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무지개 (개정판)

언어의 무지개 (개정판)

$16.50
Description
“문명을 건설한 인간,
생각하는 인간은
말하는 인간이기도 하다.”
작가 고종석의 사유 근간, 언어학!
당대의 탁월한 한국어 문장가 고종석의 선집 둘째 권
저자

고종석

저자고종석
1959년서울에서태어났다.성균관대학교와파리사회과학고등연구원EHESS에서법학과언어학을전공하고,서른해가까이신문기자로일했다.지은책으로는글쓰기강의록《고종석의문장》(전2권),사회비평집《서얼단상》《바리에떼》《자유의무늬》《신성동맹과함께살기》《경계긋기의어려움》,문화비평집《감염된언어》《코드훔치기》《말들의풍경》,한국어크로키《사랑의말,말들의사랑》《어루만지다》《언문세설》《국어의풍경들》,역사인물크로키《여자들》《히스토리아》《발자국》,영어크로키《고종석의영어이야기》,시평론집《모국어의속살》,장편소설《기자들》《독고준》《해피패밀리》,소설집《제망매》《엘리아의제야》,여행기《도시의기억》,서간집《고종석의유럽통신》,독서일기《책읽기,책일기》,인터뷰《고종석의낭만미래》,언어학강의록《불순한언어가아름답다》들이있다.

목차

언어의무지개_서문을대신하여
01우리는모두그리스인이다_영어공용어화논쟁에대하여/02버리고싶은유산,버릴수없는유산_한자에대한단상/03말/
04표준어의폭력_국민국가내부의식민주의/05외래어와의성전_매혹적인그러나불길한순혈주의/
06여자의말,남자의말_젠더의사회언어학/07거짓말이게참말이게_역설의풍경/08한글,견줄데없는문자학적호사/
09구별짓기와차이지우기_방언의사회정치학/10부르는말과가리키는말_친족명칭의풍경/11합치고뭉개고_흔들리는모음체계/
12‘한글소설’이라는허깨비/13눈에거슬려도따라야할‘국어의로마자표기법’/14언어는생각의감옥인가_사피어-워프가설에대하여/
15두혀로말하기_다이글로시아의풍경/16한국어의미래/17경어/18기쁘다와기뻐하다_심리형용사에대하여/19부정문에대하여/
20한국어의시제

출판사 서평

눈부신언어학적성찰들
언어는사유세계의공기와같다.인간은언어를통해서자신의생각을운용하고,다른정신과만나는까닭이다.그것은거의의식되진않지만생각을담는그릇이며,때로는그자체가생각의방향을결정짓기도한다.하지만언어자체를관조하는지식인은그리많지않으며,더구나그것을대중의눈높이에서풀어내는이는한국사회에서찾기힘들다.작가고종석이발표해온수십편의언어학에세이는이런맥락에서교양인들의절대적인지지를받아왔다.
이책은고종석선집(총5권기획:소설,언어학,시사,문학,에세이)의둘째권으로서,작가고종석의사유세계근간이라할수있는언어학에세이를엄선해담았다.고종석의단행본《감염된언어》《말들의풍경》《국어의풍경들》《자유의무늬》중에서선집의위상에걸맞은글20편을가려수록했다.1998년부터2007년에이르는약10년의기간동안생산해온글들이다.그가서문격인글에서밝히고있듯이“주류언어학내부의좁다란논점들보다는언어를사회적맥락에서보는널따란논점들과주로관련”되어있으며,“주로한국어를대상으로하고있지만,더러다른자연언어들에대한탐색도포함하고있다.”고종석은학술적딱딱함도,화려한말잔치도아닌적절한균형의지점에서‘언어란무엇인가,한국어란무엇인가’라는질문에답을해나간다.그과정에서영어와한자의위상을어떻게정립해야할지,이른바‘한국어’의실체란무엇인지등민감한문제에대한치밀한논의를펼친다.또한표준어/사투리,외래어/순우리말등을둘러싸고벌어지는치열한투쟁의양상을살펴보는가하면,모음체계의변화와심리형용사ㆍ부정문ㆍ시제등한국어의다양한풍경들을세심하게바라본다.독자들은논리적이고수려한문장으로담아낸눈부신언어학적성찰들을한권으로만나볼수있을것이다.

한국어는한국어‘들’이다
좋은학자는관찰력이뛰어나다.언어학자고종석은이런의미에서좋은학자다.이를테면그는한국어와한글이서로다른범주의것이라는점을관찰하고,이를분명히구별한다.즉한국어는언어이고,한글은이를표기하는하나의수단일뿐이다.또그는한국어에대해다음과같은점을중요하게지적한다.

타임머신을타고15세기중엽으로돌아가,한글을창제했다고알려진음운학자들과그들을이끌었던세종대왕을만난다고해도,우리는그들과의사소통을할수없을것이거의확실하다.다시말해15세기한국어와21세기한국어는서로‘다른’언어다.(…)우리는7~10세기에한국인들이쓰던언어와15세기한국인들이쓰던언어와19세기한국인들이쓰던언어를모두‘한국어’라고부른다.그것들이서로‘다른’언어인데도말이다._16쪽

사실단일한한국어라는것은없다.실제존재하는것은한국어‘들’이다.그런데인간인식의한계로인해이점을자주망각하면서수많은담론상의혼란과금기가생겨났다.즉지금여기의한국어만을금과옥조로여기며이것이흔들리고변화하는것을‘타락’으로여기는것이다.이것은한국어를좁은테두리에가두면서발전적논의를가로막는다.고종석은한국어가실은한국어‘들’임을분명히강조하며,민족주의적색채로물든담론의난마를헤쳐나갈강력한전제를확보한다.
만일순수한한국어,단일한한국어라는것이애초에존재하지않는것이라면,그것을지켜야할이유도,회복할이유도없다.그리고외래의언어를막을이유또한없다.고종석이보기에언어는서로섞이고스미는것이자연스러우며,그럴때지극히아름답다.예컨대18세기말이래시작된일본메이지시대의번역열풍이그렇다.

확실한것은,메이지이래일본열도에서만들어진무수한신조어들은한자라는매개를통해즉각한국어에흡수됨으로써한국어의어휘를배가시키고한국인들의세계인식수준을크게높였다는사실이다.그모든것을우리자신의힘만으로해내지못했다고해서,우리말의풍부화와그것을통한우리의식의획기적전환이우리에게좋은일이었다는사실마저변하는것은아니다._61쪽

한자어가일본제라고해서그것이한국어의굴욕이되는것은아니다.그렇다면영어는프랑스어에미칠듯한열등감을가져야할것이다.하지만오히려영어의그넉넉함은프랑스어와는비교도안될정도의국제적위상을오늘날확립하게끔했다.마찬가지로한국어가빈곤하고위축되는것은민족주의적열정아래‘순수한국어’를고집할때다.

영어공용어화론을지지한다
언어학자고종석의미덕은민족주의적열정에서자유롭다는점이다.그는민족주의적욕망을거부하고,그보다정확한관찰과사실에무게를둔다.그가1998년학계의일대파란을일으킨복거일의영어공용어화론을지지하는까닭이다.고종석이보기에영어와한국어를같이쓰는상황은거리낄게없다.그것은우리의정체성을포기하는것이아니고,굴욕적인일도아니다.

우리가이중언어사용자가됐을때,더나아가우리가상상할수없는먼미래에민족어가‘박물관언어’가됐을때,궁극적으로민족이사라져버렸을때,우리는잠시정체성문제에맞닥뜨리게될지도모른다.그러나나는그문제에대해크게걱정하지않는다.민족이사라진다고해서우리가정체성을잃는것은아니다.우리가잃는것은민족으로서의정체성일것이다.우리는민족으로서의정체성을잃는대신에세계시민으로서의정체성,인류로서의정체성을얻을것이고,민족주의의억압이풀린여러단계의인간관계속에서새로운정체성들을얻게될것이다._153쪽

21세기한국어와21세기영어의거리만큼이나21세기한국어와7세기한국어의거리가떨어져있다는점을인식한다면,영어공용어화는그저좀더쓸모있는언어를하나더쓰는것일따름이다.더구나기록언어로서의한국어는사실상번역문에서그형태를잡아나갔다.단적으로,한글로쓰인한국어의제1성은“나랏말?미듕귁에달아문?와로서르??디아니??…”라는‘훈민정음언해’의번역문에서시작했다.한국어를한국어로만드는내재적인순수함따위는없는것이다.고종석은[우리는모두그리스인이다]라는긴글에서이논쟁이품고있는여러측면들을동서양의사례를아우르며세밀히검토한다.이로써한국사회의주류언어관에민족주의가깊이침윤되었음을밝히는한편,한국어에대한인식지평을확장시킨다.

민족주의없이한국어를존중하다
수천에서1만여에이른다는자연언어들가운데,사용자수를기준으로한국어는12~13위정도라고한다.하지만제2언어로한국어를배우는사람은그리많지않다.언어의위세는그에못미치는것이다.고종석은이러한현실과그이유를[한국어의미래]에서짚어보면서,“교통어로서한국어의미래는밝지않다”고냉철하게진단한다.이런현실에더해영어공용어화론을주장하는고종석은한국어가곧소멸할것이라고,소멸해도된다고믿는것일까?

나로서는민족어가사라지는상황이상상조차되지않는다.나는민족어들이사라져서는안된다고말하는것이아니라,민족어가쉽사리사라지지않을것이라고말하는것이다.그것은무엇보다도민족이,민족국가가쉽게사라지지않을것이기때문이다.민족국가는적어도이론적으로는그것의소멸을추구했던70여년의사회주의실험을거치고도살아남았다._142쪽

역시나현실적인진단이다.그는민족어인한국어가긴시간을두고살아남을것이라고본다.이런인식아래그는한국어의다양한현상들을애정어린눈으로관찰한다.즉민족주의없이한국어를존중하는하나의모범을보여준다.그는무조건적인예찬에서는기대하기어려운사실들을흥미롭게짚어낸다.예컨대세계에서가장정교한문자체계인한글을상찬하면서도,중국한자의영향으로글자를퇴행적으로네모형태로모아쓰게된점을지적한다.또한우리가무심히쓰는말들을집요하게파고들며한국어의다층적인겹과복잡한논리를드러낸다.가령‘이국은짜지못하다’는가능하지만‘이국은못짜다’는불가능한이유,‘신은내일죽어요’는되지만‘어머니는내일아프셔요’는안되는까닭을언어학적으로규명한다.독자들은투명한눈으로한국어를가감없이바라보는것과더불어,언어와삶에대한성찰의시간을가질수있을것이다.

[책속으로이어서]
03말
문명을건설한인간,생각하는인간은말하는인간이기도하다.생각의뭉치를형태소로나누고소리의뭉치를음소로나눈뒤이들을이리저리배열하고결합하고대응시키며표현과소통의길을뚫는언어가존재하지않았다면,문명도존재하지않았을것이다._190쪽

한국어사용자는메시지수신자와자신의위계를설정하기전에는단한마디도입밖에낼수없다.언어로표현되는그위계질서를우리는다시그언어를통해내면화한다.경어를썼느냐반말을썼느냐가흔히사람들사이의다툼의원인이되는것이그증거다.경어법은연령의위계만을드러내는것이아니라,신분적위계를드러내고,그신분적위계는그것을드러내는경어법에의해다시강화된다._194쪽

문자의발명은분명히인류의지식축적방식을혁명적으로변화시켰다.그덕분에인류의집단적기억의용량은무한대로늘어났다.그러나,애달파라,바로그집단적기억의폭증은개인적기억의왜소화를가져왔다.기억의전승을문자가떠맡게되자마자,인간은자기아버지의아버지의아버지의아버지의이야기를굳이머릿속에담아둘필요가없게되었다.그것만이아니다.인쇄술의보급은이야기꾼과음유시인들을퇴출시켰다.기계류를포함한인간의모든발명품들이그렇듯,문자의발명도인간육체의완전성을위해서는불행한일이었다._195쪽

04표준어의폭력:국민국가내부의식민주의
표준어가다른방언들보다위세를떨치게된것이그내재적매력때문은아니라는점을지적해야겠다.다시말해서울말의위세는이말이예컨대강원도방언이나전라도방언보다본질적으로더섬세하다거나명료하다거나아름다워서생긴것이아니다.언어학의지평에서는서울말역시한국어의한방언일뿐이고,서울말과다른방언사이에위계를설정하는것은불가능하다.서울말의위세가큰것은그러니까언어바깥사정,구체적으로이언어를쓰는사람들의힘때문이다.한국어방언가운데영남방언이비교적패기있게서울말에맞서고있는사정역시이로써설명할수있다._199쪽

코크니영어사용자들다수는,그언어에들씌워진상징적의미를잘알면서도,고집스럽게그‘천한’언어를사용한다.호남출신의서울거주자들가운데서도그런사람들이드물지않다.주류언어에동화하는것을제정체성의굴욕적포기로여기는방어본능때문일것이다.사회학자피에르부르디외는표준프랑스어에동화하려는프랑스인들의욕망이주로중간계급에서두드러지고,상층계급과하층계급은유년기언어에충성심이강하다는사실을지적한바있다._201쪽
05외래어와의성전:매혹적인그러나불길한순혈주의
언어민족주의의칼날이무슨이유로든칼집을벗어났을때,그칼끝은직접외국어를향하기보다민족어안의‘불순물’곧외래어를향하는것이예사다.외국어자체는언어민족주의자들로서도맞서싸우기가너무버거운상대다.반면에외래어는사뭇만만한,그러나가증스러운내부의적으로비친다._205쪽

민족주의는이념이라기보다자연스러운감정상태이므로언어순화운동은어떤언어공동체에서도적잖은지지자들을만들어낼수있지만,반면에언어순화운동이어느정도효과를내려면권력이고도로집중된전체주의사회를전제할수밖에없다는사실또한엄연하다.북한에서이운동이그나마효과를거둘수있었던것은그사회체제의경직성과깊은관련이있을것이다.이불길한함축은고귀한민족애의실천형식으로서언어순화에매력을느끼는선남선녀들이특히곱씹어보아야할생각거리다._209쪽

이런순화운동의방식이대체로번역차용(외국어표현의구조를그대로둔채형태소를일대일로번역하는것)형식의베끼기calque여서,거기서어떤정신의확장이이뤄지지는않는다는점도지적해야겠다.‘자동사’와‘제움직씨’,‘사물’과‘일몬’,‘총론’과‘모도풀이’는똑같은구조를지닌말이다.다시말해앞말을뒷말로베껴낸다고해서,거기서새로운지적지평이열리는것은아니다.말하자면,이것은매우하찮은지적작업이다.그러나민족주의는쉽게억누를수없는에너지다.말하자면결코하찮은것이아니다.그래서이런하찮은지적작업은앞으로도운동량을쉬잃지않을것이다._210~2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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