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암집 3 (양장본 Hardcover)

기암집 3 (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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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2020년도 한국고전번역원의 지원을 받아 조선대학교 인문학연구원 고전번역연구소에서 ‘권역별거점연구소협동번역사업’의 일환으로 번역이 진행된 『기암집3』이 출간되었다. 저자인 정홍명은 1582년(선조15) 3월 7일에 태어나 1650년(효종1) 10월 2일에 69세로 세상을 떠났다. 당쟁이 격화되던 선조 시대에 태어나 어린 나이에 임진・정유왜란을 겪었고, 광해군의 혼조(昏朝)에는 삭방(削榜)을 당하는 비운까지 맛보았다. 다행히 인조반정 후에 기용되어 정묘・병자호란의 참상을 지켜보았으나 한편으로는 자신의 학식과 기량을 마음껏 펼치며 다수의 시문을 남겼다.
정홍명은 이른바 국자좨주(國子祭酒)로 불리는 대사성을 여러 차례 맡았고 또한 문형(文衡)으로 알려진 대제학을 두어 차례 맡을 정도로 인조 시대의 대표적인 학사(學士)였다. 절친이었던 장유는 정홍명을 두고 “체격도 작은 데다 병에 많이 시달려 언뜻 보면 초췌하고 왜소한 한 남자에 불과한데, 그가 지은 〈서석산부(瑞石山賦)〉를 보니 광대하고 기걸차고 탁절(卓絶)하고 엄려(嚴厲)하여 그 토해 내는 기염이 무시무시하기만 하였다.” 하였고, 또 “기옹(畸翁)의 글을 보건대, 소작(小作)의 경우는 대부분 소루하고 느슨하여 묘한 경지에 이른 것이 드문 반면, 그 웅사(雄詞) 대편(大篇)을 보면 기걸차서 남의 추종을 불허한다.” 하면서 ‘일세지웅(一世之雄)’이 되기에 충분하다고 평하였다. 동문 후배 송시열도 “공은 성품이 엄중 간묵(嚴重簡默)하였고, 문장은 매우 전중(典重)하여 한 시대에 일컬음을 받았으며, 진한체(秦漢體)에서 나왔다.”고 평하였다.
정홍명의 문집은 저자가 만년에 자신의 시문을 수습하여 《기암병고(畸庵病稿)》라는 이름으로 편찬해 둔 것을 저자 사후에 아들 정이(鄭涖)가 다시 한 번 유문(遺文)을 정리하고 조카 비안 현감(比安縣監) 정양(鄭瀁)이 공역을 주간하여 1653년(효종4)에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이 초간본은 10권 4책으로 구성되었으며, 책판은 창평 서흥사(瑞興寺)에 보관해 두었으나 1670년 화재가 일어나 소실되었다. 1684년(숙종10)에 아들 정이가 다시 송시열에게 유문의 증보와 첨삭을 부탁하고 속록(續錄)과 부록(附錄)을 증보한 뒤, 관찰사 이사명(李師命)의 협조를 얻어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이 중간본은 초간본에 비해 2권이 늘어난 12권 4책으로 구성되었다. 본 국역서의 저본은 1684년에 간행된 중간본으로 규장각본이다.
『기암집』은 원집이 총 10권, 속록이 총 2권, 부록으로 나뉘는데 이번에 출간된 『기암집 3』에는 제9권~제12권의 내용과 부록이 실렸다.
저자

정홍명

鄭弘溟
정홍명은1582년(선조15)3월7일에태어나1650년(효종1)10월2일에69세로세상을떠났다.본관이연일(延日)이고자는자용(子容)이다.호는기암(畸庵)・천용자(天慵子)・삼치(三癡)등이있는데,주로‘기암’이라는호를썼고기옹(畸翁)또는기와(畸窩)로도불렸다.당쟁이격화되던선조시대에태어나어린나이에임진・정유왜란을겪었고,광해군의혼조(昏朝)에는삭방(削榜)을당하는비운까지맛보았다.다행히인조반정후에기용되어정묘・병자호란의참상을지켜보았으나한편으로는자신의학식과기량을마음껏펼치며다수의시문을남겼다.

목차

일러두기ㆍ4


기암집제9권
부사6수賦詞六首
서석산부瑞石山賦ㆍ17
초혼과대초편을이어짓다續招ㆍ29
귀거래사에차운하다병서次歸去來辭竝敍ㆍ38
부뚜막꿈을꾸다병서夢竈竝序ㆍ44
이매희인과魑魅喜人過ㆍ55
황금대에서눈물을뿌리다병서攬涕黃金臺竝序ㆍ65

표전7수表箋七首
성절에하례하는표문聖節賀表ㆍ72
성절에올리는표문聖節表ㆍ74
고칙을반사한데대해사은하는전문頒賜誥勅謝恩箋ㆍ76
황자가훙서한데대해진위하는전문皇子薨逝陳慰箋文ㆍ77
칙사를맞이한후대전에하례하는전문迎勅後大殿賀箋ㆍ79
왕세자의책례를거행한뒤대전에하례하는전문王世子冊禮後大殿賀箋ㆍ80
자전께서평복되신뒤왕세자가대전에진하하는전문慈殿平復王世子陳賀大殿箋ㆍ82

교서敎書
함경도관찰사이안눌에게내린교서敎咸鏡道觀察使李安訥書ㆍ84
우의정김류가두번째올린사직소에대해윤허하지않는다는비답右議政金瑬再度呈辭不允批答ㆍ88
우의정이정귀가네번째올린사직소에대해윤허하지않는다는비답右議政李廷龜四度呈辭不允批答ㆍ92

상량문上樑文
환경전의상량문歡慶殿上樑文ㆍ95


기암집제10권
격서檄書
영의정을대신하여양서의사민들에게고유한격문代領相檄兩西士民ㆍ103

소장疏章
신원을청하는상소갑자년(1624,인조2)여름伸冤疏甲子夏ㆍ107
교리를사직하는상소辭校理疏ㆍ125
헌납을사직하는상소辭獻納疏ㆍ127
이조정랑을사직하는상소辭吏曹正郞疏ㆍ129
국사를논하는상소부응교때이다.論事疏副應敎時ㆍ131
집의를사직하는상소辭執義疏ㆍ136
사간을사직하는상소辭司諫疏ㆍ138
사간을사직하는상소辭司諫疏ㆍ141
집의를사직하며국사를논하는상소辭執義論事疏ㆍ143
사정을아뢰어귀향을청하는상소병조참지때이다.陳情乞歸疏兵曹參知時ㆍ147
부제학을사직하는상소辭副提學疏ㆍ149
대사간을사직하며사정을아뢰는상소辭大司諫陳情疏ㆍ151
상신의차자로인하여진달하며변론하는상소이조참의때이다.因相臣箚子陳辨疏吏曹參議時ㆍ155
대제학을사직하는상소辭大提學疏ㆍ160

제문애사祭文哀辭
참장서고신에대한치제문응제이다.徐參將孤臣致祭文應製ㆍ163
가도에서피살된장관진계성등에대한치제문島中被死將官陳繼盛等致祭文ㆍ167
기우제문祈雨祭文ㆍ171
대행대왕대비상에의정부에서백관을거느리고진향하는제문大行大王大妃喪議政府率百官進香祭文ㆍ175
종자정직에대한제문祭從子溭文ㆍ179
오한림희도에대한제문祭吳翰林希道文ㆍ185
정삼재엽에대한제문祭鄭三宰曄文ㆍ191
영의정현헌신공에대한제문祭領議政玄軒申公文ㆍ194
사계선생에대한제문祭沙溪先生文ㆍ200
박대관정에대한제문祭朴大觀文炡ㆍ212
사계서원에봉안하는제문沙溪書院奉安祭文ㆍ220
축문祝文ㆍ225
성황신에게올리는기우제문祈雨城隍神文ㆍ226
벽골제에올리는기우제문祈雨碧骨堤文ㆍ229
다시성황신에게올리는기우제문再祈雨城隍神文ㆍ232
피금각의터를닦으며올리는제문披襟閣開基祭文ㆍ234
처모권씨에대한제문祭妻母權氏文ㆍ236
이신계중기에대한애사李新溪重基哀辭ㆍ238
한첨지관에대한애사韓僉知瓘哀辭ㆍ242
강원외태초의대인에대한애사姜員外太初大人哀辭ㆍ246
월당강상공에대한애사月塘姜相公哀辭ㆍ250

지명誌銘
승사랑송공묘갈명承仕郞宋公墓碣銘ㆍ258
단인이씨묘갈명端人李氏墓碣銘ㆍ263
유인이씨묘지명孺人李氏墓誌銘ㆍ266
사계선생묘비음기沙溪先生墓碑陰記ㆍ268
오내한묘갈명吳內翰墓碣銘ㆍ274

행장行狀
고봉기선생행장高峯奇先生行狀ㆍ280

서발書跋
사계선생에게사례하는편지謝沙溪先生書ㆍ292
의병을모을때강도분사상공들에게올린편지募義時上江都分司諸相公書ㆍ296
《의례문해》발문疑禮問解跋ㆍ298
《체소집》발문體素集跋ㆍ301

기변記辨
망재기忘齋記ㆍ305
신명사기과작이다.神明舍記課作ㆍ307
창평객사중수기昌平客舍重修記ㆍ310
문장이시대에따라하강한다는변론과작이다.文以代降辨課作ㆍ313

책문策問ㆍ320


기암집제11권
소疏
조경을논하는상소정묘년(1627,인조5)강도에있을때인데,일이정지되어끝내올리지않았다.論趙絅疏丁卯在江都時事寢未果上ㆍ333
대사성을사직하는상소辭大司成疏ㆍ338
사간원에서송광유의반좌를논하고또김경현에대한남상을논하다司諫院論宋匡裕反坐且論金敬賢濫賞ㆍ341

계啓
집의를사직하는계사辭執義啓ㆍ343

게첩揭帖
모도독부에보낸회첩좌상을대신하다.毛都督府回帖代左相ㆍ345
등주무군문에게보낸게첩登州武軍門前揭帖ㆍ347
모도독부에동지에보낸하첩毛督府前冬至賀帖ㆍ348

유사遺事
종자에대한유사從子遺事ㆍ349

비음기碑陰記
우의정월당강공묘비음기右議政月塘姜公墓碑陰記ㆍ355

제문祭文
죽은첩에대한제문기사년(1629,인조7)祭亡妾文己巳ㆍ365
재종외사촌형유군에대한제문祭再從表兄柳君文ㆍ375
죽은조카운봉현감에대한제문祭亡姪雲峯縣監文ㆍ377

서書
문장을논하여조선술에게주는편지與趙善述論文書ㆍ382
이창기에게답한편지答李昌期書ㆍ387

기記
풍암을유람한기록遊楓巖記ㆍ397
묵소에대한기문默所記ㆍ401
상평창에대한기문常平倉記ㆍ405
영취루기映翠樓記ㆍ410
차군헌소기此君軒小記ㆍ413
야망당기野望堂記ㆍ416
명옥헌기鳴玉軒記ㆍ419
복암기復庵記ㆍ422
만성재기晩省齋記ㆍ425
청뢰헌기聽籟軒記ㆍ430

서序
관서로떠나는이정자를전송하는서送李正字遊關右序ㆍ433

잡저雜著
대교지대몽설과작이다.大覺知大夢說課作ㆍ437
이상공행원에대한애사李相公行遠哀詞ㆍ440
자전이편치못하여한강의신에게기도하는제문慈殿未寧祈禱漢江神祭文ㆍ444
유년3월그믐에춘관경,봉대부,엽공자들이화림원의여러하속들을이끌고삼가달콤한술과향기로운제수로동군의신께치전합니다維年三月晦春官卿䗦大夫葉公子等率華林園諸屬謹以蜜酒香羞致奠于東君之神曰ㆍ445
취석명병서醉石銘竝敍ㆍ450
목침명木枕銘ㆍ453
진무삼등공신학성군김완에게내린교서敎振武三等功臣鶴城君金完書ㆍ455
진무공신전풍군이신에게내린교서敎振武功臣全豐君李愼ㆍ459
소무삼등공신신경영에게내린교서敎昭武三等功臣辛慶英書ㆍ462
옥책과금보를올릴적에백관이하례하는글進冊寶百官賀箋ㆍ465
유촌외가옛집의중수상량문維村外家舊業重構上梁文ㆍ467


기암집제12권
잡저雜著
사계선생께올리는문목上沙溪先生問目ㆍ477
선인이무고를당한곡절은오래전의일이라서비록서로알고지내는사람이라도반드시잘알지는못한다.그러므로그본말을대략아래와같이갖추어기록한다先人被誣曲折事在久遠雖相知間有未必悉故略具本末如左ㆍ481
대학사이여고에게답하는별지答大學士李汝固別紙ㆍ487

만술漫述ㆍ507


기암집부록
묘비음기墓碑陰記
유명조선국증대광보국숭록대부의정부좌의정겸영경연사감춘추관사세자부행가선대부사헌부대사헌겸수홍문관대제학예문관대제학지성균관동지경연사기암정공묘비음기有明朝鮮國贈大匡輔國崇祿大夫議政府左議政兼領經筵事監春秋館事世子傅行嘉善大夫司憲府大司憲兼守弘文館大提學藝文館大提學知成均館同知經筵事畸庵鄭公墓碑陰記ㆍ553

묘지명墓誌銘
사헌부대사헌기암정공묘지명司憲府大司憲畸庵鄭公墓誌銘ㆍ557

제문祭文
신묘년(1651,효종2)5월3일임금이내린제문辛卯五月初三日賜祭文ㆍ569
제문[조계원]祭文[趙啓遠]ㆍ573
제문[이기발]祭文[李起浡]ㆍ577

만사挽詞ㆍ5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