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기진 도시의 밭은 식탐

허기진 도시의 밭은 식탐

$14.00
Description
혀끝이 아닌 삶으로 맛보는 서울 음식
“서울 사람들이 즐겨 먹는 음식을 살피면 서울 사람들이 누구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허기진 도시의 밭은 식탐』의 저자 황교익은 이런 생각을 갖고 1년여에 걸쳐 서울음식을 먹으러 다녔다. 서울음식 하면 무엇이 떠오를까? 500년 조선왕조의 도읍지였으니 궁중음식이나 반가음식이 먼저 떠오르지만 저자가 소개하는 음식 중에 궁중음식이나 반가음식은 없다. 서울 사람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음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과연 저자는 어떤 음식을 통해 어떤 서울을 발견했을까?

오랫동안 사대문 안을 지키던 해장국집과 빈대떡집은 이제 그 옛날의 골목을 떠나 어느 듣보잡의 이름을 하고 있는 고층건물의 한 귀퉁이에 겨우 붙어 있다. 재개발의 밀려 이미 사라진 영등포 감자탕 골목처럼, 왕십리 곱창집들도 사라지고 있다. 이 가난한 이주민의 도시에서의 삶을, 서울 사람들의 밭은 식탐을 달래 주던 음식들을 기억하고 기록한 이 책이 소중한 이유다.
저자

황교익

저자황교익은1962년경남마산에서났다.중학생일때서울로수학여행을왔다.탑골공원뒷골목여관에서묵었다.처음먹은서울음식이여관음식이었는데,먹다가토할뻔하였다.서울유학중인큰형이빵을한아름사들고여관으로왔다.태극당이나무과수제과빵이었을것이다.달았다.고등학교를졸업하고서울로왔다.서울인구1,000만시대를열때였다.서울살면부자일것이라는생각이오해였음을이내깨달았다.한국의가난한사람들이다모이는곳이서울이었다.음식도거칠었다.강남개발로졸부가된서울사람들이먹는음식이라고별다르게맛있는것은아니었다.이도달았다.
사대문안에서10년넘게직장생활을하였다.직업덕에서울에서맛있다고소문난식당들을두루돌았는데,다들서울음식이아니라개성음식,평양음식,남도음식이라며팔았다.서울은서울사람들모두의타향이었다.내나이쉰을넘겼다.마산에서보다서울과그주변도시에서산기간이10여년길다.이제서울사람이라하여도될것이나,여느서울사람들처럼이게우겨지지않는다.그럼에도,서울과그주변도시에서여전히먹고살것이다.
저서로《맛따라갈까보다》,《소문난옛날맛집》,《미각의제국》,《한국음식문화박물지》,《맛칼럼니스트황교익의맛있는여행》이있다.

목차

책을내며_내가먹었던것은‘뜨거운눈물’6
들어가며_무엇이서울음식인가13

1장서울설렁탕-조선의왕에게얻어먹다21

2장종로빈대떡-가난도낭만이게하다35

3장신림동순대-전라도의이름으로47

4장성북동칼국수-골목길에숨은경상도의권력59

5장마포돼지갈비-한때남자의음식이었던73

6장신당동떡볶이-고삐리를해방시키다87

7장용산부대찌개-전쟁과가난을추억하다103

8장장충동족발-체력은국력이었던그시절의보양음식117

9장청진동해장국-조선장꾼의음식이었다131

10장영등포감자탕-뼛골빠지는삶145

11장을지로평양냉면-평양이라는이름의맛159

12장오장동함흥냉면-함경도아바이의삶이이리질길까173

13장동대문닭한마리-시장사람들의저렴한보양185

14장신길동홍어-날것의전라도197

15장홍대앞일본음식-반일과친일사이의입맛209

16장을지로골뱅이-동해에서인쇄골목으로온까닭은221

17장왕십리곱창-살을못먹는변두리233

출판사 서평

혀끝이아닌삶으로맛보는서울음식

“서울사람들이즐겨먹는음식을살피면서울사람들이누구인지알수있을것이다.”
《허기진도시의밭은식탐》의저자황교익은이런생각을갖고1년여에걸쳐서울음식을먹으러다녔다.
서울음식하면무엇이떠오를까?500년조선왕조의도읍지였으니궁중음식이나반가음식이먼저떠오르지만저자가소개하는음식중에궁중음식이나반가음식은없다.서울사람들의삶을엿볼수있는음식이아니기때문이다.과연저자는어떤음식을통해어떤서울을발견했을까?

서울은이주민의도시이다

황교익이《허기진도시의밭은식탐》에서소개하는음식은17가지이다.그런데그음식중에는일제강점기부터서울명물로소문난설렁탕외에냉면,홍어회,부대찌개같은음식이포함되어있다.‘저음식들이서울음식이라고?’하는의문을가질만한음식들이다.냉면은늘앞에평양이나함흥이라는지명을달고있으며,홍어는대표적인남도음식으로꼽힌다.부대찌개하면사람들은으레의정부를떠올린다.저자가이런음식들을서울음식으로선정한이유는무엇일까?
2004년서울시정개발연구원의조사에의하면,토박이라고부를만한기준인3대째이상서울에거주하고있는세대는불과6.5퍼센트밖에안된다는것이다.90퍼센트가넘는서울사람들이비교적근래에팔도각지에서서울로옮겨온이주민인것이다.
서울음식에는이런이주민들의삶이고스란히녹아있다.한국전쟁으로피난온이북실향민들의삶이을지로평양냉면과오장동함흥냉면에스며있다.평양냉면전문점인우래옥,을지면옥등에가면연세지긋한실향민들만나기가젊은이들을만나는것보다쉽다.갈수없는고향을그리며,추운겨울밤뜨거운아랫목에서먹던어머니의냉면맛을을지로에서찾는다.
신림동에가면순대타운이있다.원래재래시장노점에서시작한순대볶음집들이두개의건물에입주하여타운을이룬것이다.이곳순대타운에들어가면대부분의간판에전라도의지명이붙어있다.이촌향도의1960~70년대,신림동인근에는전라도농촌에서올라온사람들이많이모여살았다.그들은읍내와같았던신림시장에서값싼순대볶음에소주한잔하면서낯선서울에적응했다.음식을통해본서울은이주민의도시이다.

음식으로엿보는서울의삶

서울음식에는서울사람들의삶이담겨있다.해장국으로유명한청진옥에는야간통행금지가서슬퍼렇던시절의기억이남아있다.밤새기사쓰고나온광화문일대언론사기자들,철야한노동자들,밤새워술을마셔댄글쟁이들,통금에걸려잡혀있던사람들,주변여관에서자고나온사람들그리고밤새클럽에서춤을추다나온고고족들이통금이풀리는새벽4시에청진옥에서속을풀었다.장충동족발골목은장충체육관에빚을지고있다.이렇다할오락거리가없던시절,장충체육관에서열린프로레슬링시합을보며김일의박치기한방에열광하던사람들이응원에타는목을축이기위해,체력은국력이던시절의보양을위해족발골목을찾았다.지금신당동떡볶잇집은고등학생보다가족손님이더많이찾는다.신당동떡볶잇집에서수줍은미팅도하고장발의디제이를보며열광하던‘고삐리’들이이제아들딸의손을잡고와젊었던그시절을추억하기때문이다.
서울은가난하였다.서울음식또한가난이만들어낸음식이다.1970년대좁은작업장에서는쉴새없이미싱이돌아갔다.작업장으로들이던원단이지게에실려좁은골목사이사이를분주히다니던곳이동대문일대이다.동대문에서왕십리쪽으로조금벗어나면마치코바라고불리던조그만철공소들이밀집해있었다.봉제공장에서,철공소에서일하던사람들의저녁시간을위로하던음식이곱창구이다.살코기는외국으로수출해야했던가난한한국의더욱가난한노동자들은소와돼지의부산물로만든음식을먹으며서울살이를견뎌냈다.

서울과서울의삶을기억하다

오랫동안사대문안을지키던해장국집과빈대떡집은이제그옛날의골목을떠나어느듣보잡의이름을하고있는고층건물의한귀퉁이에겨우붙어있다.재개발의밀려이미사라진영등포감자탕골목처럼,왕십리곱창집들도사라지고있다.이가난한이주민의도시에서의삶을,서울사람들의밭은식탐을달래주던음식들을기억하고기록한이책이소중한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