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공주 전주이씨 숭선군파 고문서’는 교령류(敎領類)부터 서화류(書畵類)까지 다양한 문서군을 형성하고 있으며, 이 책에는 이 중 80종 401점을 선별하여 영인해 수록하였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서는 공주 전주이씨 숭선군파 고문서를 조사 수집한 후 목록 정리 및 촬영을 마치고 보관 중이다. 숭선군파 고문서는 17세기부터 20세기까지 숭선군파 가문의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 등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또한 조선 후기 왕자 가문에서 소장하고 있는 자료로 종친이나 궁방과 관련된 문서가 있어 기존에 양반 사대분 가문에서 소장하고 있는 고문서와 차이를 보인다. 공주 전주이씨 숭선군파 가문은 인조의 다섯 번째 왕자인 숭선군 이징(李澂)의 자손으로 가계가 이어졌다. 숭선군의 어머니는 귀인조씨(貴人趙氏)이고, 동복형제는 효명옹주(孝明翁主)와 낙선군(樂善君) 이숙(李潚)이 있다. 1648년(인조 26)에 숭선군은 영의정 신흠(申欽)의 손녀이자 도승지 신익전(申翊全)의 딸인 평산신씨와 혼인하였고, 1651년(효종 2) 8월에 출합하여 궁궐 밖에서 거주하였다. 1651년 김자점(金自點)의 옥사에 연루되어 1652년(효종 3) 1월에 동생 낙선군과 함께 강화 교동에 위리안치 되었다가, 1656년(효종 7) 윤5월에 풀려나서 도성으로 돌아왔고, 1659년(효종 10) 2월에 숭선군의 관작을 회복하였다. 숭선군은 1690년(숙종 16) 1월에 사망하였고, 숙종은 효경(孝敬)의 시호를 내려주었다. 이후 숭선군파 가문은 가계를 이어나가며 한성부 서부 황화방ㆍ반석방ㆍ반송방 등의 지역에 세거하다가, 1885년(고종 22) 이덕용이 작성한 시권에서 거주지를 공주로 기재한 것을 통해 숭선군파기 1885년 이전에 공주로 내려와서 세거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공주 전주이씨 숭선군파 고문서
$50.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