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의 역설 : 모두가 원하지만 아무도 하고 싶지 않은

돌봄의 역설 : 모두가 원하지만 아무도 하고 싶지 않은

$22.00
Description
“모두 함께, 좋은 돌봄을, 이 자리에서”
저마다 돌봄의 공백을 한탄하는 각자도생의 사회에서
‘함께-돌봄’의 사회로 나아가는 돌봄윤리를 제안하다
요양·보호시설에 갇힌 노인과 장애인 돌봄, 아이와 함께하는 미래를 꿈꿀 수 없는 초저출생 사회, 돌봄의 손길이 부족하여 인공지능과 돌봄 로봇의 가능성에 매달리는 현재를 누구나 ‘돌봄 위기 사회’라고 말할 것이다. 여기에 ‘자기 돌봄’이라는 표현이 보여주듯 사회적으로 취약한 아이와 노인뿐 아니라 누구나 돌봄이 필요하다고 호소하지만, 그 가치를 온당하게 인정받지 못하는 돌봄이라는 짐은 누구도 짊어지지 않으려 한다. 은행나무출판사에서 출간된 김준혁 교수의 책 《돌봄의 역설》은 누구나 돌봄을 원하지만 아무도 돌보려 하지 않는 이러한 역설적인 상황을 분석하고, 모두가 모두를 돌보는 ‘함께-돌봄’ 사회로 나아가는 돌봄윤리를 제시한다.
돌봄의 위기를 짚은 기존의 책들이 돌봄을 중심으로 사회 구조를 재구성하는 거시적 해결책을 모색했다면, 의료윤리학자인 저자는 돌봄의 지위를 복원하고 돌봄윤리를 돌봄 사회의 근간으로 내세운다. 돌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사회에서는 필리핀 돌봄노동자 도입, 늘봄학교 연장 정책과 같이 ‘돌봄이 많이 주어지기만 하면 위기가 해소’된다는 착각이 생겨난다. 그러나 취약한 저임금 노동자에게 돌봄의 막중한 짐을 맡기면 돌봄의 질은 떨어지고, 결국 그들만으로는 돌봄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어 돌봄의 공백은 오히려 거대해진다. 대신 저자는 성별·사회적 지위·경제 수준 등을 막론하고 모두가 삶에 돌봄을 들여야만, 돌봄의 위기가 해소될 수 있다고 역설한다. 개인이 더이상 자신의 ‘돌봄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실천할 때, 돌봄은 돌보는 이와 보살핌받는 이를 넘어 사회 전체를 순환한다. 삶에서 ‘좋은 돌봄’을 고민하고 수행하는 개인들이 돌봄 사회의 근간이며, 개인의 차원을 넘어 이들을 지탱하고 연결하는 것이 공동체, 지역사회, 정부의 역할이라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돌봄윤리란 곧 ‘지금 자신의 자리에서 좋은 돌봄을 수행하라’라는 하나의 선언이며, 돌봄의 위기라는 거대한 사회 문제 앞에 선 개인에게 실천적 지침을 제공한다.

저자

김준혁

저자:김준혁
의료인문학자,의료윤리학자.연세대학교치과대학치의학교육학교실교수.소아치과전문의로일하다가다시대학원에진학해의료인문학과의료윤리를공부했다.사람들이거리감을느끼는생명의료윤리와의료인문학의고민이모든사람이함께할때만의미가있음을설명하고그가능성을연구해왔다.2022년부터는돌봄이라는주제에천착해연구,번역,집필,강의를이어왔다.〈한겨레〉에칼럼‘의학과서사’를연재하고있다.
《아픔에도우선순위가있나요?》《우리다시건강해지려면》《모두를위한의료윤리》《아픔은치료했지만흉터는남았습니다》《누구를어떻게살릴것인가》등을썼고,《의존을배우다》《서사의학이란무엇인가》《의료윤리》등을옮겼다.

목차


들어가기전에왜돌봄에관해이야기하는가
들어가며모두가모두를돌보기위하여

1장돌봄은서로교환한다
아이를돌보는일
돌봄의기쁨과슬픔
누가돌보아야하는가
돌봄의대가와진정한돌봄
서로의생을지탱하는돌봄의가능성
돌봄이없다면미래도없다:인간의기본적조건으로서의돌봄

2장돌봄은의지를갖고실천하는것이다
돌봄은하나의능력이다
돌봄이야기,치매앞에서의료를바꾸다
어떤죽음은돌봄이라할수있을까
누가더아프냐고묻기전에
아이를환대하는사회란
대화의윤리:나혼자서는완성할수없는

3장돌봄은보살핌받는이의관점에서이루어진다
돌봄,보편적이면서개별적인
장애의도전앞에서는일
망가진것들의애도,새로운것들의피어남
돌보기위해거짓말을해야한다면
예정된죽음앞의돌봄
자율성을존중하는돌봄은가능한가

4장돌봄은피어나게한다
타인을피어나게한다는것
다음세대의피어남을위하여
고통을함께상대해야하는이유
우영우에겐장애가없다?
로봇과인공지능이돌봄을대신할수있는가
행복한삶과피어나는삶

5장돌봄은구조속에서순환한다
여기엔왜돌봄이없는가
죽음돌보기와돌봄의순환구조
집에서혼자죽기를권할수있는이유
파괴를감내하고견디는것의존엄함
타인의삶으로건너간다는것

6장나는돌보며돌봄받는다
돌봄,타인의고통에응답하기
돌봄을받는마음에관하여
민감한돌봄

나가며함께,좋은돌봄을,모든곳에서
참고문헌

출판사 서평

“돌봄은관계맺음에서출발해‘피어남’을지향한다”
-‘삶의보존’에서서로의생(生)을지탱하는‘좋은돌봄’으로

돌봄이주어지기만하면문제가해결될것이라는낙관론,혹은착오는단순한돌봄의공급을,노인을돌보는로봇이나인공지능을돌봄위기의대안으로삼는다.그러나이는돌봄의역할을‘삶의보존’으로축소하고돌봄을‘수요와공급’의관점에서만바라본것이다.당장돌봄이필요한이들의신체적필요는충족할수있겠지만,자칫돌봄의지향점이로봇과인공지능의감시아래생을연명하는시설사회가될수있다.그것이우리의지향이아니라면,돌봄의목표를,곧‘좋은돌봄’을구체적으로규정해야한다.

모든돌봄은관계맺음에서시작한다.돌보는이와보살핌받는이는돌봄이라는실천으로맺어지며,이때우리는돌보는이의관점(혹은‘공급’의관점)에서관계를바라보는것에익숙하다.즉,돌봄은부모가아이에게,요양보호사가노인에게일방적으로주는것이며어떻게보살필지선택하는것또한돌보는이라고생각한다.그러나돌봄을일방통행으로바라볼때,돌보는이가돌봄으로얻게되는타인과자신의삶에대한깨달음,보살핌받는이와나누는애정이나함께한추억,돌봄의과정에서피어난유대감등은간과되고보살핌받는이의관점은지워질수있다.이처럼돌봄관계에서는일종의‘교환’이일어나는데,이에주목할때돌봄은타인을위한헌신이아닌서로의생을지탱하는연대가될수있다.

이러한돌봄은깨끗한옷을입고양질의음식을먹고충분히자는것등타인의신체적필요를일방적으로채워주는것을넘어서서,보살핌받는이의욕구를들여다보며그의재능과가능성,꿈과노력이꽃피도록돕는것으로나아갈수있다.단순한‘삶의보존’이아닌서로의‘피어나는삶’을위한돌봄의자리가생긴다.이때돌봄의효율적인‘공급’아래시설로귀결되는노인돌봄에서,약자에게전가되는‘독박돌봄’에서,입시를위한획일화된양육에서벗어난‘좋은돌봄’의가능성이열린다.

“돌봄은타인의아픔을알아차릴때시작된다”
-돌보는이와보살핌받는이가뒤섞이는‘민감한돌봄’

보살핌받는이를피어나게하는섬세한돌봄은어떻게가능할까?많은이가‘공감’을답으로내놓았지만,저자는대신‘민감함’을강조한다.돌봄은배고픔과불편을호소하는아이의울음을,고통에시달리는일그러진얼굴을알아차릴때시작된다.이때출발점은타인의아픔에대한공감일지도모르나,타인의아픔과나의아픔을맞대어보는공감은나와타인의공통점에매몰되어상대를위한돌봄으로나아가기어렵다.대신돌봄에는그가어떤상황에서,어떤아픔을,고통과아픔을얼마나겪고있는지예민하게살피는능력이필요하다.그것이바로‘민감함’이다.

이러한민감함은돌보는이에게만필요한것은아니다.우리모두가돌보면서보살핌받는존재이기때문이다.환자를치료하는의사는한편으로질병에시달리는환자이기도하다.요양시설의노인은보살핌받는동시에같이생활하는노인들을돌본다.돌봄노동자역시누군가의보살핌아래살아간다.이처럼우리는돌봄속에서뒤섞이기에,언제나나와다른삶을헤아릴수있는민감함이필요하다.

민감함의부족으로돌봄에실패한대표적사례는의료다.전문화와과학화를거친의료는환자개개인의삶을들여다보는대신진료방침에맞는치료만을제공하였고,‘의학’에포함되지못한돌봄을배제했다.그러나우리가병원을찾으면서원하는것은단순한신체적증상에따른의료행위가아니라질환을마주한‘나’의삶을살펴보는진료다.의료뿐만이아니다.우리는단순한‘돌봄서비스의수요자’가아닌‘나’를돌보는손길을원하고,이는‘민감한돌봄’을통해이루어진다.

“모든생은돌봄에서출발하여,돌봄으로맺어진다”
모두가돌봄책임을다하는,지속가능한‘함께-돌봄’의사회로

아이가태어나려면먼저아이를돌볼사람이,돌봄을가능하게만드는환경이있어야하고생의마지막순간에도그의고통을덜어줄도움이필요하다.모두에게돌봄이필요한순간이반드시찾아온다는말은동시에누구나타인을돌보아야한다는뜻이기도하다.이때보살핌받는이를피어나게하는,타인의삶을민감하게살피는‘좋은돌봄’을실천하려면타인역시나를돌볼것이라는믿음이필요하다.누군가일방적으로자신을희생해돌봄을실천하는건지속가능할리없다.이때필요한것이돌봄이순환할수있는사회구조다.

저자는‘보살핌받는이-돌봄노동자-지역사회-정부’로이어지는돌봄의순환구조를제시한다.정부는보살핌받는이,곧개별시민들의역량으로운영되기에,어떤주체도돌봄을일방적으로떠안지않고소외당하지않는다.여기서논의는다시돌봄책임을수행하는개인으로돌아온다.돌봄이순환하는사회와돌봄책임을다하는시민이동시에존재할때에만,지속가능한‘함께-돌봄’의사회는가능하다.그래서돌봄의위기라는거창한문제를분석하며시작한저자는다소소박한,하지만선명한결론을남긴다.‘우리함께,지금부터돌봄에참여하지않으시겠어요.’돌봄의역설을넘어설수있는것은지금돌보는나와여러분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