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봉틀 앞에서 길어 올린 삶의 언어
## 헤나 시인, 시집 『촘촘하게 혹은 느슨하게』 출간
**수선집의 바늘과 실, 노동의 시간에서 발견한 삶의 철학**
**해학과 돌봄, 일상의 통찰을 담은 시 세계**
도서출판 이um은 헤나 시인의 시집 『촘촘하게 혹은 느슨하게』를 오는 10월 30일 출간한다. 이번 시집은 오랜 세월 세탁과 수선의 현장에서 살아온 시인이 노동의 경험과 가족의 이야기, 일상에서 발견한 삶의 의미를 시적 언어로 풀어낸 작품집이다.
헤나 시인의 시가 지닌 가장 뚜렷한 개성은 수선집이라는 구체적인 생활 현장에서 출발한다는 점이다. 재봉틀과 노루발, 줄자와 돋보기안경, 자투리 천과 고장 난 지퍼 등 평범한 작업 도구들이 시인의 상상력을 거쳐 살아 있는 존재로 등장한다. 사물에 목소리를 부여하는 의인화와 말놀이, 능청스러운 해학은 자칫 무겁게 흐를 수 있는 삶의 이야기에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표제작 「촘촘하게 혹은 느슨하게」는 옷감의 상태에 따라 바느질의 땀수를 조절하듯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적절한 거리와 배려가 필요하다는 삶의 이치를 담고 있다. 「자투리와 노루발」은 버려진 천 조각을 통해 존재의 가치를 되묻고, 「수선집 아줌마는 성별이 없다」는 수선집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유쾌한 언어로 풀어내며 노동 현장의 풍경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가족과 돌봄의 경험도 시집의 중요한 축을 이룬다. 「감당할 만한」과 「어디까지 왔니」는 장애를 지닌 자녀와 함께 성장해 온 어머니의 시간을 담고 있다. 특히 「행복카드」는 장애인 교통카드의 안내 음성이 오히려 이용자를 구별 짓는 현실을 포착해 일상에 스며든 편견을 돌아보게 한다. 「밥 푸는 순서」에는 자녀를 향한 어머니의 책임감과 오래 살아야 한다는 절실한 마음이 담겨 있다.
시집은 모두 5부로 구성됐다. 제1부 ‘어깨 좁은 여자 어깨 넓은 남자’에서 노동과 수선의 세계를 펼쳐 보이고, 제2부 ‘어디까지 왔니’에서는 가족과 돌봄의 시간을 들여다본다. 제3부 ‘숨기고 싶은 것은 이름이 두 개’, 제4부 ‘나만 그럴까’, 제5부 ‘생각 수선 중’으로 이어지며 일상의 관찰과 삶의 성찰을 확장한다.
작품 해설을 맡은 이송희 시인·문학평론가는 「해진 자리에서 다시 시작되는 삶」에서 헤나의 시가 바느질과 수선의 언어를 통해 노동과 관계, 존재의 가치를 새롭게 바라보고 있음을 짚어낸다.
도서출판 이um은 이번 시집이 특별한 사건이나 거창한 관념이 아닌, 평범한 생활과 노동의 현장에서도 독자적인 시적 세계가 탄생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는 점에 주목한다. 해진 옷을 다시 꿰매는 손길처럼 상처와 결핍을 외면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다시 살아갈 가능성을 발견하는 것이 헤나 시의 힘이다.
『촘촘하게 혹은 느슨하게』는 웃음과 눈물, 노동과 돌봄이 교차하는 삶의 현장에서 한 땀 한 땀 길어 올린 시의 기록이다.
해진 자리에서 다시 시작되는 삶
- 헤 나, [촘촘하게 혹은 느슨하게]
이송희(시인, 문학평론가)
1. 삶은 언제나 수선 중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고쳐 나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오래 입은 옷에 구멍이 나면 천을 덧대고, 솔기가 터지면 바느질을 다시 한다. 몸에 맞지 않는 옷은 줄이거나 늘리고, 고장 난 지퍼는 어긋난 이빨을 하나씩 맞추어야 한다. 그러나 아무리 정성껏 수선한 옷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해지고 낡는다. 사람의 삶도 이와 다르지 않다. 누구나 상처를 입고, 때로는 관계가 어긋나며, 익숙하게 살아온 방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순간을 맞는다. 그때마다 우리는 자신을 돌아보고 삶의 방향을 조금씩 고쳐 나간다.
옷을 수선하는 일에는 세심한 시선이 필요하다. 먼저 어디가 해지고 찢어졌는지 살펴야 하고, 옷감의 성질과 입는 사람의 몸을 헤아려야 한다. 같은 곳이 찢어졌더라도 수선하는 방법은 저마다 다르다. 때로는 촘촘하게 바느질해야 하고, 때로는 움직일 수 있도록 여유를 남겨두어야 한다. 지나치게 팽팽하게 당기면 다시 터지고, 너무 느슨하면 제 모양을 유지하기 어렵다. 촘촘함과 느슨함은 서로 반대되는 상태이면서도 하나의 옷을 완성하기 위해 함께 갖춰야 할 조건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역시 그러하다. 가까이 다가가야 할 때가 있는가 하면, 상대가 자신의 자리에서 숨 쉴 수 있도록 한 걸음 물러서야 할 때도 있다.
혜나의 시집 ??촘촘하게 혹은 느슨하게??는 이러한 삶의 이치를 바느질과 수선의 언어로 풀어낸다. 시인의 눈길은 버려진 자투리 천과 고장 난 지퍼, 도마 위의 채소와 신문지, 이름을 고친 도라지와 일상의 도형들에 머문다. 평범한 사물들이지만 그 안에는 사람의 노동과 관계, 사회적 역할과 존재의 가치에 관한 질문이 숨어 있다. 시인은 해지고 어긋난 것에서 삶의 또 다른 가능성을 발견한다. 그에게 수선은 낡은 것을 원래대로 되돌리는 일이 아니라, 달라진 조건 속에서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찾아가는 일이다.
2. 버려진 것들의 자리와 쓸모의 역설
이유 없이 내가 쓰임 받는 일은 없지요
못에 걸려 찢어졌어요
넘어져서 구멍 났어요
살이 쪄서 해졌어요
서걱서걱 잘려 나가면서도
그저 숙명으로 여겨요
안간힘을 쓰듯 가는 핏줄
헝크리며 앙탈 부려보아도
날 선 가위는 힘자랑하지요
모양대로 자르고
온몸을 바늘이 찌르고
무쇠노루발로 밟혀도
웃음 터트리더니
어느새 자투리 마을이 생겨나요
내가 살아온 삶 중에
자투리로 버려진 삶들
모두 어디 있을까요?
지금쯤 어디선가
또 다른 나를 덧대는건 아닐까요?
거기서
존재의 이유를 설명하려 할까요?
- ?자투리와 노루발? 전문
옷을 만드는 과정에서는 반드시 자투리가 생긴다. 몸에 맞게 천을 자르고 낡은 부분을 도려내다 보면 처음의 온전한 형태에서 떨어져 나온 조각들이 남는다. 「자투리와 노루발」은 그 잘려 나간 천의 목소리로 시작한다. 못에 걸려 찢어지고, 넘어져 구멍이 나고, 살이 쪄서 해진 옷감은 날 선 가위와 바늘, 재봉틀의 노루발을 거치며 다시 잘려 나간다. “서걱서걱”이라는 소리는 수선의 현장을 생생하게 전하면서도,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잘려 나가는 존재의 아픔을 환기한다. 특히 “무쇠노루발로 밟혀도”라는 표현에서는 옷감을 고정하고 밀어주는 재봉틀의 기능이 누군가를 짓누르는 힘으로 바뀐다. 생활의 도구를 통해 사회에서 경험하는 압박과 배제의 감각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시인의 관심은 잘려 나가는 고통에만 머물지 않는다. “어느새 자투리 마을이 생겨나요”라는 구절에서 버려진 천 조각들은 다시 모여 하나의 공동체를 이룬다. 온전한 옷의 형태를 유지하지 못해 밀려났지만, 자투리는 다른 옷의 해진 부분을 메우며 새로운 쓰임을 얻는다. 여기에는 사회가 요구하는 기준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주변으로 밀려나는 사람들의 모습도 겹친다. 그렇다고 자투리의 가치를 새로운 쓰임에서만 찾을 수는 없다. 그것 역시 한때 옷의 일부였고, 누군가의 삶과 시간을 함께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다른 옷에 덧대어지는 순간에도 자투리는 부수적인 재료가 아니라 그 옷을 이루는 소중한 일부가 된다.
“내가 살아온 삶 중에/ 자투리로 버려진 삶들”이라는 고백은 옷감의 이야기를 화자 자신의 생애로 돌려놓는다. 누구에게나 지나온 시간 속에서 쓸모없다고 여겼던 순간들이 있다. 실패한 선택이나 이루지 못한 일, 관계에서 밀려난 기억도 그러하다. 그러나 그 시간들이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다. 지금의 자신을 이루는 한 부분으로 남아 있다. “존재의 이유를 설명하려 할까요?”라는 물음은 버려진 것들의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잘려 나갔다고 해서 존재의 의미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시인은 버려진 조각이 다시 누군가의 삶과 이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놓는다.
네모무늬 도마에서
야채를 자른다.
호박 무 감자 당근이
동그라미 세모 네모가 되었다.
유리창에 부딪치는 빗방울 바라보며
생선을 다듬는다.
고등어 갈치 꽁치 오징어에
빗금 문신을 했다.
젖은 운동화를 말리려고
신문지를 구겨 넣었다.
어제 아침에는 신문이었는데
오늘은 신문지가 되었다.
깔창에 한글이 들어앉았다.
- ?무늬? 전문
우리는 일상에서 필요나 편의에 따라 사물을 변형시켜 사용한다. 채소를 먹기 좋게 썰고, 생선에 칼집을 내며, 젖은 신발 속에 신문지를 구겨 넣는다. 모두 생활에 유익을 주는 행동이다. 시인은 이러한 익숙한 행위에서 뜻밖의 형상과 의미를 발견한다. 네모난 도마 위에서 호박과 무, 감자와 당근은 동그라미와 세모, 네모가 되고, 생선의 몸에는 빗금이 새겨진다. 비가 유리창에 남기는 선과 생선에 낸 칼집이 하나의 이미지로 연결되면서 자연의 무늬와 인간이 만든 무늬가 겹쳐진다. 특히 “빗금 문신”이라는 표현은 조리 과정에서 입힌 칼집을 몸에 새겨진 흔적으로 바꾸어 놓는다.
흥미로운 장면은 신문지가 운동화 속으로 들어가는 대목이다. “어제 아침에는 신문이었는데/ 오늘은 신문지가 되었다”는 구절에는 사물의 이름과 쓰임이 달라지는 순간이 담겨 있다. 세상의 소식을 전하던 신문은 이제 물기를 흡수하는 종이가 되고, 그 위에 인쇄된 글자는 운동화의 깔창에 남는다. “깔창에 한글이 들어앉았다”는 표현은 정보 전달을 위해 존재했던 문자가 전혀 다른 공간에서 새로운 무늬가 되는 장면이다. 신문이 신문지가 되는 순간, 사물의 기능뿐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인간의 인식도 달라진다.
이 작품에서 도형과 빗금, 문자는 서로 다른 사물의 표면을 옮겨 다닌다. 채소와 생선, 운동화는 서로 다른 용도를 지녔지만, 인간의 손길을 거쳐 저마다 새로운 무늬를 얻는다. 이러한 결합은 사물의 기능이 고정되어 있지 않으며, 필요와 상황에 따라 새로운 의미가 생겨날 수 있음을 일깨운다. 서로 무관해 보이는 사물들이 무늬를 통해 연결되는 과정에는 일상의 사소한 장면에서 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