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돌아온 사람 (딸이 쓴 6·25 학도병 아버지 자서전)

살아 돌아온 사람 (딸이 쓴 6·25 학도병 아버지 자서전)

$17.00
Description
거기서 내가 죽고 왔어야 했는데 아버지는 말이 없었다. 그러나 술을 드시는 날이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거기서 내가 죽고 왔어 야 했는데." 어린 나는 그 말의 무게를 알지 못했다. 그저 아버지의 잔소리로만 들었다. 아버지는 6·25 전쟁이 터지던 그 여름, 학도병 으로 전쟁터에 나갔다. 어린 나이에 나라의 부름을 받아, 아니 강제로 떠밀려 총을 들었다. 아버지가 자라신 마을에서만 열세 명의 청 년이 함께 전선으로 향했다. 그러나 살아 돌아온 분은 몇 분 되지 않았고, 한 분은 발목을 잃은 채 돌아오셨다. 나머지는 그 여름 어딘 가에서, 돌아오지 못했다. 아버지는 산을 오르내리며 싸웠다. 살아남았다. 그러나 그 살아남음이 아버지께는 평생의 짐이 되었다. 함 께 뛰던 전우들, 함께 웃던 친구들을 그 땅에 두고 혼자 돌아온 것에 대한 미안함과 그리움이, 아버지의 여름마다 되살아났다. 아버지 의 술잔은 그들을 향한 묵념이었는지도 모른다. 전쟁이 끝난 뒤 아버지는 어머니를 만나 가정을 이루었고, 5남매를 키웠다. 그러나 전 쟁터에서 혹독하게 달리고 싸운 몸은 이미 성한 곳이 없었다. 허리를 다쳐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날이 많았고, 그 짐은 오롯이 어머 니의 어깨 위로 쌓였다. 아버지의 침묵과 아버지의 한숨, 그 모든 것이 나에게는 그저 무거운 일상이었다. 이제야 안다. 6·25 전쟁을 들여다볼수록, 그것이 얼마나 참혹하고 거대한 전쟁이었는지를 알게 된다. 국군과 학도병, 그리고 먼 나라에서 달려온 수많은 외국 군 인들이 함께 싸워 지켜낸 38선 이남의 이 땅에서, 나는 지금 이렇게 살고 있다. 아버지 덕분에, 그리고 돌아오지 못한 그분들 덕분에. 미안하다. 그 외로움을 알아드리지 못해서, 그 그리움을 함께 나누지 못해서. 이 책은 아버지께 드리는 늦은 사과이자, 그 여름에 두고 온 모든 분들을 향한 작은 추모다.
저자

남창란

남창란은6·25전쟁학도병으로참전하신아버지의딸로,아버지의삶과침묵속에담긴전쟁의상처와그리움을기억하는작가입니다.이책《살아돌아온사람》은아버지와그시대를살아낸모든이들을향한첫번째헌사입니다.

목차

프롤로그_거기서내가죽고왔어야했는데6

1장.낙동강이굽이치는마을
1932년,안동에서태어난소년14아버지의가족16
소년시절의기억19
믿음이뿌리내린소호리교회22일제의기독교탄압24
해방,그리고분단26

2장.그여름,총을들었다전쟁이났다30
안동을떠나던날32
소년을군인으로만든훈련소35낙동강의길었던여름37낙동강을지킨사람들39장사리의아이들40
전세가뒤집히던날41북진,그리고중국군42가장추웠던겨울43
1·4후퇴와피란길의사람들45총소리가멈추던날47
어머니,살아돌아왔습니다48


3장.흙을일구며살았다전쟁이남긴것들52아버지가다치시던날54방에서보낸세월56아버지의술잔과노래59다리를주물러드리던밤62소를팔러가던새벽65어머니와우리들69할머니가돌아가시던날74아버지의마지막풍경76이천호국원78

에필로그_아버지,미안합니다82


부록
1.6·25전쟁연표-아버지가살아내신시간들88
2.학도병이야기-2만7천명의열일곱살들93
3.낙동강방어선-그여름의기록96
4.장사리상륙작전-139명의이름99
5.장진호전투-가장추웠던겨울103
6.포항여중학도병-열다섯살의방어선107
7.안동과독립운동-아버지가자란땅110
8.6·25전쟁과유엔군-함께싸운나라들113
9.전쟁이남긴상처-생존자죄책감에대하여115
10.낙동강방어선-52일의기록118
11.피란민들의이야기120
12.전쟁이후-다시일어선나라123
13.6·25전쟁의숫자들126

14.호국원이야기-나라가마련해준자리128
15.전쟁을기억하는방법130
16.6·25전쟁관련추천자료133
17.아버지에게드리는편지134
18.아버지를추억하는사진들136

출판사 서평

1932년,안동에서태어난소년

아버지는1932년8월10일,경북안동에서태어나셨다.
경북안동은예로부터선비의고장이었다.낙동강이굽이쳐흐르고,산자락마다오래된마을이자리잡은그곳은퇴계이황선생의고향이기도하고,독립운동가를많이배출한곳이기도했다.이상룡,김동삼,류인식.이름만들어도알만한독립운동가들이안동출신이었다.전국어느지역보다많은독립운동가를배출했다는기록이있다.그만큼일제에대한저항의식도강했고,나라를빼앗긴것에대한분노도깊었다.
아버지가태어나신그해는일제강점기한복판이었다.조선의이름은지워지고,사람들은억눌린삶을살아가던시절이었다.안동의
아이들도학교에서일본말을배워야했고,어른들은묵묵히땅을일구며하루하루를버텼다.농사를지어도공출로빼앗기고,아들들은징용으로끌려가고,학교에서는우리말을쓸수없었다.일본순사가마을을돌아다녔고,사람들은그발소리에몸을움츠렸다.그러나낙동강은여전히흘렀다.봄이면논에물이들어찼고,여름이면아이들이강가에서뛰어놀았으며,가을이면감나무에감이빨갛게익었다.겨울이면낙동강이얼어붙어아이들의놀이터가되었다.가난했지만,강이있었고,산이있었고,마을이있었다.그마을에서아버지가자라셨다.


"거기서내가죽고왔어야했는데."

아버지는술을드시는날이면그말을혼잣말처럼중얼거리셨다.어린딸은그말의무게를알지못했다.그저무섭고이상한아버지로만생각했다.

아버지는1950년열여덟살에학도병으로전선으로나가셨다.마을에서열세명의청년이함께떠났다.살아돌아오신분은두분뿐이었다.아버지는그살아돌아오심을평생의짐으로안고사셨다.방에누워17년이넘는세월을보내시면서도해마다여름이면막걸리를드시고노래를부르셨다.전우야잘자라,별이지는서쪽하늘밑에.그리고우셨다.

딸은그술잔속에무엇이담겨있는지알지못했다.아버지가돌아가시고나서야비로소알게되었다.그여름이얼마나참혹했는지를.낙동강방어선의참호속에서별을보던열여덟살이있었다는것을.가슴윗주머니에할머니의편지를품고싸웠다는것을.

이책은아버지를너무늦게이해한딸이쓴늦은사과다.동시에그여름돌아오지못한모든이름들을향한조용한추모다.6·25전쟁이역사책속숫자가아니라,한사람의열여덟살이었다는것을.그열여덟살이평생을어떻게살아냈는지를.이책은그것을기억한다.

살아돌아오신분이있었다.그분이나의아버지이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