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묵상 2

그리스도인의 묵상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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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그리스도인의 묵상2』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기독교 전통의 묵상이 있다
주기도문 묵상, 렉시오 디비나, 그리고 의식성찰이 그것이다
그리스도인의 묵상에는 마음 비우기와 하나님 바라보기가 항상 함께 있다

마음챙김 명상은 불교 전통에서 온 것이다.
불교 명상과 기독교 묵상, 모두 침묵에서부터 시작된다
시작은 비슷해 보이지만, 그 길과 끝은 전혀 다르다.
전자는 무(nirvana)를 이루고, 후자는 하나님과의 연합을 이룬다

마음챙김 명상과 기독교 묵상은 전혀 다르다.
전자는 ‘알아차림의 의식상태’로서 뇌의 비활동형 연결망(DMN)과,
후자는 ‘안전애착의 의식상태’로서 사회적 뇌(social brain)의
활성화와 관련있다.
뇌의 가소성(neuroplasticity)을 고려하면
결국 둘 중의 하나 만을 선택할 수 밖에 없다

무(nirvana)로 가는 마음챙김의 의식을 택할 것인가?
하나님과의 연합을 이루는 애착관련 의식을 택할 것인가?
정신화냐(mentalization), 영혼화(soulization)냐?




그리스도인의 묵상 요약

오늘날처럼 자기주장과 화려하고도 자극적 종교행위가 난무하는 현실에서 왜 굳이 침묵 가운데 드려지는 묵상기도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필요한가는 긴 설명이 필요 없다. 미국 퍼킨스 대학 복음주의 선교신학 교수인 일레인 히스 교수는 그녀의 책에서 “오늘날의 교회는 포스트 모더니즘 문화의 소비주의, 경쟁, 그리고 개인주의에 깊이 적응된 나머지, 번영복음을 외치는 설교자의 풍요로운 삶의 스타일에서부터 어디나 존재하는 ‘교인들의 수평이동’과 ‘예배전쟁”(worship wars)’에 이르기까지 교인들에게 보다 나은 거래를 위하여 쇼핑을 제공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 동안 우리는 전도와 사역에 몰두한 나머지 우리 영혼이 주님과 깊은 교제하는데 소홀하였다. 그 결과 우리의 사역과 전도는 열매가 없어졌으며, 우리의 영혼마저 매말랐다. 이제 우리는 침묵 가운데서 아직도 말씀하시는 주님께 다가가 다시 살아나기 위하여 묵상기도를 배워야 하며, 이것을 우리는 묵상적 복음주의라고 부른다”고 풀러신학교의 복음주의와 영성형성학 교수인 리챠드 피스 박사는 말한다.

묵상적 복음주의는 커다란 소리로 떠드는 선언 속에서보다는 침묵으로부터 나오는 복음주의이며, 대규모 집회나 강압적인 도전보다는 소그룹 대화와 피정으로부터 나오며, 간증의 독백보다는 하나님의 음성을 구하는 영성지도의 복음주의이다. 아직도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는 공간과 만남을 창조하는 전통적인 영성훈련이며, 여기서는 하나님의 현실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이 목표이다. 이 시점에서 복음주의는 어떤 양적 팽창의 테크닉을 발견하는 일을 멈추고, 어떻게 하면 아직도 말씀하시는 하나님께 다가갈 수 있으며, 당신과 함께 그렇게 다른 사람을 초대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에 똑바로 직면하고, 기독교 전통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그 흐름으로부터 해답을 찾기 위한 노력에 나서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본문에서)

오늘날 서구사회를 뒤덮고 있는 혼란은 마음챙김 명상으로 대표되는 불교명상과 그리스도인의 묵상을 혼동하는 데 있다. 불교 명상과 그리스도인이 하는 묵상은 전혀 다르다. 두 영성 전통의 수련이 특히 처음에는 침묵과 마음의 명료함의 수련에 있어서 서로 유사한 듯 보이지만, 그 끝은 전혀 다르다. 불교전통의 명상은 외부로부터의 자극을 차단하고 자신의 내면 깊숙이 들어가는 자기 폐쇄적 수련인 반면에, 기독교 전통의 묵상은 반대로 외부로부터의 오감에 의식을 열어놓고 마음의 눈으로 나 밖의 대상인 하나님을 바라보는 관계적인 수련이다. 불교 명상을 의식의 흐름을 바라보는 ‘깨어남의 명상’이라고 한다면, 그리스도인의 묵상은 어린 아이가 엄마 품에 안겨 엄마를 온 몸으로 바라보는 ‘안정애착의 묵상’이라고 할 수 있다. 최신 뇌과학의 발견들은 이 차이를 뚜렷하게 보여주기 시작한다. 불교 명상은 ‘알아차림의 의식상태’로 뇌의 ‘비활동형 연결망(DMN)’을 중심으로 한 내측의 활성화와 관련이 있는 반면, 그리스도인의 묵상은 ‘안정애착의 의식상태’로 뇌의 거울뉴런과 두정엽-측두엽 경계부위(PTJ) 등이 추가되는 외측, ‘사회적 뇌(social brain)’의 활성화와 관련이 있다. 이렇게 각기 다른 전통의 영성수련을 오랜 기간 지속하면 뇌의 가소성(neuroplasticity) 이론에 따라 양 자에서는 서로 전혀 다른 뇌의 연결망이 형성된다. 따라서 불교명상을 하는 사람과 그리스도인의 묵상을 하는 사람은 그 생각하는 바도 다르게 되며, 가는 길도 다르며, 그 끝은 전혀 다르다.

이제 그리스도인들은 오랜 기간 동안 기독교 전통 속에서 전래되어 왔었지만, 한 때 잊혀졌다가 최근 들어 다시 발굴되어 다듬어져 가고 있는, 마음의 명료함을 다루면서도 하나님과의 초월적 관계성을 제대로 이룰 수 있는 고유의 전통적인 묵상, 즉 ‘주기도문을 응용한 묵상’, ‘거룩한 독서’, ‘의식성찰’과 같이 그 영적 가치가 입증된 형태의 묵상기도로 돌아가야 할 때가 왔다고 본다.

그리스도인들의 영성과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과 어떤 관계임을 천명하는데서 출발하는 영성이며, 결국은 다시 그 관계성으로 돌아가는 기도이다. 우리는 딸, 아들이 아버지를 찾듯, 아기가 엄마를 찾듯, 두 손을 들어 반사적으로 하나님을 찾으며, 하나님은 암탉이 날개를 펴서 새끼를 품듯, 신랑이 신부를 맞이하듯, 우리를 받아주신다. 우리는 사는 동안 반복해서 주님께로 돌아가며, 주님의 임재로 돌아가되, 그것은 살아있는 두 인격체 간의 역동적인 사랑의 관계이며, 너무나도 분명한 실존적 관계성이다. 우리는 결코 ‘거룩한 단어’로 돌아가지 않으며, ‘니르바나’로 나아가지도 않으며, ‘무지의 구름’ 속으로 빠져들지도 않는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주님의 음성을 듣고, 택함을 받았으며, 삶의 어느 순간에 주님의 음성을 분명히 듣고 잠에서 깨어나 길을 나섰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의 기도는 우리 자신의 정체성과 관계성을 지닌 채 태어나는 태초로부터의 부르짖음이다.
저자

이만홍

저자:이만홍
연세대학교의과대학정신과교수로교육과진료를하면서,정신분석이인간을전인적으로다루지못하는한계를깨닫고,기독교영성과정신분석의통합을위하여오랫동안노력해왔다.두란노서원과연세대학교연합신학대학원을비롯한여러대학에서강의를하였고,한국기독교상담심리학회,영성지도.상담협회등의창립을주도하였고,한국목회상담협회영성분과장을역임한바있다.대학의주임교수와세브란스병원과장직을사임하고3년간바닷가에서침묵의시간을보내며묵상기도와영분별을중심으로한영성지도의중요성을깨닫고,심리치료와의통합하는시도에힘을쏟아왔다.우울증전문로뎀클리닉과영적돌봄을지향하는SoH심리영성센터를설립하여이끌고있으며,특별히개혁주의에기초한묵상과영성지도의길을찾아가고있다.
저자약력
(현)SoH심리영성센터지도교수,연세대학교의과대학외래교수,정신과전문의,로뎀정신과원장,영성인도자,한국영성지도자협회,초대공동회장역임,현고문,(전)연세대학교의과대학정신과주임교수겸세브란스병원정신과과장,전한국기독교상담학회초대회장,전한국목회상담협회영성분과장
저서및역서
“아스피린과기도(두란노,2000)”,“역동정신치료와영적탐구”(학지사,2010,공저),“영성과치유”(한국영성치유연구소,2012)“,“로뎀숲에서쉼을얻다.”(묵상집,로뎀,2015,공저),“심리치료와기독교영성”(SoH,2017),“현대정신분석과기독교영성”(로뎀포레스트,2022),“로뎀숲에서”(묵상집,로뎀포레스트,2022),(역서)“영혼을돌보는영성지도”(틸든에드워즈지음,로뎀,2010,공역),“그룹영성지도”(로즈마리도어티지음,로뎀,2010,공역),“정신치료와영적탐구”(하나의학사,2010,공역)
SoH심리영성센터
‘산으로가서여호와앞에서라(StandontheHorebmountain,왕상19:11)’는부르심에순종하여이세상에서주님과함께살기위해모인묵상공동체로서,묵상적영성을중심으로기독교영성지도와역동심리치료를통합한전인적심리영성치유사역을지향하고있다.

목차

그리스도인의묵상I요약
1장에레모스를찾아서:사막교부들의지혜와묵상적삶
2장침묵과비움의영성
3장묵상심리학:마음비우기
4장그리스도인의묵상:하나님바라보기
부록1-2

5장하나님듣기:그리스도인의정체성과묵상적경청
하나님을듣기위하여/공감적경청/성찰적경청/그리스도인의자유/
그리스도인의정체성/경청은사람을살린다/묵상적경청이기도다/
요약/경청훈련을위한모임
미주
금주의묵상수련:경청실습1.제3자료를사용하는경청과나눔/경청실습2.묵상적경청

6장일상에서의묵상적삶과하나님임재연습
관상(contemplation),관상적삶이란?/로렌스형제의하나님임재연습/
묵상적퇴수회/현대인의성서일과/거룩한독서(렉시오디비나)/의식성찰
미주
금주의묵상수련:1.일상에서의관상연습/2.침묵과고요로떠나기

7장거룩한독서(렉시오디비나)
렉시오디비나의목적/1.독서(lectio)/2.명상(meditatio)/
3.기도(oratio)/4.관상(contemplatio)/렉시오디비나와성경
미주
금주의묵상수련:렉시오디비나실제

8장의식성찰
성찰/분별전통과성찰/의식과성찰/일반성찰과특별성찰/의식성찰의
목적과주의점
미주
금주의묵상수련:일반성찰/특별성찰

9장주제묵상과영적분별
주제묵상/영적분별/그룹영성지도/분별의과정
미주
금주의묵상수련:주제묵상과분별훈련

마치는글
미주

부록금주의묵상수련목록/제3자료/신뢰서클시금석
/경청모임을위한기술/묵상적모임성찰을위한질문지/경청막대/
특별성찰기록지/집단영성지도모임시간표

출판사 서평

그리스도인의묵상요약

오늘날처럼자기주장과화려하고도자극적종교행위가난무하는현실에서왜굳이침묵가운데드려지는묵상기도가우리그리스도인들에게필요한가는긴설명이필요없다.미국퍼킨스대학복음주의선교신학교수인일레인히스교수는그녀의책에서“오늘날의교회는포스트모더니즘문화의소비주의,경쟁,그리고개인주의에깊이적응된나머지,번영복음을외치는설교자의풍요로운삶의스타일에서부터어디나존재하는‘교인들의수평이동’과‘예배전쟁”(worshipwars)’에이르기까지교인들에게보다나은거래를위하여쇼핑을제공하고있다.”고말한다.

“그동안우리는전도와사역에몰두한나머지우리영혼이주님과깊은교제하는데소홀하였다.그결과우리의사역과전도는열매가없어졌으며,우리의영혼마저매말랐다.이제우리는침묵가운데서아직도말씀하시는주님께다가가다시살아나기위하여묵상기도를배워야하며,이것을우리는묵상적복음주의라고부른다”고풀러신학교의복음주의와영성형성학교수인리챠드피스박사는말한다.

묵상적복음주의는커다란소리로떠드는선언속에서보다는침묵으로부터나오는복음주의이며,대규모집회나강압적인도전보다는소그룹대화와피정으로부터나오며,간증의독백보다는하나님의음성을구하는영성지도의복음주의이다.아직도말씀하시는하나님을발견할수있는공간과만남을창조하는전통적인영성훈련이며,여기서는하나님의현실을경험할수있는것이목표이다.이시점에서복음주의는어떤양적팽창의테크닉을발견하는일을멈추고,어떻게하면아직도말씀하시는하나님께다가갈수있으며,당신과함께그렇게다른사람을초대할수있느냐하는문제에똑바로직면하고,기독교전통의역사를거슬러올라가그흐름으로부터해답을찾기위한노력에나서야할때가아닌가한다.(본문에서)

오늘날서구사회를뒤덮고있는혼란은마음챙김명상으로대표되는불교명상과그리스도인의묵상을혼동하는데있다.불교명상과그리스도인이하는묵상은전혀다르다.두영성전통의수련이특히처음에는침묵과마음의명료함의수련에있어서서로유사한듯보이지만,그끝은전혀다르다.불교전통의명상은외부로부터의자극을차단하고자신의내면깊숙이들어가는자기폐쇄적수련인반면에,기독교전통의묵상은반대로외부로부터의오감에의식을열어놓고마음의눈으로나밖의대상인하나님을바라보는관계적인수련이다.불교명상을의식의흐름을바라보는‘깨어남의명상’이라고한다면,그리스도인의묵상은어린아이가엄마품에안겨엄마를온몸으로바라보는‘안정애착의묵상’이라고할수있다.

최신뇌과학의발견들은이차이를뚜렷하게보여주기시작한다.불교명상은‘알아차림의의식상태’로뇌의‘비활동형연결망(DMN)’을중심으로한내측의활성화와관련이있는반면,그리스도인의묵상은‘안정애착의의식상태’로뇌의거울뉴런과두정엽-측두엽경계부위(PTJ)등이추가되는외측,‘사회적뇌(socialbrain)’의활성화와관련이있다.이렇게각기다른전통의영성수련을오랜기간지속하면뇌의가소성(neuroplasticity)이론에따라양자에서는서로전혀다른뇌의연결망이형성된다.따라서불교명상을하는사람과그리스도인의묵상을하는사람은그생각하는바도다르게되며,가는길도다르며,그끝은전혀다르다.

이제그리스도인들은오랜기간동안기독교전통속에서전래되어왔었지만,한때잊혀졌다가최근들어다시발굴되어다듬어져가고있는,마음의명료함을다루면서도하나님과의초월적관계성을제대로이룰수있는고유의전통적인묵상,즉‘주기도문을응용한묵상’,‘거룩한독서’,‘의식성찰’과같이그영적가치가입증된형태의묵상기도로돌아가야할때가왔다고본다.

그리스도인들의영성과기도는우리가하나님과어떤관계임을천명하는데서출발하는영성이며,결국은다시그관계성으로돌아가는기도이다.우리는딸,아들이아버지를찾듯,아기가엄마를찾듯,두손을들어반사적으로하나님을찾으며,하나님은암탉이날개를펴서새끼를품듯,신랑이신부를맞이하듯,우리를받아주신다.우리는사는동안반복해서주님께로돌아가며,주님의임재로돌아가되,그것은살아있는두인격체간의역동적인사랑의관계이며,너무나도분명한실존적관계성이다.우리는결코‘거룩한단어’로돌아가지않으며,‘니르바나’로나아가지도않으며,‘무지의구름’속으로빠져들지도않는다.우리는태어날때부터주님의음성을듣고,택함을받았으며,삶의어느순간에주님의음성을분명히듣고잠에서깨어나길을나섰기때문이다.따라서우리의기도는우리자신의정체성과관계성을지닌채태어나는태초로부터의부르짖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