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산 허균 시선 - 한국의 한시 12

교산 허균 시선 - 한국의 한시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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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허균의 시는 그의 문집에 728편이 실려 있다. 그 밖에 중국의 시선(詩選)이라든가 그들과 주고받은 시들을 모은 「황화집」에 20여 편이 실려 있다. 그의 시 749편 가운데 109편을 가려 뽑아서 이 시선을 엮었다.
그는 큰 포부를 지니고 벼슬길에 나섰지만 그의 이상과 현실은 맞지 않았다. 너무나도 단단한 현실의 벽에 몸으로 부딪치면서 살아온 그의 삶이 749편의 시에 나타나 있다. 현실에 대해서 불평을 내어 뱉은 것이 그의 시이고, 50년 그의 생애를 그린 것이 그의 시이다. 이 시선에서는 그의 일생을 더욱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그의 시들을 연대순으로 배열하였다.
-머리말 중에서
그러나 1,400편의 시를 쓰는 동안에도 그는 끝내 현실과 화합하지도 못했고, 극복할 수도 체념할 수도 없었다. 그랬기에 자기와 같은 사람들이 안주하여 화합하며 살 수 있는 새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유배지에서 돌아오자마자 그는 현실 속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그의 세력이 너무 커지자 위협을 느낀 이이첨은 끝내 그를 제거할 음모를 꾸몄다. 뒤늦게야 자기가 함정에 빠진 것을 알고는 ‘할 말이 있다’고 했지만, 그는 끝내 그 말을 하지 못하고 죽었다. 그가 새로 세우려고 했던 사회의 모습이 확실치는 않지만, 좀 더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려고 했던 것만은 분명하다. 이탁오가 봉건사회를 비판하다가 끝내 이기지 못하고 감옥에서 죽었던 것처럼, 그도 억압적인 현실을 극복하려고 몸부림치다가 끝내는 실패하고 말았다. 그의 호 교산(蛟山)이 끝내 하늘로 오르지 못할 이무기의 좌절을 암시한 것처럼, 그의 비극적 죽음도 결국은 그의 시 전체를 마무리짓는 커다란 상징이다. 그가 귀거래를 말로만 부르짖으면서 한번도 실천하지 못했을 때, 그의 이러한 비극적 결말은 예정되어 있었다. -〈허균, 좌절당한 이무기〉 중에서
저자

허균

저자:허균
1569년허엽의삼남삼녀가운데막내아들로태어났다.서울건천동에서자랐다.1579년아버지가경상감사가되어내려갔는데다음해에아버지가상주객관에서죽었다.1582년작은형을찾아온시인이달을처음만났고이달은나중에그의스승이되었다.1588년작은형이죽고,1589년에누이난설헌이죽은후에난설헌의시210편을정리하여책으로엮었다.
1592년임진왜란이시작되자홀어머니김씨와만삭된아내를데리고피난길을떠나여기저기를전전하다가강릉에도착했고,사천애일당외가에머물렀다.이때부터애일당이있는뒷산의이름을따서교산(蛟山)이란호를썼다.1593년에《학산초담》을지었고,1596년강릉부사였던정구와함께《강릉지》를엮었다.
1598년중국의장군과사신들을접대하느라고돌아다녔다.중국의종군문인오명제에게《조선시선》을엮어주었으며,《난설헌집》초고를중국에전파케했다.10월13일,다시병조좌랑이되어가을에평안도를다녀왔다.1599년황해도사가되었는데,기생을너무많이데리고다닌다는이유때문에사헌부의탄핵을받고파직되었다.
1611년유배지인전라도함열에도착해서문집《성소부부고》64권을엮었다.11월에귀양이풀려서울로돌아왔다.1612년8월9일,큰형허성이죽었고가장가까운벗권필이광해군을풍자하는시를지었다가매맞아죽었다.
1615년정2품가정대부에올랐다.동지겸진주부사(冬至兼陳奏副使)가되어중국에갔다.이때
다녀온기록을《을병조천록》으로남겼다.1618년봄,스승이달의시집《손곡집》을간행하였다.윤4월7일,남대문에다백성들을선동하는흉서를붙인심복하인준이잡혀들어갔다.17일에허균도기준격과함께옥에갇혔다.그의심복들이허균을탈옥시키려고감옥에돌을던지며시위하였다.22일에광해군이친히허균의심복들을국문하였다.이이첨은망설이는광해군을협박하여허균의처형을서둘렀다.허균은결안도없이8월24일에그의심복들과함께서시에서처형당했다.

역주:허경진
1974년연세대학교국문과를졸업하고,1984년같은대학원에서박사학위를받았다.
목원대학교국어교육과교수를거쳐연세대학교국문과교수를역임했다.
주요저서로『조선위항문학사』,『대전지역누정문학연구』
『넓고아득한우주에큰사람이산다』,『허균평전』등이있고
역서로는『다산정약용산문집』,『연암박지원소설집』,『매천야록』,『서유견문』,『삼국유사』,『택리지』,『한국역대한시시화』,『허균의시화』가있다.

목차


[젊은날의시들]
서울가는유연숙을보내면서_15
꽃이지다_16
보는대로기록하다_17
처음강릉에이르러서_19
피난와서잠시쉬며_20
두보의회고시에서운을받아_2
덕원민가에서자며_23
매_24
정스님에게_25
흥에겨워_28
죽월헌에서_30
칠석날밤에회포를읊다_32
스승손곡을위하여_34
선동요_35

[처음중국을다녀오면서]
광원루에올라서_39
백상루_40
전문령고개를넘어서며_42
장진보관운장의사당에서_43
행산에서_44
백이숙제사당에서_45
일년밝은달빛이오늘밤에으뜸이라_74
요동에이르러아내의편지를받아보고_94

[나의길은갈수록어렵기만하구나]
막부에서일이없어우린의각야운에차운하여회포를서술하다_53
설을맞으며_55
대정강을건너며_56
철산강을건너며_57
의주에서_58
포은선생의옛집을지나면서_59
임진강나루에서_62
오명제의〈남장귀흥〉에차운하다_63
서담의시에차운하여스님의시권에쓰다_46
아랑포_65
용연_66
황주염곡_67
운을나누어산(山)자를얻다_71
섣달그믐_73
회포를풀다_74
작은복사꽃_75
참판박동량에게시를부치며조관자리를구하다_67
스스로탄식하다_77
아침에판교원을떠나다_79
스스로희롱하다_80
옛장성을향해떠나며_81
교외를나서며_82
숙정헌에몇이모여서_83
윤계선이보내온시에차운하여_84
벗을그리워하며_86
한밤_87

[풍악기행]
늙은떠돌이아낙네의원망_91
명연_95
만폭동_96
원통사_98
구정봉_100
도솔원_103
경고에서정생과헤어져산을내려오다_104
사촌에이르다_106

[나는나름대로내삶을이루겠노라]
군에이르러화학루에오르다_109
민희안의첩노래를들으며_10
시름을부치다_111
이정이오다_112
산으로돌아가는무위스님을배웅하며_114
황주목사가두기생을보내주다_116
석봉이찾아오다_117
석봉의부음을듣다_118
스스로조롱하다_119
《공동집》을읽다_120
《대복집》을읽다_121
방림_122
삼척고을에이르자옛생각이나다_123
우연히읊다_124
두친구를꿈꾸다_125
서재에머물며짓다_127
벼슬에서내쫓겠다는소식을듣다_130

[떡을바쳐야벼슬을얻지]
홍주목사자리를부탁했지만얻지못하고이안눌이얻다_135
스스로희롱하다_136
《서적공집》을읽다_137
《창명집》을읽다_138
《엄주사부고》를읽다_139
오정에게큰떡노래를부치다_140
명주를그리워하다_143
병이심해지세와여장을생각하다_144
내가화가동하는병때문에중국에사신으로갈수없으므로순군(巡軍)에서견책을기다리며장구를지어기헌보에게주어회포를풀다_145
벼슬을내놓으라시니기뻐서_151
전오자시_152
《변화천집》을읽다_161
《사산인집》을읽다_162
《왕봉상집》을읽다_163
서천목오담추의두문집을읽다_164
계랑의죽음을슬퍼하다_165
유감_168
나주목사에제수되었다가곧바로빼앗기고서_169
의금부감옥에서판결을기다리며_170

[궁사-자물쇠잠그는소리만들려오네]
궁사_173

[유배지에서]
경포를그리워하며_185
동행에게바치는운을써서시름을부치다_819
늦은봄날_191
소자정에게답한운을써서시름을읊다_912
귀양와머무는집에서_193
손님들을물리치고혼자앉아서_194
관아의벽도가비에꺾였기에_195
문집을다엮고서_197

[을병조천록(乙丙朝天錄)]
지난해압록강을건너는날유격장군구탄유융이망강사연회에초청하기에시를지어주었는데,올해에또사신으로다시압록강을건너게되었건만구공이무예시험의일로힐책공문을받고요양으로갔기에옛모임을이을수없게되었으므로느낌이있어짓다_021
길가에서서상기연희를하는자가있기에_023
연경시장바닥의노래_205
이씨의《분서》를읽고_208
원중랑의〈주평〉뒤에쓰다_210
19일자금성에들어가천자를뵙다_211
동짓날자금성에들어가조회하다_213
종계변무에관한복제에‘장차사관으로하여금문안을찬수하여초출해서해내에보여야합니다’라고했다는말을듣고,기쁨을기록하여시를짓다_125
북원의낡은초가를그리워하면서앞시의운을가지고회포를적다_217
이른아침에황제은혜에감사하다_219
용우기공이저술한《성학계관》을읽고서_221
정월보름날밤에거리에나가도좋다는말을듣고느낌이있어서짓다.상사지애의운을쓰다_223
병중에회포를기록하면서평생을추억하다_224
요동에이르러집에서온편지를받아보니조카친이과거에급제했다고하므로기쁨을기록하다_230

[부록]
허균,좌절당한이무기_235
연보_239
原詩題目찾아보기_2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