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정신으로 읽는 예수

제정신으로 읽는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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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삶이보이는 창》에 3년간 연재하는 동안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은 김경윤의 『제정신으로 읽는 예수』. 이 책의 저자는 왜 예수가 오늘날 ‘우리의’ 친구가 되어야 하는지, 그리고 기독교에서 말하는 숱한 교리들이 얼마나 시대착오적인지 역사적 예수에 대한 연구 결과를 들어 하나하나 논박한다. 저자는 예수의 ‘운동’이 오늘날 우리에게 왜 필요한지, 예수가 2000년 전에 ‘왜’ 그런 운동을 했는지, 예수가 그 운동에서 ‘무엇을’ 말하고 실천했는지 말하고 있다.
저자

김경윤

저자김경윤은의지와는상관없이태어나기도전에엄마따라교회를다녔다.태어나서도엄마따라교회를다녔다.고등학생때는교회에서학생회장도했었다.대학시절사회에눈을뜨며교회와충돌하기시작했다.그때부터성서를다시읽고제멋대로해석하기시작했다.
87년도에교회민주화를위해성명서를배포한사건으로청년부담당목사와더불어20년넘게다니던교회에서쫓겨났다.이후가끔교회언저리를기웃거렸으나받아주는곳이없었다.
40이넘어일산으로이사와서동녘교회의문을두드렸다.음주와흡연에대한허가,해석과발언의자유에대한허가,제명불가에대한허가를받고교인등록을했다.성직자에게속지않기위해,올바른종교관을갖기위해평신도성경공부모임을조직했다.
맹렬히활동한결과초고속으로권사의자리까지올라가봤다.교회당회에서신분제폐지를주장하여통과되면서,권사의직분을놓았다.
현재종교팟캐스트‘유쾌한평신도들의즐거운수다,주동아리’의사회를맡아진행하고있다.
3년가까이『삶이보이는창』에연재한예수이야기로책을내게되었다.
현재자유청소년도서관관장으로,
공부하고,책쓰고,강의하고,농사짓고,놀면서지낸다.

『처음만나는우리인문학』,『처음만나는동양고전』,『청소년을위한인문학레시피』,『논어:참된인간의길을묻다』,『장자:자유와평등의사상서』,『스피노자,퍼즐을맞추다』,『박지원,열하로배낭여행가다』,『묵자양주,로봇이되다』등을썼다.

목차

저자의말6

1화면조정:예수의시대13
2관점변화:예수내친구25
3부활,새로운가치의선택37
4어린이와하느님나라48
5예수와섹슈얼리티(1)58
6예수와섹슈얼리티(2)73
7농부예수88
8개그맨예수104
9예수경제학120
10예수공동체의조직론-예수의제자들137
11예수의윤리학154
12예수이후-쓰레기처럼,찌꺼기처럼170

출판사 서평

이제전통적인그리스도교는낡은것이되어버렸다는이야기입니다.우리가낡은틀에갇혀예수를사유할필요는없을듯합니다.그래서저는처음에인용한요한복음15장15절에기대어조심스럽게‘예수=친구’론을제안합니다.‘예수=친구’론은그리스도론이가지고있는타율적이고외재적인담론을대신할자율적이고내재적담론의형성에유용합니다.무엇보다현대사회에확산될수있는담론이라고생각합니다.
‘예수=친구’론은기존의배타적인종교로자리매김해온기독교의해악을제거하는데에도도움을줄것입니다.‘예수=친구’론은적어도권위나배타에의존하고있지않기때문이지요.이‘예수=친구’론에따라살아가는현대종교인을저는그리스도인(=기독교인)이라는말대신에‘예수인(Jesusian)’이라고칭하고싶습니다.나는그리스도인이아닙니다.하지만예수인입니다.예수,내친구!지저스,아미고(JesusAmigo)!

예수는내친구
《삶이보이는창》에3년간연재하는동안독자들에게가장많은사랑을받았던김경윤의『제정신으로읽는예수』가묶여나왔다.
저자가이책에서말하는예수는‘그리스도’가아니라,‘친구’다.
이런예수에대한새로운규정은당장현실기독교에서는이단으로취급하겠지만,저자는왜예수가오늘날‘우리의’친구가되어야하는지,그리고기독교에서말하는숱한교리들이얼마나시대착오적인지역사적예수에대한연구결과를들어하나하나논박한다.그렇다고해서이책이기존의신학적해석에대한논쟁을불러일으키기위한목적을갖는것은아니다.
책의차례에서도잘나타나있듯이,저자는예수의‘운동’이오늘날우리에게왜필요한지,예수가2000년전에‘왜’그런운동을했는지,예수가그운동에서‘무엇을’말하고실천했는지밝혀준다.예수를신앙의대상이아니라함께삶을살아갈도반으로받아들이는순간,우리는모두‘예수인(Jesusian)’이될수있다는것이다.
저자의주장은이렇다.

그리스도론이라는타율적해방의담론에서자율적해방의담론으로,구속과속박의종교에서자유와창조의종교로전환하는시기가바로현대입니다.현대에맞는신학이론을구성하려는돈큐핏의노력은충분히검토해볼만합니다.그는같은책에서“종교의낡은형태,즉철저히타율적인외부의통제체계인이전의종교는역사속에서사라져버렸다”고진단하면서“자율적인도덕성과의식의시대에,타율적종교를가진다는것은겉치레일뿐이다”라고말합니다.그의진지한통찰은이러한발언을할때그찬란한빛을발합니다.(34~35쪽)

저자는그러니까이책에서종교는삶을억압하는기제가아니라삶을해방시키는기폭제여야한다고말하고있는데,여기에서거창하게‘해방신학’까지떠올릴필요는없다.왜냐면,예수는내친구이니까!

부활은,새로운삶을선택하는것

예수가그리스도가아니고친구로화할때,우리는예수의부활사건도새로운시각으로읽을수있으며,나아가그부활사건을우리에게도적용할수있음을알수있다.저자는분명하게말한다.

예수가말하는부활(resurrection)은소생(revival)이아닙니다.잠시죽었다가살아나는사람들은얼마든지있습니다.의학적인소생술로도얼마든지가능합니다.소생된사람은그러나또죽습니다.부활은그러한생물학적소생과는전혀관계없는것입니다.죽었다가천국을경험하고다시소생한사람들의이야기가책으로묶여한때베스트셀러가된적도있지만,부활은그러한것과는아무런관련성도없습니다.부활은영원한것입니다.불교에서말하는해탈(nirvana)와같은층위에서논의되어야하는것입니다.(38쪽)

부활이“해탈(nirvana)과같은층위에서”말해져야한다는것은,부활자체가구원이며새로운삶을사는하나의계기임을뜻하는것이다.부활이단지죽었다가살아나는사건으로축소될때우리의삶은지옥이될수도있음을저자는강조한다.“만약에예수의삶이당대사람에게어떠한희망도주지않는것이었다면예수의부활은저주와같은것이될것입니다”라는주장은구원이나해방이되지않는부활은아무런의미가없음을가리키는것이다.
저자가,“예수의부활은민중에게는복음(goodnews)이며,권력자들에는공포”라고말한것은예수의운동과그의십자가형,그리고부활사건모두가당대의정치적흐름과같은궤에있다고강조하기위함이다.(물론저자는모두에서예수생존당시이스라엘의역사적상황을충분히설명하고있다.)이부분을쓸때는세월호참사가일어난직후였으며,저자는그고통을통해낡은가치를뒤집은예수의메시지를다시금곱씹은듯하다.

예수의삶은낡은가치를전복하는삶이었습니다.그는거짓우상을파괴하는우상파괴자였습니다.그는부조리한명령이나폭력에저항하는저항자였습니다.“누가네오른쪽뺨을치거든,왼쪽뺨마저돌려대어라”(마태복음5:39)는말은무기력한대응의메시지가아니라급진적인저항의언어입니다.(40쪽)

예수의여성성

저자가다시금환기시키는예수의삶과운동의동력은과연무엇인걸까.저자는예수가가지고있던‘여성성’을꼽는다.이책에서저자는예수의‘섹슈얼리티’를두개의챕터로나누어서다루고있는데,그만큼예수가‘여성성’을풍부하게가지고있음을직감했기때문일것이다.그리고이‘여성성’은바로어머니마리아의삶과어릴적부터교유했기때문이라고말한다.이대목은예수의출생비밀과도긴밀히연관되어있으며아버지요셉의이른죽음도암암리에전제되어있다.

『신의인간성(HumanityofGod)』을쓴엘리자베스몰트만웬델에따르면,“예수는남성적원리와여성적원리를조화롭게통합한최초인물이다”라는평가가가능한거지요.
근거를대자면,예수의비유에나오는수많은여성주인공들,예를들면열명의신부이야기(마가복음25:1~3),누룩을넣어떡을만드는여인(누가복음13:21),동전을찾은과부(누가복음15:8~10)등이이를방증합니다.이러한비유등은예수가젊은시절어머니주변의여성들과친밀한관계를유지하지않았다면나오기힘든비유입니다.저는예수에게열두제자가있었던것처럼,만약열두명의스승이있었다면그중최소5할은여성일거라고추정합니다.(61쪽)

예수의여성성이야말로예수에게존재한다고회자되는신성의다른이름이라는저자의통찰은오늘날까지도여성에대한배제와억압을당연시하는남성에대한직격이기도하다.

예수의‘하느님나라운동’은정치적사건이다

예수의삶과운동은과연무엇이었는가.많은성서학자들과역사적예수연구자들이지적했듯이,예수의운동은‘하느님나라운동’이며,그운동의핵심은‘하느님나라’는지금우리가살고있는현실에임재해야한다는것이다.죽어서가는‘천국’이아니라우리가사는현실속에서성립되어야한다는것!로마황제에게만부여되었던‘그리스도’를예수의제자들이주창한것에는바로이런정치적인의미가담겨있는것이며,예수가당시갈릴리지방의버림받은자들과함께웃고,마시고몰려다닌사실이이미정치적사건이라는것이다.

예수의조직은그정신에있어평등과섬김을강조합니다.가난한자와소외된자에대한하느님의절대적이고무조건적사랑을이야기합니다.무력이나경제력보다는해방된인간의자유를강조합니다.누구나하느님의자녀임을,하느님나라에누구나조건없이초대될수있음을실천합니다.예수의조직이근원적으로위험한것은이러한정신이무력과경제력,신분차별과이에대한용인으로유지되고있었던로마제국에게새로운저항의비전을보여주었다는점때문입니다.(149쪽)

결국예수의‘하느님나라운동’은권력을쟁취하는운동이아니라우리모두가권력자임을선포하고그것을직접실천하는운동에다름아니다.이러한메시지는아직도우리현실에유효하지않은가?“가난한자와소외된자”도주체적인권력자임을선언하고또그렇게사는일.
이게저자가말하고싶은‘제정신으로읽는예수’의핵심이다.

[책속으로추가]
유대인사회에서예수의신관은거의독보적차원이라할수있습니다.신관의차이는윤리관의차이를낳고,정치,경제,사회,문화적인관점의차이를낳습니다.예수가당대민중에게절대적환호를받은반면,당대의권력자나지식인들에게절대적증오의대상이된것은어찌보면너무도당연한결과가아닐수없습니다.격하게결론을내리자면,예수의여성성이예수의전생애를관통하고있으며,예수는바로그여성성때문에죽임을당한것입니다.당대이스라엘의지식인이나권력자들에게는너무도낯설고두려운새로운신성(神性)이자,인간성(人間性)을예수가담고있었으니까요.
-「6.예수와섹슈얼리티(2)」,87쪽.

예수는가난하기에더러웠고,그러한처지였기에무차별적이고무조건적인하느님의사랑을발견할수있었습니다.그는가난을감사하지는않았지만가난을부끄러워하지도않았습니다.더러움도마찬가지입니다.오히려그는적어도그자신과그의조직에게는극빈에해당하는가난을절대적조건으로삼았습니다.이는하느님에대한전적인신뢰와믿음에기초한것이었습니다.권력의차별성을혐오하고,더낮아지고더섬기며꼴찌가되기를추구했습니다.결국그는자신의죽음으로하느님을신뢰하는사랑의윤리학을완성했습니다.
가난하고더러운자의윤리학이라지칭했던무조건적사랑의윤리학이지향하는목표는당연히가난하고더러운자에게하느님의나라를선사하는것이었습니다.그는가는곳마다하느님나라를이야기했고,그와함께하는사람들은하느님나라를경험했습니다.그경험의가장일상적모습은무차별적으로열린식사였지요.어떠한조건도없이초대되는이식사에참여하는사람들은하느님의사랑을느낄수있었습니다.
-「11.예수의윤리학」,16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