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몸의 허무를 씹는다 (조문경 시집)

제 몸의 허무를 씹는다 (조문경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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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소멸의 폐허 위에서 흙을 만지는 몸, 끈질긴 생의 싹을 틔우다

초록의 힘으로 허무를 뚫고 나아가는 시
도시의 관념을 걷어낸 자리에 들어선 경이로운 대지의 기록
「제 몸의 허물를 씹는다」는 ‘봄싹’의 ‘리얼리스트 시전詩全’ 네 번째 시리즈로 발간된 조문경 의 시집이다.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귀촌이라는 삶의 재배치를 겪으며 체득한 대지의 생태적 순환과 마주한 존재론적 허무를 날카롭고도 따뜻한 시선으로 포착해 낸다.
총 4부로 구성된 시집 속에서 시인의 시선은 화려한 도시의 수사나 낭만화된 농촌의 풍경에 머물지 않는다. 대신 ‘작대기 하나 사라진’ 시골 마을 노인들의 쇠락해 가는 육체와 소멸해 가는 공동체의 풍경을 정직하게 호명한다. 더불어 인간이 피할 수 없는 소멸과 상실의 유한한 조건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표제시 「제 몸의 허무를 씹는다」에서 보여주듯, 시인은 도착점을 알 수 없는 허공을 향해 ‘오직 공격’하듯 뻗어 나가는 칡넝쿨의 맹렬한 초록 힘을 통해 부조리한 세계에 온몸으로 반항하는 실존적 주체성을 획득한다. 화장장의 타오르는 뼈에서 세상 처음 보는 흰빛의 허무를 보면서도 지하 식당에서 설렁탕 한 그릇을 비워내는 일상성(「색을 다 거두어낸 흰빛」), 까실한 배추 뒷장을 ‘아프지 않을 만큼만’ 가슴에 폭 안아 묶어주는 미시적인 보살핌(「서리 내린 후」)은 이 시집이 가진 가장 큰 미덕이다.
허무에 주저앉는 대신 호미를 들고 파슬파슬 부서지는 생생한 흙 빛깔을 마주하는 시인의 손길은 매일 아침 꽃이 피었는지 들여다보며 기쁨을 느끼는 능동적인 ‘살아냄’의 세계로 독자들을 성큼 인도한다.
저자

조문경

2002년 「삶글」통해작품활동시작
시집『항상난머뭇거렸다』,『노란장미를임신하다』,『엄마생각』,『해바라기뒤통수를봤다』를펴냈다.

목차

제1부어서빨리받아적으라는듯
나비떼가왔는데11
손님12
첫손님으로네발나비오다13
나없는사이14
상사화15
고양이와나눠먹다16
전철옆자리할머니의시읽기17
소매치기18
색을다거두어낸흰빛19
방아깨비빛방울꽃씨를뿌리다20
코스모스앞에21
제몸의허무를씹는다22
더이상생각없다25
저녁놀은농부의등26
풀도밭을경작하고27

제2부풍경이되지못한채곁눈질로

꽃이진다33
다람쥐삼일장34
이세상뼈대35
흙도둑36
바람에꽃잎흔들리자37
숫양파39
사라진풍경속에서40
풀을뽑으며41
그냥42
노랑선씀바귀43
간장소금44
가난한저축45
서리내린후46
비오는날47
숨을섞으려면48
고양이와물까치50
자갈풍51
어떤엄연嚴然52
호랑나비애벌레의청빈淸貧53
씨는꽃이져야만보인다54
또다른시간을보다55
겨울연꽃못58

제3부그질긴한세상

잔盞63
안부64
참나무타는냄새먹다65
요각인사66
짹지칼68
며느리와봉숭아꽃물들이다69
호다리콩콩70
문득그대생각났다71
마지막죄72
눈앞에살아있다73
소75
니캉내캉사재이76
시골엔달이없겠다77

제4부작대기하나사라질때까지
귀촌81
적막82
삼십분간83
바더리는그렇게84
달마중85
흙집천정을뜯으며86
한파87
봄볕88
살면서이렇게신났을까89
다람쥐홍시먹는90
여기계신저산봄꽃91
낮달맞이93
좋을때란95
한나절쪼그리고앉아96
산수유나무팔려가다97
이야기끝에99
호미댁할매100
장연아재101
참따뜻한방102
작대기먼저들어선다103
여백105
해설허무를건너는몸,사라짐과되살아남의시적윤리(이민호)106

출판사 서평

“이방법이외로없지않은가”-허무를건너고타자의고통을함께앓는신체성의미학

허무를회피하지않는투명한눈과현상학적응시

조문경의시는목소리가낮고담담하다.그러나그바닥에깔린사유의깊이는서늘하리만치정직하다.이시집은관념으로만허무를노래하지않는다.시인은대상에덧씌워진모든선입견을걷어내고대상의소멸과부재를있는그대로응시하는‘허무를보는눈’을지녔다.여름날의화려함이사라지고말라버린연대들만남은얼음판에서지나간존재의원적을읽어내고(「겨울연꽃못」),속이비어팔수도없지만수명이다할때까지꼿꼿이서서씨를맺는숫양파의쓸모없음을묵묵히서술하는시선(「숫양파」)은삶의근원적조건을회피하지않는투명한의식의발현이다.

폭력을거부하는‘곁눈질의윤리’와연대의감각

이시집이허무주의의늪에빠지지않고윤리적거처를마련하는자리는바로‘타자의고통과마주하는신체적연대’에있다.시인은전철옆자리에서한용운의시구절을넘기지못하고머물러있는할머니를빤히쳐다보는정면의폭력을행하지않는다.대신고요한‘곁눈질’을통해타인의생에서린상실과눈물의무게를내몸의시각으로묵묵히나누어가질뿐이다(「전철옆자리할머니의시읽기」).마을회관으로마실오는노인들의이름을구체적인삶의터전으로일일이호명하는태도역시타자의슬픔을내인식의감옥에가두지않으려는환대의미학을보여준다.“작대기하나사라졌다”는담담한선언속에는이웃의소멸을자신의유한한신체적감각으로고스란히받아내어함께통과하고자하는시인의깊은슬픔과존중이깃들어있다.

대지의리듬에몸을밀착시키는생태학적거주(Dwelling)

존재의유한성을깨닫고타자의아픔을알아챈시인이도달한궁극의과제는“어떻게살아갈것인가”이다.조문경은이에대해대지의생태적순환에자신의신체를동화시키는‘정직한노동의실천’으로답한다.메줏가루를저어가며찹쌀고추장을고아졸이는끈질긴시간속에서시인은“이방법이외로없지않은가”라고자문한다(「숨을섞으려면」).인간의노동이자연의물리적시간과온전히결합할때비로소상실의자리에새로운생명력이거듭나기때문이다.
응달에버티고선겨울의응어리속에서기어이싹을틔우겠다는출판사‘봄싹’의슬로건처럼이시집은세계의무상함에온몸으로반항하며매일아침손전등을들고목단꽃과은방울꽃을들여다보는경이로운일상의세계를우리에게선물한다.마음한구석에차가운허무의바람이부는이들에게배추포기를가슴에폭안아주던시인의흙묻은손은우리가왜이질긴한세상을기어이살아내야하는지가장다정하고단단한목소리로건네는대답이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