입는다.독자는한사람의내면을설명으로듣는것이아니라,세계전체가조금씩얼어붙고,흐려지고,갈라지고,뒤집히는장면을목격하게된다.
이별은이시집의중요한출발점이지만,『내일의유리예보』는단순한이별의비애에머물지않는다.이별이후에도사라지지않는말,물건,기억,몸의감각이어떻게세계의날씨가되는지를보여준다.떠난사람의언어는눈발처럼쏟아지고,남은사람의방에는기대어있는것과무너진것과엎어진것들이뒤섞여쌓인다.이별은끝나는일이아니라,지나간뒤에도계속해서도착하는일이다.
이별을퍼붓는발음은눈발과비슷하여?
네언어의조각들이전국적으로눈을몰고왔다
여름으로간너는겨울의폭언을알수없겠지만?
이건네가몰고온폭설이어서?
구석진곳에남아있던네물건들처럼?
기댈건기대고무너진건엎어진채로쌓인다
-「망각과지퍼」중에서
천수호에게망각은단번에닫히는지퍼가아니다.기억은닫으려할수록새어나오고,잊으려할수록다른형태로되돌아온다.떠난사람은여름으로갔지만남은사람은겨울한가운데에있다.한사람의부재는개인적인사건을넘어,세계의온도와빛과방향을바꾸어놓는날씨가된다.그러므로이시집에서내일은멀리서오는시간이아니다.이미우리안에도착했으나아직이름붙이지못한감각,지금여기에서손끝에닿는예감이다.
이시집은또한말해지지않는것들의세계를오래바라본다.나무는목소리를낼것처럼사람을끌어당기지만끝내말하지않는다.사람들은그침묵앞에귀를대고,자신의심장이두근거리는소리를듣는다.말하지않는존재는부재하는것이아니라,오히려더강렬한방식으로사람을흔든다.창밖의살구나무가어느순간등을돌린사람의형상이되는장면도그렇다.익는것은열매이지만,먼저익는것은등이다.천수호는사물의익숙한앞면을뒤집어,우리가외면했던뒷면의감정을보게한다.
창밖에보이는살구나무가?
등을돌리고있다는생각이드는순간?
돌아선사람들은모두살구나무가된다
그래서살구는등이먼저익는다
-「개살구」중에서
『내일의유리예보』가응시하는것은깨진이후의파편만이아니다.더중요한것은깨지기직전의긴장이다.깨지기쉬운것들은약해서가아니라너무민감하게세계를받아들이기때문에위태롭다.유리는단단한벽이아니라예민한표면이다.눈은녹기쉬워서온도를드러내고,꽃잎은얇아서상처의기미를먼저받아낸다.약한것들은약하기때문에더정확하다.천수호의시는그약한것들의감각을믿는다.
그감각은손끝의문제로도이어진다.손은잡는기관이면서동시에놓는기관이고,고르는기관이면서동시에상처입히는기관이다.하나를고르는일은언제나다른것들을버리는일이되며,다정한접촉조차어느순간폭력의자세로바뀔수있다.그래서이시집의화자는쉽게펼쳐보이지못한다.펼친다는것은곧누군가의손끝에자신을맡기는일이기때문이다.
다섯개를펼쳐놓고하나를고르라고할때?
대체로그선택이간사해지는것처럼?
손가락끝이무서워서얼른내말을감춘날들이많았다
다정한악수가뒷목을내리칠때가많았기에?
대체로펼쳐보이는것을좋아하지않는다
-「오늘의수선」중에서
『내일의유리예보』는슬픔을위로로봉합하지않는다.대신슬픔이세계를어떤방식으로바꾸어놓는지를보여준다.한사람의통증은사물의방향을바꾸고,한사람의침묵은나무의자세가되며,한사람의기억은유리창에남은차가운흔적이된다.이시집의시들은울음보다울지못함에,말보다말하지못함에,사건보다사건이후에남은감각에더오래머문다.
우리는매일누군가를이해했다고믿고,어떤슬픔을지나왔다고생각하며,내일을예측할수있다고착각한다.그러나천수호의시는묻는다.우리가보고있는세계는과연얼마나투명한가.그리고그투명함너머에는무엇이있는가.『내일의유리예보』는그질문을오래품게만드는시집이다.닿을수없는것들의표면을끝내손끝으로더듬는시집,깨지기쉬우나끝내깨지지않으려는세계의슬픔앞에서다시손을내미는시집이다.
천수호의『내일의유리예보』는미래를예언하는시집이아니다.이미우리안에도착했으나아직이름붙이지못한감각의표면을더듬는시집이다.깨지기쉬운삶이끝내깨지지않으려할때,유리처럼차갑고투명한내일이손끝에닿는다.그리고그순간,시는하나의예보가된다.부서질것을알면서도다시만져보려는마음의가장섬세한예보가된다.
[시인의말]
유리를두드려
그안에서
깨지기쉬운내얼굴을새로꺼낸다.
2026년6월
천수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