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사건과살충제계란사건
우리현대사에서비교적가까운지난30년동안한꺼번에수많은인명을앗아간사건들이있었다.1995년삼풍백화점붕괴와2003년대구지하철화재,그리고2014년세월호침몰사건은사망자만수백명에달하는참사였다.그런데지금언급한사고들의사망자수를합친것보다더많은희생을치르고있는사건이있다.1995년부터희생자가발생하고있었으나2011년에야피해를인식하기시작한‘가습기살균제사건’이다.
2020년7월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이하특조위)가가습기살균제로인한피해규모를정밀하게추산한결과에따르면당시해당제품사용자는627만명(오차범위를고려할때최소574만명)에이른다.이중피해를입은사람은약67만명(오차범위를고려할때최소61만명)이며가습기살균제로인해새로운증상이나질병이발생한사람을약52만명으로보고있다.52만명중에는기존에앓던질병이악화된경우가약15만명,병원진료를받은뒤사망한경우가약1만4,000명인것으로추산되었다.이런놀라운수치에도불구하고피해신고자는6,817명에그쳤고,이는특조위가추정한피해인원의1퍼센트에불과한수준이다.이수치는가습기살균제피해자들이피해여부를제대로파악하지못하고있으며,지금까지원인도모른채질병에고통받고있는이들이많다는것을의미한다.2020년을기준으로판정된공식적피해자만4,114명,사망자는995명이다.
가습기살균제사건은잘알려진사건이지만그피해정도와원인은명확히알려지지않고있으며시간이지나면서우리의기억에서마저흐릿해지고있다.당시직접적인피해를입지않았지만동일제품을사용했던대부분의소비자에게화학물질에대한공포와혐오증(일명케모포비아)을불러왔다.연이어케모포비아를가져온사건은또있다.바로2017년의살충제계란사건이다.당시정부는파격적인유통통제를실시했고,덕분에마트에서계란이일제히사라져한동안식탁에서계란을구경하기어려웠다.
이두사건의중심에는화학물질이있다.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과피프로닐(Fipronil)이라는살균제와살충제물질이다.살균제는박테리아같은미생물을제거하기위한물질이고살충제는해충을죽여없애려는목적으로만들어진물질이다.대상과목적이분명하지만정해진용도와용법에서벗어난물질은다른얼굴이된다.
PHMG를비롯해가습기에포함된또다른화학물질인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CMIT)과메틸이소티아졸리논(MIT)은주로세제나미용제품과같은공산품에발생하는세균을제거하거나증식하지못하게정해진미량을사용한후충분히제거하도록권고하고있다.문제는이런물질이정해진용도와용법에서벗어나엉뚱하게도가습기라는제품에사용된것이다.가습기는습도를조절하기위해실내공간에수증기라는물분자덩어리를뿌리는제품이다.살균제물질은물분자와공기를매개로호흡기를거쳐인체내부로들어갈수있다.결국흡입독성을충분히예측할수있었다.그런데도살균제의흡입독성에대해충분한고민없이기업은제품을제조하고정부는허가했으며소비자는성분을알지못한채믿고사용한것이참사를불러왔다.
가습기살균제사건의학습효과로살충제계란사건에모두예민한반응을보일수밖에없었다.정부와양계업계는물론소비자까지그야말로혼란에빠져들었다.계란에잔류하는피프로닐의허용기준은0.02ppm이다.그런데문제가된농장에서0.0363ppm이검출됐다.그러면계란에서피프로닐이검출된사실과그함유량,어떤것이문제였을까?결론부터말하면살충제는그자체로유해하지만하루에한두개정도의계란을섭취해도인체에는큰문제를일으키지않는다.흥미로운사실은이피프로닐이이미다른식품에도존재하고허용되었던물질이라는것이다.사용하면안될물질이어느날갑자기우리곁에다가온것이아니다.심지어다른식품의피프로닐함량허용기준수치는아이러니하게도논란이됐던계란보다높은경우도많다.피프로닐은인류가이미잘알고있었던,그러나소비자에게잘알려지지않은물질이었을뿐이다.다만,계란에존재하면안된다고생각했던물질이발견된것뿐이다.역학조사결과,양계농장에서청결한사육환경을위해살포한살충제가닭의몸을타고계란으로옮겨진것이다.하지만검출량만으로본다면그렇게소란스럽고공포스러울필요는없었다.물론정부는위해도(危害度)수준을떠나유통된계란의적정한처분과양계농장에대한후속조처를재빨리실행했어야한다.하지만정부와언론은계란을섭취하면마치큰일이라도날것처럼알기도어려운수치와단위를나열하며전국민을화학공포로몰고갔다.두려움은온전히소비자몫이었다.앞서언급한두사례는비슷하지만미묘하게다르다.하나는모르고당한거라면다른하나는알면서도당한것과같다.하지만소비자로서는아무것도알수없는노릇이었다.
질문이필요한시대
우리삶의주변을채우고있는각종제품에붙어있는성분표에는알수없는화학물질이름이빼곡하게적혀있다.분명미지의물질은아니다.제품을생산하는기업은너무나잘알고있는물질이다.화학을연구하는과학자라고모든물질을다알수있는것은아니지만그대략적기능은알고있다.하지만일반소비자는이러한화학물질의정체와기능을알수없다.불안은알지못하는데서비롯된다.그래서어쩌면불안감이드는건당연한것이고,현실에서맞닥뜨리는사고는그불안을공포와혐오로바꾼다.
이런사태가벌어지면소비자는무력해진다.PHMG와피프로닐이라는용어들앞에서무력감은당연하다.그렇다고화학물질의화학적조성과성질이무엇인지,허용량수치에대해일일이알고싶어하지도않는다.이런저런수치를듣는다해도가늠이안된다.무엇보다소비자가가장알고싶은것은오로지‘과연그물질이안전한가’이다.그런데안타까운부분은어느누구도이간단한질문을스스로하지않았다는것이다.
우리는질문을상실한시대에살고있다.성장과효율이라는단어앞에서질문이거추장스러울수도있을것이다.하지만이제는‘어,이거가습기살균제사건과같은일이벌어지는건아닐까?’,‘이렇게뿌려도안전한걸까?’당연히이런질문을꺼내야한다.우리의기억에서흐릿해져가는사건조각을다시꺼내조립하고지금눈앞에펼쳐지는광경과맞춰봐야하는퍼즐인것이다.이것이과거의경험에서얻는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