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어느 순간 누군가에게 빌런이 된다”
7가지 색으로 읽는 영화 속 빌런의 진짜 얼굴
역사를 통틀어 인류는 다양한 문명 속에서 각각의 색상에 고유한 상징적 의미를 부여했다. 특히 각 시대와 문화마다 선과 악을 구분하는 기준은 유사하면서도 각기 달랐으며, 이를 상징하는 색깔 또한 변천해 왔다. 저자는 이러한 맥락에서 색을 통해 영화 속 빌런을 재해석하는 것이 단순한 미학적 탐구를 넘어선, ‘나’와 ‘너’를 이해하고 갈등을 확장적으로 해석하는 길이라고 말한다.
《빌런의 퍼스널컬러》는 대중문화 속 ‘빌런’을 전형적인 악역으로서 규정 짓는 시각을 넘어, 색상이라는 상징적 요소를 통해 그들의 서사를 새롭게 해석한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부터 슈퍼히어로 영화에 이르기까지, 악당으로 그려진 캐릭터들이 과연 태생적으로 ‘악’한 존재인지, 혹은 그들이 처한 환경과 갈등이 그들을 그렇게 보이게 만든 것인지를 탐구한다. 저자는 특정 색상이 악당들에게 부여된 방식이 그들의 복합적인 내면과 사회적 갈등을 상징한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초록은 질투와 불안, 빨강은 복수와 격정을, 검정은 공포와 죽음을 드러낸다. 이러한 색은 단순한 시각적 장치를 넘어, 캐릭터의 감정과 동기, 그리고 그가 주인공과 대립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까지 담아내는 서사의 중요한 요소다.
예컨대 영화 《라이언킹》의 녹색 빌런 ‘스카’는 묻는다. ‘조카 심바가 왕이 되고 싶어 하는 것은 당연한 꿈으로 받아들여지는데, 왜 자신이 왕이 되고자 하는 욕망은 질투와 탐욕으로 치부되는가.’ 저자는 바로 이런 질문을 던지며 우리가 너무 익숙하게 선악으로 덮어버린 이야기의 중추에는 작품 속 누구도 제기하지 않은 중요한 질문이 남아 있다고 말한다. 질투라는 낙인이 찍힌 녹색 빌런에는 권력으로부터 배제된 이들이 스스로 주인이 되고자 하는 의지를 나쁜 것으로 터부시하도록 만드는 힘이 내포되어 있다. 이렇듯 빌런의 색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그를 악당으로 만든 욕망과 결핍, 관계와 사회적 조건까지 함께 입체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그때 색은 선악을 구별하는 표식을 넘어, 우리가 타인의 삶을 얼마나 제한된 시선으로 판단해왔는지를 돌아보게 하는 새로운 해석의 언어가 된다.
“영화 속 빌런은 우리의 불안과 근심을 반영한다”
색의 의미로 빌런을 들여다보는 건,
곧 나와 너를 이해하는 일
“이야기의 그늘에 가려진 빌런을 그에게 부여된 색의 의미를 통해 재해석하는 과정은, 선과 악의 이분법에 갇혀 납작해진 인간의 의지를 되살리는 의식임과 동시에 영화의 크레딧이 흐르는 동안 잊히기 쉬운 중요한 질문들을 상기시키는 작업이다” (본문 10쪽)
이 책에는 7가지 색과 각 색이 함축한 갈등의 역사를 닮은 다양한 빌런들이 등장한다. 저자는 이 빌런들이 단순히 악의 화신이 아니라, 현대 사회의 갈등과 긴장을 투영한 존재임을 강조한다. 갈등을 없애거나 악으로 치부하는 순간, 우리는 갈등의 본질을 이해할 기회를 잃는다. 이 책은 갈등을 감추는 대신 드러내고 탐구함으로써 서로를 이해하고 소통할 가능성을 찾는다. 그것이 이 책이 빌런을 바라보는 이유다. 갈등은 필연적인 것이며, 이를 ‘악’이라는 단일한 프레임으로 묶는 것은 해결의 실마리를 차단할 수 있다. 여기서 궁금증이 출발한다. 그들은 어쩌다 빌런이 되었을까? 빌런의 이면에 감춰진,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던 이야기를 톺아본다.
초록은 왜 빌런을 대표하는 퍼스널컬러가 되었는지, 히어로를 대표하던 빨강이 어쩌다 주인공이 아닌 빌런에게 부여되었는지, 퍼렇게 분장하고 나온 빌런에게 숨겨진 슬픔은 무엇을 드러내는지 등 색이 함축한 갈등의 역사와 각 색채에 어울리는 빌런의 서사가 어우러진 풍성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낸다. 아마도 이 책을 읽는 모두가 정여울 작가의 고백처럼 “그동안 이렇게 재미있는 것을 왜 궁금해하지도 않았을까”라며 반성적 성찰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장을 넘기다 보면, 어느새 빌런의 색을 새롭게 읽는 일이 인간의 복잡한 본성과 사회 문제를 이해하는 새로운 통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빌런을 새롭게 바라보는 순간, 영화 속 이야기는 어느새 우리의 이야기가 된다.
“허투루 쓴 글이 없다”
AI가 토해낸 인스턴트 글이 아니라
인간의 사유가 깊이 스며 있는 울림 있는 문장들
몇 개의 키워드만 입력해도 그럴듯한 문장이 순식간에 쏟아지는 시대일수록, 오래 생각한 사람이 쓴 문장은 더욱 선명하고 귀하다. 《빌런의 퍼스널컬러》에는 허투루 지나칠 문장이 거의 없다. 저자는 색의 상징체계를 출발점으로 삼아 역사와 사회, 미술과 언어, 심리학과 대중문화의 영역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하나의 색에 켜켜이 쌓인 인간의 욕망과 편견, 시대의 감각을 입체적으로 파고든다. 초록색 빌런 하나를 이야기하기 위해 고대 그리스의 4체액설에서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거쳐 미국 만화의 인쇄 기술과 디즈니의 색채 연출까지 불러오는 식이다. 그러나 이 책의 탐구가 흥미로운 문화 지식을 풀어놓는 데서 멈추지는 않는다. 할리우드 영화가 인간 사회의 복잡한 갈등을 영웅과 악당, 정의와 악의 대결로 압축하는 동안 이야기 바깥으로 밀려난 것이 무엇인지까지 집요하게 되묻기 때문이다. 현실의 갈등은 어느 한쪽을 악으로 규정한다고 사라지지 않으며, 서로 다른 욕망과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이 말하고 듣고, 타협하고 설득하며, 때로는 불완전한 합의에 도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함께 살아가기 위해 끊임없이 수행해온 정치의 본질이다. 저자는 영화가 선과 악의 선명한 색으로 덮어버린 바로 그 회색지대를 다시 펼쳐놓고, 색이라는 친숙한 매개를 따라 갈등의 이면에 숨은 권력과 욕망, 배제와 불평등, 의사소통과 합의의 문제를 해부한다. 이처럼 해박한 지식은 깊은 탐구와 만나 이야기로 살아나고, 촘촘하게 이어지는 자료와 사유는 독자가 익숙하게 보아온 장면을 전혀 다른 눈으로 다시 보게 한다. 빠르게 조합된 정보와 매끈하지만 속이 빈 문장이 넘쳐나는 지금, 이 책에서 만나는 것은 한 문장을 쓰기 위해 오래 읽고, 의심하고, 연결하고, 생각한 사람의 흔적이다. 그래서 이 책의 문장은 읽고 지나가는 데 그치지 않는다. 곳곳에서 독자의 생각을 붙잡고, 익숙한 선악의 경계를 의심하게 하며, 타인을 악당으로 규정하는 순간 우리가 무엇을 보지 못하게 되는지까지 돌아보게 만든다.
책 속애서
예를 들어 주인공과 빌런이 대립하는 슈퍼히어로 세계관에서 갈등은 없애고 극복해야 하는 부정적인 것으로 정의되며, 그 원인으로는 대부분 태생적 악함 또는 도덕적 타락이 지목된다. 그런데 미국의 정치학자 엘머 샤츠슈나이더에 따르면 갈등은 정치가 존재하는 이유이자 목적이며 민주주의의 동력이다. 권력을 가진 강자일수록 (외부의 개입이 없으면 자신이 결과를 결정할 수 있기 때문에) 갈등이 사적인 영역에 남아 있기를 바라지만, 대다수 민중이 자신의 권리를 강화하려면 ‘갈등의 사회화’가 필요하다. 쉽게 말해 “힘의 균형이 변할 때까지 더욱더 많은 사람을 갈등 속으로 끌어들이고자 하는 이는 약자이다”. 따라서 민주주의에서 갈등을 사적인 문제로 치부해서도, 평화라는 미명으로 침묵시켜서도 안 된다.
빌런의 이야기는 이렇듯 사회적 갈등을 표출하는 기능을 담당한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주인공 히어로보다 더 ‘다수’의 목소리가 투사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요컨대 영화 속 빌런은 현재를 살아가는 대중의 불안과 근심을 반영한다. 때론 부끄러운 자화상으로, 때론 부끄러움을 외면하려는 우리를 원망하는 불청객으로도 나타나는 이들은, 이 시대를 배회하는 유령의 모습이다. p.9-10
오래전부터 빨강은 특별했다. 기원전 3만여 년 전 선사시대 인류는 최초의 동굴 벽화를 그리면서 빨간색을 사용했다. 빨강은 검정, 흰색과 더불어 전 세계 문화권에서 공통적으로 가장 먼저 출현한 색채어였으며, 인류가 다양한 색을 사용하기 전까지 ‘색’을 지칭하는 개념어였다. 매일 걷는 대지의 색이자 밤마다 생명을 지켜주는 불의 색이었고 배고픔을 잊게 해줄 사냥감이 흘리는 피의 색이었으니, 고대 인류가 빨강을 찬양하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p.51
세상에서 가장 사랑받는 색은 무엇일까?
2015년 4대륙 10개국을 대상으로 진행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색은 파랑이다.
어느 문화권에서든 푸른 하늘과 드넓은 바다, 평화와 자유, 휴식, 희망을 떠올린다. UNㆍWHOㆍ유니세프와 같은 국제기구의 엠블럼, 인터넷 익스플로러ㆍ사파리 같은 웹 브라우저 아이콘, 페이스북ㆍ트위터 등 SNS 로고에도 파랑이 쓰인 이유다. 신뢰감을 주기 때문에 많은 국가에서 경찰 제복에도 사용한다. 지구의 평화를 지키는 ‘초인 구원자’ 슈퍼맨부터 마을의 안전을 지켜주는 ‘다정한 이웃’ 스파이더맨까지 파랑은 주로 히어로의 퍼스널컬러로 쓰인다. 그러나 인류의 오랜 역사에서 파랑이 지금처럼 보편적으로 사랑받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었다. p.110
이카리스가 세르시를 막는 것을 포기하자 이터널스 전원은 셀레스티얼의 인형으로 사는 길을 버리고, 또 다른 셀레스티얼(신)의 탄생을 막아 새로운 세계를 형성하는 데 동참한다. 본질보다 실존이 앞선다는 사유 속에서 스스로 선택을 내린 그들은 이제 “자유에 선고된” 인간처럼 존재의 무게를 짊어지게 된다. 여태까지의 선택에 대한 책임으로 동료들에게 용서를 구한 이카리스는 마침내 진정으로 자유롭게 날아오르고, 유일무이한 존재로서 삶을 깨닫게 해준 푸른 행성을 바라보다가 미련 없이 태양 속으로 뛰어든다. 그의 마지막 행동에서야 영화는 이카리스의 이야기가 머금고 있던 가장 깊은 파랑의 의미를 드러낸다. 시리도록 푸른 퍼스널컬러가 내포하는 상징은 결국 ‘죽음을 향한 자유Freiheit zum Tode’다. p.129
미국에서 자란 에릭은 작고한 아버지의 말이 옳다고 생각한다. 그는 언젠가 와칸다로 돌아가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동포들을 무장시키겠다는 포부를 품고 용병으로 생활하며 칼을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