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이름 - 문학과지성 시인선 592

빛과 이름 - 문학과지성 시인선 5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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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시간은 텅 비어 흘러가네 처음처럼”
점점 넓어지는 부재의 공간을 바라보며 부르는 끝없는 사랑 노래
성기완 여섯번째 시집 출간
1994년 『세계의 문학』 가을호를 통해 시단에 등장해 욕망의 파편들을 실험적이면서 감각적인 방식으로 펼쳐온 성기완 시인의 여섯번째 시집 『빛과 이름』이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시적 무정부주의자”(김현문학패 선정의 말)라는 평처럼 시인은 그간 한국 현대시의 기준을 허물고 그 자장을 끝없이 넓히며 자유분방한 시 세계를 구축해왔다. 불온한 욕망, 의미 없음, 사랑에 관한 언어의 실험, 시와 음악의 결합 등이 그의 30년 가까운 시력을 대변한다.
이번 시집 전반에 담긴 정서는 올해로 작고한 지 10년이 된 그의 선친 故 성찬경 시인을 비롯한 모든 이별한 존재들을 바라보며 느끼는 통탄과 그리움이다. 첫 시의 마지막 행 “누런 오후 하늘에 달무리 지”(「눈-20130226화 아버지 돌아가시던 날 오후」)는 풍경은 아버지를 떠나보내던 날 “무릎을 말아 쥔 채/기다리”던 “어둠을”(‘시인의 말’) 짐작게 한다. 상실감에 굴복한 채 한곳에 고여 웅크리고 있을 법한 이 애절한 슬픔은 이어지는 시편들에서 다시 음악처럼 ‘들리는 것’으로 자세를 바꿔 더 깊은 울림으로 오감을 뒤흔든다. 슬프면 슬픈 대로 “끝없이 노래하”(「게으른 기타리스트의 발라드-Où sont les neiges d’antan?」)게 하는 동력은 다름 아닌 ‘사랑’이다. “때로 이름과 함께 절절히” 사랑했던 사람들을 하나둘 꺼내며 “스테이지에 홀로 서서 부르는 사랑 노래”(황유원).

놓고 가신 님 뒤안길에/전구가 녹아 흘러 빛이 출렁여/아리랑 아리랑 우는 바람 소리/귀청을 찢고 목청으로 파고들어/곡소리가 절로 나와 부질없이 빌며/문지방 너머 맨발로 뛰쳐나오며/되뇌니이다/사랑해요/사랑했어요/사랑만을 했어요
-「놓고 가신 님」 부분
저자

성기완

저자:성기완

시인성기완은1967년서울에서나고서울에서자랐다.1994년『세계의문학』가을호에시를발표하면서작품활동을시작했다.시집『쇼핑갔다오십니까?』『유리이야기』『당신의텍스트』『ㄹ』『11월』,산문집『장밋빛도살장풍경』『홍대앞새벽세시』『모듈』을냈다.음악가로서성기완은밴드3호선버터플라이의멤버로활동했으며솔로앨범「나무가되는법」「당신의노래」「ㄹ」등을발표했다.2015년김현문학패를수상했다.

목차


시인의말

1.
눈―20130226화아버지돌아가시던날오후
놓고가신님
마중
영원―웅천석재에서
헛기침―할머니의절대적모럴을기리는향가
물결―오스틴텍사스사우스바이사우스웨스트리버보트셔플
다시가보니흔적도없네―응암동오남매왈츠
블랙에서의변주
담배또는펜이손에들려있었고―입관식예지몽
몽유세한도

2.
곶감그믐그밤
모퉁이카페소네트
돌고래두마리
마음06:53AM
낯선도시에서시를썼다1―나주별곡
지는꽃을하염없이보던너는
지지난꿈에나왔던지난꿈의사람
소나기
심심하게자란아이
untied물이나가네―파도의록스테디

3.

날개
우리집고양이녹색눈다이아몬드―떠나간나비의모듈러신시사이저
소희찬가
외계인―3호선버터플라이블루스
몸산책
아뉴스데이―화장터에서
여행
이자리
그맘때

4.
모시적삼을입은분―양자얽힘랩소디
마이크로증폭우주밤산책―슈와가을이에게
저쪽세폭병풍
해―성산대교북단타령
지중해
붐붐중력장
단분산콜로이드입자를함유한이름의브라운운동에관하여―무지개산란과틴들운동즉흥곡
내재성의평면과거울우주
엄마우주
브로콜리우주

5.
음악―어디에도없는세계로부터
게으른기타리스트의발라드―Ousontlesneigesd’antan?
청둥오리와농부―대부도멤피스스웜프블루스
틱159―이태원레퀴엠
낯선도시에서시를썼다2―톨게이트콘크리트뮤직
복숭아소네트―슈환상곡
죽음은흰천을반으로접는일입니다―순간의현상학
겨울비―잔골아리랑
빛―49재
넘는시

해설
빛의만가挽歌·황유원

출판사 서평

영원너머빛이된이들과의추억을써내려간출석부

『빛과이름』은총51편의작품을5부로나누어구성했다.곳곳에는시인이잃어버린인물들이편재해있다.그는다시는만날수없는,기억속에서만존재하는“내인생을다주었”(「지지난꿈에나왔던지난꿈의사람」)을만큼사랑했던이름들의“출석을부른다”(「영원―웅천석재에서」).처음으로호명되는것은‘아버지’다.아버지가부재한10년동안그를그리워하며쓴시편들에는집앞문밖에서“초인종눌러도당신은없”으니“속속들이사무치게그”(「마중」)리운마음이오롯이담겨있다.“빤히보이진않아도깃들어계신당신”이기에어떤형태로든“어디에나있게되는것”(「물결―오스틴텍사스사우스바이사우스웨스트리버보트셔플」)이라고스스로를다독이지만“넘실거리며물이떠나”고“너도떠나”(「untied물이나가네―파도의록스테디」)는광경은결코면역되지않는먹먹한슬픔의세계로인도한다.

이감정은‘할머니’(「헛기침―할머니의절대적모럴을기리는향가」),잠정해체한밴드‘3호선버터플라이’(「다시가보니흔적도없네―응암동오남매왈츠」),고양이‘나비’(「우리집고양이녹색눈다이아몬드―떠나간나비의모듈러신시사이저」)와강아지‘슈’(「복숭아소네트―슈환상곡」)그리고‘가을이’(「마이크로증폭우주밤산책―슈와가을이에게」),‘할아버지’‘괴테’‘재홍아저씨’와‘홍성고모’그리고故방준석음악감독등으로확장된다.“여긴어딘가요다들어디계신가요”(「죽음은흰천을반으로접는일입니다―순간의현상학」)라는외침과함께.망망대해만큼커다란슬픔이남긴시구들은“전구가녹아흘러빛이출렁여/아리랑아리랑우는바람소리”(「놓고가신님」)가된다.

그럼에도그는비탄에잠기지않고‘영원’을공감각화하고자한다.영원히돌아오지못할빈자리로가득찬출석부를부르다“빛이나”는“영원”(「날개」)이자리에있는것을바라본다.마지막작별인사를나누는화장터에서도“시선을돌려도무늬의중심에[……]빛”이있고,빛은영원한이별이아닌항상곁에있다는전언처럼“빛을타고빛의속도로”(「아뉴스데이―화장터에서」)위로가필요한모든이의머리위로쏟아진다.

리듬위에서일렁이던슬픔이허문음악과시의경계

지판가생이에하얀자개스트라이프가박혀있는스타일윗줄네개를검지로한꺼번에짚으며한손가락만높은음을따로짚는그런코드운지코러스가배경에깔린다좋은노래다싶은데이걸근데누구랑부르지
―「몽유세한도」부분

잘알려진것처럼시인성기완은록밴드3호선버터플라이의리더였으며SSAP프로젝트로활동하며뮤지션이자라디오DJ,문화평론가로도활발하게활동중이다.특히올해는그가뮤지션으로활동한지30주년이되는해이기도하다.이를기념해‘쿰바와영실들’이란이름으로싱글앨범『네오소울곡집vol.1』이시집출간과때를같이해발표된다.이앨범에수록된「몽유세한도」는이번시집에실린동명의작품을낭송해청각적으로재해석한것이며,타이틀곡인「FeverSong」은시집수록작「빛―49재」에등장하는故방준석음악감독을추억한곡이다.시와음악이유기적으로연결되어시각적텍스트를완독한후의여운을청각을통해이어갈수있으니시집을읽고그의음악을듣는다면더욱특별한독서가될것이다.
해설을쓴황유원시인이“이름을실컷부른김에노래도한번불러보자.아니,노래를부르듯이름을불러보자”고한것처럼“기타에피가”(「영원―웅천석재에서」)튀도록노래하던그는이제“기타가된나무가”된다.넘치는에너지와끝없는실험정신으로사랑을노래하던소년은다시“마음의마당이부풀어올라/무한한들판이”(「게으른기타리스트의발라드―Ousontlesneigesd’antan?」)된다.남은슬픔이닳아없어질때까지더곧고넓은사랑을“노래하고또노래”한다(「소희찬가」).

시인의말

여는시

공용세탁소에서
무릎을말아쥔채
기다리네
빨래가다되기를
입을벌리고하얀크림빵을먹는
어둠을
시를

2023년가을
성기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