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자 정주영이 말하다

건설자 정주영이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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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단군이래 가장 역동적이던 1980년대 중엽, 지방 국립대학에서 서울의 사립대학으로 자리를 옮겼다. 공무원 신분이아니다 보니 시간 내기가 수월했다. 10여 년간 홍콩과 타이완의 서점들을 과할 정도로 드나들었다.
대륙을 뒤로하고 세계를 향한, 홍콩 대형서점의 규모는 상상을 초월했다. 종이를 처음 만든 나라가 중국이라는 것을 상기하자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륙에서 들어오는 중국 서적들의 수준과 다양함에 놀랐다. 우리에겐 생소한 인물에 관한 화전(畵傳)에 눈길이 갔다.
문인, 혁명가, 군인, 정치가, 예술가, 학자들의 화전 볼 때마다 감탄했다. 회고록이나 평전, 산처럼 쌓인 관련 연구서적보다 우리가 몰랐던 시대의 이해에 수월하다는 확신이 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특히 중일전쟁 시절 중국의 4개 주력 부대 중 하나로 세계에 명성을 떨친 신사군 사령관 예팅(葉挺)의 화전은 글도 글이지만 생동감 넘치는 주인공의 사진들이 한편의 거대한 파노라마였다.
인구 13억의 중국에는 없지만 우리에게는 있는, 한국의 발전을 상징하는 인물 한 분을 화전을 통해 중국에 자랑하고 싶었다. 홍콩에서 오랜 인연을 맺은 중국 인문 사회과학의 산실 삼련서점(三聯書店)의 베이징 총부(總部)도 내 제안에 동의했다. 건의도 아끼지 않았다. “인물 선정이 중요하다. 대상이 정해지면 선정 이유를 설명하는 서문을 직접 써주기 바란다.”
염두에 둔 인물은 없었다. 우리의 위대한 다음 세대들이 국제무대에서 자랑하고 싶어 할 사람, 난관에 봉착했을 때 이분이면 어떻게 했을까라며 자연스럽게 떠오를 얼굴,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고마워해야 할 사람 한 분을 찾기가 간단치 않았다. 내로라하는 인물들을 역사 속에 넣어 보기를 반복했다. 모두 훌륭한 분들이지만 나름대로 설정한 기준이 있었다. 넣고 빼기를 반복했다.
도서관에서 옛날 신문 뒤지던 중 추운 겨울날 고속도로 건설 현장 사진을 접했다. 작업복 차림에 흰 입김 내뿜으며 즐거워하는 현대그룹 창업자 아산 정주영(峨山 鄭周永) 회장의 사진 보고 눈이 번쩍했다. 함께 서있는 정장 차림의 고관들 보며 웃음이 나왔다. 죄송한 표현이지만 초라해 보였다. 듣기 민망한 비웃음을 한 귀로 흘리며 시작한 우리의 대동맥 경부고속도로의 1/3을 현대가 완성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아산에 관한 자료들을 파고들면 들수록 아산의 국가와 국민에 대한 공헌에 경탄을 거듭했다. 외우 안병우 교수 덕에 그간 본 적 없는 다량의 미공개 사진도 입수할 수 있었다. 원고 작성과 사진 분류에 1년 이상이 걸렸다.
중국이 자랑하는 서적 장정 예술가 닝청춘(寧成春)의 작품 《현대지로(現代之路)》가 모습을 드러냈다. 1996년 11월 8일 금요일, 중요 일간지들이 아산의 동정을 보도했다. 내용은 대동소이했다. “鄭周永 명예회장을 비롯한 현대그룹의 최고 수뇌부가 7일 중국으로 떠났다. 목적은 중국 최고의 명문 출판 기구 三聯書店이 정 명예회장의 일대기를 화전으로 제작한 《현대지로(現代之路)》의 사인회와 출판기념회 참석이다. 중국행에는 정몽구 그룹 회장을 비롯한 아들 4명과 동생, 매제, 조카들이 동행했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정 명예회장의 가족이 한꺼번에 해외 행사에 참가하기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화전은 조만간 화보집 《건설자 정주영》과 함께 한국어 판도 낼 예정이다.” 같은 날 황혼 무렵 베이징호텔(北京飯店)에서 열린 출판기념회는 장관이었다. 당과 정부 고위층은 물론, 중국인들이 보지는 못해도 성명은 귀에 익숙한 문화계와 학계, 교육계 인사들이 운집해 아산의 업적에 무릎을 치며 가을밤을 즐겼다.
이듬해 5월 서울에서 열린 한글판 《세기의 가교》와 화보집 《건설자 정주영》 출판기념회의 열기는 베이징보다 더했다. 이날 아산의 인사말 한 구절이 인상적이었다. “그간 나와 함께해 준 근로자들에게 이 자리를 빌려 고마움을 표한다.”
1999년 가을 정몽구 회장님이 《현대지로(現代之路)》의 영문판 출간을 희망했다. 약 7개월이 걸린 《THE ROAD TO HYUNDAI》 가제본 보여드리며 “맘에 드세요?” 했더니 “멋있다. 아버지는 아산 두 글자면 그 안에 모든 게 다 들어있다”라며 흡족해하시는 모습 보고 기분이 좋았다. 2000년 2월에 출간한 《아산 정주영 어록》에는 峨山을 크게 표기했다.
이듬해 3월 21일 아산이 한 세기와 작별했다. 거인의 영면에 북한도 조의를 표했다. 이틀 후 아태 평화 위원회 송호경 부위원장을 단장으로 한 4명의 조문단이 빈소가 차려진 청운동 자택을 찾았다. 북이 남에 보낸 첫 조문단이었다.
나도 빈소를 찾았다. 청운동 자택은 조문단 맞을 준비로 분주했다. 정몽구 회장님 홀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조문 마치고 나가던 중 복도 왼쪽에 문이 살짝 열린 방이 눈에 들어왔다. 오래된 1인용 침대와 평범한 철제 캐비닛만 있는 작은방이었다. 낯설지 않은 직원 두 사람이 버릴 물건이라며 캐비닛 안의 종이 뭉치들을 박스에 담고 있었다. 호기심이 발동해 자세히 살펴봤다. 아산이 생전에 했던 특강, 사장단 회의록, 인터뷰, 축사 등을 200자 원고지에 옮겨 적은 소중한 자료들이었
다. 마침 방에 들른 정몽구 회장님에게 “이건 보관해야 할 중요한 자료”라고 하자 “네가 전부 갖고 가라”기에 숭실대학 건너편의 개인 서고에 옮겨 놓고 잊고 지냈다.
캐비닛을 다시 연 것은 22년 뒤, 서고의 수도관이 터졌다는 소식을 뒤늦게 듣고서였다. 서고를 가득 메운 습기와 곰팡이 냄새를 거두며 캐비닛을 열었다. 원고지들은 습기로 달라붙어 있었지만, 글자들은 오랜 세월 그 순간을 기다려온 듯 선명했다.
2023년 가을, 다시 세상에 나온 원고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곰팡이를 걷어내고, 희미해진 글씨를 복원하며 방대한 기록을 다듬는 데만 1년 6개월이 걸렸다.
22년 만에 유물처럼 발굴된 아산의 말과 글, 그 육성과 사유의 흔적을 한데 모아 책으로 엮었다. 원문만 국배판 400페이지 12권 정도였다. 임의로 4권 분량을 추려내고 다시 1권으로 요약해 우선 선보인다.
살아도 죽은 거나 진배없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미 세상을 떠났어도 여전히 살아있는 사람이 있다. 아산의 위대한 심장이 멈춘 지 사반세기(四半世紀)가 흘렀지만 거인(巨人)이 추구하던 도전과 혁신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2026년 5월 29일 0시 18분 김명호(金明壕)
저자

김명호

목차

1980년 1
새해새아침정주영회장과한자리에신년사원과의인터뷰 3
신입사원특강 13
울산함진수식식사 26
소비절약에관한서신 31
추계간부세미나특강 33
한·일중소기업회장강의 48
종무식훈시 58

1981년 63
현대그룹신년인사회인사말씀 65
한국기업윤리의정립방향 68
지역사회학교후원회특강〈한국경제의전망과과제〉 84
81년도신입사원하계수련대회 94
해외현장소장특강 110
한국경제오늘과내일〈경제난국돌파의길〉 118
해외근로자부인을위한만찬인사문 125

1982년 129
퍼시픽챌린지호명명기념만찬연설 131
고졸·전문대졸신입사원특강 133
미국만찬회연설문〈박사학위수여기념만찬〉 139
골든프레이트상(GoldenPlateAward)연설문 145
경제기획원간부특강 153
대한체육회회장취임사. 183
82년그룹사장단세미나특강 185
전경련20년사역대회장좌담회
전경련20년그회고와전망 198

1983년 231
신년특별메시지 233
사장단회의 247
한국정보산업협회창립총회인사문 263
서산지구에대한MBC인터뷰 265
체육단체간부연수교육특강 273
동아일보간부세미나특강 282

1984년 301
84년선수촌훈련개시식 303
기혼녀사원특강 305
기획원주최,경제각부처연수교육특강 310
KBS인터뷰:오늘,청운동자택 333
LA올림픽선수단결단식식사 348
국방대학원특강〈차관인플레가성장동력등〉 350
기업의사명과기업인의윤리 370
자동차직원조회훈시 376
한국기업의성장잠재력과민간기업주의/관훈클럽 394
KBS라디오북한동포에게보내는인사 403

1985-1990년 407
간부세미나특강 409
여성경제인협회특강〈선진국경제로가는길〉 413
고급공무원연수교육특강 428
민정당중앙위원교육특강 438
사우지2월호 457
90경영전략세미나 462

연표 483
화보 491

출판사 서평

건설을위해태어난사람

아산정주영(峨山鄭周永)에대한종래의평가는그가일구어낸현대그룹을근거로한것이대부분이다.그러나역사라는틀속에넣었을때그에대한평가는보다단순하고,명쾌해진다.아산은현대한국의건설자,유교문화의계승자,20세기와21세기를연결해주는가교의역할을가장성실하게수행한사람으로기록될것이다.
아산이우뚝설수있었던시대적배경은‘파괴’라는한마디로특징지을수있다.한반도는식민지와동족상잔의피비린내속에서모든것이철저히파괴되었다.살집도,제품을생산할변변한공장도,배울학교도무너지고없었다.아산은인간에게무(無)보다도가공할두려움을주는,파괴로얼룩진시대에건설을외치며현장에몸을던졌다.길을만들고,다리를놓고,공장을세웠으며,자동차를만들고,배를건조했다.옥토를일구어내는가하면학교와병원을짓는것도잊지않았다.
건설자로서아산이훗날세계역사에기록될수있는까닭은20세기야말로인류가가장철저히파괴를경험했기때문이다.두차례의세계대전과냉전시대의끊임없는내전에인간의두뇌와정열이소모되고,그결과는처절한파괴와허탈감이었다.따라서건설자의위상은두드러질수밖에없다.아산은20세기대역사로불리는사우디아라비아주바일항공사의성공적인수행을비롯해세계곳곳에건설의신화를심었다.폭약이나탱크,총을만들어돈을번것이아니라,생산과생활을위해건설했고,궁극적으로는통일된조국의건설을염원했다.
서구의개인주의에입각한기업경영론이전후세계를휩쓸때도아산은가족주의적유교방식을고집했다.현장근로자들과같이식사하는것은물론,함께씨름하고노래하기를즐겼다.때로는동생이나자식들에게대하듯엄하게꾸짖기도했지만,화목으로끝을맺고자노력했다.
아산의유교적경영은막스베버가동양사회의후진성이유교로부터비롯한것이라고비판한것처럼많은사람들로부터공격을받기도했다.그러나산업사회의발전과유교의긍정적역할에대한새로운평가는날이갈수록엄청나게쏟아져나왔다.이같은인식전환이이뤄진계기가바로아산등이이루어낸동아시아의경제기적때문이라는사실은매우흥미롭다.
아산의삶은새로운도전의연속이었다.수많은신화를만들어낸창조적기업인으로서,올림픽을유치하고한국의경제발전과한반도의통일을위해남북을오갔던경륜가로서,언론기관과학교와병원을세운사회사업가로서,농토를개간한농부로서,연령과신분을초월한대중들속에서즐거워하며수줍어하던진실한인간으로서그는줄기차게새로운것을향해도전을거듭했다.시대를앞질러가는파격과혁신으로많은시련도겪어야했다.
아산이진실되고자연스럽게행했던파격과시련은개인적경험을뛰어넘어새로운시대의규범을형성하는토양이되었다.시대의한계를뛰어넘어시도했던행동들이새로운시대에일상적인규범이되었기때문이다.능력보다성실과인간성을중요시하는인사원칙,국경선은물론분단과냉전의장벽을넘나드는행동은더이상파격이아니게되었다.아산은고뇌와시련속에서세기와세기를연결해주는역사적가교의역할을자임했고성실히수행했다.지금도아산의도전과혁신은각분야에서진행중이다.

김명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