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흥사 월인석보 권7 권8 (양장본 Hardcover)

광흥사 월인석보 권7 권8 (양장본 Hardcover)

$31.36
Description
광흥사 중간본 월인석보 권7과 권8 국내 최초 공개
광흥사 월인석보 권7과 권8 서지와 내용을 전사하다
이 책은 2013년 안동 광흥사 복장에서 발견된 월인석보 권7과 권8의 내용과 영인을 수록하였다. 현재까지 알려진 월인석보 권7과 권8은 동국대도서관의 초간본이 있으며, 풍기비로사판으로 확인된 중간본의 경우 권7은 경북 의성의 개인이 권8은 서울대 일사문고에 소장되어 있다. 그리고 권8의 경우 간기미상의 판본이 고려대 육당문고에 전한다. 이 판본은 이와 다른 새로운 중간본으로 확인된다. 권7의 경우 결락이 있으나 권8의 경우 완본의 상태이다. 초간본 및 여타 중간본과의 비교를 통해 중세국어의 특성을 살필 수 있어 국어사적 가치가 매우 높다.
저자

서보월

경북대학교국어국문학과및대학원졸업
안동대학교국어국문학과교수
한국문학언어학회회장
안동어문학회회장
≪신국어학≫(1993),≪안동문화의수수께끼≫(공저,1997),≪온주법≫(2013),≪문경방언의언어지리학≫(공저,2016)등

목차

[해제]안동광흥사(廣興寺)월인석보(月印釋譜)권7?권8
1.≪월인석보(月印釋譜)≫의간행
2.광흥사복장(腹藏)
3.광흥사월인석보권7?권8
4.≪월인석보≫권7?권8의국어학적특성


광흥사월인석보권7
광흥사월인석보권8

[원전]광흥사월인석보권7
[원전]광흥사월인석보권8

출판사 서평

월인석보에대하여

≪월인석보≫는모두영본으로전해지고있다.현전하는≪월인석보≫의원간본은권1?권2?권7?권8?권9?권10?권11?권12?권13?권14?권15?권17?권18?권19?권20?권23?권25의17권이고,중간본은권1?권2?권4?권7?권8?권17?권21?권22?권23의9권이다.즉원간본과중간본을모두대상으로하여도권3?권5?권6?권16?권24의5권이결권(缺卷)이된다.원간본과중간본이모두전하는경우는권1?2?7?8?17?23의6권이다.≪월인석보≫의전권은≪석보상절≫의구성으로미루어서24권으로추정되었지만,1995년에전남장흥의보림사(寶林寺)에서권25가발견되면서대략의규모가정리되었다.권25에는≪석보상절≫24권의내용이들어있으며,내용구성상마지막부분에속하므로이에따라≪월인석보≫의총권수를25권으로보는것이현재로서는가장설득력이있다.
≪월인석보≫의서지적특성으로는우선세종과세조의2대에걸쳐국왕이친찬한것이므로현전목판본문헌중에서판각과인출의기술이매우뛰어나다.지방사찰의중간본의경우는원간본에비해서는그기법이뒤지지만전반적으로조선초기목판인쇄의우수성을잘보여준다.또이문헌은세종의훈민정음반포당시에편찬되었던≪월인천강지곡≫과≪석보상절≫을세조때다시편집하였기때문에,초기의한글변천과정을살피는데있어서중요한자료적가치를지닌다.그리고조선초기에유통된중요불교경전이취합된것이므로당시경전의수용태도도살필수있는자료이다.
우선≪월인석보≫는≪월인천강지곡≫을본문으로하고≪석보상절≫을주석으로하여구성되었다.이야기의단락에따라서≪월인천강지곡≫이1∼50수가실리고그에해당하는≪석보상절≫이실려있다.≪월인석보≫의본문과주석은글자의크기에서차이가나는데<월인천강지곡>부분은큰글씨로1행에14자이지만<석보상절>부분은작은글씨로1자를낮추어서1행15자이다.한글자형도초창기와달리획이부드럽게바뀌었으며,방점및아래아의모습도점획(點劃)으로바뀌었다.


광흥사중간본월인석보권7과권8

현재까지알려진권7과권8의원간본은동국대도서관소장본(보물745-2호)이유일하며,중간본으로는1572년에간행된풍기비로사판(毘盧寺板)이있는데,이중권7은경북의성의한개인소장자가,권8은서울대규장각일사문고에보관중이다.간기미상의중간본으로권8이고려대육당문고에도소장되어있다.
≪월인석보≫권7은석가의종제(從弟)가출가하고≪불설관불삼매해경(佛說觀佛三昧海經)≫제7과≪불설아미타경≫등의정토경전을원용하여영원한생명으로서의초월적인석가모습을구현하고있다.권8에서는≪불설관무량수경(佛說觀無量壽經)≫,≪불설무량수경(佛說無量壽經)≫,≪안락국태자전(安樂國太子傳)≫등을저본으로하였다.그중≪불설관무량수경≫은앞부분인서분이생략되고부처가위제포부인의호소를들어무우청정(無憂淸淨)의나라가서방극락정토임을제시하고있다.
이번에발견된≪월인석보≫권7과권8은정밀한비교결과원간본과한자음및방점등에서차이를보이며,비로사판과도차이를보여현재까지알려지지않은새로운판본으로확인된다.
동국대소장원간본의경우규격은사주쌍변,반곽231×179mm,유계,반엽7행16자,대흑구,내향흑어미이며책의크기는309×220mm이다.간기는드러나지않는다.1572년에간행된비로사판의경우에는규격이사주쌍변,반곽215×172mm,무계,반엽7행14자주쌍행상하소흑구,내향흑어미이며책의크기는315×217mm이다.책의말미에‘萬歷三十五年丁未(1607)二月日...下駕山中基寺’의간기가나타나며,‘隆慶六年壬申(1572)日慶尙豊基小白山毘盧寺開板’의원간기(原刊記)도확인된다.
광흥사복장에서는월인석보권7은17~18,26~78로모두55장이며,권8은1~104의총104장으로전장이발견되었다.권7은책의크기가314×204mm,반곽216×178mm이다.광곽은사주쌍변,판심의상하비선은대흑구이며,내향흑어미이다.행관은7행16자이며,월인부는14자이다.권8은규격이314×206mm이며반곽212×183mm,권7과동일하게사주쌍변,대흑구,내향흑어미,7행16자(월인부14자)이다.
권7에는월인천강지곡의177~181,182~199,200~211장이,권8에는212~219,220~250장이수록되어있다.석보상절의내용은현재해당부분이전하지않아정확히알수없다.특히이번자료에서권8에는시주질이판각된부분이나타나는데33b의광곽좌측에‘施主華思比丘’,63b의광곽좌측‘施主金仲貞記付先?父母到名毋亞駕’,78b광곽좌측에‘黃加?同兩主’,89b광곽촤측에‘金貴鶴保佐’,97a광곽우측에‘金連亨兩主’,99a광곽우측에‘金仲?兩主’등6부분에서확인된다.이들은‘부부’를의미하는‘兩主’등의표기로보아각수의이름을새긴것은아니라판단되며승려를비롯하여평민에이르는다양한계층의시주자로볼수있다.
문헌의표기특성에서주목할부분은특히89~90장의경우표기의차이가두드러지고한자음의받침부분이급격히변화한모습을보인다는것이다.우선이경우는이목판이만들어지고난이후한자음의표기가현실음표기로변개되어가던과정의어느때에훼손되거나소실된목판이있어이를보충하여다시제작한것으로추정된다.즉이권8의경우는혼판(混板)으로간행된것으로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