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번쩍뜨일뜻밖의사실
조선은내내소의도축을금하고,쇠고기를먹은사람까지처벌했다.원칙적으로그랬다.하지만17세기에서울에는속전을물고쇠고기를파는‘현방’이공공연히존재했다.책은현방을운영하던반인泮人과이들이살던반촌이야기를촘촘히풀어간다.성균관주변의‘반촌’에살던그들이고려시대성리학을처음전한안향이기증한노비에뿌리를두었다든가,‘제업문회’란일종의학교를자체적으로운영하기도했다는등여느역사책에서는만나기힘든사실을소개한다.1866년병인양요때는반인들이자비로무장을갖추고참전했다는이야기도마찬가지.반인들은1년에여섯달을입역하고,7~8세부터입역하는가하면성균관유생들에게회초리를맞아가며봉사했다는수탈상도그려진다.노예들이기록을남겼을리없으니다양한사료를꼼꼼히뒤져낸공력이감탄스럽다.그런가하면한반도음식문화중심에쇠고기가있었으니불교국가인고려에서도개성시전에서고기를팔았다든가,18세기조선에선해마다약20만마리의소가도축되는‘쇠고기국가’였다는사실등도만날수있다.
무릎을칠만한흥미로운이야기
반인들이수탈의대상에만그친것은아니었단다.성균관과일종의경제공동체가되어삼법사의수탈에반발하기도했고,유생들이나과거를치러온이들이묵는여각의주인은‘반주인’이라하여과거합격잔치를반주인집에서치르는등내내이익을공유했다.과도한‘세금’을피해생계를도모하기위한다양한방법도등장한다.반인들이얼음판매업을독점하려‘빙계’를만든이야기도그중하나다.조선후기에육류·어류의소비가늘어나면서,여름철에육류·어류의부패를막기위해국가는물론이고의열궁義烈宮이나성균관에서도얼음이부족하면사빙을사서썼다.반인은1768년빙계氷契를조직하여사빙私氷을독점하고자했다.빙계가창설되기전에경강변에는사빙업자가30~40곳있었기에결국실패로돌아갔지만.
1789년궁방의마직들의횡포에맞서사흘동안현방문을닫아서울시민들제사상에돼지고기를올리도록한‘철도’,반인들이성균관식당에식사제공노역을거부한‘궐공’,이로인해유생들이성균관에서물러나는‘공재’등그자체로한편의소설이될만한이야기들이곳곳에실렸다.
번득이는예리한비판의식
현방,즉조선의공식적쇠고기판매는‘눈가리고아웅’이었다.농사도장사도할수없는성균관공노비들의생계수단을위해허용한현방은점차형조,사헌부,한성부삼법사의먹잇감이되었다.이들의실무관리인하예에게는따로급여가없었으니이를마련하기위해불법행위단속을빌미로가혹한속전을물렸다.차인들이구하기어려운소의특정부위를구입하겠다고나선뒤이에응하지못한현방에게돈을받아내는‘방전’이그런예다.종내에는성균관까지‘현방등치기’에가담했으니조선후기성균관은현방에서수탈하는돈으로운영되었다.이를두고지은이는“사족체제의정점에있던자들은성균관을존중한다고입버릇처럼말했지만실제재정이무너지는것을목도하고도근원적인대책은관심밖이었다고”고비판한다.정조는각군문의군졸들이밤에현방을찾아와돈을요구하는일을막기위해‘고입인가율’을적용하도록하는‘게판’을허용했는데이역시흐지부지되는등논의만무성했지효과적인대책은서로미루기만할따름이었다.
무엇보다“반인과현방의입장에서는삼법사와성균관으로부터이중의수탈을당하게된것이었다.그것은조선사족체제의최고교육기관과경찰기구가반인과현방의수탈위에존립할수있었다는것을의미한다”고갈파한대목은이책의핵심이라할수있다.
책은역사서로는이례적으로각종수치자료까지인용했기에읽기만만치않다.하지만쇠고기를중심으로조선사를관통하면서곳곳에담긴흥미로운이야기덕분에조선정치비판서로도,풍속사로도공들여읽어볼가치가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