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가의 수첩 : 맛 평론의 원류 언론인 홍승면의 백미백상

미식가의 수첩 : 맛 평론의 원류 언론인 홍승면의 백미백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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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대문장가이자 원조 맛 칼럼니스트 홍승면이
한국 미식 평론의 이정표를 세운 기념비적 음식 기행문!

음식에 대한 인문학적 통찰과 문화적인 해박함이 가득 담긴
구수하고 맛깔스러운 미식 에세이
“산채 가운데 멧갓은 이른 봄, 눈이 녹을 때 산속에서 자라는 겨자로 뜨거운 물에 데쳐서 초장에 무쳐 먹으면 맛이 매우 맵다고 하고, 승검초는 움에서 재배하는 당귀의 싹으로 꿀을 끼워 먹으면 매우 맛있다고 한다.”

“담북장은 구수하고 반갑다. 지금은 ‘담북장’이 ‘청국장’으로 통일되어 있는 것 같다. 장기 보존용인 된장의 일종을 가리키는 경우가 청국장이고, 콩을 삶아 띄워서 며칠 후면 먹는 속성 속식용을 가리키는 경우가 담북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가리’는 사투리가 아니라 표준말이다. 우리가 먹는 쇠갈비가 바로 가리이다. 가릿국을 현대어로 옮기면 갈비탕이다.”

“이렇게 식용으로 하는 경우에만 ‘가리’라고 일컬었고 그것도 원칙적으로 쇠갈비에 국한되는 것이었다.”

“흑산도 홍어회가 우리 겨레의 걸작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가 없다. 이렇게까지 ‘프장데(고기를 삭혀 더욱 고기 맛을 내게 하는 의미의 프랑스어)’해서 생선회를 먹는다는 것은 세계에 따로 예가 없을 것이다.”
저자

홍승면

1927년서울에서태어나경기중학교와서울대학교사회학과를졸업했다.1949년합동통신사기자로언론계에입문했으며,6·25때는자원입대하여대위로제대했다.1955년한국일보에입사해31세의나이에편집국장이되었으며,아시아재단후원으로미국스탠퍼드대학교에서언론학을연구하였다.
1962년동아일보논설위원으로옮겨1965년논설위원겸신동아주간으로재직중1968년신동아‘차관(借款)’기사등을군사정권이문제삼아반공법위반혐의로구속하면서한때동아일보를떠나야했다.1969년복직해편집국장이되었고,이후아시아신문재단사무국장겸필리핀주재특파원,수석논설위원,논설주간을역임했다.1975년동아일보광고탄압사태로언론계를떠났으며,1980년이후덕성여대에서후학을가르치다가1983년서거했다.
한국일보재직시절칼럼‘모노클’과단평‘메아리’‘지평선’을,동아일보재직시절신동아에‘화이부동(和而不同)’을연재하여칼럼니스트로이름을날렸다.딱딱하고고답적인문어체의신문문장을부드럽고평이한구어체문장으로바꾸어한국의신문문장을현대화하는선구자로평가받고있다.저서로‘프라하의가을’,칼럼과논설을정리한평론집‘잃어버린혁명’,‘화이부동(和而不同)’이있다.

목차


편집자가독자에게

1부자연을담은소채(蔬菜)의맛에취하고즐기며
산채와두릅,쑥과마
김치와자우어크라우트
더덕,송이,순채
두부
구절판과신선로
탕평채와메밀묵,잡채와빈대떡
약밥,강정,적(炙)
미역,김,튀각
오이소박이와멍게
수박,화채,곶감
샐러드,우유,샌드위치
고추,후추,오향

2부사계(四季)의음식,눈으로즐기고마음으로상미(賞味)하며
비빔밥과담북장
냉면과콩국수
떡국과수제비
짜장면과만두
삼계탕과오리요리
가릿국과설렁탕
돼지고기와족편
쇠혀와꼬리곰탕
추탕,산초,게
해물잡탕과오징어
전골,오복장국,오뎅
순대와소시지

3부활개치는생선따라세월과삶을낚으며
대구와삼치
민어와조기
명태,청어,참치
도미,병어,덕대
장어와갈치
잉어와붕어
홍어와아귀
은어와빙어
농어,우럭,복어
메기와쏘가리
성게와어란,전복과해삼
새우젓과식해

참고문헌

출판사 서평

책속에서

오향이라면,낱말자체의기본적인뜻은다섯가지향기인데중국요리에서실제로쓰는물건은가루의형태로되어있다.따라서그물건을강조할때는오향분(粉)이라고부르기도한다.그러나다섯가지향기를내기위해다섯가지재료를쓰는것인지어떤지가확실하지가않다.또몇가지재료를쓴다고할때에어떠어떠한것들을써야하는것인지도분명하지가않다.
나자신은오향이꼭다섯가지재료를써야하는것이라고는생각하지않는다.여러가지향기라는뜻이겠고따라서여러가지재료가사용되리라고생각하는데,여기에는반론이있을것으로예상하고도남음이있다.왜냐하면,일찍이내가중국요리의팔보채(八寶菜)의‘팔보’도여러가지많은맛있는재료들을쓴다는뜻이며그것을꼭여덟가지재료라고생각하는것은너무교조주의(敎條主義)적인생각이라고했더니,어떤중국인친구가팔보채는반드시여덟가지재료를써야한다고단호하게교조주의적인입장을고집했던일이기억나기때문이다.
오향에있어서도이렇게현실주의적인입장과한편교조주의적인입장이있을것같다.우리나라구절판(九折版)의경우는워낙찬합의가장자리가여덟가지구멍으로구별되어있고복판에는가운데구멍이있으니까으레여덟가지재료에밀전병을쓰게마련이다.중국요리에서도육색냉반(六色冷盤)이라고전채의가짓수가정해져있는경우는물론여섯가지재료이고,그렇게만들어져있는그릇들도있다.
-<왕서방솜씨돋우는조미료의합창,오향(五香)>中,157쪽

지금은옛날이야기가되어버렸지만우리나라동해안에서는청어가많이잡혔다.잡혀도너무많이잡혔으니반세기전만해도한해에5만톤이나되는어획량이었다.당시에는영일만연안에는청어알이산더미처럼쌓여그대부분이비료로사용되었다고한다.
오랫동안이어져내려왔던원시적인어로기술이큰혁신을맞게되었던때이기는했다.고깃배며그물이며일대혁신이일어났고,놀라울정도로물고기가많이잡혀어민들을즐겁게해주었다.그러나어민들은잡히는대로잡기만했으며어족자원보호라는생각은꿈에도하지않았다.청어알을인공부화해서바다에방류한다는생각은어민들에게는전연일어나지않았다.따지고보면일본수산업자들의농간에말려들어그들이동해의청어자원을수탈하는것에협력한셈이었다.8·15가되기도전에이미동해에서청어어업은망했다.씨를말렸으니그렇게될수밖에는없었다.
다만<동국세시기>가우리나라의청어주산지로서동해안을빼돌리고있는이유는,첫째는거리(교통)관계로동해청어가서울에올라오기가어려웠다는데있었겠고,둘째는서해청어가제법잡혔고맛있었다는데있었을것이다.
-<마포나루통해종묘에진상하던청어>中,339쪽

<동국여지승람>에적혀있는우리나라토산물에해삼이보인다.성종의명으로엮어졌고,중종때증보되어나온책이다.그보다앞서단종때엮어진‘세종실록’의지리지(地理志)에도해삼이보인다.<동국여지승람>이나<세종실록>지리지나해삼의고장으로경상도를꼽고있다.
우리겨레가언제부터해삼을먹었는지는알수가없지만,처음해삼을먹은사람은매우용기있는사람이었는지모른다.그렇게징그럽게생긴해삼을먹어볼마음을먹었으니말이다.아니면매우배가고픈사람이었을까.
옛날에는해삼을어떻게먹었을까하는것도궁금하다.<동국여지승람>또는<세종실록>이엮어졌을때는아직우리나라에고추가들어오지않고있었다.그당시는지금처럼초고추장에찍어먹지는못했다.적당한양념으로날로먹기도했겠지만,말린것을불려서요리해먹기도했을것이다.
세계에서해삼을먹는민족의수는결코많지가않은것같다.우리나라와중국과일본에서는많이먹는데그밖의나라에서는별로해삼을먹는것같지가않다.중국에서도날로는잘안먹고딱딱하게말린것을부드럽게불려서요리해먹는다.한편,일본에서는날로는잘먹지만말린것을불려서먹는식습관은별로없다.날로도잘먹고말린것을불려서먹기도하는것은우리나라뿐이다.
-<삼(蔘)대접을하는해삼(海蔘),약효는?>中,44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