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시는 아름다움이나 완결을 지향하지 않는다. 오히려 아직 상처가 마르지 않은 상태, 말이 되기 전의 감각을 그대로 붙드는 쪽으로 더 나아간다. 이번 시집의 자서에서 시인은 “눈 떠 보니/ 번개처럼/ 여기 광활한 폐허에 이르렀다”고 쓴다. 이 폐허는 단순한 상실의 은유가 아니라 칼과 환멸, 상처와 에로스가 뒤엉킨 자리이자 삶과 언어가 동시에 붕괴된 이후에야 도달하는 장소다. 폐허에서 다시 시작되는 시의 기록이자 언어의 근원을 향한 새로운 출발! 문정희 신작 시집 『늑대처럼 싱싱하게 울고 싶었다』가 ‘민음의 시’로 출간되었다.
■ 절정에서 다시 시작하는 문정희
문정희는 한국 현대시에서 가장 오랜 시간 자기 언어를 갱신해 온 시인 가운데 한 사람이다. 1969년 등단 이후 그는 여성의 신체와 욕망, 사랑과 폭력, 개인의 내면과 사회적 현실을 가로지르며 독자적인 시 세계를 구축해 왔다. 초기에는 강렬한 서정과 에로스의 언어로, 이후에는 존재와 세계를 향한 보다 확장된 사유로 끊임없이 시를 변주해 온 그의 작업은 한국 시단에서 여성적 감각과 주체성을 밀도 있게 확장한 중요한 궤적으로 평가받는다. 『늑대처럼 싱싱하게 울고 싶었다』는 이러한 시적 이력의 연장선에서 한층 더 거칠고 근원적인 차원으로 내려가 얻어낸 결과물이다. 이번 시집에서 문정희는 자신의 시를 다시 ‘처음의 상태’로 돌려놓으며 지금까지의 시적 성취를 넘어서는 새로운 출발선을 스스로 마련한다.
■ 상처와 충동의 언어, 통제되지 않는 시의 힘
문정희에게 시는 더 이상 정제된 언어의 결과물이 아니다. 그것은 차라리 몸과 세계가 충돌하며 튀어 오르는 ‘울음’이다. 시인은 자서에서 “늑대 울음이 핏방울처럼 싱싱하기 바란다”고 쓴다. 언어의 원초적 에너지를 다시 호출하는 이 말은 이번 시집에서 펼쳐질 한층 더 거칠고 직접적인 언어의 힘을 예고한다. 「눈물은 어디에 두나」에서 한쪽 눈을 잃은 세계는 곧바로 감각과 인식의 균열로 이어지고 「말뚝」에서는 신성의 상징보다 그 뒤통수에 박힌 ‘말뚝’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시는 언제나 중심이 아니라 균열, 완성이 아니라 파열의 순간을 향해 있다. 그 파열의 힘으로 동시대의 풍경을 정면으로 통과한다.
가령 「우리 속의 우리」에서 드러나는 집단적 적의와 폭력, 「성병 걸린 날」에서 드러나는 명성과 미디어 환경에 대한 냉소는 지금의 세계가 어떻게 감각과 언어를 오염시키고 있는지를 날것 그대로 드러낸다. 이때 시는 비판이나 풍자가 아니라, 그 한가운데서 발생하는 감각의 과잉과 혼란 자체를 기록한다. 그러나 문정희의 시적 태도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시는 때로 자신을 부정한다. “제발 좀 나를 놓아 다오, 시여”라고 말하는 순간조차 시 안에서 발생한다. 시를 향한 집착과 거부가 동시에 작동하는 이 긴장 속에서 시는 오히려 더 강한 생명력을 획득한다.
■ 에로스와 폭력, 생의 양극을 동시에 끌어안는 시
이 시집에서 두드러지는 또 하나의 축은 에로스와 폭력의 공존이다. 사랑은 더 이상 순수하거나 안정된 감정이 아니라 감각을 마비시키거나 파열시키는 사건으로 등장한다. 「앙해, 앙해」의 언어가 그렇듯 사랑은 말 이전의 신음으로, 혹은 언어를 파괴하는 감각으로 나타난다. 동시에 시집 전반에는 신체와 존재에 대한 급진적인 질문이 반복된다. 「암컷」에서 드러나는 젠더에 대한 문제의식, 「알몸 시」에서의 탈각과 노출의 욕망은 사회적 규범과 언어의 틀을 벗겨 내고자 하는 시인의 의지를 보여 준다. 문정희의 시는 끊임없이 벗고, 부수고, 다시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시는 점점 더 ‘알몸’에 가까워진다. 장식과 수사를 걷어낸 자리에 남는 것은 감각과 존재 그 자체다. 그것은 때로 불편하고, 때로 과잉되며, 때로는 위험하다. 그러나 바로 그 지점에서 시는 가장 강렬하게 살아 움직인다.
■ 욕망의 스타, 감각의 스타, 열정의 스타
이번 시집의 발문에서 시인 박상순은 문정희의 시를 ‘파열 이후에도 계속해서 발생하는 힘’으로 읽어 낸다. 그의 해석에 따르면 이 시집의 언어는 완성된 의미를 전달하기보다 끊임없이 무너지고 다시 생겨나는 과정 자체를 드러낸다. 즉 시는 결과가 아니라 사건이며 하나의 형식이 아니라 반복되는 생성의 운동이다. 문정희의 시가 보여 주는 격렬함과 불균형, 때로는 과잉으로 보이는 에너지 역시 바로 이 지점에서 이해된다. 그것은 통제되지 못한 언어가 아니라 오히려 끝까지 통제되기를 거부하는 생의 힘에 가깝다. 발문은 이 시집이 우리에게 남기는 질문을 명확히 한다. 시에서 우리가 봐야 할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가 아니다. 어떻게 다시 시작되는가, 끝과 시작의 변곡점이다.
『늑대처럼 싱싱하게 울고 싶었다』는 언어가 과잉되고 감각이 소모되는 시대에 시가 다시 무엇이 될 수 있는지를 묻는다. 정보와 발화가 넘쳐나는 세계에서 이 시집은 오히려 ‘덜 다듬어진 언어’, ‘통제되지 않은 감각’을 통해 시의 근원적인 힘을 되살린다. 문정희의 시는 설명하거나 설득하지 않는다. 대신 울고, 흔들리고, 파열된다. 그것은 이해를 요구하기보다 감각을 직접 건드리는 방식이다. 문정희의 방식은 다시 한 번 시를 ‘사건’으로 만든다.
■ 절정에서 다시 시작하는 문정희
문정희는 한국 현대시에서 가장 오랜 시간 자기 언어를 갱신해 온 시인 가운데 한 사람이다. 1969년 등단 이후 그는 여성의 신체와 욕망, 사랑과 폭력, 개인의 내면과 사회적 현실을 가로지르며 독자적인 시 세계를 구축해 왔다. 초기에는 강렬한 서정과 에로스의 언어로, 이후에는 존재와 세계를 향한 보다 확장된 사유로 끊임없이 시를 변주해 온 그의 작업은 한국 시단에서 여성적 감각과 주체성을 밀도 있게 확장한 중요한 궤적으로 평가받는다. 『늑대처럼 싱싱하게 울고 싶었다』는 이러한 시적 이력의 연장선에서 한층 더 거칠고 근원적인 차원으로 내려가 얻어낸 결과물이다. 이번 시집에서 문정희는 자신의 시를 다시 ‘처음의 상태’로 돌려놓으며 지금까지의 시적 성취를 넘어서는 새로운 출발선을 스스로 마련한다.
■ 상처와 충동의 언어, 통제되지 않는 시의 힘
문정희에게 시는 더 이상 정제된 언어의 결과물이 아니다. 그것은 차라리 몸과 세계가 충돌하며 튀어 오르는 ‘울음’이다. 시인은 자서에서 “늑대 울음이 핏방울처럼 싱싱하기 바란다”고 쓴다. 언어의 원초적 에너지를 다시 호출하는 이 말은 이번 시집에서 펼쳐질 한층 더 거칠고 직접적인 언어의 힘을 예고한다. 「눈물은 어디에 두나」에서 한쪽 눈을 잃은 세계는 곧바로 감각과 인식의 균열로 이어지고 「말뚝」에서는 신성의 상징보다 그 뒤통수에 박힌 ‘말뚝’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시는 언제나 중심이 아니라 균열, 완성이 아니라 파열의 순간을 향해 있다. 그 파열의 힘으로 동시대의 풍경을 정면으로 통과한다.
가령 「우리 속의 우리」에서 드러나는 집단적 적의와 폭력, 「성병 걸린 날」에서 드러나는 명성과 미디어 환경에 대한 냉소는 지금의 세계가 어떻게 감각과 언어를 오염시키고 있는지를 날것 그대로 드러낸다. 이때 시는 비판이나 풍자가 아니라, 그 한가운데서 발생하는 감각의 과잉과 혼란 자체를 기록한다. 그러나 문정희의 시적 태도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시는 때로 자신을 부정한다. “제발 좀 나를 놓아 다오, 시여”라고 말하는 순간조차 시 안에서 발생한다. 시를 향한 집착과 거부가 동시에 작동하는 이 긴장 속에서 시는 오히려 더 강한 생명력을 획득한다.
■ 에로스와 폭력, 생의 양극을 동시에 끌어안는 시
이 시집에서 두드러지는 또 하나의 축은 에로스와 폭력의 공존이다. 사랑은 더 이상 순수하거나 안정된 감정이 아니라 감각을 마비시키거나 파열시키는 사건으로 등장한다. 「앙해, 앙해」의 언어가 그렇듯 사랑은 말 이전의 신음으로, 혹은 언어를 파괴하는 감각으로 나타난다. 동시에 시집 전반에는 신체와 존재에 대한 급진적인 질문이 반복된다. 「암컷」에서 드러나는 젠더에 대한 문제의식, 「알몸 시」에서의 탈각과 노출의 욕망은 사회적 규범과 언어의 틀을 벗겨 내고자 하는 시인의 의지를 보여 준다. 문정희의 시는 끊임없이 벗고, 부수고, 다시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시는 점점 더 ‘알몸’에 가까워진다. 장식과 수사를 걷어낸 자리에 남는 것은 감각과 존재 그 자체다. 그것은 때로 불편하고, 때로 과잉되며, 때로는 위험하다. 그러나 바로 그 지점에서 시는 가장 강렬하게 살아 움직인다.
■ 욕망의 스타, 감각의 스타, 열정의 스타
이번 시집의 발문에서 시인 박상순은 문정희의 시를 ‘파열 이후에도 계속해서 발생하는 힘’으로 읽어 낸다. 그의 해석에 따르면 이 시집의 언어는 완성된 의미를 전달하기보다 끊임없이 무너지고 다시 생겨나는 과정 자체를 드러낸다. 즉 시는 결과가 아니라 사건이며 하나의 형식이 아니라 반복되는 생성의 운동이다. 문정희의 시가 보여 주는 격렬함과 불균형, 때로는 과잉으로 보이는 에너지 역시 바로 이 지점에서 이해된다. 그것은 통제되지 못한 언어가 아니라 오히려 끝까지 통제되기를 거부하는 생의 힘에 가깝다. 발문은 이 시집이 우리에게 남기는 질문을 명확히 한다. 시에서 우리가 봐야 할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가 아니다. 어떻게 다시 시작되는가, 끝과 시작의 변곡점이다.
『늑대처럼 싱싱하게 울고 싶었다』는 언어가 과잉되고 감각이 소모되는 시대에 시가 다시 무엇이 될 수 있는지를 묻는다. 정보와 발화가 넘쳐나는 세계에서 이 시집은 오히려 ‘덜 다듬어진 언어’, ‘통제되지 않은 감각’을 통해 시의 근원적인 힘을 되살린다. 문정희의 시는 설명하거나 설득하지 않는다. 대신 울고, 흔들리고, 파열된다. 그것은 이해를 요구하기보다 감각을 직접 건드리는 방식이다. 문정희의 방식은 다시 한 번 시를 ‘사건’으로 만든다.
늑대처럼 싱싱하게 울고 싶었다 (문정희 시집 | 양장본 Hardcover)
$1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