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불리의 철학자 (요리사, 철학자, 그의 레스토랑, 그리고 그의 예술)

엘불리의 철학자 (요리사, 철학자, 그의 레스토랑, 그리고 그의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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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깐깐한 마르크스주의자, 미식을 탐하다!
요리는 예술이 될 수 있는가? 될 수 있다면 이 예술의 본질은 무엇인가? 『엘불리의 철학자』의 저자 장 폴 주아리는 세상에서 가장 많은 이목이 집중되고 언론에도 가장 많이 등장하는 레스토랑, 엘불리에서 15년 넘게 식사를 하며 우정을 쌓은 요리사 페란 아드리아의 요리를 통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탐구한다.

저자는 한 창조물이 예술 작품이 되기 위해서는 칸트적인 의미에서 독창성과 보편성, 재현, 오성의 확장, 엘리아스와 베커의 미학적 요구, 이렇게 다섯 가지 요구를 만족시켜야 한다고 전제한 후, 아드리아 요리의 각 측면에 대해 상세히 분석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긍정적인 결론, 즉 페란 아드리아의 요리는 ‘예술 작품’임을 분명히 말한다.

그 과정에서 프랑스 혹은 유럽 요리의 역사, 예술사, 미학사, 먹는다는 행위 혹은 맛에 대한 철학자들의 생각들을 다채롭게 소개한다. 인류 문화 전체에서 가장 근본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에도 철학적 대상에서 늘 제외되어 왔던 요리라는 분야를 철학적 탐구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독보적이다.
저자

장 폴 주아리

저자 장 폴 주아리Jean Paul Jouary는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수필가이다. 오랫동안 급진적 성향의 주간지 《레볼루시옹》의 편집장을 지냈으며, 철학자이자 마르크스주의자인 아르노 스피르와 공동으로 여러 편의 글을 발표하기도 했다.
저서로 《철학 속으로 들어가기》, 《구석기 시대 예술》, 《나는 투표한다, 그러므로 사고한다》, 《철학하기, 이게 쉬웠다면?》, 《유산으로서의 과학》, 《루소, 미래의 시민》 등이 있다.
평소 가스트로노미와 와인에 관심이 많은 저자는 15년 전부터 엘불리를 자주 방문하며 페란 아드리아와 교류해 왔다. 저자는 이 책에서 페란 아드리아에 이르러 요리가 역사상 처음으로 온전한 예술이 되었다는 가정을 제시한다.
먹는다는 행위는 과연 예술의 일부가 될 수 있을까? 저자는 프란세스크 기야메의 멋진 사진들과 함께 엘불리의 작품들을 선보이며 우아하고 섬세한 필치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탐구한다.

목차

앙트레
칸트의 레시피: 미식이성비판
멜론의 이데아를 찾아서
위대한 역사, 사소한 이야기들
새로운 아타락시아로
혼돈, 마술, 유머…… 도발!
맛보는 능력 비판
해체-재구성으로서의 카니발
미식의 시대를 열다
당신들의 취향, 페란 아드리아의 창조
주문에서 창조로
페란 아드리아의 앙트르메
마지막 저녁
밀푀유 알라카르트
감사의 메뉴

출판사 서평

“그의 요리는 유희처럼 가볍다. 첫 입에 깊은 사색을 피할 길 없고 두 입에 놀라움을 금할 길 없다. 가우디가 건축에서 한 일을 요리에서 해낸, 가장 순수한 형태의 예술가” _미셸 게라르

“그의 요리는 익숙한 것과 익숙하지 않은 것, 기준과 추상적 발명 사이에서 벌어지는 놀이이다. 그는 참으로 놀라운 형태적 감각으로 메뉴를 구성한다.” _브루노 만토바니

▣ 깐깐한 마르크스주의자, 미식을 탐하다


2011년 7월 30일 한 레스토랑이 문을 닫았다. 그냥 평범한 레스토랑 얘기가 아니다. 스페인 카탈루냐 주, 크레우스 곶의 외딴 해변에 숨어 있지만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이목이 집중되고 언론에도 가장 많이 등장하는 레스토랑, 바로 엘불리 얘기다.
_‘앙트레’ 중에서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그렇다면 이 책은 철학자가 요리사의 작품을 분석하는 내용을 담고 있나? 아니면 요리사의 전기나 요리 비평, 혹은 요리 레시피를 담은 요리책인가?
이 책의 저자인 장 폴 주아리가 서두에 밝히고 있듯이, 위와 같은 주제들에 대해서는 이미 괜찮은 책들이 많이 나와 있으며 이 책의 말미에도 그러한 주제들을 깊이 있게 다룬 참고 서적들의 목록을 실어 놓았으니 참고하시길 바란다.
이 책은 마르크스주의자이며, 급진적 철학자인 저자가 그러한 사상과는 전혀 무관하게, 순전히 미식가로서, 페란 아드리아라는 천재 요리사와 그의 레스토랑이 실험해 온 예술 작품들에 관한 철학적, 미학적 고찰을 담은 예술서이다. 철학자이자 미식가인 저자는 운 좋게도 거의 매년 엘불리의 새로운 요리를 맛보고 페란 아드리아와 대화할 기회를 누렸다. (1년 중 6개월은 영업을 하지 않고 창조에만 몰두하며, 하루 50명의 손님만 받는 엘불리에는 매년 250만 명 정도가 예약을 시도하지만 그중 8천 명 정도만이 식사할 기회를 얻는다.) 그리고 그의 마음 깊숙한 곳에서 질문이 떠오른다.

만약 이곳이 단순한 레스토랑이 아니라 예술적 창조의 장소라면? 손님들이 그저 편안하게 식사를 하려고 오는 곳이 아니라 콘서트홀이나 전시 갤러리처럼 내밀한 감성을 추구하는 곳이라면?
간단히 대답할 수 없는 질문들이다. 철학적인 해명이 필요한 문제들이기 때문이다. 감각적 즐거움과 순수한 미학적 즐거움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어디까지가 기술이고 어디부터가 예술일까? 먹기 위해 무언가를 만드는 일은 우리가 흔히 ‘순수 예술(beaux arts)’이라고 부르는 것의 반열에 들어갈 자격이 없는 것일까?
물론 얼핏 봐도 인류의 생존에 직결되는 더 중요한 철학적 문제들이 얼마든지 있다. 지구 행성은 불평등과 전쟁, 기아, 자연 자원의 파괴로 고통 받고 있다. 나는 이미 이런 주제들에 대해 수천 페이지의 글들을 썼고, 다양한 사회적 활동을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그러나 문화의 다양한 측면, 즐거움을 공유하는 다양한 가능성들이 빠진 인간 해방은 무력할뿐더러 무의미하다. 넓은 시각으로 깊이 들여다보면 예술을 통해 새로운 시각과 감정을 창조하는 것보다 더 혁명적인 것은 없다.
_‘앙트레’ 중에서

요리는 예술이 될 수 있는가? 될 수 있다면 이 예술의 본질은 무엇인가?
이것이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질문이다. 저자 장 폴 주아리는 15년 넘게 엘불리에서 식사를 하며 우정을 쌓은 페란 아드리아의 요리를 통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탐구한다. 그 과정에서 프랑스(혹은 유럽) 요리의 역사, 예술사, 미학사, 먹는다는 행위 혹은 맛에 대한 철학자들의 생각들이 다채롭게 소개된다.
페란 아드리아의 요리에 대해 저자는 그것이 예술 작품이라고 분명히 말한다. 여기서 예술에 대한 칸트의 이론이 주요 분석 도구로 사용되기도 한다. 저자는 한 창조물이 예술 작품이 되기 위해서는 칸트적인 의미에서 독창성, 보편성, 재현, 오성의 확장, 엘리아스와 베커의 미학적 요구, 이렇게 다섯 가지 요구를 만족시켜야 한다고 전제한 후, 아드리아 요리의 각 측면에 대한 상세한 분석을 통해 긍정적인 결론에 도달한다.
국내에도 이미 엘불리에 대한 책들이 소개된 바 있지만 《엘불리의 철학자》는 내용면에서나 형식면에서 그들과 다르다. 단지 엘불리나 페란 아드리아에 대해 소개하거나 비평하는 글이 아니라 한 철학자가 그의 요리 세계를 미학적, 철학적 관점에서 고찰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요리를 철학적 탐구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독보적이다. 저자의 철학적 고찰은 지나치게 난해하거나 복잡하지 않다. 때로는 우리에게 친숙한 철학자나 예술가들의 말을 인용하기도 하고 구체적인 미학적 이론을 간략하게 소개한 뒤 아드리아의 요리 세계에 적용하여 분석을 전개하기도 한다. 또 한 가지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오랜 시간 페란 아드리아의 전속 사진사로 일해 온 프란세스크 기야메의 멋진 사진들이다.
저자는 인류 문화 전체에서 가장 근본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에도 철학적 대상에서 늘 제외되어 왔던 요리라는 분야에 대해 “인간의 가장 동물적인 측면에 해당하는, 생존과 직결되는 이 영양 섭취의 영역에 예술적 행위가 개입하는 것은 하나의 사건이며, 철학이 이것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고 말한다.

▣ 페란 아드리아, 그의 엘불리, 그의 예술

엘불리는 《미슐랭 가이드》에서 별 세 개를, 《고미요》에서 최고점을 받았다. 페란 아드리아는 영국의 《레스토랑 매거진》에 의해 세계 최고의 요리사로 선정되었을 뿐 아니라, 요리사로서는 처음으로 카셀 도쿠멘타 현대미술전에 아티스트 자격으로 초청되기도 했다.
그는 온갖 종류의 메달을 받았고, 수많은 강연회와 컨퍼런스에 초대받았으며, 다양한 칭호의 최고 요리사로 선정됐다.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그에 관한 기사만 1만 편이 넘게 쓰였고, 수도 없이 방송국에 불려가거나 책 속에 등장했다. 전 세계의 유명 셰프들이 엘불리를 방문했고, 심지어 만토바니는 그의 요리에서 영감을 받아 곡을 만들기도 했다.
_‘위대한 역사, 사소한 이야기들’ 중에서

‘누벨 퀴진’이니 ‘분자요리의 대가’니 하는 수식어들이 페란 아드리아에게 꼬리표처럼 늘 따라붙지만 이들과 구별되는 자신만의 차원을 설명하기 위해 그는 다음과 같은 말로 자신의 요리를 표현한다. “요리는 조화, 창조, 행복, 아름다움, 시, 혼돈, 마술, 유머, 도발, 문화 등을 매개하는 언어이다.”
페란 아드리아의 작품을 접한 사람들은 그의 요리에서 모든 종류의 해체, 비물질화, 전이, 일탈, 놀라움, 환상, 충격, 웃음, 어긋남 등을 경험한다. 이러한 경험은 요리를 공유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끊임없이 질문하게 하고 성찰하게 하며 그로인해 다시 자신으로 회귀하게 한다. 페란 아드리아는 자신의 요리에 여섯 가지 감각(‘일종의 지적 만족’을 제공하는, ‘웃음을 자아내는’, ‘지식에 호소하는’, ‘어린 시절의 추억을 되살리는’,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영혼이 느끼는 기쁨’)을 적용함으로써 작품 감상자와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시도들이 최초로 영양 섭취 대상과 그것을 맛보며 즐거움을 느끼는 주체 사이를 매개하는 데 성공했으며 이 매개 덕분에 요리가 특정한 방식으로 재현의 세계에 진입할 수 있게 된 것이라고 말한다. “이 과정 없이 그의 요리는 순수한 의미의 예술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손님은 우선 음식의 외양에 깜박 속아 넘어간다. 그런 후에 음식 이름 속에 암시된 영감의 원천을 찾아내게 될 것이다. 손님들은 이 발견을 통해 일종의 게임에 참여하는 셈이다. 놀라움과 즐거움, 때때로 터져 나오는 웃음이 감각과 감정, 성찰 속에서의 왕복운동을 통해 우리가 평소 음식과 맺고 있던 관계를 변형시킨다. 이런 의미에서 ‘해체’라는 개념은 페란 아드리아의 요리가 지닌 예술적 차원의 중심을 이룬다고 할 수 있다. 함께 식사를 하는 동반자들끼리, 테이블과 테이블 사이에서, 레스토랑 홀 전체에서 공모자의 웃음이 확산되고 대화가 오가기 시작한다. 손님들은 여행을 떠나 모험을 즐긴다. 새로운 접시가 도착할 때마다 사람들은 점점 강도 높은 경험을 하게 된다. 레스토랑보다는 콘서트홀 혹은 극장 같은 곳에서 할 법한 경험이다. 그런 의미에서 엘불리는 더 이상 ‘레스토랑’이 아니다.
_‘맛보는 능력 비판’ 중에서

2011년 7월 30일 엘불리는 문을 닫았다. 파산이나 내부 분쟁 등의 문제가 아닌 소위 ‘미학적인’ 이유 때문에 세계 최정상에 오른 시점에 문을 닫은 것이다.
스타 셰프들이 비행기를 타고 세계 곳곳을 누비며 굳이 주방에 들어가지 않고도 레스토랑 여러 곳을 경영하는 시대에, 가격을 두 세배쯤 올려도 빈자리가 생길 일 없이 호황인 시점에, 오직 창조에만 몰두하기 위해 엘불리의 문을 닫기로 한 페란 아드리아의 결정에 수많은 언론들이 이유를 묻자, 그는 “문을 닫는 것이 아니라 바꾸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예술적 여정의 끝이 아닌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는 것이다.
페란 아드리아는 그의 요리를 통해 “놀라움을 주고, 도발하고, 질문하고, 웃음을 자아내고, 성찰을 유도하며, 강렬한 기쁨”을 주었다. 그의 독창적인 작품들은 그 작품을 원하는 손님들을 필요로 하지만 또한 예술 작품으로서 그들의 기대를 충족시키려는 의도를 배제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진다. “하나의 ‘예술계’가 필요하지만 동시에 이 세계의 현 상태를 뛰어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손님들에게 단지 기쁨을 선사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형태의 기쁨을 창조해야 한다. 감성을 포착하는 동시에 오성의 자기 성찰을 유도해야 한다.” 이 모든 조건들이 서로 모순적으로 얽혀 있는 것이다. 페란 아드리아는 운 좋게도 창조, 조직, 경영을 위한 좋은 조건들에 덧붙여 인내심과 인복까지 갖춘 덕택에 최초로 모순을 극복하고 이 기준들을 만족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그의 다음 작품 세계가 열리는 시간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