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 태교신기·태교신기언해

역주 태교신기·태교신기언해

$25.00
Description
사주당 이씨가 쓰고 그의 아들 유희가 언해한 이래로 사주당의 딸들은 물론이고 후손들, 전국의 유학자들이 여러 세대에 걸쳐 쓴 서문, 발문, 비명(碑銘) 그리고 이본(異本) 등으로 확장되고 변주되며 이어져 온 ‘우리나라 최초의 태교서’ 태교신기 및 태교신기언해의 역주서이자 연구서이다. 그동안 여러 차례 역주가 진행되었으나 단편적이고 부분적이었던 데 비하여 원본과 언해본을 비롯하여 관련된 문헌 전체를 종합적으로 주해하였다. 이사주당의 〈태교신기〉는 태교에 대한 우리나라 최초의 본격적인 단행본일 뿐 아니라, 한 집안에서 대대로 보존하며 실용하였고, 동시대 및 후세의 유학자들이 추앙하면서 그 내용을 본받아 실천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하나의 단행본을 넘어 하나의 문화사를 이루는 책이다. 이사주당의 〈태교신기〉와 그의 아들 유희의 〈태교신기언해〉는 21세기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인간의 가치를 정립하고자 할 때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하는 바른 성정, 건강한 신체와 바람직한 기질을 갖춘 사람을 길러내기 위한 조선 사람의 지혜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현재성을 띤다.
저자

이사주당,유희

李師朱堂(1739~1821)
청주출생.본명미상.당호는희현당(希賢堂),사주당(師朱堂).시집가기전부터유학에조예가깊어주변에널리알려져있었고시집간뒤에도남편인유한규와경전(經典)을토론하고,시를주고받으며학문활동을계속하였다.최초의태교서〈태교신기(胎敎新記)〉를지어아들유희에게전했고유희가여기에음의/주석/언해를덧붙여한권의책으로묶은것이『태교신기단(胎敎新記單)』으로출간되어지금에전하고있다.

목차

해제_김양진

역주편01胎敎新記單

I.〈胎敎新記序〉-申綽
Ⅱ.〈胎敎新記音義序略〉-鄭寅普
Ⅲ.〈胎敎新記章句大全〉-李師朱堂著/柳僖註
1.第一章‘敎[교]’자에대해말함
2.第二章‘胎[태]’자에대해말함
3.第三章‘태’와‘교’를갖추어말함
4.第四章태교의방법
5.第五章태교에대한잡론
6.第六章태교를행하지않는손해에대해말함
7.第七章사람들이귀신에게아첨하고꺼리는일에구애받는것을경계함으로써태에이익이있게함
8.第八章잡다하게인용해서태교의이치를증명하고제2장의뜻을거듭밝힘
9.第九章실제의좋은글한편을들어옛사람이이미행한일을인용함
10.第十章태교의근본을미루어말함
Ⅳ.〈附錄〉
1.墓誌銘並序-申綽
2.跋1-儆(柳僖)
3.跋2-長女
4.跋3-小女
5.跋4-權相圭
6.跋5-李忠鎬
7.跋6-權斗植
8.跋7-玄孫近永(柳近永)
Ⅴ.〈胎敎新記章句諺解〉-柳僖
1.제일장
2.제이장
3.제삼장
4.제사장
5.제오장
6.제육장
7.제칠장
8.제팔장
9.제구장
10.제십장

역주편02〈교신긔언〉-희현당(李師朱堂)

Ⅰ.잡셜부胎敎新記單
1.제일장
2.제이장
3.제삼장
4.제사장
5.제오장
6.제육장
7.제칠장
8.제팔장
9.제구장
10.제십장
Ⅱ.부셜
1.〈극리긔셩졍귀신인심도심디결〉
2.〈긔삼주셜〉
3.〈역셜〉
4.〈결사〉

부록1:〈논문〉:18세기의태교인문학과『태교신기(胎敎新記)』/김양진
부록2:『태교신기』원문과주석원문인용서목의서지및인용내용
부록3:주요인물사전

원문1:태교신기단(1801/1938)
원문2:(존경각본)태교신기언해(1801/1938)
원문3:(유기선소장본)태교신기언해(1810)

출판사 서평

조선최고여성유학자사주당이씨가펴낸우리나라최초의태교서!
어머니가짓고,아들이언해하고,딸들이발문을쓰고,유학자들이서,발을쓰다!!
종합형단행본이자,태교의문화사!21세기4차산업시대,인간의가치를다시생각케하다!!

1.이사주당과태교신기,유희
이사주당은1739년(영조15)에이창식의2남5녀중넷째딸로청주에서출생하였다.부모,조상이벼슬하지못한가문출신으로,늦은나이인25세때(1763년,癸未)진주인(晉州人)유한규(柳漢奎,1718~1783)에게시집을갔다.10년뒤인1773년(35세)에야아들희(僖,초명은儆)를낳았는데,이후로세딸을더두었다.
〈胎敎新記(태교신기)〉는사주당이씨가유희를낳기전인1772년경에지었는데,여기에남편인유한규가‘교자집요’라는이름을붙여두었다.
그후20년동안이책의존재를잊고있었는데,우연히셋째딸의상자속에서이책이발견되어,62세인1800년에〈胎敎新記(태교신기)〉라는이름으로책을완성하였다.그의아들유희가여기에주석과음의,언해를더하여자신의스물여덟번째생일인1801년3월에한권의책으로묶었다(〈胎敎新記諺解〉).그로부터9년뒤인1810년(사주당72세)에큰딸과작은딸의발문과함께〈부설(附說)〉등후기와언해를덧붙여하루만에묶어서만든것이유희의후손가에서오래도록세전되어왔다.
이사주당은이후80세가넘으면서고질병으로3년남짓고생하다1821년9월22일83세의나이로세상을떠났다.이태교신기의‘실질적인주인공’(태교로태어난)이라고할이사주당의아들유희는20대중반에당대의저명한학자였던정동유(1744~1808)에게서사사를받았다.그는사주당의‘시험’에통과하여유희의스승이되었다.사주당보다다섯살아래인정동유는특히양명학(陽明學)과상수학(相數學)에밝았고,훈민정음학이라할수있는당대의언어학에도밝았다.이사주당의태교와스승의가르침속에서성장한유희는훗날최초의본격적인한국어언어학연구서라할수있는『諺文誌(언문지)』(1824)를저술하였다.

2.태교신기의저술,전승과정
(1)이사주당이30대인1770년대초에유희를임신하였을무렵처음정리한‘태교와육아’에대한글에남편유한규가‘교자집요’라는제목을붙여두었다.
(2)그후잊어버렸던것을20여년만에우연히셋째딸의서랍속에서다시찾아서,62세였던1800년에‘胎敎(태교)’부분만을다시정리하여‘新記(신기)’라는제목을붙였다.
(3)이책을유희가자신의스물여덟번째생일인1801년3월27일에,〈태교신기장구대전〉에음의와주석을더하고이를언해한〈태교신기장구언해〉와발문(跋文)을덧붙여수고본을만들었다.
(4)그후사주당이72세가되던해인1810년에,사주당이여기에다시스스로언해한언해문및부설과후기(後記)를쓰고큰딸과작은딸이언문발문을덧붙여서책을한번더엮었다.
(5)이상에서살펴본것처럼본서에서역주한『태교신기/태교신기언해』는사주당이처음유희를임신했을무렵인30대부터만들기시작해서60대에한번,70대에한번씩최소총세번을수정확대한문헌이고,남편유한규가첫글의제목을정해주었으며여기에아들유희가음의와주석및언해를더했고,사주당이각각언해한글과유희의한문발문및딸들의언문발문을더한책으로,아마조선시대를통틀어온가족이함께참여한가족문집의성격을띤유일한책이라할수있다.
(6)그에더하여사주당동시대의유학자인신작의서문및묘지명과구한말의국학자정인보의서략,안동권문의권상규,권두선및유희의후손인유근영,이사주당의먼권속인이충호등의발문이포함된것으로,조선시대여성이쓴것으로는보기드물게연속성과연계성을가진책이라할수있다.
(7)이책의존재는이책이만들어지고얼마되지않은시점부터이미당시의많은지식인들에게알려져있었고,이를구해서보려는노력이있었으며,그결과로1908년에『기호흥학회월보』에게재되었고,1938년에경상북도안동에서책이출간되었으며,그후에도여러차례많은사람들에의해번역되고소개되어왔다.그럼에도불구하고여전히이책에대해서는많은사실이충분히알려져있지않다.기존의많은번역서가대부분사주당이처음작성한원문만을번역하고있다든지,번역의원칙같은것이분명하지않아서번역자들마다동일한원문에대한번역이들쭉날쭉하다든지,번역의근거가명확하지않다든지하는점들이그것이다.

3.본역주서의의의
그동안많은주해서와해설서가있었음에도,처음원본이지어진후250년만에다시이책을번역하고주석한책을새로더하는까닭은사주당의글에달아둔유희의주석이이미오랜시간이지난뒤의것이어서이자체가또다른주석이덧붙어야하는것이고,이책이여러차례깁고조정되면서덧붙은다양한주석에대한설명뿐만아니라,언해된두가지수고본(존경각본과유기선소장본)의글에대한이해에이르기까지종합적인해석이필요한시점이기때문이다.특히오늘날〈태교신기〉를다루는많은이야기들속에서이사주당의이야기와그아들유희의주석간의연계성을강조한논의는찾아보기어려운데,본역주서는바로이지점에초점을두고편역되었다.특히사주당의글에대한유희의주석을완역하고이에대해각장절(章節)마다〈해설〉을덧붙이고자세한설명을보충해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