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과 도쿄에서 영화를 본다는 것 (관객성 연구로 본 제국과 식민지의 문화사)

경성과 도쿄에서 영화를 본다는 것 (관객성 연구로 본 제국과 식민지의 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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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트랜스: 아시아영상문화연구소 영화사총서 제3권. 한국 영화와 미디어 텍스트에 대한 새로운 인식론적 전환, 독해의 대안적 가능성 모색, 동시대 한국영화의 정치적 경계에 대한 비평 담론 형성, 한국영화 또는 시네-미디어에 대한 트랜스내셔널한 접근을 국제 학술 심포지엄, 워크숍과 더불어 포럼과 아카데미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꾸준히 생산해오고 있는 트랜스: 아시아영상문화연구소의 성과물이다.

제국과 식민지 수도 도쿄와 경성 모뽀모껄/도시남녀의 영화 체험, 영화관 체험은 어떠했을까?

이 책은 1920~30년대 제국 도쿄와 식민지 경성에서 딴쓰홀보다 더 근대적 공간이자 문화/문명의 공간이었던 영화관에 모인 다양한 관객들의 ‘노는 방식’과 ‘주시하는 방식’이라는 딴판의 관람 문화를 다룬다. 영화 텍스트/배우/감독 등 제작 주체(생산자)가 아닌, 그간 시도되지 않은, 영화 텍스트가 소통되는 공간(매개자)과 그 관객(수용자)을 중심에 둔 제국(민)과 식민지(민)의 비교문화사다.
저자

정충실

한림대학교일본학연구소HK연구교수.한국예술종합학교트랜스아시아영상문화연구소객원연구원을지냈다.도쿄대학제정보학부에서박사학위를취득했다.전공은한국과일본의영화사,문화사다.주요논문으로[1920~30년대경성영화관의상영환경과영화문화],[1920~30년대도쿄영화관과영화문화],[식민지조선에서의교육영화상영을통해본식민지권력의불완전성]등이있다.

목차

지은이의말

제1장다르게역사쓰기,다양한관객그리기
1.어둠속에집합해스크린을보는눈
2.분석의세시각

제2장관객성연구와문화사연구
1.역사적관객에대하여
2.새로운역사쓰기의경향들

제3장도쿄의관객성
1.영화관의지역적분포
2.1920년대의영화관과관객의관람양상:아사쿠사의영화관
3.1920년대후반이후의영화관과관객의관람양상
4.오모리ㆍ가마타지역의영화관과관객의관람양상,그효과
5.도쿄의불균질한관객성

제4장경성의관객성
1.영화관의지역적분포
2.1920년부터1930년대중반까지의영화관
3.1920년부터1930년대중반까지의상영환경과관람양상
4.1930년대후반의영화관
5.1930년대후반의상영환경과관람양상
6.경성의불균질한관객성

제5장관객성으로본1920~30년대제국일본과식민지조선
1.불균질적으로존재한관람양상과그효과
2.영화관에서작동하는다양한관계
3.다양한성격으로존재한식민지민
4.관객성을둘러싼제국일본과식민지조선의관계
5.과제

참고문헌

출판사 서평

‘노는방식’이거나‘주시하는방식’이거나…제국도쿄와식민지경성도시남녀의불균질한관객성
근대의스캔들,극장의스캔들…딴스홀보다더문제적핫플레이스였던영화관에서벌어진

1.모던타임스혹은시네마데이즈의경성과도쿄
:관객을중심에둔제국(민)과식민지(민)의비교문화사

“모던모던의세상이다.미국이그러하고歐羅巴각국이그러하고상해가그러하고가직한일본이그러하고그운덤에조선도그러하다.모던!모든것이모던이다.모던껄모던뽀-이모던大臣모던王子모던哲學모던科學모던宗敎모던藝術모던自殺모던劇場모던스타일모던巡査모던도적놈모던雜誌모던戀愛모던建築모던商店모던妓生(조선에限함)…무제한이다.(중략)조선에도모던이씀이잇는가?잇다.”
-壬寅生,[모던이씀[모던있음]](〈별건곤〉제25호,1930년1월)

“사실상영화는소설을정복하엿다.(중략)현대의문명은아모리하여도라듸오ㆍ스폿트ㆍ키네마이다.”
-승일,[라듸오ㆍ스폿트ㆍ키네마](〈별건곤〉제2호,1926년12월)

1930년대의대표적논객임인생(壬寅生)이“과연독개비도갓고수수꺽기도갓다”라고한것처럼“모든것이모던”인시대에,“사실상영화는소설을정복”한시대에,제국과식민지수도도쿄와경성모뽀모껄/도시남녀의모던공간체험,“모던劇場”체험은어떠했을까?

이책은1920~30년대제국도쿄와식민지경성에서딴쓰홀보다더근대적공간이자문화/문명의공간이었던영화관에모인다양한관객들의‘노는방식’과‘주시하는방식’이라는딴판의관람문화를다룬다.영화텍스트/배우/감독등제작주체(생산자)가아닌,그간시도되지않은,영화가상영된공간(매개자)과그관객(수용자)을중심에둔제국(민)과식민지(민)의비교문화사다.

책은지금까지잘언급되지않은식민시기/초기영화사시기의주제인영화관,영화관의관람환경,관객의영화수용과관람문화를다루고있다는점에서,아울러이를일국사를넘어선방법곧식민지조선의영화,영화관,영화문화가제국일본과어떻게연관되어있는지를도쿄와경성이라는지역적/도시적특성을중심으로다루고있다는점에서주목할만하다.

2.“한집한장소한전기등밋”“활동사진홀-에”모인“낫모를사람”들
:콘택트존(contactzone)으로서의영화관,딴판의사람들이관객으로‘접속/접촉’하다

“행인이드믄산길에서낫모를사람을잠시맛나는것도한인연이라하는생각으로보면30수만이사는京城에서단4,5시간일망정한집한장소한전기등밋헤서가티웃고가티눈물을흘니게되는것은특별한인연이라할것이니이것만으로도겨를잇는때활동사진홀-에잠시드러가안젓다나오는갑이상당한것이다.더구나거긔에는자기의물건사는상점사람도와잇는것을맛날수잇고인사는업지만길거리에서자조맛나는사람과나란히안젓게될수도잇다.요정에서가티놀던기생도길거리에서보던여학생도반갑게발견할수가잇고친한친구를맛나서정다운한담을할수도잇다.”
-波影生,[스크린의慰安,서울맛ㆍ서울情調](〈별건곤〉제23호,1929년9월)

1920~30년대,“친한친구”뿐아니라“자기의물건사는상점사람”,“인사는업지만길거리에서자조맛나는사람”,“요정에서가티놀던기생”,“길거리에서보던여학생”이“한집한장소한전기등밋헤서”만남을이룬‘콘택트존’으로서의영화관은어떠했을까?

다양한문화와세력이만나충돌하고경쟁하는사회적공간인‘콘택트존’으로서영화관에는,영화관밖에서는힘과관계가작용하지않는딴판의사람들이영화관내부에서는‘관객’으로만남으로써그힘과관계사이에교섭이발생한다.

영화관에서관객이영화에집중해자신을드러내지않음으로써관객이라는요소가교섭에참여하지않는다면교섭은활발히진행되지않을수있지만초기영화사시기에는관객이영화에만집중하지않고스스로를적극적으로드러내기때문에그교섭은활발하게이뤄질수밖에없다.

3.1920년대의‘산만하고자유로운노는방식’?영화는공연의일부,영화보다는여흥
:영화몰입을방해하는요소들과(무성)영화텍스트외부의볼거리/즐길거리를찾다

그리고10분휴식간에오케스트라도잇스려니와무슨다른여흥이잇스면좃켓다.그것은경영난인現今의극장에주문하는것은무리이지만무도나독창이나독주나잇섯스면십분휴식하는의의가잇지안을가한다.

그리고장면이벌서지낫는데지난장면을가지고떠들고섯스니,그것도자기취미지만觀者는그러한변사를원치안을것이다.특히이점에생각좀하여주엇스면고맙겟다.

극장에온손님의게전화가올때,그것을전달하는사람이소래를버럭질러서그사람의일홈을부를때당자는(더구나여자)퍽불쾌할것이다.
-[劇場漫談](〈별건곤〉제5호,1927년3월)

관객은영화관에서어떻게‘놀았을까/놀게되었을까’?

노는방식으로영화관람양상이결정된것은열악하고소란스러운영화상영/관람환경과갖가지를즐기면서영화를관람하려는관객의성향에서기인했다.

1920년대경성의영화관에서는무성영화가상영되어영화를설명하는변사와,무성영화의내용이나분위기에맞춰‘음향’을발하는가수와오케스트라뿐아니라,영화상영중에장내를돌아다니며음식과담배를파는과자장수가있었다.1920년대도쿄의영화관에는변사ㆍ과자장수외에도,영화상영이후입장한관객을손전등을이리저리비춰대고소음을내며자리에안내하는여자안내원도있었다.

대본과는다르게옆길로새거나자신의신세한탄을늘어놓는변사,영화와불협화음을내는가수와오케스트라,호객행위하는과자장수,거기에관객에게전화받으라고소리를버럭지르는영화관사무실직원등은관객의영화몰입을방해하는요소였다.하지만1920년대경성과도쿄의관객들은이런영화관에서소리지르고,노래부르고춤추고,음식을먹고,담배를피우고,다른관객과신체적으로접촉하면서‘산만하고,자유롭게,노는’방식으로영화를즐겼다.

곧이때영화관은영화감상공간보다는변사의즉흥적구술공연이있고,가수ㆍ오케스트라의음악/연주가있고,먹을거리를파는과장장수가있는공연장/유흥장으로서의성격이강했고,관객들은영화를공연의일부로여겨‘영화보다는여흥’을즐긴것이라하겠다.그래서“오케스트라도잇스려니와무슨다른여흥이잇스면좃켓다”라는말이나오기도한것이다.

“관객은영화가만들어내는환영에완전히빠져들어조용히영화를관람하기보다는변사의재담이나연기,가수의노래,악사의연주등에즉각적으로반응하고영화보다이들의공연을더주목하기도했다.이러한점에서본다면,경성영화관의영화상영양식은관객을영화가만들어내는환영에봉합하는것이아니라다양한공연을행해전통공연에서처럼관객의흥을돋우고관객으로하여금영화상영에즉각적으로반응할여지를마련해주었다고할수있다.”

4.1930년대의‘영화에몰입해스크린에만주시하는’방식?영화는영화다,고급영화팬의등장
:다른요소의방해없이조용히타인과분리되어(유성)영화의텍스트를감상하다

대개수요일이나수요일석간신문에는각영화간의사진교체광고가다투어난다.제군이고급영화팬이되려면먼저그러한광고가운데서한번감상할가치가있음직한영화를선택한다음에그영화의감독이며주연배우등의이름을외워두고사진내용에들어가서도될수있는대로다소간미리알아둘필요가있다.(띄어쓰기와,고어/한자어를현대어/한글로만수정)
-講師 스크린ㆍ?-쥐,[高級映畵팬되는秘訣十則](〈별건곤〉제29호,1930년6월)

‘고급영화팬되는비결10칙’이있을만큼영화에만몰입하는“고급영화팬”은어떻게생겨났을까?

주시하는방식으로영화관람양상이결정된데는유성영화가도입되고영화상영ㆍ관람환경이개선되는것과더불어유성영화를감상‘해낼’수있는관객이영화관에모여든것이중요하게작용했다.

이때의관객은영화감상이외의것에서얻는변사의재담,변사와의대화,과자장수로부터사먹는간식,여자안내원과의접촉등놀면서얻는즐거움을필요로하지않았다.

“1930년대후반에는남촌에대형고급영화관이탄생했는데,이곳에서는공연의상연,과자장수등의출입이사라졌다.1인석설치,냉난방장치도입등영화관시설도개선되었다.이영화관에서는유성영화만이상영되고영화만을주시할수있는조건이갖추어져서영화를온전히감상하려는관객이모여들게되고영화감상이외의행동이금기시되었다.”

“니시긴자영화관에서주시하는방식의영화관람양상이성립한배경에는세련된서비스의실시,유성영화의도입,그에따른변사같은다양한존재의퇴장으로영화만을주시해감상하는것이가능해지면서이를원하는관객이그지역영화관에모여든것등이중요한이유가되었다.”

#계속된‘노는방식’의관객성-유성영화의도입보다더크게작용한지역적차이/특성

그렇다면‘노는’방식의관객은유성영화의도입과함께퇴장했던것일까?

영화관과영화관에관한연구는대부분민족문제만을중점적으로다루고관객의구성과그들의영화관람양상이지역ㆍ계급에따라차이가있고불균질적인것에는별달리언급하지않는다.이책은이러한한계를넘어,관객성을영화관이위치한지역적차이및특성과의관계속에서도파악하고있다.

저자는영화관시설이나유성영화의도입뿐아니라영화관이위치한지역적특성과그지역의관객구성같은요소또한관람양상성립에결정적역할을한다는것에도주목해,경성과도쿄라는거대도시의내부에서도세부특성에따라지역마다영화관람이나영화관의성격이다양하게존재했음을강조하고있다.

“1930년대후반부터는경성의남촌에대형고급영화관이등장했다.이영화관에서는유성영화가상영되었으며공연장으로서의성격은없어지고소란스러운사람들의출입도사라졌다.관객은영화에집중했고,영화에주시하는것이외의행동이금기시되었다.그러나그이외의영화관은유성영화의도입에도여전히공연장으로성격이강해서관객은요란하게갖가지것을즐기는등여전히노는방식으로영화를관람했다.”

“도쿄에서는1930년대초반대형고급영화관이니시긴자지역에등장했다.니시긴자영화관에서는유성영화만상영되었으며변사ㆍ악사ㆍ상인은없었고,관객은조용히주시하면서영화를감상하는것이일반적이었다.잡다하고서민적인성격의유흥가인아사쿠사에서는유성영화의도입이나대대적영화관시설의개선에도여전히소란스러운공연의일부로서영화가상영되었고,영화상영중에도사람들의이동이많았으며,관객은요란하게놀면서영화를관람했다.”

5.“경성과도쿄에서영화를본다는것”“관객성연구로본제국과식민지의문화사”
:억압과저항의시기,민족개념만으로는포착할수없는,교섭하고갈등하는공간으로서의영화관

왜하필이면“1920~30년대”에,“경성과도쿄”에서,“영화를본다는것”일까?

책이“1920~30년대”에주목한이유는“우선제국일본과식민지조선에서이시기가일부지역을중심으로한대형영화관의등장,영화기술의도입등으로새로운관람방식과영화문화가불균질적으로성립함으로써다양한관객과그들의관람양상,그의미를효과적으로드러낼수있게하기때문”이다.

“경성과도쿄에서”는식민지와제국의수도라는상징적측면뿐아니라영화문화를경성과도쿄라는도시의특수한조건,특수한도시구조속에서설명하려하기위함이다.

“영화를본다는것”은“사실상영화는소설을정복”한‘시네마데이즈’의시기에영화관은딴스홀보다더핫한일상의공간이자문화/문명의공간이었던데서비롯한다.

저자는식민지권력과식민지민의관계를억압과저항만으로설명하기는무리가있다며,영화관/관객/관객성연구를통해,식민지조선인의일상과문화를다양한세력이“교섭하고갈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