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그리스도교 신앙의 현대판 고전
20세기 전반 그리스도교계의 핵심 지도자였던 윌리엄 템플의 대표작
어둠과 혼란의 시대에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는 법
20세기 전반 그리스도교계의 핵심 지도자였던 윌리엄 템플의 대표작
어둠과 혼란의 시대에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는 법
제98대 캔터베리 대주교 윌리엄 템플의 대표작. 1931년 2월, 옥스퍼드 대학교 세인트 메리 교회에서 여드레 밤에 걸쳐 전한 강연을 묶은 책으로, 출간한 지 한 세기가 다 되도록 그리스도교 신앙의 근본 물음을 다루는 고전으로 남아 있다. 사람들은 템플을 흔히 사회참여를 외친 그리스도교 지도자로 기억한다. 평신도 권한을 넓힌 ‘생명과 자유 운동’을 이끌었고, 많은 이가 전후 영국 복지 국가 건설의 주춧돌이 되었다고 이야기하는 『그리스도교와 사회 질서』를 썼으며, 세계교회협의회 창설을 준비하다 눈을 감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런 사회참여를 외친 지도자 이전에 신학자이자 성직자였던 템플의 얼굴을 비춘다. 그는 평생 그리스도의 의미, 그리스도교의 의미, 신앙에 기반을 둔 삶의 모습에 관심을 기울였고, 사회참여는 그 결과였다. 이 책은 바로 그 사회참여를 이끌어낸 신학과 신앙의 모습을 보여준다.
1931년 옥스퍼드는 템플에 호의적인 자리가 아니었다. 천문학은 광막한 우주를 펼쳐 보이며 인간이 차지하는 자리를 한없이 작게 그렸고, 전쟁의 상처는 선함과 진보를 향한 믿음을 무너뜨렸다. 삶에 뜻이 있는지 의심하는 허무주의가 스며들었고, 옳고 그름을 가를 기준이 있는지 의심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신을 믿어야 할 근거를 찾기보다 신을 믿지 않을 근거를 찾기가 더 쉬운 시절이었다. 템플은 바로 그 회의론이 짙게 번진 대학가 한복판에서 신앙에 대해, 그리스도에 대해,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신 존재를 수학 명제처럼 증명하려 들지 않는다. 대신 신앙을 확실성이 아니라 삶을 건 모험으로, 위험을 무릅써야 하는 탐색으로 그린다. 이 물음에서 출발해 그는 역사 속 그리스도의 자리, 도덕의 근거, 죄와 회개, 십자가형이 지니는 의미, 삶 속에 임하는 성령, 기도와 성사, 그리고 교회로 청중을 데려간다. 우주라는 가장 큰 무대에서 시작해 한 개인의 회개와 기도로, 다시 그리스도인이 함께 이루는 공동체로 가는 여정이다. 템플은 짧은 메모 하나만 들고 단상에 올라 정돈된 강연을 펼치는 드문 재능을 지녔다. 그래서 문장 하나하나에 학술서에서는 만나기 힘든 생동감이 있다. 청중을 마주 보고 던지는 질문, 스스로를 낮추는 유머, 삶으로 끌어안은 확신이 곳곳에 스며 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에 걸쳐 활동한 영국 그리스도교 지성은 이후 그리스도교 지성계에 괄목할 만한 흔적을 남겼다. 체스터턴은 『정통』에서 역설의 언어로 신앙을 옹호했고, 이블린 언더힐은 다양한 저술을 통해 신비의 차원을 역설했고, 톨킨은 『반지의 제왕』을 통해 그리스도교 신앙에 입각한 상상력의 세계를 넓혔으며, 도로시 세이어즈는 『창조자의 정신』에서 예술가의 창조 행위를 삼위일체에 비추어 풀어냈고, C.S. 루이스는 BBC 강연을 묶어 『순전한 기독교』를 내놓았다. T.S. 엘리엇은 『황무지』로 전후의 폐허를 노래한 뒤 성공회로 개종했고, 『그리스도교 사회를 향한 이념』에서 세속화한 사회에 그리스도교가 설 자리를 물었다. 찰스 윌리엄스는 재기 넘치고 통찰력 있는 저술들을 통해 교회와 교회 밖 모두에 신선한 자극을 주었다. 로널드 녹스는 정교한 변증과 성서 번역으로 대응했다. 이들은 모두 허무주의가 짙어지고, 자본과 개인의 이익을 앞세우는 흐름이 굳어지고, 과학이 신앙 자체를 뿌리부터 의심하던 시절에 글을 썼다. 템플은 같은 흐름 속에서 같은 물음을 붙들면서도, 교회를 실제로 움직인 지도자로서 발언했다. 그리스도교의 상상력이라는 영토를 넓힌 작가들, 책들 사이에서 템플의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삶』은 교회 제도 한복판에서 나온 응답으로서 남다른 무게를 지닌다.
허무를 향한 기울어짐, 개인과 자본을 앞세우는 흐름, 신앙을 낡은 미신으로 몰아붙이는 과학주의. 이 세 흐름은 백 년 가까이 지난 오늘도 방향을 바꾸지 않았다. 그래서 템플의 이야기는 과거의 한 자료로 남지 않고 지금 이 자리에서 또 다른 울림을 머금고 다가온다. 이 세계는 과연 무엇인가? 삶이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인가? 그는 이 세계에 어떤 오래되고도 새로운 무언가를 남겼는가? 그를 따르는 삶이란 무엇인가? 교회란 무엇인가? 이 물음을 정면으로 마주하려는 독자에게 이 책은 늘 가까이하며 새겨 둘 고전으로 남는다.
1931년 옥스퍼드는 템플에 호의적인 자리가 아니었다. 천문학은 광막한 우주를 펼쳐 보이며 인간이 차지하는 자리를 한없이 작게 그렸고, 전쟁의 상처는 선함과 진보를 향한 믿음을 무너뜨렸다. 삶에 뜻이 있는지 의심하는 허무주의가 스며들었고, 옳고 그름을 가를 기준이 있는지 의심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신을 믿어야 할 근거를 찾기보다 신을 믿지 않을 근거를 찾기가 더 쉬운 시절이었다. 템플은 바로 그 회의론이 짙게 번진 대학가 한복판에서 신앙에 대해, 그리스도에 대해,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신 존재를 수학 명제처럼 증명하려 들지 않는다. 대신 신앙을 확실성이 아니라 삶을 건 모험으로, 위험을 무릅써야 하는 탐색으로 그린다. 이 물음에서 출발해 그는 역사 속 그리스도의 자리, 도덕의 근거, 죄와 회개, 십자가형이 지니는 의미, 삶 속에 임하는 성령, 기도와 성사, 그리고 교회로 청중을 데려간다. 우주라는 가장 큰 무대에서 시작해 한 개인의 회개와 기도로, 다시 그리스도인이 함께 이루는 공동체로 가는 여정이다. 템플은 짧은 메모 하나만 들고 단상에 올라 정돈된 강연을 펼치는 드문 재능을 지녔다. 그래서 문장 하나하나에 학술서에서는 만나기 힘든 생동감이 있다. 청중을 마주 보고 던지는 질문, 스스로를 낮추는 유머, 삶으로 끌어안은 확신이 곳곳에 스며 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에 걸쳐 활동한 영국 그리스도교 지성은 이후 그리스도교 지성계에 괄목할 만한 흔적을 남겼다. 체스터턴은 『정통』에서 역설의 언어로 신앙을 옹호했고, 이블린 언더힐은 다양한 저술을 통해 신비의 차원을 역설했고, 톨킨은 『반지의 제왕』을 통해 그리스도교 신앙에 입각한 상상력의 세계를 넓혔으며, 도로시 세이어즈는 『창조자의 정신』에서 예술가의 창조 행위를 삼위일체에 비추어 풀어냈고, C.S. 루이스는 BBC 강연을 묶어 『순전한 기독교』를 내놓았다. T.S. 엘리엇은 『황무지』로 전후의 폐허를 노래한 뒤 성공회로 개종했고, 『그리스도교 사회를 향한 이념』에서 세속화한 사회에 그리스도교가 설 자리를 물었다. 찰스 윌리엄스는 재기 넘치고 통찰력 있는 저술들을 통해 교회와 교회 밖 모두에 신선한 자극을 주었다. 로널드 녹스는 정교한 변증과 성서 번역으로 대응했다. 이들은 모두 허무주의가 짙어지고, 자본과 개인의 이익을 앞세우는 흐름이 굳어지고, 과학이 신앙 자체를 뿌리부터 의심하던 시절에 글을 썼다. 템플은 같은 흐름 속에서 같은 물음을 붙들면서도, 교회를 실제로 움직인 지도자로서 발언했다. 그리스도교의 상상력이라는 영토를 넓힌 작가들, 책들 사이에서 템플의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삶』은 교회 제도 한복판에서 나온 응답으로서 남다른 무게를 지닌다.
허무를 향한 기울어짐, 개인과 자본을 앞세우는 흐름, 신앙을 낡은 미신으로 몰아붙이는 과학주의. 이 세 흐름은 백 년 가까이 지난 오늘도 방향을 바꾸지 않았다. 그래서 템플의 이야기는 과거의 한 자료로 남지 않고 지금 이 자리에서 또 다른 울림을 머금고 다가온다. 이 세계는 과연 무엇인가? 삶이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인가? 그는 이 세계에 어떤 오래되고도 새로운 무언가를 남겼는가? 그를 따르는 삶이란 무엇인가? 교회란 무엇인가? 이 물음을 정면으로 마주하려는 독자에게 이 책은 늘 가까이하며 새겨 둘 고전으로 남는다.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삶 (그리스도의 정신을 따라 살아가기)
$1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