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울 첼란 전집 3 (양장본 Hardcover)

파울 첼란 전집 3 (양장본 Hardcover)

$17.00
Description
허수경 시인의 번역으로 만나는
파울 첼란 전집

어떤 경악은 있었던 언어로는 말해질 수 없다는 것을 나는 파울 첼란으로부터
배웠다. 그의 언어는 그가 바위를 지고서 이미 지나간 자리에 남겨진, 뚝뚝 흘린
핏방울들처럼 짙고 비리고 생생하다. 한 방울 독처럼 미량으로도 강력하다.
김소연(시인)

아우슈비츠 이후 독일어권 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시인이며, 2차세계대전 이후를 대표하는 유럽 시인이자, 20세기 가장 중요한 시인 중 한 명인 파울 첼란. 그의 시와 산문, 연설문을 묶은 『파울 첼란 전집 3』, 부코비나, 부쿠레슈티, 빈 시절의 초기작을 묶은 『파울 첼란 전집 4』, 파리 유고에서 나온 시를 묶은 『파울 첼란 전집 5』가 문학동네에서 출간되었다. 이로써 지난 2020년, 첼란의 탄생 100주년 사망 50주기를 맞이해 대표 시집을 네 권씩 묶은 1, 2권으로 첫선을 보였던 한국어판 파울 첼란 전집이 완간에 이르렀다. 대표작은 물론 초기 시와 유고시, 산문과 연설문까지 모두 아우른 것으로 이제 독자들은 선집이나 단권으로 접해왔던 첼란과 그의 작품세계를 보다 폭넓게 조망할 수 있게 되었다.

한국어판 파울 첼란 전집은 2000년 독일 주어캄프 출판사에서 총 일곱 권으로 출간된 『파울 첼란 전집Gesammelte Werke in sieben Bänden』을 저본으로 삼아 (첼란이 랭보, 발레리, 오시프 만델스탐, 셰익스피어, 페소아 등의 작품을 독일어로 번역한 것을 묶은 두 권을 제외한) 다섯 권으로 구성되었다.

이 전집은 허수경 시인의 유고이기도 하다. 이십대 후반 독일로 떠나 2018년 뮌스터에서 생을 마감하기까지 생의 절반 이상을 ‘실향’ 상태로 지내며 모국어로 쉼없이 작품을 발표해왔던 시인이, 루마니아에서 태어나 파리에서 생을 마감하기까지 고향을 잃은 채 독일어로 시를 썼던 첼란의 세계를 우리말로 옮겼다. 몇몇 갈피 첼란의 시와 함께한 시간이 배어 있는 유고집 『가기 전에 쓰는 글들』에서 허수경 시인은 ‘시의 수많은 이미지가 첼란의 유대인의 존재에서 나오지만 첼란의 언어는 다만 첼란이라는 시인의 절대적인 언어라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함’을 말한다. 시인은 “삶의 순간순간에서 나온” 첼란의 언어 그 자체에 집중해 있는 그대로 우리에게 옮겨놓는다.
저자

파울첼란

1964년경남진주에서태어났다.시집『슬픔만한거름이어디있으랴』『혼자가는먼집』을발표한뒤1992년늦가을독일로가뮌스터대학교에서고고학을공부하고박사학위를받았다.그뒤로시집『청동의시간감자의시간』『빌어먹을,차가운심장』『누구도기억하지않는역에서』,산문집『나는발굴지에있었다』『그대는할말을어디에두고왔는가』『너없이걸었다』,장편소설『모래도시』『아틀란티스야,잘가』『박하』,동화『가로미와늘메이야기』『마루호리의비밀』을펴냈고,『슬픈란돌린』『끝없는이야기』『사랑하기위한일곱번의시도』『그림형제동화집』등을우리말로옮겼으며,동서문학상,전숙희문학상,이육사문학상을수상했다.2018년가을뮌스터에서생을마감했다.유고집으로『가기전에쓰는글들』『오늘의착각』『사랑을나는너에게서배웠는데』가출간되었다.

목차

유골단지에서나온모래(1948)
문가에서
저쪽에서017|꿈의소유019|자장가020|우물가에서021|비라일락022|전사023|양귀비024|산의봄025|올리브나무026|무덤들의가까움027|아르테미스의화살028|9월의왕관029|날개의살랑거림031|외로운이033|검은눈송이들034|꿈의문지방036|마지막문가에서037
양귀비와기억
사막에서부르는노래041|밤이면043|부질없이너는심장들을그린다044|하모니카045|마리안046|초048|한움큼의시간049|절반의밤050|네머리칼또한떠있네051|사시나무052|어둠속으로가라앉았다053|유일한빛054|시네라리아056|고사리의비밀057|세레나데058|유골단지에서나온모래059|마지막깃발060|철구두의삐걱거림이062|회귀선을위한노래063|향연065|9월의어두운눈067|바다에서나온돌069|프랑스에대한회상071|밤의빛줄기072|너로부터나에게로의세월074|먼곳을위한찬양075|온생애077|데우칼리온과피라079|코로나081|여행중에083
죽음의푸가
새벽의검은우유087

시간의농가(1976)
I시간의농가
방랑의다년초095|증오에찬달은096|금098|가라앉는고래의이마로부터100|너는누워있다101|비단으로덮인어디에도없음이102|포도원의벽이공략된다104|내가너를그림자로105|가장먼106|저격당했다108|모든잠의형상109|두개의시각결절110|나의111|너는나112|속삭임의집113|작은밤115|불안정에116|나는조롱한다117|네시계의얼굴118|나는너를안내한다119|나의120|별하나가121|작은뿌리의꿈123
II
만델적인이들은127|서있었다128|잉걸불이129|우리,갯보리처럼지키는자들130|반지하나,활을당기기위하여132|빛남은133|그대번쩍이는이여134|오렴135|장화하나가득한136|트롬본악절들137|극점이138|왕도가140|온다141|나는포도주를마신다142|무언가가될것이다143|무144|종모양의것안에서145|내가146|낯선것이147|두루빛난다148
III
계속성유를발랐다151|장소바꾸기152|세계153|무엇이쓴맛을내며154|아래로내린155|크로커스156|포도를가꾸는사람들이157

흩어져있는시
바다의노래(1948)161|육지(1948)162|검은왕관(1948)164|헤맴(1948)166|잠자는연인(1948)168|시간이어떻게가지를뻗는지(1951)169|숫자풀이노래(1958)170|운과압운과함께한위대한생일날의푸름푸름(1962)172|둘로갈라진생각의음악은(1966)174|ST파우하나(1967)176|이러한자유로운,원통으로속도를낸주먹(1967)177
어두워졌다(1968)
거리낌없이181|빛을포기하고난뒤182|분명히183|공중밧줄에서184|머리들위로185|너는내던지는가186|이의가제기된돌은187|어두워졌다188|황무지를채워라189|침입190|우리와함께191|양손잡이인새벽이(1970)192

산문
에드가르즈네와꿈들의꿈(1948)195|역광(1949)205|출판인이자서적상인플링커의설문에대한답변,파리(1958)211|산속에서의대화(1960)213|출판인이자서적상인플링커의설문에대한답변,파리(1961)221|한스벤더에게보내는편지(1961)223|『슈피겔』지설문에대한답변(1968)227|Lapoésie(1970)229

연설문
자유한자도시브레멘문학상수상연설문(1958)233|자오선게오르크뷔히너문학상수상연설문(1961)237|히브리작가협회연설(1970)263

육필원고267
파울첼란연보280

출판사 서평

“무시무시섬뜩아름다움”
홀로코스트를심장에새긴첼란의시

파울첼란은1920년부코비나체르노비츠의유대인집안에서태어났다.그가태어난부코비나는18세기후반까지오스만제국,그후로는합스부르크가의오스트리아제국,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지배를받았으며,1차세계대전후루마니아에,2차세계대전중소비에트연방에편입되었다.첼란이태어날당시에는루마니아영토였으나유대정신을계승하길바랐던아버지의뜻에따라유대인학교에다니며히브리어를배웠고,독일문학에심취했으며표준독일어교육을중시했던어머니의영향으로집안에서는독일어를썼다.
십대시절남몰래시를쓰기시작하지만대학자격시험을치른후의학공부를위해프랑스투르로떠났고일년후고향으로돌아와문학공부를시작했다.1940년소련이,일년후루마니아가재점령하면서파시스트정부와나치독일에의해게토가된체르노비츠에서첼란은시를쓰고셰익스피어의소네트를번역했다.그리고곧나치에의해유대인학살수용소추방이시작되었다.수용소로끌려간첼란의아버지는병사하고어머니는총살형으로비참한죽음을맞고,첼란은탈출했다가다시루마니아의강제노동수용소로끌려간뒤그소식을듣게되었다.홀로코스트의경험과함께부모의죽음은이후의삶과시세계에영구히각인되었다.

1944년2월에야수용소에서나올수있었던첼란은체르노비츠를떠나부쿠레슈티에서러시아문학을루마니아어로번역하고루마니아잡지에처음으로시를실었다.1948년빈에서『유골단지에서나온모래』가나왔지만회수하고,1952년공식적인첫시집인『양귀비와기억』을시작으로『문지방에서문지방으로』(1955)『언어격자』(1959)『누구도아닌이의장미』(1963)『숨전환』(1967)『실낱태양들』(1968)을펴냈으며,사후『빛의압박』(1970)『눈의부분』(1971)『시간의농가』(1976)등이출간되었다.1958년과1960년에는독일문학계의주요문학상인브레멘문학상과게오르크뷔히너상을수상하며시인으로서인정받기시작했다.

하지만전후반유대주의와보수주의경향이만연했던서독문학계에서첼란은“관심과경탄을불러일으키며이목을끌지만우리에게는속하지않고그자신도그것을원치않는”“외래종Exot”의존재였다.급기야비평가들은‘현실과거리가먼시’‘이해할수없는’‘은유로만가득한시’를쓰는시인으로손쉽게꼬리표를붙여버렸고,이‘난해성’이라는그릇된평가에대해첼란은단호히저항했다.“쓰인단어하나하나가현실과직접적인관계가있다.하지만아니,그들은그런말을원하지도이해하려하지도않는다.”나치수용소에대해출판된최초의시들중하나이자20세기유럽시의표준이되었다는평가를받으며오늘날그의시중가장널리알려진「죽음의푸가」조차처음에는혹평과모욕을견뎌야했다.독일어로시를쓰는유대인시인으로첼란이독일문단에받아들여지기까지얼마나어려웠는지는‘골사건DieGollAffäre’으로칭해지는표절시비를통해서도드러난다.초현실주의시인이반골의시를번역한첼란이그의시를표절했다는이의혹은근거없음으로밝혀졌지만,나치에게부모를잃고자신도홀로코스트에서가까스로살아남은생존자로공포와고통에시달린그에게또다른상처를입힌비극적인사건이었다.

첼란에게남아있는것은,그럼에도언어였다.비인간적인역사를살아내며‘리얼리스트’로“현실에상처입고도현실을찾으면서”(브레멘문학상수상연설문)그것을말하나하나에새겼다.‘미화하지않고시적이되려하지않는’언어로결코말해질수없는경악을말했고,시가침묵으로향해가는전후의경향속에서도끊임없이‘이미-더이상은-아님’에서‘그래도-아직은’으로돌아왔다.그리고오랫동안그에게드리웠던난해성,비의秘義의그늘을걷어낸자리에,언제나‘너’에게로향하는시,대화와만남에서시의본질을찾았던시인이있다.

유대인시인파울첼란은부코비나를떠나부쿠레슈티와빈에머물다가파리에정착해본격적으로시를썼고스스로죽음을택해그곳에묻혔다.가장어두웠던시대를시로기억하고당대의몰이해에시로저항하며자신의정체성과실존을증명했던파울첼란,오십년의길지않은생애동안한번도독일에‘살았던’적없이,“부모를죽인살인자의언어”인독일어로시를썼던파울첼란은이제아우슈비츠이후가장중요한독일어권시인으로횔덜린,릴케와나란히기억되며,그의시는사후에도여전히우리를향해있다.

시,‘유리병속의편지’
당신에게가닿고자한시인의소망

『파울첼란전집3』은1948년빈에서출간된시집『유골단지에서나온모래』와1976년사후출간된『시간의농가』,그밖에흩어져있는시들을묶은것과산문,연설문을아우르고있다.『유골단지에서나온모래』가출간되었을때는첼란이빈을떠나파리에자리잡은후였고나중에오자를발견하고회수했다.그리고이중절반에가까운이십오편을약간의변화를더해『양귀비와기억』에다시실었다.그럼에도첼란은처음나온이시집의존재를중요하게여겼고,그에따라그가수기로오류를바로잡은판본이전집에포함되었다.『시간의농가』는유고에서나온오십편의시로사후출간되었으며,흩어져있는시들은첼란이개별적으로출판한것이다.

산문으로는초현실주의화가이자깊은우정을나누었던에드가르즈네의작품을소개하는팸플릿에실은「에드가르즈네와꿈들의꿈」,아도르노와의어긋난만남을계기로쓰게된「산속에서의대화」,그리고「역광」과함께,출판인이자서적상플링커의설문에대한두차례의답변,『슈피겔』지설문에대한답변,한스벤더에게보내는편지가실려있다.특히「산속에서의대화」는유대계헝가리인문헌학자이며친구인페테르손디의주선으로아도르노와만날예정이었으나무산된후첼란이아도르노에게보낸글로,엥가딘의실스마리아에서실제로는이루어지지못했던“우리,유대인들,너큰사람과나작은사람”의대화를담고있다.아도르노가에세이를통해“아우슈비츠이후시를쓰는것은야만적이다”라고주장한후였고,이에대해“아우슈비츠이후어떤시도불가능하다,아우슈비츠를바탕으로한게아니라면”이라고반박한손디였다.아도르노는첼란이죽기일년전“첼란의시는침묵으로극도의경악을말하고자한다.아우슈비츠이후더이상시는쓰일수없다는것은잘못이었을수도있다”라고다시말했다.

아우슈비츠이후시를썼던첼란이시와시인의존재에대해어떤입장을견지하고있었는지는플링커와한스벤더에게보내는글에서뿐만아니라브레멘문학상수상연설문,게오르크뷔히너상수상연설문인「자오선」을통해서도엿볼수있다.특히현실과역사에서동떨어진시가아닌‘날짜를기억하고자하는’문학을지향하는첼란이두드러진다.뷔히너의작품『렌츠』를시작하는문장에나오는“1월20일”은특히첼란에게중요했다.바로반제회담에서나치가유대인절멸정책을결정한것이1942년1월20일이었고이로써그에게“1월20일”은유대인의고통이새겨진상징적날짜가된다.유대인으로서의정체성을고민하고있는「산속에서의대화」를설명하면서도그는“1월20일”을말한다.

일년전,엥가딘에서어긋났던만남을기억하며,저는작은이야기를종이에옮겼습니다.그이야기에서한사람을“렌츠”처럼산을두루돌아다니게했습니다.다른때와같이이번에도,“1월20일”에대해,저자신의“1월20일”에대해글을썼던것입니다.
저는……저자신과만났습니다.
「자오선」

혹시모든시에그시만의“1월20일”이쓰여있다고말해도될까요?오늘날쓰이는시들의새로운점은어쩌면바로이것이아닐까요:여기서가장분명하게이런날짜를기억하려한다는것말입니다.「자오선」

제가생각하기에,독일시는프랑스시와다른길을갑니다.기억속에있는가장어두운것,가장불확실한것을주위에거느린독일시는,시가서있는전통의온갖생생한묘사에도불구하고,귀가예민한다수의사람들이아직도시에기대하는언어로는더이상말할수없습니다.독일시의언어는더냉철하고더사실적인것이되었습니다,‘아름다움’을불신하며,진실이되고자합니다.
출판인이자서적상인플링커의설문에대한답변,파리(1958)

이것은손의일입니다.그리고이손은또다시단한사람,다시말해죽을운명인유일무이한영혼의존재가소유한것입니다.자신의목소리와자신의침묵으로길을찾는존재말입니다.
진실한손만이진실한시를씁니다.악수와시는원칙적으로어떤차이도없다는것이제생각입니다.
「한스벤더에게보내는편지」

또한첼란은러시아시인오시프만델스탐의‘유리병속의편지’를인용해‘대화로서의시’를말한다.첼란은같은유대계로시베리아수용소에서죽임을당한만델스탐,민족의박해와고난의운명을공유하는시인에게깊은동질감을느꼈으며,나중에『누구도아닌이의장미』를헌정했다.‘유리병속의편지’처럼첼란의시는언제나수신자로서의상대,말을건넬수있는‘당신’에게가닿고자한다.

시는,당연히언어의한형태이고그점에서본질적으로대화이기에,유리병속의편지일수도있습니다.믿음-물론항상희망차지만은않은-속에서보내진,그편지는언제고어느곳이든뭍에,어쩌면심장의나라에닿을수도있겠지요.시들은이런식으로길위에있습니다:시들은무언가를향해나아가고있습니다.
무엇을향해서일까요?열려있는그무엇,차지할수있는것을향해,어쩌면말을건넬수있는‘당신’을향해,말을건넬수있는현실을향해서입니다.
그러한현실들이,제생각에는,시의핵심입니다.
「자유한자도시브레멘문학상수상연설문」

파울첼란은언어의불충분함을받아들이는데에서시가출발해야한다는것을가장선명하게알려준시인이다.시인은인간의언어로언어의불가능성마저표현할수있다는것을가장강력하게증명해낸시인이다.어떤경악은있었던언어로는말해질수없다는것을나는파울첼란으로부터배웠다.그는바위하나를발앞에던져한걸음을걷고또그바위를챙겨발앞에다시던져한걸음을내디뎌서징검다리를놓듯발화했다.태어나는동시에사라지는방식으로,더듬는듯,토하는듯,던지는듯,파인듯,무겁디무겁게.그의언어는그가바위를지고서이미지나간자리에남겨진,뚝뚝흘린핏방울들처럼짙고비리고생생하다.화살촉에묻혀둔한방울독처럼미량으로도강력하다.아름답고도무서운,번뜩이다소멸하는언어의인광을일순간목격하는것,그것으로부터파울첼란의시읽기를출발해도좋으리라.‘그래도-아직은’의세계를기어이찾고,찾는동시에잃고,잃음을다시금찾는파울첼란의나아감을온전히접할수있는이기쁨.이런종류의기쁨은너무나도귀하다.김소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