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의 접점: 이스탄불과 아나톨리아

동서양의 접점: 이스탄불과 아나톨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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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선사시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이스탄불과 아나톨리아를 확인하다!
동서양문명이 교차한 이스탄불과 아나톨리아의 역사를 선사시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신화, 종교, 전쟁, 천문, 의학, 문학, 미술, 건축 등 여러 측면에서 입체적으로 조망하다!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HK문명연구사업단은 2011년부터 2014년까지 ‘문명의 십자로: 이스탄불과 아나톨리아’라는 이름 아래 역사학자, 문학자, 문헌학자, 철학자, 종교학자, 건축학자 등 다양한 학문분야의 연구자들에 의한 공동연구를 수행했다. 2011년 7월에 이스탄불과 아나톨리아 지역의 유적들을 탐사했고, 이 학술적 성과의 일부를 2011년 11월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과 서울대학교미술관이 공동주최한 제8회 문명포럼, ‘이스탄불: 문명의 교차로’에서 발표했고, 이후 2012년 11월부터 2014년 1월에 걸쳐 “동서양의 접점: 이스탄불과 아나톨리아”라는 특집으로 총 15회에 걸쳐 『신동아』에 연재했다. 이 책은 동서양문명이 교차한 역사를 선사시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신화, 종교, 전쟁, 천문, 의학, 문학, 미술, 건축 등 여러 측면에서 입체적으로 조망한다. 이로써 문명 간의 상호전파와 융합에 초점을 맞추며 문명의 보편원리를 찾는 일에 이바지하려는 시도다.
저자

고일홍

서울대학교아시아연구소연구원이다.

목차

머리말

제1부아나톨리아의고대문명
1.고일홍.문명의십자로에우뚝선‘차탈회육’:동서간문화교류를증언하다
2.김헌.망한트로이문명이그리스지배했다:『일리아스』에그려진적과의동침
3.김기영.디오니소스,토착과이방의갈등을해결하는신성
4.임성진.서양철학의탄생지밀레토스
5.곽문석.알렉산드리아에서조선까지1,400년의문명대이동:프톨레마이오스와황도12궁

제2부비잔티움과기독교문명
6.안연희.콘스탄티누스의도시,콘스탄티노플과비잔틴세계의탄생
7.송유레.하기아소피아와거룩함의기하학
8.최진묵.또다른기독교,경교(景敎)의흔적을찾아서
9.박배형.이마고데이(ImagoDei):비잔틴미술과성상파괴운동
10.박용진.종교적분열과관용이공존하는도시이스탄불:기독교세계의분열과십자군

제3부오스만제국과이슬람문명
11.김능우.이스탄불에보존된무함마드의외투:반(反)이슬람세력을끌어안은그의지혜를엿보다
12.김성수.위대한의사,갈레노스:고대그리스에서조선까지,의학문명의키워드
13.서정일.고대를뛰어넘는불멸의유산을쌓다:오스만제국의건축가미마르시난
14.김윤경.근대영국인들의터키여행기:‘무함마드의낙원’에서‘분칠한창부(娼婦)’까지
15.안성찬.근대국가터키:오리엔트와옥시덴트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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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총서발간사

출판사 서평

제1부는아나톨리아지역의고대문명교류를살핀다.
1장은아나톨리아의신석기농경집단의정착지인차탈회육유적의문명교류적성격을조명한다.
2장은『일리아스』에그려진트로이아전쟁을아시아대유럽,미케네대히타이트의문명전쟁으로조명한다.
3장은디오니소스신이토착과이방의갈등을해소하며소아시아왕국의공동체에이바지한역할을설명한다.
4장은철학적사유의탄생지인밀레토스를동방,이집트,그리스의사유의교류장소로서조명한다.
5장은프톨레마이오스가쓴천문점성서‘테트라비블로스’가중국과조선에미친영향을살핀다.

제2부는이스탄불과아나톨리아에서기독교문명이전개되면서이루어진문명교류양상을다룬다.
6장은콘스탄티노플의탄생배경에그리스도교와고대그리스유산의새로운공존이있었음을설명한다.
7장은하기아소피아성당에표현된신플라톤주의의기하학에주목하여기독교와이교의만남을밝힌다.
8장은1,000여년전중국에전래된또다른기독교,경교(景敎)에대해설명한다.
9장은비잔틴미술과성상파괴운동을다루며종교미술의역할을재조명한다.
10장은십자군전쟁의배경인콘스탄티노플에서종교적분열과관용이공존했음을설명한다.

제3부는이지역의이슬람문명이동방과서방을잇고고대와현대를잇는양상을다룬다.
11장에서는이스탄불에보관된무함마드의성물에주목하여이도시가이슬람세계에서지닌위상을조명한다.
12장에서는페르가몬출신갈레노스의의학적연구성과가이슬람의학의발전을이끈역사를추적한다.
13장에서는오스만제국의건축적성과를설명하며고대와당대의기독교문명과의관계를드러낸다.
14장에서는근대영국인들의터키여행기들을통해오스만제국을바라본다양한관점을조명한다.
15장에서는2013년탁심광장민주시위를통해서근현대국가터키의문명적긴장을읽어낸다.

[책속으로추가]
비잔틴제국내에서벌어진성상파괴운동은이슬람의압박,제국영토의상실,종말론적인분위기로인해제국이극도로어지러운가운데일어났다.성상파괴운동을둘러싸고성상옹호파와성상파괴파간에벌어진논쟁은제국을휩쓴거대한종교적논쟁이었으며동시에예술을대상으로한것이지만다분히정치적인성격을지닌것이었다.그리하여교회내에서성상옹호파의승리는기본적으로성상옹호를지지한정치세력의승리이기도했다.이러한승리이후로비잔틴제국내에서는더이상의성상파괴운동은발생하지않았다.200-201쪽

여기서콘스탄티노플총대주교에대해눈길을돌려보면중요한시사점을얻을수있다.고대부터중세에이르는동안콘스탄티노플은동로마제국과비잔틴제국의수도였으므로,이도시와총대주교가누렸을중요성을짐작할수있다.그런데콘스탄티노플은1453년오스만튀르크에게점령당한이래이슬람의지배아래있었고,오늘날에도이슬람국가인터키에속해있다.다만도시의이름이콘스탄티노플에서이스탄불로바뀌었을뿐이다.동방정교회의우두머리인콘스탄티노플총대주교가이슬람국가에자리잡고있는것은놀라운일이다.219쪽

예언자의손길이닿아있는이슬람의보물인외투는이슬람제국의최고통치자가소중히간직함으로써신도들의충성과결속을강화하기위한상징물로서의가치를지니기도했다.그래서이슬람역사에서그종교적정통성을확보하기위해우마이야제국,압바스제국의통치자들도그랬거니와,투르크족이세운오스만제국의술탄들은수도인이스탄불에이예언자의외투를보존하고자심혈을기울였다.242-243쪽

갈레노스의학은이슬람을거쳐다시유럽에소개되어,16~17세기까지명성을이어나갔다.뿐만아니라예수회선교사들을통해멀리중국에까지전해졌고,18세기에는조선의실학자들에게도영향을미쳤다.이런점에서갈레노스는유럽과아랍을넘어‘세계의의사’가된최초의인물이라말할수있지않을까?260쪽

오스만제국은쉴레이만1세때페르시아만에서아드리아해까지,다뉴브강에서알제리까지의광대한영토와다양한민족을지배했다.시난의활동무대도그만큼넓어졌다.시난의예술성과명성은같은시기에활동한미켈란젤로나팔라디오와도오늘날비교되곤한다.적어도제국의수장건축가로서시난의작업량이유럽건축가들의성과를훨씬뛰어넘는다는점은확실하다.282-283쪽

이들의여행기는개인이처한사회적위치와문화적,종교적관심사에따라관찰하는것과묘사하는것이사뭇달라진다는것을보여준다.18세기후반부터19세기에걸쳐유럽의제국주의가팽창하며오리엔탈리즘담론이변모했다.그러자유럽인들은일말의모호함과긴장이남아있는복합적인태도를버리고터키를이국적이고문명적인존재로대상화했다.300쪽

터키국민과이스탄불시민들에게탁심광장은근대국가터키의공화주의정신을기리는중요한상징적의미를지니는장소이다.‘탁심’은원래‘분배’를의미하는데,이는시내전역에물을공급하는지하저수지가고대이래로이곳에있었던데에서유래한다.민주주의의가장중요한과제가정치적권력과경제적부를적절히분배하는데있다는점에서탁심광장이라는이름은터키공화국의이념을잘대변하고있는셈이다.터키현대사에서탁심광장은극좌에서극우에이르는다양한정치세력들의시위가끊이지않는터키의정치1번지가되어왔다.30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