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남아 있는 빛 : 나는 이제 사라지고 있는 세계를 찾아가고 있다

아직 남아 있는 빛 : 나는 이제 사라지고 있는 세계를 찾아가고 있다

$21.00
저자

마이클 말레이

저자 : 마이클 말레이 (Michael Malay)
작가이자 영문학 교수. 시와 환경문학을 연구한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태어나 자랐고, 열 살 때 가족과 함께 호주로 이주했다. 이후 영국으로 옮겨가 영문학을 공부했다. 엘리자베스 비숍, 존 키츠, 레이먼드 윌리엄스에 관한 논문을 썼고 브리스틀대학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같은 학교에서 영문학 및 환경인문학을 가르치고 있다. 《아직 남아 있는 빛》으로 자연과 환경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잘 쓰인 책에 주어지는 웨인라이
트 상과 리처드 제프리스 상을 받았다. 이 밖에 《근현대 시에 나타난 동물의 형상(The Figure of the Animal in Modern and Contemporary Poetry)》을 썼고, 현재 존 버거의 생애를, 식물과 정치의 관계를 연구하고 있다.

역자 : 김명남
번역으로 세상을 읽고 세상에 말을 건다. 카이스트 화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환경 정책을 공부했다. 인터넷 서점 알라딘 편집팀장으로 일했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로 55회 한국출판문화상 번역 부문을 수상했다. 《명랑한 은둔자》 《소유하기, 소유되기》 《빛은 얼마나 깊이 스미는가》 《행동》 《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일》 《특이점이 온다》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 《틀리지 않는 법》 《지상 최대의 쇼》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등과 마르틴 베크 시리즈(전10권)를 옮겼다.

목차

아직 남아 있는 빛
11

그들이 눈을 들어 달을 보면서 기다린다 - 뱀장어
47

저녁이 되면 그들은 부르르 떨며 깨어났다 - 나방
103

그들은 유리공으로서 강에 밝은 창들을 끼웠다 - 민물진주조개
163

나 여기 있어, 나 여기 있어, 나 아직 여기 있어 - 귀뚜라미
221

포켓, 동굴, 미래
277
옮긴이의 말 298
주 302

출판사 서평

‘가장자리 종’이라 부를 수 있는 동물들에게 집중하는 이주자의 시선

뱀장어와 나방과 민물진주조개와 귀뚜라미의 생애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이 동물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알려고 하지 않는 이상 뱀장어는 대부분 식재료로, 나방은 불빛을 따라 집 안으로 들어온 불청객으로, 민물진주조개는 도시에서 사는 한 평생 보지 못할 가능성이 높은 희귀한 존재로, 귀뚜라미는 가을이 오고 있음을 알리는 가을 전령사 정도로 마주치거나 스친다.

저자 마이클 말레이가 이 네 동물을 통해 종의 사라짐과 멸종을 이야기하는 건 다분히 의도적이다. 그는 말한다.

“‘카리스마 있는 종’이란 대중적으로 폭넓게 인기 있는 동물에게 붙는 이름이다. 나는 우리가 그 존재를 알면서도 어떤 식으로든 무시하거나 싫어하거나 홀대하는 동물에 대해 쓰고 싶었다. (…) 이 책은 ‘가장자리 종(edge species)’이라고 부를 수 있는 동물들, 즉 우리 관심에서 가장자리로 밀려났기 때문에 우리 마음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려면 애써야만 하는 동물들에게 집중한다.”_p.40-41

어쩌면 그가 이주자로서 떠남과 머묾 그리고 ‘집’이라는 거주처에 대한 감각이 예민하고 치열할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기에 ‘가장자리 종’에 자연스레 눈길이 가고 그들 이야기에 귀 기울이려 노력했을지 모른다. 그들이 품은 이야기의 비밀을 들여다봄으로써 자기 이야기의 비밀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도 있었을 테니 말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카리스마에 연연하거나 아름다움에 집착하는 등 우리가 자연계에 가치를 부여하는 방식이 빚어낸 불평등을 조금이나마 바로잡을 수 있기를 바란다. 그 불평등으로 인해 더 빨리 서식지가 파괴되고 우리의 돌봄 범위에서 배제된 동물들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만든다. 저자의 이런 의도적 선택, 집착에 가까운 노력과 사랑 덕분에 우리 또한 이 네 동물에 관해 흥미로운 사실을 많이 알게 된다. 저자는 관련 논문과 책, 잡지 등을 샅샅이 찾아 읽고, 전문 낚시꾼과 연구자와 보존 활동가를 직접 만나 그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책에 담았다. 저자의 탐구가 치열해질수록 이 동물들에 대한 경이로움과 신비로움은 깊어진다. 동시에 이들이 어떻게 이 세계에서 빠르게 사라지고 있는 중인지 그 상실에의 우려 또한 깊어진다.

사라짐과 멸종은 쫓겨남의 문제
‘집’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파괴되는가

저자가 들려주는 동물들의 이야기는 모두 ‘지리’를, ‘자리’를, ‘집’을 재고하게 만든다.

사르가소해 심해에서 모래알만 한 크기로 떠올라 대서양을 가로지르는 긴 여정을 떠나는 뱀장어는 2년여에 걸쳐 5,000킬로미터 좀더 멀리는 8,000킬로미터를 헤엄쳐 유럽의 강과 북아프리카 해에 도착한다. 이들은 성 성숙기를 맞으면 자신들이 온 길을 그대로 거슬러 올라 사르가소해로 향하고, 그곳에서 짝짓기를 하고 죽음을 맞이한다. 한때 유럽 강에 뱀장어가 얼마나 많았냐면, 불과 1960년대까지만 해도 새끼 뱀장어가 너무 많아서 물이 짙어 보일 정도였고, 강물에 양동이를 넣었다 올리면 물보다 새끼 뱀장어가 더 많이 담겼다고 한다. 그러나 1980년 이후 유럽에 도착하는 새끼 뱀장어 수는 90퍼센트가 줄었고, 성체가 되어 사르가소해로 돌아가는 데에도 애를 먹었다. 그들의 이동 경로를 가로막는 댐, 둑, 수문 등 장벽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새끼 뱀장어 낚시꾼들은 이제 강에서 잘해야 10여 마리를 잡는다. 저자는 지난 역사에서 권력과 부를 가진 자들이 영국의 염습지를 어떻게 변형시켰는지, 한때 그 염습지에서 번영했던 공동체를 어떻게 파괴하고 내몰았는지 살핀다. 토목공학 성공 사례의 이면을 보게 한다.

저자는 이 역사를 공부할수록 먼 과거와 현재 사이에 비슷한 일이 반복된다고 느낀다. 특히 ‘집’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파괴되는지, 일부 사람들이 우리에게 그리고 우리와 함께 세상을 공유하는 동물들에게 얼마나 적대적인 환경을 구축하는지 말이다. 영국의 윈드러시 세대는 영국 제국주의의 산물이다. 그들은 1948년 윈드러시호를 타고 서인도제도에서 영국으로 온 이주자들로,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영국 이민의 상징이 되었다. 2016년 브렉시트가 결정되기 직전 영국에서는 ‘윈드러시 스캔들’이라 불리는 문제가 터지는데, 영국 내무부가 영국 시민 164명을 부당하게 억류하거나 추방했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이다. 그들 중에는 윈드러시 세대의 자녀들도 있었다. 그동안 여기가 내 집이라는 의심을 할 필요도 없는 지극히 당연한 삶을 살았는데, 어느 날 한순간 불법 이민자가 되어버린 현실을 과연 그들은 감당할 수 있었을까.

저자는 뱀장어의 쇠락하는 운명과 영국의 강경한 이민 정책의 기묘한 연결성 사이에서 멈칫한다. 정치적으로도 역사적으로도 존재론적으로도 동떨어진 현상이지만 ‘국경의 강화’와 ‘집의 파편화’라는 동일한 논리로 이어져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저자는 “인간의 영혼에는 뿌리내리고자 하는 욕구”가 강하게 있다고 한 철학자 시몬 베유의 말을 현재의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곱씹으며 다음과 같은 생각에 이른다. “많은 사람에게 현대의 경험은 뿌리내림이 아니라 집과 먼 타향 사이에서 좌초된 상태, 집 없음의 현실을 살면서 연결을 갈망하는 상태”라고. “이 경험은 특히 새로운 나라에 정착하려다가 주변으로부터 두려움과 적대감의 반응을 받는 사람들에게 유난히 통렬하며, 그저 지리적 이동뿐 아니라 극심한 내면적 추방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말이다.

“한 종의 사라짐은 늘 복수적 사건이라는 사실”
그저 모든 것이 이어져 있다
우리가 이해하지 못할 만큼 복잡하게 이어져 있다

나방과 민물진주조개, 귀뚜라미의 현실 또한 뱀장어와 크게 다르지 않다. 1970년대 이후 영국 나방 종의 3분의 2가 급격한 감소를 겪었다. 나방의 삶은 근대화와 떼어 말할 수 없고, 살충제로 인한 토지 오염, 과학 기술의 발전에 의해 심대하게 바뀌었다. 역사의 어느 한 시점, 그러니까 역사학자 비드가 살았던 중세에 영국의 강에는 말 그대로 민물진주조개가 흩뿌려져 있었다. 강이 조개에게 먹이와 산소를 제공하면, 조개는 강의 물을 맑게 해준다. 그러나 현재 민물진주조개는 강의 오염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불법 진주 채취꾼들의 무자비한 탐욕에 의해 초토화된 실정이다. 귀뚜라미 또한 산업화한 농업, 기후변화, 서식지 파괴 등으로 종의 4분의 1이 멸종 위기에 처했다.

이런 인간의 파괴 속에서 사라짐과 멸종 위험에 처한 동식물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의 뿌리를 내리고 어떻게든 번성할 방법을 찾아낸다. 저자는 귀뚜라미 편에서 남웨일스의 어느 석탄 ‘폐기물 산’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폐기물 산이란, 한때는 번성했지만 지금은 폐쇄된 탄광에 남겨진 폐기물들이 말 그대로 산처럼 쌓여 그 상태로 시간이 흐르며 복잡한 지형이 된 곳을 말한다. 버려진 곳. 지금은 아무도 없는 곳. 거기서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풀과 나무들이 석탄 폐기물 산을 점령하기 시작했고, 그러자 나방, 귀뚜라미, 나비, 개미, 말벌 같은 곤충이 나타났다. 그러자 도마뱀, 뒤쥐, 새가 나타나고, 그러자 더 많은 생물 집단이 폐기물 산에서 살아가기 시작했다. 인간이 떠나고 시간이 흐르자 거기서 다시 생명 다양성이 생겨난 것이다.

저자는 이 동물들에 대해, 그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이 세계에 대해 알면 알수록 ‘모든 것이 이어져 있다’는 인식이 더 깊어짐을 느낀다고 말한다. 우리가 서로 맺는 관계가 우리를 지탱하고, 그 관계가 말 그대로 우리를 우리로 만든다. 개별 존재라는 것은 없다. 그저 수많은 종류의 관계들이 있을 뿐이고, 모두가 공유하는 하나의 세상에서 살아가는 기발한 방식들이 수없이 있을 뿐이다. 이 책은 그 공유된 세상이 주는 ‘선물’에 대한 이야기이고, 그 세상이 허물어지기 시작함에 따라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지만, 그래도 아직은 빛이 남아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이미 역사의 왼쪽 외야에 들어간 것처럼, 너무 일찍 날이 저무는 장소로 들어간 것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경기장을 떠나기에는 너무 이르다고, 경기는 계속된다고 말이다.

귀뚜라미와 풀벌레 소리가 한없이 아름다운 계절이다.
그 노래에 새삼 고마운 마음이 드는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