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으로
#1
난,그럼에도불구하고엄마를기다리면엄마가돌아올줄알았다.아침이되면늦잠자는나를흔들어깨우는엄마목소리를다시듣게될거라생각했다.그러나엄마는다시는,다시는돌아오지않았다.엄마의부재를받아들이는일은온세상을잃는것같았다.엄마가나를홀로남겨둔채사라져버린것이참을수없이화가났다.내사랑을배신하고떠난엄마가미웠다.도대체왜나를버리고떠났는지이해할수없었다.나를지탱해주던삶의뿌리가통째로뽑혀버린느낌이었다.엄마없이는아무것도할수없을것만같은불안이눈덩이처럼커지는날엔바지에소변을지렸다.울음을터트려도내어리광을받아줄사람이더이상존재하지않았다.엄마가없는일상을살아내면서엄마의얼굴이어떤날은더또렷하게,어떤날은점점희미해져갔다.
지금은엄마의얼굴도,목소리도,냄새도아무것도기억나지않는다.엄마를기억할수있는흔적이나유품은그무엇도남지않았다.내게남은건‘그리움,’오직그리움뿐이다.그때엄마사진한장이라도남겨두었다면그리움으로사무치는날이조금은적었을까?
엄마의죽음은,
내인생의항로를거친바다로바꿔놓았다.
---p.36
#2
엄마를잃은아이에게따뜻한위로의말보다죽음에대한날카로운정죄로비수를꽂는세상이얄궂기만했다.남겨진자가감당해야하는슬픔의무게를헤아렸다면그렇게말할수있었을까?엄마없이하루를살아내는것도버거운내게사람들은그들의언어로내가슴에주홍글씨를새겨넣었다.수치를가리기위해서라도,엄마가자살했다는사실을아무에게도말하고싶지않았다.자살유가족에대한사람들의편견과비난이두려웠기때문이다.수치스러움이세포와혈관을타고내몸의일부처럼흐르는것같았다.
자살유가족이라는이유만으로인격을침해당하는언어폭력에노출되고,비난과낙인으로얼룩진삶을살아온사람들이어찌‘나’혼자뿐이겠는가?넓게보아우리나라인구의10%를자살유가족이라고추정하기도한다.생명존중시민회의에서발표한〈자살유가족권리장전〉에보면“나는내독자적인인격을유지하고자살로인한죽음에의해판단받지않을권리가있다”라고기록되어있다.
상실의아픔을통과하는사람들을더깊은수렁으로빠뜨리는‘말,말,말’말들….가족을자살로잃은사람들에게“고인이지옥갔다”며고통을가중시키는말보다따뜻한공감과위로의말을건네주는사람들이더많아졌으면좋겠다.
‘판단받지않을권리’는,
‘판단하지않을의무’를포함하고있는건아닐까?
---p.53
#3
세월이흘러조금씩마음의안정을찾아가기시작했을때오빠가살아온삶의발자취를더듬어보았다.엄마와할머니사이의깊은고부갈등에대해어린나는아는것이없었다.오빠는엄마가돌아가시기전부터가족관계를지켜보며힘든시간을보냈을지도모른다.엄마가떠난후,달라진가족관계속에서살아내느라오빠는나보다훨씬더오랜시간불안에내몰려있었을것이다.새어머니가오신후로는얼마나더정서적으로불안하고외로웠을까.
오빠가우리중에심리적으로가장취약한상태였다는사실을,당시엔미처알지못했다.누구보다탁월했던오빠는정서적지지를받지못했을때힘을잃었다.그는가장절실히도움이필요한사람이었다.그러나자살로생을마감한엄마에대한사회적비난과정죄로인해오빠는정서적으로더깊은상처에내몰릴수밖에없었다.
오빠가떠난지23년이지났다.세월이흘렀어도상실의아픔에서온전히자유해지진않았다.사람을떠나보내는일을경험하며아프지않은사람이어디있으랴.우리는모두다각기다른모습으로상실을경험할뿐,피해가는사람은어디에도없다.나는슬픔에서빠져나오기위해애쓰지않아도된다고스스로를토닥이며살아왔다.그저슬픔을껴안고살아가는법을배우길바랐다.슬픔이찾아오는날조차밀어내지않고환대해주었다.
엄마와오빠를자살로잃은내슬픔은현재도발효중이다.발효는인간에게좋은면을주는미생물작용이므로비슷한과정을겪는부패와는구분된다.산소부족이라는결핍을통해젖산이발효되는것처럼누구에게도쉽게이야기하지못하고,사회적으로위로받지못했던슬픔이이로운효소로발효되고있다.
시간이지나면더욱깊은맛을내는김치나된장처럼,내슬픔이깊이숙성되어위로가필요한사람에게닿을수있다면,그것으로충분히감사하다.그것으로충분히감사하다.
---p.69
#4
여전히해결되지않는것은내안의죄책감이었다.오빠가떠난뒤에내게가장필요했던것은위로였는데나는나자신에게가장잔인한말을던지며살아왔다.나는스스로에게물었다.만약가장사랑하는친구가오빠를잃었다면나는그친구에게뭐라고말해주고싶을까.적어도이렇게말하지는않았을것이다.
“너때문에오빠가떠났어.”
그순간,오래도록하지못했던말을나에게해주었다.
“오빠가떠난것은네잘못이아니야.”
처음그말을꺼냈을때걷잡을수없는폭풍이휘몰아쳤다.“네잘못이아니야.네잘못이아니야.”나는그말을반복하며목놓아울었다.그때비로소알았다.나를가장많이비난해온사람은나자신이었다는것을.무겁게내려앉아있던죄책감의먹구름사이로‘자기용서(SelfForgiveness)’라는햇살이비추기시작했다.나를옭아매고있던밧줄을풀어줄수있는사람도결국나였다.나자신과화해한후에야나는나를내려놓을수있었다.사람은누구나부족하고실패할수있고후회할수있다.“그래도괜찮다”고나를안아주기시작했다.슬프고우울해도괜찮다.불안해도괜찮다.반짝반짝빛나는내가아니라흔들리고불안한나를있는그대로받아주었다.
자기자비(Self-Compassion)는삶을대하는나의태도에많은변화를주었다.내삶에건강한경계를세우고몸과마음을지키도록도와주었다.나를돌보기시작하면서몸과마음이전보다자유로워지고건강해지기시작했다.그러나이것이한번의결심으로쉽게되었을리없다.오랫동안관성처럼나자신에게친절하지않은삶을살아왔기때문이다.매순간의지적으로선택해야했다.모두가나를떠나더라도가장마지막까지나와함께있을나자신에게가혹한친구가되고싶진않았다.
---p.91
#5
엄마가돌아가신후에그녀를기다리면다시볼줄알았던내유년의모습이겹쳐지면서작고여린아이를있는힘껏껴안았다.그제서야나는엄마마음이헤아려졌다.엄마는나를버리고간것이아니라고통을끝내고싶었던것이었음을.벼랑끝처럼여겨지는삶의낭떠러지에외롭게홀로서있다쓸쓸히떠나간엄마의아픔이전해져아이를안고한없이울었다.풀리지않았던엄마에대한오해가이해로바뀌는순간이었다.
눈물젖은아이의볼에내볼을비비며내가받아보고싶었던엄마몫의사랑까지아이에게부어주리라다짐하며나직이혼자속삭였다.
“아이야!내게선물처럼와주어서정말고마워.살다가힘든순간이오거든뒤를돌아봐.엄마가거기서있을게.잊지마.엄마가늘네등뒤에있다는것을.”
그때부터아이에게버팀목이되어주는든든한엄마가되고싶었다.그러나아이는내가얼마나연약한사람인지너무일찍알아버렸다.오히려나의눈물을닦아주었고,누구보다더깊이나의마음을헤아려주었다.아이를양육하면서엄마없이자라온내상처가치유되는은총을경험할수있었다.
어느새대학생이되어한국에서공부하고있는아이가이년반만에잠시내곁으로왔다.오랜만에집밥먹는아들을바라만보아도흐뭇하다.
이렇게좋은사랑이,또있을까.
---p.135
#6
“네가엄마를닮았다면너의엄마는참으로아름다운분이셨을거야”라는교수님의말씀을통해엄마처럼죽게될까봐두려웠던마음으로부터자유로워질수있었다.비로소엄마를마음껏그리워할수있게되었다.교수님이선물한마법의언어는엄마가얼마나아름다운분이었는지기억나게해주었다.
조금더일찍내삶의아픔을꺼내놓을수있었다면얼마나좋았을까?만약그랬다면혼자아파하는시간이짧았을지도모를일이다.수치를강요당하는사회속에서혼자웅크리고살아온시간들동안내게필요한건어쩌면말할수있는용기였을지도모른다.
나는,자살유가족에대한사회적인식이변화되기를갈망한다.“자살로가족을잃은것은수치가아니라함께울어야하는아픔이다”라는슬로건이보편적이해로인식될수있기를갈망한다.수치에내몰려고립된채로외롭게살아가는자살유가족들이세상밖으로나올수있기를열망한다.나와같은사람들이마음껏울며상실을위로받을수있는세상.난그런세상을꿈꾼다.사랑하는사람을떠나보낸가족이추모와애도보다자책에시달려야한다면,그인생은얼마나고통스러운인생인가.
상실,그자체만으로도감당할수없는아픔인데애도할수있는권리마저빼앗겨버린슬픔은얼마나깊을것인가?우리는더이상슬퍼할권리를박탈하지말고,그권리를돌려주어야한다.
---p.158
#7
오빠를잃고난뒤에야그의고통을뒤늦게이해했다.자살한모든사람이정신질환을앓았던것은아니지만,상당수가우울증을포함한정신적어려움을겪고있었을가능성이높다.그럼에도우리는여전히자살을도덕적잣대로판단하려한다.이러한사회적현상은자살유가족이우울증에노출될가능성을더높일뿐만아니라일반인에비해자살할가능성을더높이는위험요인으로작용하기도한다.
오빠를잃은이후,나는자살유가족에대한사회적인식을바꾸고그들을돌보며그들의애도를지원하는일이곧또다른죽음을막는자살예방의길이라는사실을뼈저리게깨닫게되었다.
어떤종교적언어는자살을‘벌받을죄’로단정하며고인을죄인으로만든다.그순간,남겨진사람도함께죄인이된다.가족을잃은뒤,외부에서의비난뿐아니라가족구성원안에서서로를비난하고원망할때,고통은가중된다.나는내슬픔의무게에짓눌려아빠의고통을보지못하고아빠를마음속으로비난했다.엄마에게든든한울타리가되어주지못한아빠를,오빠가무너질때투명인간처럼아무것도하지않은아빠를오랫동안원망했었다.아내와아들을가슴에묻고도살아남아야했던사람.살아가는것자체를죄스럽게여기며세월을건너온사람.자식들의원망과사회의손가락질을견디며살아온아빠의마음을헤아리지못했다.
자살은한사람의죽음이아니라,가족체계전체를재편하는사건이다.그사건이후우리는서로를이해하기보다각자의고통속으로숨어버렸다.이렇듯,자살생존자들은위로의사각지대에서있다.가족의죽음을설명해야하고,숨겨야하고,견뎌야하는사람들이다.이들에게필요한것은조언이아니라경청이다.슬픔을고치려는손길이아니라,함께동행하는사람들의품이절실하다.
고립과고독을친구삼아살아가고있는자살생존자들이세상밖으로나올수있도록,그들의아픔을공감해주고함께울어줄수있는사람들이많아지는사회가되었으면좋겠다.
낙인과정죄의시선이아니라
‘환대’의마음으로
자살생존자들의삶을따뜻하게안아주는,
그런사람들말이다.
---p.167
#8
한밤중에자다가일어나처음으로아버지의마음을더듬어보았다.엄마가떠난이유를나역시아빠로부터찾으려했다.
아빠가좀더능력있는남자였다면엄마가고생을덜하지는않았을까,고부간의갈등으로힘겨운시절을보낼때“나만믿으라”며엄마에게좀더든든한울타리가되어주었다면엄마가지금까지우리곁에남아있지는않았을까.
오죽하면,오죽했으면엄마가떠났을까아빠를비난하고원망만했지,아내를잃은남편으로서의아버지마음을헤아려보지못했다.아내를죽인남편이라는오명을쓰고지금의나보다어린나이에아이넷을키워야했던아버지의마음을헤아려보지못했다.살아있는것이죄스러웠을아버지의마음을,그마음을말이다.
하나밖에없는아들마저가슴에묻어야만했던아버지의기막힌슬픔을외면하고살아왔다.아빠는엄마가떠나신지40년이넘었는데도매년음력사월이되면시름시름앓으신다.가족의자살을막지못한자신을향한자책과,가족들에게더잘해주지못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