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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간 강형과 갑자사화
대사간 강형(姜詗)은 1451년(문종 원년)에 태어났고, 자는 형지(詗之)이다. 1472년(성종 2년) 진사시(進士試)에 입격하고, 장예원 사평(掌隷院 司評)을 역임하던 1490년(성종 21년) 별시 문과에 급제했으며, 그 해 12월 조산대부(朝散大夫) 사간원 정언(正言)으로 등용되었다. 1493년(성종24년) 사헌부 지평(정5품), 1495년(연산1년) 12월 사헌부 장령(정4품)에 제수되었고, 1496년(연산2년) 연산군이 생모 폐비윤씨의 입주입묘를 시도할 때 선왕인 성종의 유교를 들며 불가함을 홀로 아뢰다가 천배된 이후, 공에 대한 기록이 전해지지 않는다. 다만 선산부사를 역임한 것과 대사간을 역임한 기록이 전해진다. 1504년(연산군10) 3월 18일 연산군은 독계(獨啓)에 대한 일로 대사간 강형을 치죄(治罪)하여 충청도 비인(庇仁)으로 유배를 보냈다가 10월 4일 아들 3형제(永叔, 茂叔, 與叔)와 함께 처형하였다. 1498년(연산 4년) 무오사화에서 사위 허반(許磐, 戊午5賢)이 화(禍)를 입은 데 이어 4부자가 참화(慘禍)를 당하니 멸문지경(滅門地境)에 이르게 되었다. 배위인 정부인 선산김씨는 대사간공과 세 아들이 참형을 당한 이후 곡기를 끊고 절의(節義)를 지키다 한 달여 후에 별세했다. 1506년 중종반정 이후 중종은 1507년 선산김씨에게 정려(旌閭)를 하사하였고, 대사간 강형은 모든 권한이 복권되었으며 자헌대부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대사간 강형 세가록 (진주강씨 대사간공파 종중사록 | 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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