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영화라는 근대 (식민지와 제국의 영화교섭사)

#조선영화라는 근대 (식민지와 제국의 영화교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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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특징]
학술과 교양 독자를 모두 상정한 이 책은 정보와 지식의 분명한 전달을 위해 통사적 흐름을 염두에 두고 서술되었으며, 귀중한 사진들을 풍부하게 소개하여 자료적 가치 역시 크다. 이 책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일제시기의 영화를 조선영화라 명칭한 점이다. 둘째, 각 시기별로 영화사에 관한 특징을 정리하여 장별로 묶었다. 셋째, 조선영화를 만드는 데 있어서, 일제와 식민지 조선의 교섭 그리고 조선영화인들과 일본영화인들과의 교류의 역사에 초점을 두고 서술하였다. 넷째, 현재 감상할 수 있는 16편의 발굴된 조선영화에 관한 해설을 따로 정리하여 소개하였다. 다섯째, 저자는 이 시기의 영화, 혹은 영화사에 대한 자연스런 질문과 대답하는 방식을 택하여 서술하였다. 필름 아카이브에서 근무하고 있는 이 책의 저자는 2004년부터 조선영화 조사와 발굴 과정에 직접 참여한 경험을 바탕으로, 식민지 조선에서 영화 매체가 조선영화인들의 주체적인 활동을 통해 ‘조선영화’로 흥미롭게 토착화되는 양상을 고찰했다.
저자

정종화

중앙대학교에서박사학위를받았으며,주요연구분야는식민지기조선영화및한일비교영화사이다.2014년부터2016년까지교토대학인문과학연구소에서JSPS외국인특별연구원으로연구했다.현재한국영상자료원선임연구원으로재직중이며,경희대학교와중앙대학교겸임교수를맡고있다.주요저서로『한국영화사-한권으로읽는영화100년』(한국영상자료원,2007),『韓?映?100年史-その誕生からグロ一バル展開まで』(明石書店,2017)등이있고,『일본어잡지로본조선영화』시리즈5권(한국영상자료원,2010~2014)을기획·편집했다.

목차

책머리에

#01.조선영화란무엇인가
식민지조선에서영화를만든다는것
조선영화는식민지조선인들의근대
일본영화·일본영화인과의관계
조선영화발굴과연구동향
이책의방향
#02.활동사진의도래
첫활동사진공개
극장가형성
일본인주도의영화흥행
조선인영화관등장
무성영화의목소리,변사
#03.조선영화의출발(1919~1922년)
1.서구연속영화의유행
2.조선인연쇄극제작
일본에서기원한연쇄극
단성사주도의연쇄극제작
3.‘영화적인’연쇄극
영화적(cinematic)실천으로서의연쇄극
서구활극의미장센과일본신파서사의결합
#04.무성영화의제작(1923~1925년)
1.신파영화의시대
초기무성영화계
첫상업극영화
2.재조선일본인제작사
동아문화협회
부산조선키네마주식회사
3.조선영화인의형성
4.영화극으로서의표현방법
무대극에서영화극으로
화면의연락
클로즈업/대사(大寫)
5.일본신파와서구활극이직조된스타일
일본신파영화의조선적번안
서구활극과블루버드영화의영향
#05.무성영화의질적전환(1926~1934년)
1.〈아리랑〉전후무성영화계
2.일본인제작사와조선영화인의협업
조선키네마프로덕션
덕영프로덕션
대륙키네마프로덕션
경성촬영소의원산프로덕션
3.서구영화와접속한〈아리랑〉
〈아리랑〉속의〈카추샤〉
유럽예술영화사조의영향
서구활극장르의영향
4.조선무성영화의스타일
시나리오와촬영대본분석
〈청춘의십자로〉로본무성영화스타일
일본영화스타일과의접점
5.발굴된조선영화분석
〈청춘의십자로〉(1934)
#06.발성영화와영화기업화의모색(1935~1939년)
1.발성영화의시대
서구토키의수용
외국영화상영제한
2.조선어토키제작
경성촬영소의‘협업(協業)시스템’
조선인자본의한양영화사
3.2세대조선영화인
일본영화촬영소유학파
무성에서발성으로,스타일의변화
4.조선인영화기업의등장
〈나그네/다비지〉가촉발시킨일본영화합작
최남주의조선영화주식회사
이창용의고려영화주식회사
조선영화이출(移出)과일본수용
5.발굴된조선영화분석
〈미몽〉(1936)
〈심청〉(1937)
〈군용열차〉(1938)
〈어화〉(1938)
〈국기아래나는죽으리〉(1939)
#07.조선영화의전시체제(1940~1945년)
1.조선영화의새로운국면
조선영화령과영화신체제
전시체제개편과영화계
문화영화제작
경성의영화흥행
2.조선영화에서국책영화로
식민지/제국의조선영화
조일영화계의교류
최인규의영화
국책영화제작시스템
3.발굴된조선영화분석
〈수업료〉(1940)
〈집없는천사〉(1941)
〈지원병〉(1941)
〈반도의봄〉(1941)
〈그대와나〉(1941)
〈망루의결사대〉(1943)
〈조선해협〉(1943)
〈젊은모습〉(1943)
〈병정님〉(1944)
〈사랑과맹세〉(1945)

맺는말

연표
참고문헌
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1901년~1945년까지의우리나라영화사를정리
이책은1901년에서1945년까지한국의근대영화역사를정리한책이다.처음한반도에영화매체가소개된1901년을시작으로,조선영화의역사를크게초창기(1919~1922년),무성영화전기(1923~1925년),무성영화후기(1926~1934년),발성영화기(1935~1939년),전시체제기(1940~1945년)로구분하고각시기별로각각제작환경/영화담론/영화인과작품에관해입체적으로살펴보았다.이책이다루는시기는대한제국기와일본에의해주권이찬탈당한일제강점기에해당한다.이시기에제작된영화는일반적으로친일혹은저항이라는이분법적잣대로이해되기쉽다.하지만이책의저자는식민지조선과일제,그리고조선영화와일본영화와의관계성을중심으로그동안본격적으로논의되지않은부분들을역사적으로복원해내는것에중점을둔다.

교섭과경합으로보는조선영화역사
이책의저자는‘조선영화’가일제강점기를어떻게바라볼것인지를성찰하게하는가장핵심적인영역이라고주장한다.영화제작은무엇보다자본과기술이수반되어야하는작업이므로일제시기에영화를만든다는것은조선영화인들이식민당국,재조선일본인그리고일본영화계를아우르는각주체들과교섭하고경합하는과정을필수적으로겪는다는것을의미했다.식민지조선영화계는조선사람들이주도적으로이끌었지만그면면이조선인만으로구성되지는않았다.마찬가지로조선영화역시조선인만의결과가아닌일본영화인과협업한결과로서존재했다.식민지사회구조와상업영화의제작논리를고려할때명백하지만그동안애써인식하지않았던사실(史實)이다.조선영화는이를한국영화사라는일국(一國)의영화사로소환해어떻게든그범위안에서서술하려는노력보다는,‘왜한국영화가아닌가’라는존재론적이고근본적인질문으로부터출발해성찰할때더분명히드러나는존재이다.

해방이전의영화를조선영화라고명명한이유
일제시기에만들어진영화들에대해‘한국영화’라는이름이아닌‘조선영화’라고명칭한것은다음과같다.식민지조선에서조선영화라는명칭이처음등장한것은1924년개봉한〈장화홍련전〉신문광고에서인데,이때부터조선영화는식민지조선사람들이참가하고주도적으로만든영화라는의미로사용되기시작했다.한국사람들의식민지경험은매우불행한역사임에분명하지만,일제강점기라는엄혹한상황에서도조선인들은영화를만들었고,또관객들은그들자신의모습과풍경이등장하는조선영화를지지했다.조선영화라는명명은식민지사람들이개척했던주체적인근대,그자체를반영할뿐만아니라그들이일군근대의가장역동적인순간을보여준다.식민지조선영화(Joseoncinema)는조선인이만들어간근대의가장첨예한장이었다.

식민지조일(朝日)영화인의교류사
식민지조선영화계는조선사람들이주도적으로이끌었지만조선인들로만구성될수없었다.초창기조선영화장에서영화를만든다는것은재조선일본인의흥행자본을이용하고조선으로건너온일본인촬영기사의기술을어깨너머로배우는것에서출발했다.엄혹한일제치하였지만조선영화는만들어졌고,기본적으로상업적인이윤을추구하는작업에서조선인과일본인상호간의협업은필연적이었다.특히검열등일제당국과협상해야할문제가발생하면조선영화계의조선인과일본인이함께해결해야했다.조선영화와일본영화그리고일제당국이함께만들어낸식민지영화계의구도는서구와일본의것이혼종된한국식근대의원형이라는점에서주목하지않을수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