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무도 막지 못하는 권력, 초국적기업 -
며칠 후면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올림픽이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릴 예정이다. 올림픽은 출전선수들간의 경쟁의 장일 뿐만 아니라 유수 초국적기업들의 각축전이기도 하다. 올림픽의 상업화는 비난을 받고 있지만 당분간은 수그러들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초국적기업들의 막강한 권력을 제어하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민영화·자유화·전지구화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초국적기업은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두개 이상의 국가에서 경제활동을 하며 다른 기업들에 영향을 끼칠 능력이 있는 기업’이라는 초국적기업에 대한 유엔의 정의처럼 전세계 수만의 초국적기업이 정부와 국민들에게 정치·경제·사회·문화·환경적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규모가 큰 초국적기업들의 연간 매출은 대부분의 개발도상국의 생산량을 넘는다. 초국적기업의 비중은 농산품의 80% 이상, 상품과 써비스 수출의 60% 이상을 차지한다. 500대 초국적기업이 세계무역의 70%, 해외투자의 70%, 세계 GDP의 30%를 좌우한다는 추정치도 있다. 정부보다도 큰 권력을 쥐고 있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 가난한 나라와 초국적기업 -
초국적기업은 그 공룡 같은 규모만으로도 엄청난 문제를 일으킬 위험이 있다. 국내기업들은 엄두도 낼 수 없는 자본규모와 국제적 경험·지식·완력을 사용하기 때문에 국제시장을 힘으로 움직인다. 그들이 제공하는 일자리와 세금만으로도 작은 나라의 정부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또한 그들의 정책결정은 선진국의 본사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서 지역민들의 의사와 요구들은 무시되기 일쑤이다. 그러다 수익이 만족스럽지 않으면 언제든 다른 나라로 쉽게 옮겨가기도 한다. 사실 초국적기업이 제공하는 일자리는 대부분 저기술과 저임금으로 움직이는 조립생산이며 고도로 분업화되어 있어서 호환성도 없다. 무엇보다 새로운 고용기회라는 것도 인수합병과 구조조정을 통한 것이 대부분이므로 이미 경쟁하는 지역공장에 있던 인력을 빼앗아오는 것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이런 폐해들에도 불구하고 개발도상국들은 초국적기업을 원할 수밖에 없다. 경제적 취약성 때문이다. 실업, 외화 부족, 외채 등에 허덕이면서 전지구화의 압력을 받는 개발도상국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이라곤 정부차원의 외자유치뿐이다. 개발도상국 정부는 초국적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온갖 유인책을 내놓는다. 개발도상국은 임금과 운영비용이 싸고 노조도 드물고 환경규제도 느슨하며 이전가격을 조작할 여지도 있고 심지어 비과세 혜택도 제공한다. 무엇보다 초국적기업을 통제할 씨스템도 거의 없다. 게다가 초국적기업은 해외원조를 통해 제3세계에서 입지를 구축하고 새로운 산업을 창출하기도 한다.
- 초국적기업, 세계를 삼키다 -
이 책은 전세계에 망라된 초국적기업에 대한 총체적인 보고서이다. 지금까지 출판된 초국적기업에 관한 책들과 달리, 초국적기업이 세계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끼치는 사회?경제?문화적 영향과 기업의 책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농업, 임업, 수산업, 광업, 석유산업, 제조업, 제약업, 관광업 등 여러 분야에서 초국적기업이 어떻게 제3세계의 환경과 지역사회에 피해를 남겼는지, 어떻게 자연자원이 초국적기업에 착취되는지, 이에 맞서 정부와 생산자, 소비자와 주주들이 이들의 권력남용을 제한할 방법은 없는지를 살펴본다.
과거 해외원조에 의지하던 개발도상국 한국은 초국적기업의 활동무대이자 이제는 몇몇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초국적기업의 본국이기도 하다. 지금 한국의 세계적인 초국적기업들이 아시아 등지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투자국으로서의 문제들이 불거지고 있는 실정이다. 동남아시아에 진출한 수많은 한국기업에서 현지노동자들의 노동권과 인권을 유린하는 사건이 일어났고, 최근에는 대우인터내셔널이 미얀마 군사정부와 협력하여 가스전 탐사를 추진하다가 국제자유노련에서 비난을 받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 책은 이러한 한국의 현재상황에 시사하는 바는 크다.
저자 존 매들리는 10년 동안 초국적기업의 직원으로 일한 경험이 있는 저널리스트로 20년 동안 40여개의 개발도상국을 다니며 조사했다. 관련된 학술논문이 없어서 직접 인터뷰하고 신문과 전문간행물, NGO 연구보고서를 살폈다. 이 책의 다양한 사례와 생생한 기록은 저자의 발품으로 수집된 것이다. 한편 옮긴이 차미경도 오랫동안 초국적기업 감시운동 일선에 선 활동가로서, 박노자와 함께 ‘아시아의 친구’들을 설립하여 운영중이며 현재 초국적기업 감시네트워크의 동아시아 연구원이다. 이 책에서는 초국적기업의 최근 실태와 한국의 사례를 담은 해설과 보론을 직접 집필하기도 했다. 해외NGO들의 저항운동과 대안 모색, IT산업이 일으키는 문제들, 그리고 한국의 해외투자 역사와 현황, 민영화 사례, 해외에 진출한 한국기업 실태가 소개되어 있으며, 옮긴이가 직접 영국 NGO, 인도네시아 한국기업 노동자와 한 인터뷰도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