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거기서 내가 죽고 왔어야 했는데 아버지는 말이 없었다. 그러나 술을 드시는 날이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거기서 내가 죽고 왔어 야 했는데." 어린 나는 그 말의 무게를 알지 못했다. 그저 아버지의 잔소리로만 들었다. 아버지는 6·25 전쟁이 터지던 그 여름, 학도병 으로 전쟁터에 나갔다. 어린 나이에 나라의 부름을 받아, 아니 강제로 떠밀려 총을 들었다. 아버지가 자라신 마을에서만 열세 명의 청 년이 함께 전선으로 향했다. 그러나 살아 돌아온 분은 몇 분 되지 않았고, 한 분은 발목을 잃은 채 돌아오셨다. 나머지는 그 여름 어딘 가에서, 돌아오지 못했다. 아버지는 산을 오르내리며 싸웠다. 살아남았다. 그러나 그 살아남음이 아버지께는 평생의 짐이 되었다. 함 께 뛰던 전우들, 함께 웃던 친구들을 그 땅에 두고 혼자 돌아온 것에 대한 미안함과 그리움이, 아버지의 여름마다 되살아났다. 아버지 의 술잔은 그들을 향한 묵념이었는지도 모른다. 전쟁이 끝난 뒤 아버지는 어머니를 만나 가정을 이루었고, 5남매를 키웠다. 그러나 전 쟁터에서 혹독하게 달리고 싸운 몸은 이미 성한 곳이 없었다. 허리를 다쳐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날이 많았고, 그 짐은 오롯이 어머 니의 어깨 위로 쌓였다. 아버지의 침묵과 아버지의 한숨, 그 모든 것이 나에게는 그저 무거운 일상이었다. 이제야 안다. 6·25 전쟁을 들여다볼수록, 그것이 얼마나 참혹하고 거대한 전쟁이었는지를 알게 된다. 국군과 학도병, 그리고 먼 나라에서 달려온 수많은 외국 군 인들이 함께 싸워 지켜낸 38선 이남의 이 땅에서, 나는 지금 이렇게 살고 있다. 아버지 덕분에, 그리고 돌아오지 못한 그분들 덕분에. 미안하다. 그 외로움을 알아드리지 못해서, 그 그리움을 함께 나누지 못해서. 이 책은 아버지께 드리는 늦은 사과이자, 그 여름에 두고 온 모든 분들을 향한 작은 추모다.
살아 돌아온 사람 (딸이 쓴 6·25 학도병 아버지 자서전)
$17.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