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는 방식’이거나 ‘주시하는 방식’이거나 … 제국 도쿄와 식민지 경성 도시남녀의 불균질한 관객성
근대의 스캔들, 극장의 스캔들 … 딴스홀보다 더 문제적 핫플레이스였던 영화관에서 벌어진
1. 모던 타임스 혹은 시네마 데이즈의 경성과 도쿄
: 관객을 중심에 둔 제국(민)과 식민지(민)의 비교문화사
“모던 모던의 세상이다. 미국이 그러하고 歐羅巴 각국이 그러하고 상해가 그러하고 가직한 일본이 그러하고 그 운덤에 조선도 그러하다. 모던! 모든 것이 모던이다. 모던껄 모던뽀-이 모던大臣 모던王子 모던哲學 모던科學 모던宗敎 모던藝術 모던自殺 모던劇場 모던스타일 모던巡査 모던도적놈 모던雜誌 모던戀愛 모던建築 모던商店 모던妓生(조선에 限함) … 무제한이다. (중략) 조선에도 모던이씀이 잇는가? 잇다.”
-壬寅生, [모던이씀[모던 있음]](〈별건곤〉 제25호, 1930년 1월)
“사실상 영화는 소설을 정복하엿다. (중략) 현대의 문명은 아모리 하여도 라듸오ㆍ스폿트ㆍ키네마이다.”
-승일, [라듸오ㆍ스폿트ㆍ키네마](〈별건곤〉 제2호, 1926년 12월)
1930년대의 대표적 논객 임인생(壬寅生)이 “과연 독개비도 갓고 수수꺽기도 갓다”라고 한 것처럼 “모든 것이 모던”인 시대에, “사실상 영화는 소설을 정복”한 시대에, 제국과 식민지 수도 도쿄와 경성 모뽀모껄/도시남녀의 모던 공간 체험, “모던劇場” 체험은 어떠했을까?
이 책은 1920~30년대 제국 도쿄와 식민지 경성에서 딴쓰홀보다 더 근대적 공간이자 문화/문명의 공간이었던 영화관에 모인 다양한 관객들의 ‘노는 방식’과 ‘주시하는 방식’이라는 딴판의 관람 문화를 다룬다. 영화 텍스트/배우/감독 등 제작 주체(생산자)가 아닌, 그간 시도되지 않은, 영화가 상영된 공간(매개자)과 그 관객(수용자)을 중심에 둔 제국(민)과 식민지(민)의 비교문화사다.
책은 지금까지 잘 언급되지 않은 식민 시기/초기 영화사 시기의 주제인 영화관, 영화관의 관람 환경, 관객의 영화 수용과 관람 문화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아울러 이를 일국사를 넘어선 방법 곧 식민지 조선의 영화, 영화관, 영화문화가 제국 일본과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를 도쿄와 경성이라는 지역적/도시적 특성을 중심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2. “한 집 한 장소 한 전기등 밋” “활동사진 홀-에” 모인 “낫모를 사람”들
: 콘택트 존(contact zone)으로서의 영화관, 딴판의 사람들이 관객으로 ‘접속/접촉’하다
“행인이 드믄 산길에서 낫 모를 사람을 잠시 맛나는 것도 한 인연이라 하는 생각으로 보면 30수만이 사는 京城에서 단 4, 5시간일망정 한 집 한 장소 한 전기등 밋헤서 가티 웃고 가티 눈물을 흘니게 되는 것은 특별한 인연이라 할 것이니 이것만으로도 겨를 잇는 때 활동사진 홀-에 잠시 드러가 안젓다 나오는 갑이 상당한 것이다. 더구나 거긔에는 자기의 물건 사는 상점 사람도 와 잇는 것을 맛날 수 잇고 인사는 업지만 길거리에서 자조 맛나는 사람과 나란히 안젓게 될 수도 잇다. 요정에서 가티 놀던 기생도 길거리에서 보던 여학생도 반갑게 발견할 수가 잇고 친한 친구를 맛나서 정다운 한담을 할 수도 잇다.”
-波影生, [스크린의 慰安, 서울맛ㆍ서울情調](〈별건곤〉 제23호, 1929년 9월)
1920~30년대, “친한 친구”뿐 아니라 “자기의 물건 사는 상점 사람”, “인사는 업지만 길거리에서 자조 맛나는 사람”, “요정에서 가티 놀던 기생”, “길거리에서 보던 여학생”이 “한 집 한 장소 한 전기등 밋헤서” 만남을 이룬 ‘콘택트 존’으로서의 영화관은 어떠했을까?
다양한 문화와 세력이 만나 충돌하고 경쟁하는 사회적 공간인 ‘콘택트 존’으로서 영화관에는, 영화관 밖에서는 힘과 관계가 작용하지 않는 딴판의 사람들이 영화관 내부에서는 ‘관객’으로 만남으로써 그 힘과 관계 사이에 교섭이 발생한다.
영화관에서 관객이 영화에 집중해 자신을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관객이라는 요소가 교섭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교섭은 활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지만 초기 영화사 시기에는 관객이 영화에만 집중하지 않고 스스로를 적극적으로 드러내기 때문에 그 교섭은 활발하게 이뤄질 수밖에 없다.
3. 1920년대의 ‘산만하고 자유로운 노는 방식’ ? 영화는 공연의 일부, 영화보다는 여흥
: 영화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들과 (무성)영화 텍스트 외부의 볼거리/즐길거리를 찾다
그리고 10분 휴식 간에 오케스트라도 잇스려니와 무슨 다른 여흥이 잇스면 좃켓다. 그것은 경영난인 現今의 극장에 주문하는 것은 무리이지만 무도나 독창이나 독주나 잇섯스면 십분 휴식 하는 의의가 잇지 안을가 한다.
그리고 장면이 벌서 지낫는데 지난 장면을 가지고 떠들고 섯스니, 그것도 자기 취미지만 觀者는 그러한 변사를 원치 안을 것이다. 특히 이 점에 생각 좀 하여 주엇스면 고맙겟다.
극장에 온 손님의게 전화가 올 때, 그것을 전달하는 사람이 소래를 버럭 질러서 그 사람의 일홈을 부를 때 당자는 (더구나 여자) 퍽 불쾌할 것이다.
-[劇場漫談](〈별건곤〉 제5호, 1927년 3월)
관객은 영화관에서 어떻게 ‘놀았을까/놀게 되었을까’?
노는 방식으로 영화 관람 양상이 결정된 것은 열악하고 소란스러운 영화 상영/관람 환경과 갖가지를 즐기면서 영화를 관람하려는 관객의 성향에서 기인했다.
1920년대 경성의 영화관에서는 무성영화가 상영되어 영화를 설명하는 변사와, 무성영화의 내용이나 분위기에 맞춰 ‘음향’을 발하는 가수와 오케스트라뿐 아니라, 영화 상영 중에 장내를 돌아다니며 음식과 담배를 파는 과자장수가 있었다. 1920년대 도쿄의 영화관에는 변사ㆍ과자장수 외에도, 영화 상영 이후 입장한 관객을 손전등을 이리저리 비춰대고 소음을 내며 자리에 안내하는 여자 안내원도 있었다.
대본과는 다르게 옆길로 새거나 자신의 신세한탄을 늘어놓는 변사, 영화와 불협화음을 내는 가수와 오케스트라, 호객 행위 하는 과자장수, 거기에 관객에게 전화 받으라고 소리를 버럭 지르는 영화관 사무실 직원 등은 관객의 영화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였다. 하지만 1920년대 경성과 도쿄의 관객들은 이런 영화관에서 소리 지르고, 노래 부르고 춤 추고, 음식을 먹고, 담배를 피우고, 다른 관객과 신체적으로 접촉하면서 ‘산만하고, 자유롭게, 노는’ 방식으로 영화를 즐겼다.
곧 이때 영화관은 영화 감상 공간보다는 변사의 즉흥적 구술 공연이 있고, 가수ㆍ오케스트라의 음악/연주가 있고, 먹을거리를 파는 과장장수가 있는 공연장/유흥장으로서의 성격이 강했고, 관객들은 영화를 공연의 일부로 여겨 ‘영화보다는 여흥’을 즐긴 것이라 하겠다. 그래서 “오케스트라도 잇스려니와 무슨 다른 여흥이 잇스면 좃켓다”라는 말이 나오기도 한 것이다.
“관객은 영화가 만들어내는 환영에 완전히 빠져들어 조용히 영화를 관람하기보다는 변사의 재담이나 연기, 가수의 노래, 악사의 연주 등에 즉각적으로 반응하고 영화보다 이들의 공연을 더 주목하기도 했다. 이러한 점에서 본다면, 경성 영화관의 영화 상영 양식은 관객을 영화가 만들어내는 환영에 봉합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공연을 행해 전통 공연에서처럼 관객의 흥을 돋우고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 상영에 즉각적으로 반응할 여지를 마련해주었다고 할 수 있다.”
4. 1930년대의 ‘영화에 몰입해 스크린에만 주시하는’ 방식 ? 영화는 영화다, 고급 영화 팬의 등장
: 다른 요소의 방해 없이 조용히 타인과 분리되어 (유성)영화의 텍스트를 감상하다
대개 수요일이나 수요일 석간신문에는 각 영화간의 사진 교체 광고가 다투어 난다. 제군이 고급영화 팬이 되려면 먼저 그러한 광고 가운데서 한번 감상할 가치가 있음직한 영화를 선택한 다음에 그 영화의 감독이며 주연배우 등의 이름을 외워두고 사진 내용에 들어가서도 될 수 있는 대로 다소간 미리 알아둘 필요가 있다. (띄어쓰기와, 고어/한자어를 현대어/한글로만 수정)
-講師 스크린ㆍ?-쥐, [高級映畵 팬 되는 秘訣十則](〈별건곤〉 제29호, 1930년 6월)
‘고급영화 팬 되는 비결 10칙’이 있을 만큼 영화에만 몰입하는 “고급영화 팬”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주시하는 방식으로 영화 관람 양상이 결정된 데는 유성영화가 도입되고 영화 상영ㆍ관람 환경이 개선되는 것과 더불어 유성영화를 감상‘해낼’ 수 있는 관객이 영화관에 모여든 것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이때의 관객은 영화 감상 이외의 것에서 얻는 변사의 재담, 변사와의 대화, 과자장수로부터 사먹는 간식, 여자 안내원과의 접촉 등 놀면서 얻는 즐거움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1930년대 후반에는 남촌에 대형 고급 영화관이 탄생했는데, 이곳에서는 공연의 상연, 과자장수 등의 출입이 사라졌다. 1인석 설치, 냉난방 장치 도입 등 영화관 시설도 개선되었다. 이 영화관에서는 유성영화만이 상영되고 영화만을 주시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추어져서 영화를 온전히 감상하려는 관객이 모여들게 되고 영화 감상 이외의 행동이 금기시되었다.”
“니시긴자 영화관에서 주시하는 방식의 영화 관람 양상이 성립한 배경에는 세련된 서비스의 실시, 유성영화의 도입, 그에 따른 변사 같은 다양한 존재의 퇴장으로 영화만을 주시해 감상하는 것이 가능해지면서 이를 원하는 관객이 그 지역 영화관에 모여든 것 등이 중요한 이유가 되었다.”
# 계속된 ‘노는 방식’의 관객성 - 유성영화의 도입보다 더 크게 작용한 지역적 차이/특성
그렇다면 ‘노는’ 방식의 관객은 유성영화의 도입과 함께 퇴장했던 것일까?
영화관과 영화관에 관한 연구는 대부분 민족 문제만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관객의 구성과 그들의 영화 관람 양상이 지역ㆍ계급에 따라 차이가 있고 불균질적인 것에는 별달리 언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