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환 야구 이야기 (한국야구의 교육자 이광환 평전)

이광환 야구 이야기 (한국야구의 교육자 이광환 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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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 기본과 기초에는 프로와 아마추어가 다르지 않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전세계가 얼어붙은 가운데 거의 모든 스포츠 경기는 기한제한 없이 연기되었다. 미국프로야구(MLB) 개막도 미뤄지자 미국 스포츠전문채널 방송은 얼마 전 어렵게 개막한 한국야구를 생중계하기로 했다.
시차로 인해 새벽이나 이른 아침에 방송됨에도 목마른 스포츠 팬들에게 꽤나 화제가 되었다. 선수나 팀에 대한 정보가 전무한 상태이지만 경기 자체에 대한 재미뿐 아니라 배트플립이나 구장 광고판 등 생소한 환경에 야구팬들이 흥미를 가지고 즐기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즐기며 스포츠 갈증을 해소하고자 하는 팬들 뿐 아니라 중계를 진행하는 야구 전문가들 사이에서 공통적으로 나오는 이야기 중 당연하면서도 의외인 내용이 있었다. 선수들 개인의 피지컬이나 그것에서 기인하는 기술적 수준이 떨어질 수는 있으나 경기 운영 방식에 대해서는 미국과 큰 차이를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야구라는 스포츠가 미국에서 건너 온 것이니 어쩌면 당연한 듯 하지만 사실 한국프로야구의 시작점은 지금과는 많이 달랐다. 훈련 체계가 강압적인 학교 방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고, 잘 던지는 투수는 하루가 멀다하고 경기에 등판하며 선수를 혹사시켰다. 또 현재는 시즌 종료 후 따뜻한 나라로 한달 이상 전지훈련을 떠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만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정신력강화’ 훈련이라며 계곡 얼음물을 깨고 들어가고 해병대 극기훈련을 보내는 등의 일이 비일비재 했다. 선수 생명에 치명적인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이다.
수년 간 이렇게 무자비한 방식으로 진행돼 오던 야구판에 MLB방식을 도입하고 지금과 같은 체계를 정착시키는 데 기여한 야구인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바로 이광환 감독이다.
저자

정범준

1970년서울에서태어났다.초등학교1학년때인1977년,부산으로이주했다.부산에서초ㆍ중ㆍ고를다졸업했다.추첨으로1986년금성(錦城)고등학교에입학했는데결과적으로내인생에제일큰영향을끼친사건이됐다.그곳에서나는평생의지기(知己)를만났다.금성고졸업(1989년)은롯데자이언츠창단어린이회원활동(1982년)과함께내가가장자랑스러워하는경력이다.
서울대국문학과를졸업(1997년8월)했고,한국교원대학교대학원에서잠시공부했다(2000년1학기).2000년5월〈넷벤처〉라는잡지사에서직장생활을시작했는데7개월만에잡지가폐간되어실업자가되었다.하지만그후일자리를구할때마다함께일하게된동료와상사들이한결같이좋았다.
지금까지《제국의후예들》,《이야기관훈클럽》,《거인의추억》,《작가의탄생》,《마흔,마운드에서다》,《흑백‘테레비’를추억하다》,《돌아오라부산으로》,일곱권의책을냈다.이책은정범준이란필명을건여덟번째책이다.이필명에는나를포함한네사내의인연과우정이깃들어있다.

목차

1.한국야구의‘서유견문’
‘신사유람’,아니‘조사시찰’에나서다15
그가보려고한것23
일본최고구단,최고감독과함께29
일본에서미국으로34
야구박물관에충격을받다39
거듭되는행운43
마법을부린한국인삼49
그가터득한미국야구56
재미와감동의메이저리그61
한국인삼이부족했던월드시리즈67

2.반골인의야구인생
머리좋은골목대장75
고1야구선수의고집82
중앙고전성기를이끌다87
이영민타격상수상92
고려대경영학과67학번98
실업최강한일은행으로105
신인왕차지하고곧바로입대109
군복무중두번째일본원정113
사흘사이에두팀의우승에기여하다119
일잘하는은행계장126
모교중앙고감독으로132
은행원포기하고소기업경리부장을선택하다138

3.OB코치로프로에뛰어들다
OB프로의식이가장앞서145
원년우승비화151
감독과의야구관충돌158

4.‘자율야구’의좌절
김성근과의대립165
만40세에프로야구감독데뷔171
‘자율야구’가아니라‘책임야구’다178
모난돌이정을맞다187
감독해임통고193
제주도와의인연199

5.신바람LG트윈스와함께
플로리다교육리그의효과207
시즌을지배한신바람야구216
반게임차통한의2위226
‘야구의집’과‘한국야구명예전당’232
야구칼럼리스트240

6.이글스.다시트윈스,그리고히어로즈
한화와2년247
LG의‘대타감독(?)’253
유소년야구육성위원장258
마지막자원봉사,히어로즈감독262

7.야구,그책임을위해
세가지야구육성방안271
티볼·여자야구육성274
베이스볼아카데미와서울대야구부282

에필로그·야구장앞은행나무291

출판사 서평

◆“프로,아마,학원”야구판을넘나드는진정한야구지도자이광환
이광환감독은1985년스포츠생리학을공부하며스포츠과학의현장적용법과그것을적극활용하는MLB의시스템을배우기위해미국으로야구유학을떠날계획으로OB베어스수석코치를사임했다.그러나당시프로스포츠에대한이해가가장높았던OB구단박용민단장은OB자매결연팀인일본세이부라이온스와미국세인트루이스카디널스에서지도자연수를받는것을권유하고이광환은받아들인다.일본과미국에서각한시즌보냈는데특히카디널스에서는덕아웃에한자리를내주어시즌내내‘밀착관찰’을할수있었다.
그렇게팀의일원과같은자리에서MLB의한시즌을그대로보낸경험은컸다.
우선훈련에있어서기본과기초를다지는데서양인과동양인이다르지않고프로와아마추어가다르지않다는것을깨달았다.기초훈련뿐아니라경기운영방식에도미국방식을적용시켰다.그중대표적인것이‘스타시스템’으로명명한투수분업화를들수있다.투수의보직을선발,셋업,롱릴리프,마무리로나누는것으로현재는당연스레여기는투수운용의정석이다.
그러나거센반발도있었다.선수들의몸관리는구단이앞장서되훈련에있어서는자율에맡겨야한다는주장에는선수와도,구단과도,심지어팬들과도갈등이생겼다.당시에는‘책임감’을가지고자율적으로훈련해야한다는것을방임으로여겼던것이다.‘야구개혁가’‘파이오니아’등의평가도있었지만,성적이저조할수록혼란을부추기는기사들이연일쏟아져나왔다.그로인한부담감과압박감도심해졌으나이광환감독은소신을굽히지않았고결국그의방식대로1994년엘지를우승으로이끌어내기도했다.

이광환감독의야구사랑은프로야구를떠난뒤에도계속됐다.유소년야구육성,티볼보급,여자야구보급에앞장섰으며,야구의발전에‘역사’를담아야한다는생각에제주도에사비로야구박물관건립했다.
그리고무보수로시작한최약체서울대야구부의감독을10년동안맡기도했다.감독을처음맡을때서울대야구부의성적은1승1무199패였다.다른대학선수들처럼프로를목표로한선수들은아니라전력이약할수밖에없었지만전프로야구감독의부임으로획기적인변화나‘추가1승’을기대하는이들도있었던것이사실이다.그러나이광환감독은개의치않았다.공부로1등만해오던학생들이야구부에와서실패를경험하며희생과협동을배우는것이더중요하다고말했다.후에지도자생활에서가장행복했던때가서울대야구부감독시절이라고회상하는이유가여기에있는듯하다.
많은야구인들이이광환감독을프로야구ㆍ아마야구ㆍ학원야구구분없이진정한야구지도자로서의면모를보여준유일한야구인이라입을모으는이유이기도할것이다.

이책에서는선진야구를배우고전파하고자했던이광환감독의당시상황이나행적에관한보도는물론개인적인자료들도공개함으로써초창기한국프로야구의발전과정을이광환이라는한사람의발자취로재조명해보고,그저야구발전이라는목적하나만으로걸어왔던이광환감독의야구인생이어떤업적을이루었는지도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