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어사전

조선어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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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조선어사전》은 훈민정음 반포 이래 약 500년이 지나 탄생한 최초의 국어사전이다. 표준말, 방언, 옛말, 이두, 속담, 외래어 등 다양한 우리말과 오늘날 사전에는 없는 당대의 유행어 등을 실어 일제강점기 조선의 언어와 문화를 고스란히 볼 수 있다. 2024년 출간하는 《조선어사전》은 1938년 출간 당시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영인본이다. 사전 하나 없던 언어를 세계 7위 학습 언어로 성장시킨 출발점을 2024년 다시 만난다.
저자

문세영

호는청람(靑嵐).최초의국어사전인《조선어사전》을비롯해《중등조선어사전》,《표준가나다사전》,《최신판표준국어사전》,《순전한우리말사전》등을펴낸사전편찬인.1935년조선어학회표준말사정위원,1936년조선어학회표준말수정위원을지냈다.1917년동양대학윤리교육과에입학했다.재학당시사전도없는민족이라는수치심에우리말어휘를수집하기시작했으며,동경유학생으로조직된문원사(文園社)에서방정환등과민족각성을위해활동하기도했다.졸업후배재고등보통학교,근화학교에서교편을잡으며어휘수집을계속했다.1928년에학교를사직하고본격적인작업에착수한문세영은1938년7월10일,사전편찬을결심한지22년만에8만7천여어휘의《조선어사전》을발행한다.

목차

지은이말슴 
일러두기 
이책에쓴부호
ㄱ~ㅎ
한문글자음찾기 
이두찾기 

출판사 서평

최초의국어사전문세영《조선어사전》

“조선말로해석한조선말사전이처음나왔다.집집마다한권씩!”_1938년《한글》
“조선학계가처음으로받은가장값나가는보물”_1938년《조선일보》
“조선말은과연불사조였다.영원토록살아있을불사조였다.”_1941년조선의용군김학철

1938년처음발행된문세영의《조선어사전》은우리말을우리말로풀이한최초의국어사전이다.한국어와관련된최초의사전인미하일푸칠로의《노한사전》(1874)은뜻이같은러시아어와한국어를대응시켜만든대역사전이었다.《조선어사전》이전의우리말사전으로는심의린이펴낸《보통학교조선어사전》(1925)이있지만보통학교교재에나오는어휘를풀이한학습사전이며국한문혼용체를사용했다는한계가있다.
사전의역사는곧국어의역사이기도하다.오늘날우리가공기처럼당연하게우리말을호흡하고,한국어가세계7위학습언어가된내력의첫머리에《조선어사전》이있다.이책은우리말이나라말이될수없던시기,어휘를모으고풀이한사전인동시에한언어가아직살아있음을알리는선언이었다.

부끄러움이낳은22년의분투
“조선어로된사전이있느냐.”1917년일본동양대학에서유학하던문세영에게중국인유학생이물었다.모국에아무리수소문해봐도우리말사전은없었다.사전도없는민족이라는수치심에우리말어휘를모으기시작한문세영은귀국하여교편을잡은후에도수집을계속했다.1928년에는교직마저그만두고‘한칸짜리움파리같은방’에서하루네시간만자며사전편찬에매진해1936년에원고를완성한다.
1938년,출판자금이없어전국을수소문하던문세영은서점이자출판사였던박문서관의주인노익형의지원으로22년만에《조선어사전》을세상에선보인다.문세영은원고를6번,7번씩수정하고이미완성된활판을뜯어새낱말을끼워넣는등마지막까지열성이었다.미국의《웹스터사전》은완성까지28년걸렸고그림형제는1938년《독일어사전》편찬을시작해그들이사망한1963년까지완성하지못했다.《조선어사전》은일제식민통치시기에개인이이루어낸노작이다.

다채로운10만표제어
《조선어사전》초판본은8만7000여어휘,2년후발간된수정증보판은약10만어휘의올림말이실린방대한규모를자랑한다.이는약4만어휘가실렸을것으로추정되는〈말모이〉나약6만어휘가실린조선총독부사전을능가한다.또한표준말외에도방언,옛말,이두,학술어,속담,관용구등다양한우리말을수록하고있어당대의언어생활뿐만아니라사고방식과문화를두루살필수있는귀중한자료다.

20세기조선의유행어와신어
“현진건은《조선어사전》이처음나오자고어와신어를비교하면서문장에써먹을어휘를수십독을하였다”라고문인월탄박종화는《신천지》1954년9월호에서밝힌다.‘모던껄’,‘모던뽀이’등근래의사전에는수록되지않은신어가실린사례,‘러버(Lover)’의뜻풀이로‘마음속에있는사람.戀人(연인)’을제시하고있으면서정작‘연인’은올림말로등재되지않은사례등은서구문물이유입되던시대상을짐작할수있게한다.

국어사전의국어사전
《조선어사전》은1원이넘는책이드물던때에7원에달하는값비싼책이었음에도초판1000부,재판2000부가매진되었다.1940년에는전국독자들의도움으로방언과학술어등1만여어휘를보탠《수정증보조선어사전》이영창서관에서발행된다.이를바탕으로《중등조선어사전》(1947),《순전한우리말사전》(1951),《최신판표준국어사전》(1954)등다양한사전이나오며문세영사전은1957년한글학회《큰사전》완간전까지우리나라의대표적인사전으로자리매김했다.《수정증보조선어사전》은“현대국어사전의기틀이된기념비적인사전”이라는평가를받으며국립국어원의‘근현대국어사전’서비스활용자료로채택되었다.

1938년출간당시그모습그대로재현한영인본
새롭게출간되는《조선어사전》영인본은한글학회《우리말큰사전》수석편찬원조재수국어학자가소장한초판본을저본으로삼았다.《조선어사전》은그역사적·학술적가치에도불구하고현재까지온전한실물이거의남아있지않다.국립한글박물관,국립중앙도서관,고려대학교소장본과비교후원형과최대한동일하게재현했다.활자체와4단세로쓰기양식은물론활판인쇄기술의한계로발생한오류까지고스란히실어첫출간당시의모습을그대로만날수있다.가격은1938년초판본의정가7원에지난86년동안의물가지수상승률을반영해책정했다.

1938과2024,그사이를잇는부클릿〈사전말끝〉
《조선어사전》과함께제공하는부클릿〈사전말끝〉은사전의처음이자끝을의미한다.책에실을수없었던편집자의머리말과맺음말을대신한다.《조선어사전》에서만실린독특한어휘와뜻풀이를만날수있다.머리말‘전승(傳承)’은《조선어사전》초판본을입수한편집자의사용기로,《조선어사전》과현진건의〈타락자(墮落者)〉를함께읽으며느낀아름다움과사전의소상한체제를파헤친다.맺음말‘왕래(往來)’는편찬인문세영과편집자의가상대담으로,사전집필과정과당대조선문화를알수있는풍부한자료를담았다.

[추천사]

문세영의《조선어사전》이발간된1938년으로부터86년이지난2024년,지식공작소에서이책을영인본으로복간한다는소식을들었다.일전에문세영과그의《조선어사전》을다각도로연구해온역사학자로서필자는이소식에감개무량했다.《조선어사전》은반드시복간해야할우리말사전이라고단언한다.
한글을창제한세종대왕도우리말사전은펴내지못했다.연암박지원과다산정약용도마찬가지다.그러나조선어학자인문세영은1938년최초로제대로된우리말사전을편찬했다.
문세영[文世榮,1895∼1952,호는청람(靑嵐)]은1917년동양대학에입학한이후유구한역사를가진우리민족에게우리말사전이없다는현실을타개하고일본인이만든일본어대역체의《조선어사전》(1920)만있는상황을타파하고자,우리말어휘를수집해카드에기입하기시작했다.1929년부터카드를뜻풀이하면서본격적인사전편찬에돌입한문세영은10년간의원고정리와교정작업을마무리해44세가된1938년7월에10만어휘에달하는《조선어사전》을발행한다.《조선어사전》은박문서관발행으로국판1,696쪽에달했으며,4단내리짜기로쓰인중사전규모였다.조선말사전이없는것을방관하거나비판만난무하던현실에서1917년에서1938년까지묵묵히22년간어휘를수집ㆍ주해ㆍ교정한결과다.
《조선어사전》의국어사전사적의미는다음과같다.
첫째,문세영의《조선어사전》은일제시기조선총독부가만든58,639어의《조선어사전》을능가한10만어휘의우리말사전이다.우리민족의손으로제대로만든조선어사전이없다는부끄러움을해소한것이다.그의사전은우리민족이문화민족임을자부하게했다.
둘째,문세영의《조선어사전》은민족어규범에의거하여최초로편찬한우리말사전이다.이사전은조선어학회가발표한〈한글맞춤법통일안〉(1933)과〈사정한조선어표준말모음〉(1936)을토대로편찬했다.
셋째,조선어사전사(朝鮮語辭典史)에서‘한글전용’을실천했다.일제시기일한혼용체의일어문장과국한문혼용체의조선어문장에서벗어나지못한언어현실에서이사전이국문전용을실천했다는데서그선구성을확인할수있다.
넷째,문세영의단독저술이다.이점에서집단적성과물인여타사전들과차별화된다.사전을단독으로저술한다는것은불가능에가깝다.그런데문세영은그일을해냈다.
다섯째,해방후조선어학회(한글학회의전신)가편찬하고있던《조선말큰사전》에영향을미쳤다.
문세영의《조선어사전》은1938년7월10일초판1,000부를발행했다.초판은수일만에매진되었고,1938년12월15일다시재판2,000부를찍었다.당시베스트셀러였다.이사전은조국을일제침략자의손아귀에서해방하기위해중국관내의조선의용군에서활약하던독립군의사기를높이는역할을했다.1941년조선의용군에서활동한김학철(1916~2001)은《격정시대》에서“문세영사전이우리의사기를활화산같이북돋워주웠다”고기술했다.
해방후문세영은우리글을빛낸3대저술가중한명으로선정되었다.조선어학회는1946년7월8일우리글을빛낸3대저술가로《조선문자급어학사》의저자김윤경,《우리말본》의저자최현배,그리고《조선어사전》의저자문세영을뽑았다.또1949년10월25일문세영의《조선어사전》은국어학4대저서가운데하나로선정되었다.이와같이문세영과그의《조선어사전》은높은평가를받았다.
전언에의하면문세영은6・25전쟁이한창이던1951년,북한정권이행한유명인사모시기작전의대상이되어납북되었고,1952년별세했다고한다.필자는그가대한민국정부로부터상을하나도받지못했다는사실을알고경악했다.2012년7월4일문화체육관광부에한글발전유공자포상후보자로문세영을추천했고,관련서류와증빙자료를상세히첨부했다.그런데담당공무원으로부터문세영의납북을입증하는서류를제출하라는말을들었다.필자는“문세영사망에대한의견서”만을제출할수있었는데,불행히도인터넷상“한국전쟁납북사건자료원”납북자명단에문세영에대한기록이없었기때문이다.담당공무원역시문세영선생이최고의훈장을받을수있도록노력했다고했지만,그의납북을입증할방도가없어포상을받을수없게되었다.분단의비극이다.그러나문세영이국보급인물인것은틀림없다.이제라도대한민국이특별조치를단행해서라도그에게포상하기를바란다.
문세영의《조선어사전》은조선말글말살정책에광분한일제말기에민족어의말살을막고민족어를보전ㆍ유지하는역할을해냈다.그의우리말사전편찬은문화투쟁의일환이었던것이다.그의《조선어사전》은해방후1950년대말다른사전들이나오기전까지거의유일한국어사전역할을했다.
2024년새롭게복간되는문세영의《조선어사전》을통해,그의우리말과한글사랑에대한끈질긴투지와진면목을확인하기를바란다.
-박용규(前고려대학교한국사연구소연구교수)

우리는고유한말과글자를지녔으면서도1910년대까지우리말사전을가지지못하였다.결심과집념의개척자가있어야했다.누구나결심을하나집념으로성취하기란쉽지않다.우리말사전편찬의개척에도그러했다.1910년대에주시경선생과그제자들이시작한《말모이》편찬이첫시도였는데완성을보지못하였고,이후뜻있는이들의노력이이어졌으나중도에그치고말았다.그성취의보람을거둔이는단연,청람문세영선생이었다.
선생은1916년에일본동경으로가,1917년동양대학윤리교육과에유학하면서아직우리말사전이없는민족임을수치스럽게여겨사전을편찬할결심을하였다.20대에결심하여20여년만에이뤄낸결실이8~9만어휘의《조선어사전》이었다.현대언어사전의면모를갖춘우리말뜻풀이사전의우뚝한첫봉우리였다.
이제는우리말사전의고전으로희귀본(稀貴本)이되어구해보기어렵게되었다.큰도서관이나박물관에가도혹소장본으로깊숙이보관되어열람하기어렵다고한다.보물은실물로보거나만져볼때그가치가빛난다.기록의보물도마찬가지다.대표적인기록물은책이다.책가운데도‘사전(사서)’이아닐까싶다.사전이야말로인류가지은책가운데가장잘지은지식의문헌이다.귀한책은유리상자속의전시물로나소장본으로수장고에간직만해야할까?책도얼굴과향기가있는생물로비유할수있다.손으로책장을넘기면서활자로박힌말의행렬을읽어나갈때책의생명을느낄수있다.
읽고쓰기의수단이컴퓨터인디지털시대를맞았다.사전도종이책사전이물러나고전자사전이실세가되었다.그런즈음에우리말사전편찬의첫성취물인문세영의《조선어사전》을복간한지식공작소가있어반갑다.고전의가치와보존을생각한특별한출판이아닐수없다.
수천년책의역사에서종이를이용한필사본과인쇄본이나오게되면서인류의지식은축적되고확장할수있게되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