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갈 곳이 없었다

나는 갈 곳이 없었다

$32.00
Description
리투아니아 출신 영화감독이자 시인 요나스 메카스(Jonas Mekas)는 뉴욕 아방가르드 예술계의 상징적인 인물이자 비서사(non-narrative) 영화의 선구자로 잘 알려져 있다. 거대한 이야기 대신 일상의 순간을 사랑한 그는 삶을 설명하기보다 포착했고, 감정과 이미지, 기억의 파편들을 세심히 엮어낸 그만의 ‘일기 영화(diary film)’는 평범하고도 찰나적인 장면을 통해 생생한 삶의 감각을 전달해 왔다. 이 책 『나는 갈 곳이 없었다(I Had Nowhere to Go)』는 그 영화적 형식의 토대가 된 기록으로, 메카스가 고향을 떠나 나치 강제 수용소로 끌려간 1944년부터 초기 일기 영화들을 작업하기 시작한 1955년까지의 여정을 따라가는 일기 모음집이다. 제이차세계대전 중 나치 수용소와 난민 생활을 거쳐 1949년 뉴욕에 도착한 그는, 낯선 도시의 이민자 공동체 속에서 다시 삶을 시작했다. 장소를 잃고 떠돌던 시간 속에서도 그는 글을 쓰고, 잡지를 만들고,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만들며 예술가로서의 자신을 완성해 나갔다. 책에는 전쟁 가운데 겪은 강제 노동과 억압, 그럼에도 불구하고 꺼지지 않았던 창작의 열망이 사실적이면서도 그만의 유머 섞인 문장으로 담겼다. 사실과 허구, 시적 단편과 철학적 대화를 오가며, 여러 목소리가 한 사람의 내면에서 울려 퍼진다. 여기에 당시 촬영된 사진들을 비롯해 송환 거부 선언 증명서 등의 자료들이 더해져 문장을 따라 흐르는 기억을 이미지로 환기시키며 또 다른 층위의 기록을 형성한다. 개인의 가장 내밀한 체험에서 출발해 모두의 감각과 기억을 작동시키는 보편적 예술로 나아가는 메카스의 궤적을 따라 밟으며 우리는 사소한 순간에서 삶을 노래하는 방법을 발견하게 된다.
저자

요나스메카스

요나스메카스(JonasMekas,1922-2019)는리투아니아출신의영화감독이자시인,예술가이다.1944년,동생아돌파스메카스(AdolfasMekas,1925-2011)와함께리투아니아를떠나스위스로향하던중나치에의해독일엘름스호른의강제노동수용소로끌려갔다.전쟁이후독일에있는여러난민수용소에서지냈으며,이시기동안마인츠대학교에서철학을공부했다.1949년말국제난민기구의도움으로뉴욕에정착한그는두달만에자신의첫번째카메라인볼렉스16밀리카메라를구입해일상을기록하기시작하며곧미국의아방가르드영화운동에관여하게되었다.1954년아돌파스와함께영화잡지『필름컬처(FilmCulture)』를창간했고,1958년부터는『빌리지보이스(TheVillageVoice)』에‘무비저널’칼럼을기고하기시작했다.1962년필름메이커스협동조합을,1964년필름메이커스시네마테크를설립했다.영화제작자로서는‘일기영화(diaryfilm)’라는독특한형식을만들어개인의경험과기억을탐구하며이민자로서의정체성을보여주었으며,2007년에는매일인터넷에단편영화한편을공개하는‘365일프로젝트(365DayProject)’를진행하기도했다.1963년베네치아영화제에서다큐멘터리부문대상을수상한「영창」을포함해「월든(일기,노트,스케치)」「로스트,로스트,로스트」「사이에서」「우연히나는아름다움의섬광을보았다」등방대한양의영화를제작했으며,『세메니슈캬이의목가적풍경』『이서카는없다』『영화작가들과의대화』『나는살아있는듯하다』(전2권),『수동타자기를위한레퀴엠』등많은책을펴냈다.

목차

나는갈곳이없었다

강제노동수용소
자유를향해
난민수용소에서의삶
불안.일곱개의칼날이찌르기시작하다
얼마나아름다운지당신은,멀리서보면!
삶은계속된다
사이에서
유럽에서의마지막여름
뉴욕
브루클린에서나만의길을만들다
스킬라와카리브디스사이에
맨해튼에서나만의길을만들다
사막에뿌리내리기혹은다시이서카로

해제김지훈/일기작가로서의요나스메카스

출판사 서평

이십세기의일기,거대한악몽속의현실
책은메카스가자신의일기를되짚으며쓴회고로시작된다.그는이일기들이마치생생한악몽처럼느껴져,그것이사실인지허구인지조차더는분간할수없다고말한다.전쟁과그여파를온몸으로겪어낸그에게,그시절은자신의이야기라고는믿기어려울만큼커다란비극이었다.독일점령기리투아니아에서지하소식지를발간하며반독일활동에참여했던메카스는,그사실이발각되자오스트리아빈으로향하지만,이동중기차안에서체포되어나치강제수용소로끌려가게된다.1944년7월19일,이송도중써내려간일기를시작으로이어지는억압과노동의기록은제이차세계대전에서비롯된폭력을세밀하게드러낸다.이지점에서메카스의일기는사적체험에만머무르지않는데,전쟁의한복판에서씌어진이기록은개인의경험을매개로이십세기전쟁의폭력성을드러내는역사적증언으로도읽힐수있다.전쟁포로이자강제노동자로서그가목격한현실은처참했다.잠시노동이중단되는공습을오히려반기는사람들,“끝나지않을것같은시간”(p.48)속에서승리가아닌시계에정신이팔려있는노예들.그들은어떤이상이나아름다운생각도할수없는“지옥의완벽한표본들”(p.54)이었다.공장과자신의머리위로폭탄이떨어지기를바라게만들정도로극한에다다른상황속에서메카스는“그들의비참함자체가나를화나게”(p.135)한다고고백하기에이른다.
그러나이처럼모든것이파괴된상황에서도메카스는사유와예술적활동을멈추지않았다.막사의사람들이잠든사이글을쓰고,소란을피해벌판에서사색하며,노동에서벗어나잠시여유가생기면서점과영화관을찾았다.책과영화에대한기억이희미해질때조차그는영화를보러가기위해라인강의다리를건너던순간느꼈던열기를또렷하고생생하게감각했다.보고읽고들었던모든것들이서로이어지며분위기,주변환경의일부,색으로전환되는경험이었다.나아가메카스는난민수용소의소식을수집해일간소식지를편집하고,“폭탄이아니라책이있는대학”(p.81)에서철학을공부하며,첫시집『세메니슈캬이의목가적풍경(Semeniškiųidilės)』을출간하는등다양한문화적영역에발을디뎠다.첫번째일기,기나긴망명의시작에서내지른“나로말하자면,당신들의전쟁으로부터도자유롭다!”(p.34)는외침이점차실현되어가는모습에서,붕괴된세계속끝내자신의가치를지키고자했던한인간의고귀함이묻어나온다.

이방인의도시,영화의시작
여러난민수용소를거친끝에메카스는국제난민기구의도움을받아뉴욕에도착한다.일기는이를기점으로또다른국면에접어드는데,그가영화감독으로서의자신을형성해가는과정이고스란히담겼다.뉴욕현대미술관에서아방가르드영화들을접하고,한해동안뉴욕에서공연된연극,오페라,발레,영화를거의빠짐없이보며그는점차이도시의‘하늘’과‘연극성’에매료되어간다.그리고드디어1950년에구입한16밀리볼렉스카메라와더불어사진및그래픽작업스튜디오인‘그래픽스튜디오스’에서일하면서사진매체와의접점을넓혀갔던경험은영화제작의중요한발판이되었다.1950년6월4일의일기에서는훗날1949년부터1963년까지의영상을일기형식으로제작한영화「로스트,로스트,로스트(Lost,Lost,Lost)」(1976)를작업하는모습도엿볼수있다.정치적난민의연대기로시작해활기찬뉴욕의문화에대한기록으로확장되는이영화는이후그가만들어갈일기영화의방향을미리보여주는대표작이다.
그러나뉴욕에서의삶은단순한정착이아니라,이방인으로서세계와접속하고다시단절되기를반복하는과정이기도했다.다른사람들처럼되기위해노력했지만결국“우리는서로낯선두이방인이다”(p.452)라고고백할수밖에없던감각이늘그를따라다녔다.‘랑가스(langas,창)’라는리투아니아어가그의내면에서점점또렷해지는동안,그는아직공허한영어단어‘윈도(window,창)’를매만지며그에생명을불어넣으려애썼다.이러한상황속에서글쓰기는“죽음같은현상태에서벗어나는유일한방법”(p.528)이었고,따라서뉴욕에서의일기는메카스에게창작의원동력이자동시에생존을위한도피처였다.누군가를위해서가아닌,“현실의한계를넘어우리의꿈을조금더연장하기를”(p.491)원하기에글을쓴다는그의말에서드러나듯그에게글쓰기는삶을지속하기위한방식이었다.

타자기와카메라로씌어진일기
책끝에수록된영화미디어학자김지훈의해제「일기작가로서의요나스메카스」는메카스의일기의이러한역사적문학적가치를되짚어봄과더불어일기와일기영화가공유하는지점을검토한다.그에따르면,메카스는처음에영화화된일기와글로쓴일기가본질적으로다르다고여겼지만,이후촬영행위가곧자신을돌아보는과정이자,카메라에담기는현실이당시의느낌과지각이투영된주관적인현실이라는사실을알게되었다고한다.물론글쓰기와영화촬영에는성찰과즉각적반응이라는시간성의차이가존재하지만,촬영이후방대한푸티지를편집하는과정은메카스에게“작가가일기를쓰는것과같은선택”(p.539)을수반하는것이었다.더불어일기중간중간삽입되어다양한화법을구성하는단편들은특유의핸드헬드기법과단일프레임촬영,초점과노출의자유분방한조절을연상케한다.‘기억’‘이야기하나’‘짧은이야기’로나뉘어이름붙여진이단편들은세월의간격을두고이어지기도하고,앞선‘기억’이뒤에서‘짧은이야기’로재구성되는등변주되며시간순으로흐르는일기형식에시적리듬을부여한다.이에더해,글로씌어진일기는일기영화와상호텍스트적관계를이루는데,영화의한단편으로이어지기도했던‘토끼똥더미’이야기(pp.140,456)를비롯해뉴욕에서쓴일기들은대표작「로스트,로스트,로스트」의단초를제공한다.
이처럼메카스의일기는특정한형식에고정되지않고,역사적증언및개인적기록임과동시에예술적실천으로확장된다.전쟁의참혹함그리고끝없는방랑을견뎌낸그의기억은타자기를통해문장으로정리되고,카메라를통해이미지로포착되며서로를보완한다.글쓰기와촬영은그에게분리된창작행위가아니라,일상의순간을붙들고감각을유지하기위한하나의지속적인기록방식이었다.그러므로이책에수록된일기들은타자기와카메라로함께씌어진,파편화된경험과시간을이어붙이려는예술가의삶의흔적이다.

연대기순으로이어지는일기는주된장소의이동에따라열세개의묶음으로정리되었다.각묶음앞에는해당시기를개괄하는도입부성격의짧은요약문이배치되어있어,본문에들어가기전전체맥락을파악할수있도록돕는다.이와더불어본문곳곳에삽입된도판들은일기가씌어진시점의풍경을시각적으로환기하며,문자와이미지가결합된아카이브로서의일기를감상하도록이끈다.
이책은리투아니아어로작성된일기원고의정리와편집을맡았던시인이자번역가비트바카이티스(VytBakaitis)의도움아래1991년영문으로가장처음출간되었으며,한국어판은2017년개정출간된영문판을저본으로삼아번역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