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이 책은 구포(鷗浦) 나만갑(羅萬甲)이 1636년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에 들어갔다가 전란으로 인해 갖은 고초를 겪고서 마침내 항복하지 않을 수 없었던 저간의 사정을 있는 그대로 기록한 《병자록(丙子錄)》을 번역하였다.
나만갑(1592~1642)의 본관은 안정(安定), 자는 몽뢰(夢賚), 호는 구포(鷗浦)이다. 부친 공주목사와 평산부사 등을 지낸 나급(羅級, 1552~1602)과 모친 한성참군(漢城參軍) 김호선(金好善)의 딸 광산김씨(光山金氏) 사이에서 아들로 태어났다. 11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1613년 진사시에 입격하여 성균관에 입교하였으나, 인목대비의 서궁 유폐사건이 일어나자 모친과 함께 고향에 은거하였다. 1623년 인조반정 후, 그해 알성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들어서며 홍문관수찬ㆍ부교리를 지냈고, 1625년 강동현감으로 좌천, 1627년 정묘호란 당시 종사관으로 인조를 호종한 뒤, 1628년 병조정랑ㆍ사헌부지평을, 1631년 헌납을, 1632년 교리를 거쳐 1635년 형조참의가 되어 당시 좌의정 오윤겸을 비판하다가 파직되었다. 1636년 병자호란이 발발하자 남한산성으로 들어가 관향사(管餉使)로서 군량 공급에 큰 공을 세웠으나, 강화 직후 무고를 받아 영해(寧海)에 귀양 가는 도중 1637년 모친상을 치렀으며, 1639년 해배(解配)되어 경북 영주(榮州)에서 은거하였다.
《병자록》은 ‘병자호란의 원인 서술’, ‘일록’, ‘타인으로부터 얻은 문건과 전문(傳聞)’, ‘발문’으로 된 것이 기본적인 구성이라 할 수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보자면, ①시초의 곡절, ②급보 이후의 일록, ③칸에게 올린 표문, ④각처 장수의 일, ⑤강화도 함락 진상 기록, ⑥척화신의 사적, ⑦난리 뒤에 생긴 일, ⑧청음이 무고 당한 일, ⑨청으로부터 받은 곤욕스런 일, ⑩발문 등으로 되어 있다. 특히, ①‘시초의 곡절’은 ‘누르하치가 후금을 세운 경위’, ‘정묘호란의 발발과 전개’, ‘청조(淸朝)의 성립’, ‘척화론의 대두’, ‘불의의 괴변’, ‘척화론자와 주화론자의 대립’, ‘병자호란의 발발’ 등의 세부 단락으로 구성되어 있다.
나만갑(1592~1642)의 본관은 안정(安定), 자는 몽뢰(夢賚), 호는 구포(鷗浦)이다. 부친 공주목사와 평산부사 등을 지낸 나급(羅級, 1552~1602)과 모친 한성참군(漢城參軍) 김호선(金好善)의 딸 광산김씨(光山金氏) 사이에서 아들로 태어났다. 11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1613년 진사시에 입격하여 성균관에 입교하였으나, 인목대비의 서궁 유폐사건이 일어나자 모친과 함께 고향에 은거하였다. 1623년 인조반정 후, 그해 알성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들어서며 홍문관수찬ㆍ부교리를 지냈고, 1625년 강동현감으로 좌천, 1627년 정묘호란 당시 종사관으로 인조를 호종한 뒤, 1628년 병조정랑ㆍ사헌부지평을, 1631년 헌납을, 1632년 교리를 거쳐 1635년 형조참의가 되어 당시 좌의정 오윤겸을 비판하다가 파직되었다. 1636년 병자호란이 발발하자 남한산성으로 들어가 관향사(管餉使)로서 군량 공급에 큰 공을 세웠으나, 강화 직후 무고를 받아 영해(寧海)에 귀양 가는 도중 1637년 모친상을 치렀으며, 1639년 해배(解配)되어 경북 영주(榮州)에서 은거하였다.
《병자록》은 ‘병자호란의 원인 서술’, ‘일록’, ‘타인으로부터 얻은 문건과 전문(傳聞)’, ‘발문’으로 된 것이 기본적인 구성이라 할 수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보자면, ①시초의 곡절, ②급보 이후의 일록, ③칸에게 올린 표문, ④각처 장수의 일, ⑤강화도 함락 진상 기록, ⑥척화신의 사적, ⑦난리 뒤에 생긴 일, ⑧청음이 무고 당한 일, ⑨청으로부터 받은 곤욕스런 일, ⑩발문 등으로 되어 있다. 특히, ①‘시초의 곡절’은 ‘누르하치가 후금을 세운 경위’, ‘정묘호란의 발발과 전개’, ‘청조(淸朝)의 성립’, ‘척화론의 대두’, ‘불의의 괴변’, ‘척화론자와 주화론자의 대립’, ‘병자호란의 발발’ 등의 세부 단락으로 구성되어 있다.
구포 나만갑 병자록
$29.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