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심리학자가 여성을 위해 쓴 ‘심리학적으로 성찰하기’
“엄마와 다르게 살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싫어하던 엄마의 모습을 내게서 문득문득 발견하게 된다. 느끼고 생각하는 것, 행동하는 것 모두 유전일까?”
“나와 다른 사람들의 삶을 끊임없이 비교한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행복한데 나만 초라하고 불행하게 사는 것 같다. 내가 자존심 센 사람이라서 그런 것일까?”
“남들을 위해 배려하고 애쓰는 내 마음은 아무도 모른다. 외롭고 우울하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누군가의 말과 행동에 상처받지 않고 속 편히 살 수는 없을까?”
한국여성의 삶은 그 누구보다도 치열하다. 하지만 세상에 하나뿐인 자기만의 느낌과 욕구에 따라 치열한 것이 아니다. 뒤처지지 않으려고, 남들이 하는 대로 눈치 보며 따라 사느라 치열하다.
한국의 눈치 보기 문화가 말해주듯 자기 자신에게 무감각한 채 살아가는 한국여자의 일상 심리를 심층적으로 분석하여 저자 특유의 통찰력 넘치는 날카로운 어법으로 풀어간 글모음이다. 저자 문은희는 한국여성의 우울증에 대한 깊은 연구와 예리한 심리분석을 통해 한국 여성 개개인이 성장하고 변화하도록 오랜 기간 상담해왔다. 저자에게 상담 받는 내담자들 스스로가 마음을 열고 자신을 분석하게 하기 위해 집단상담시간마다 써온 글들을 모았다.
시집살이, 집안 살림, 부부관계, 아이들 교육, 일중독 등 주변에서 흔히 접하는 일상을 통해 우리만의 독특한 심리구조를 보게 한다. 신문지상에 오르내리는 부패한 정치인, 연쇄살인, 강력 범죄 등의 사건·사고들 역시 특별한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건강하지 못한 우리의 심리적 특징에서 비롯됨을 보여주어 우리의 무의식을 불편하리만큼 아프게 직면하게 한다.
심리학을 가르치기보다 ‘심리학적으로 생각하기’에 초점을 맞춘 저자의 글은 여러 번을 거듭 읽어도 나 자신에 대해 늘 새로운 질문을 하게 하고‘내가 이래서 그랬구나!’하는 명료한 깨달음을 준다.
1장 ‘나’에서 시작하기를
직장여성과 주부, 독신여성과 기혼여성, 젊은 여성과 나이든 여성 모두를 아울러 한국에는 독자적인 '개인‘으로 살아가는 여성이 드물다.
남들과 다른 ‘내’가 부담스럽고, 다른 이들의 자녀와 다른 내 자식이 불안하고, 남들이 가는 학교에 나는 들어가지 못할까봐 전전긍긍하며, 남들 가는 곳에 나도 여행 가야하고 남들이 입는 명품은 나도 하나쯤 지녀야 하고, 남들에게 잘 보이려 날씬하게 살을 뺀다. 개인주의 사회의 도래를 이야기한지 오래되었지만 실질적으로 한국에서‘개인’으로 사는 여성은 드물다.
사회적 성공를 위해 사회에 진출한 여성들은 과연 남다른 ‘개인’으로 자기답게 살고 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사는 여성은 독자적일까? 젊은 여성은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며 자기욕구에 충실한가? 겉으로 드러난 모습만으로는 그것을 알 수 없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자신에게서 우러난 자기만의 동기에서 비롯된 것인지, 눈치보며 누군가를 흉내 내는 것인지 진지하게 스스로에게 물어야 하기 때문이다.
집단상담에 참여하고 저자를 찾아와 상담 받은 많은 한국여성들은 계급계층을 가리지 않고 다채롭다. 가난한 여성, 부자여성, 주부, 무직여성, 엘리트 여성, 고졸 여성, 박사, 학원강사, 방과후 강사, 술집 주인, 수녀, 스님, 여성목사, 고등학생, 대학생, 대학원생, 상담치료사, 시민단체 활동가, 교수, 교사, 이혼한 여성, 독신 여성, 유학생, 성적 소수자 등등
공유지점이 별로 없을 것 같은 그 다양한 한국여성들 사이에서 놀랍도록 유사한 심리적 특징이 발견되는데 독자적 개인으로 대접받고 자란 경험이 그 누구를 막론하고 드물다는 점이다. 그래서 한국 여자의 심리적 현실은 대개가 황폐하고 눈물겹고 앙상하다. 눈치 보며 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들의 절절하고 절박한 사연과 고통을 마주하고 그들과 함께 공감하며 결코 쉽지 않았던 여성들의 힘겹고 용기 있는 변화들을 바탕으로 저자가 현장에서 길어 올린 생생한 한국여성의 심리분석과 변화의 이야기인 만큼 때로는 신이 나기도 하고 때로는 아프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충분히 아파하는 가운데서 한 줄기 빛처럼 가냘픈 희망을 찾아낼 수 있을 테니까. 어렵게 길어 올린 진짜 희망 찾기. 내게서 우러나 나를 변화시킬 수 있는 놀라운 힘이란 그런 것이야 하지 않을까.
2장 나는 여자다
여성인 내 느낌, 내 생각을 존중하지 않고 눈치 보며 사는 일은 위험하다
가족을 위해,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는 것이 여성의 역할이라 여기는 수많은 한국여성은 누구보다도 열심히 일하지만 가족에게 집착하고 간섭하며 그것을 사랑이라 오해한다. 희생하는 여성으로서 자신이 믿는 사랑의 방식을 강요하는 것은 실제로는 가족과 타인의 느낌과 생각을 무시하는 것. 하지만 마음의 안테나가 가족에게만 향하여 정작 자기 자신의 느낌과 욕구를 무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자신의 느낌을 상실하면 가족과 이웃의 느낌에도 무감각할 수밖에 없다. 뜨거운 사랑이라 착각하는 자기만의 환상에 빠져, 있는 그대로의 나, 남편, 자녀, 친구, 부모, 이웃의 모습이 가려진다. 그것의 가장 참담한 결과는 느낌 없는 아이들,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하는 아이들이 양산된다는 것. 요즘 십대들의 무서운 폭력과 잦은 자살을 보라.
아이를 직접 낳고 남성들과 비할 바 없는 애착관계를 아이와 맺게 되는 여성이 자기 느낌을 상실한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그 결과를 예측하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렇게 느낌이 상실된 인간관계가 무서운 범죄의 뿌리가 된다는 점은 무서운 진실이기도 하다. 싸이코 패스로 판명되는 범죄자들의 경우가 그러한‘느낌이 없는 상태’일 테지만 내가 나로 살지 못하는 것이 느낌 없는 범죄의 뿌리가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우리 역시 잠재적으로는 정도가 다른 싸이코패스이다.
그래서 여성 특유의 관계성을 살려내는 일은 한국여성에게 중요한 과제이다. 최근 들어 다시 돌봄의 가치를 주목하기 시작했지만 여성 스스로가 돌봄의 능력을 앞장서서 죽여 온 현실을 돌아보아야 한다. 여성 스스로 여성의 특징을 열등하게 취급한 탓이다. 일과 성취 위주의 남성의 관계성과 달리 섬세한 감정의 교감이 살아있는 여성만의 그것을 살려내야 한다. 그러나 눈치 보며 사는 한 그 길은 요원하다. 남성보다 더 남성적으로 일과 성취 위주로 살아가는 한, 독자적인 ‘개인’으로 남성과 다른 ‘여성’으로 살아가는 일은 요원하다.
3장 ‘나’에 사로잡히지 않기를
느낌이 죽은 다음에 폭력이 온다. 우리는 느낌이 상실된 심각한 심리적 폭력에 기반해서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는 사회의 한 가운데서 살아간다. 소수자의 아픔을 외면하거나 용산참사와 같은 폭력이 버젓이 자행되고도 방치되는 것이 우리 사회의 현 주소인 것이다. 개인의 느낌과 생각이 상실된 도덕성 역시 겉으로 보이는 행위에 초점을 둔 눈치 보는 겉치레 도덕성에 지나지 않는다.
한국여성이 먼저 나서 보이지 않는 인간의 마음에 주목하고 느낌의 상실에 주목해서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 눈치만 보며 억눌러온 한국여자의 풍부한 느낌과 생각, 관계성을 회복하면 남성보다 여성이 더 잘 사회를 이끌어 갈 수 있다.
그래서 저자가 말하는 일상의 심리학은, 개인이 사회에 잘 적응하게 하기 위한 학문에 머물지 않는다. 눈치 보지 않고 독자적인 여성으로 당당하게 살아가는 개인의 깊은 마음으로부터의 변화를 도와 줏대 없이 휩쓸려 다니는 병든 사회의 변화까지도 추구하는 역동적인 심리학이다.
기존의 심리서적들이 서구의 이론을 그대로 믿고 따와 그 틀에 우리를 끼워 넣고 해석하고 처방하는 방식을 취하는 데 반해 필자는 한국여성만이 가진 독특한 심리구조를 자신의 ‘포함이론’으로 설명한다. 생김새도 다르고 역사와 문화가 다르며 서로 다른 심리적 태도와 방식으로 인간관계를 맺는 서구의 심리구조와 우리의 심리구조를 같은 틀로 보고 해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의 생각과 행동이 보이지 않는 무의식세계의 영향을 끊임없이 받고 있다는 것은 현대인이라면 익히 잘 아는 사실. 저자는 심리학자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자기 고민을 통한 심리분석을 해야 하며 그렇게 해서 마음이 건강해질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좋은 약이 입에 쓰듯 자기직면은 아프기 마련. 그래서 저자는 정신건강사회운동을‘골치 아프기 운동’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4장 나는 시민이다,
눈치 보기는 경제지상주의, 학력지상주의, 물질숭배의 원인이자 결과
눈치보는 한국여자는 학력지상주의, 경제지상주의, 물질숭배에 빠져있는 한국사회의 산물이기도 하지만 계속해서 사회를 그렇게 몰고 가는 원인이 되기도 하다. 처음부터 눈치 보고 살고 싶어 일부러 눈치 보고 살게 된 한국여자는 없다. 그러나 독자적인 ‘개인’으로 살지 못하고 자기 자신의 인생을 살지 못하는 여성은 눈치 보는 사회를 맹목적으로 양산시키는 데 맹렬히 달려든다.
돈이 사람의 주인이 되고 학력이 사람의 신분이 되는 현실을 개탄은 하면서도 그것이 현실이라고들 한다. 그래서 우파는 자신의 아이를 떳떳하게 사교육 현장에 보내고 좌파는 부끄러워하며 보낸다(한겨레신문 2009.12.9 어느 기자의 이중생활)는 우스갯소리가 나돌 정도. 이것은 좌우를 막론하고 눈치 보며 따라가는 한국의 사회심리적 현실이 빚어낸 결과이다.
이런 현실에 여성만의 책임이 있냐고? 그렇지 않다. 여성이 먼저 시작해서 변화를 주도하자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 대해 한국여성이 자기책임을 먼저 이야기하는 것은 사회에 대한 여성의 지대한 영향력을 여성 스스로 인식하고 존중하는 강력한 여성주의일 테니까. ‘개인’으? 자기다움을 회복한 여성의 변화와 성장으로, 그러한 여성의 힘으로, 세상을 주도적으로 바꾸어 보자는 것이다. 눈치 보는 한국 남자를 견인해 보자는 것이다.
글 한 편의 분량이 세 쪽 정도로 짧은 것 같아 보이지만 실제로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