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의 반경 : 느낌의 공동체에서 사고의 공동체로

공감의 반경 : 느낌의 공동체에서 사고의 공동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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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혐오와 분열의 시대, 공감을 다시 생각한다
진정한 공감이란 무엇인가?
‘공감하라’는 세상의 혐오와 분열을 해결할 수 있는 만능 해답이 아니다. 함께 느끼는 정서적 공감은 좁고 깊어 우리끼리만 뭉치게 하고 타인에겐 눈멀게 한다. 우리에겐 다른 공감이 필요하다. 감정을 넘어서는, 경계 없이 확장되어 우리와 다른 존재에게까지 가닿는 진정한 공감이. 진화학자 장대익은 인간의 사회성과 공감 능력에 관한 진화생물학, 심리학, 인류학, 사회학의 연구 성과를 종횡무진 탐구하며 진짜 공감이 어떤 모습인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그려낸다. 타인에게로 향하는 공감은 감정에만 기반을 두지 않으며 이성을 발휘해 그 사람이 되어보는 것이다. 그때 공감의 힘은 중심에서 바깥쪽으로 향하는 원심력의 형태를 띠며 반경을 점점 넓혀 비인간 동물과 기계까지도 포용한다. 요컨대 혐오와 분열을 극복하는 일은 공감의 깊이가 아니라 공감의 반경을 넓히는 작업에 달려 있다.

오늘날 문명 붕괴의 위기는 결국 공감이 만든 극단적인 편 가르기가 원인이다. 봉준호 감독의 아카데미 수상작 영화 〈기생충〉은 계급 간 갈등을 ‘선을 넘는 냄새’로 표현했다. 대저택에 사는 박 사장은 반지하 냄새에 원초적 혐오를 느끼며 이를 목격한 기생자 기택이라는 인물은 형언하기 어려운 분노와 절망을 느낀다. 이 두 사람은 절대로 섞일 수 없다. 전 세계가 〈기생충〉에 찬사를 보낸 것은 인간의 구별 짓기 습성과 내집단 편애가 문화를 초월한 보편적 특성임을 잘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우리 집단에 속하지 않는 사람은 같은 인간이 아니다. 아시아인은 개를 먹는 미개인이고 흑인은 노예에 불과하다.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을 벌이는 러시아군 남편에게 러시아인 아내는 “우크라이나 여성은 강간해도 돼”라는 충격적인 말을 하기까지 했다. 한 국가 안에서도 우리는 한남충, 맘충, 급식충이라면 자기와 다른 범주의 인간을 벌레로 만들어 버린다.
정치인들은 이런 분열을 통합하는 것이 아니라 이용한다. 우리 편에게만 예쁨받아 당선만 되면 그만이다. 이런 태도는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한 치의 차이도 없다. 이런 어두움을 목격하며 우리는 묻는다. 도대체 인간이 계속 성공적인 종일 수 있는가?

저자

장대익

인간본성과기술의진화를탐구해온과학철학자이자진화학자.기계공학도로출발했으나진화생물학에매료되어서울대학교과학학과대학원에서진화학과생물철학을공부했다.이후서울대학교행동생태연구실에서인간팀을이끌었고영국런던정치경제대학교의과학철학센터와다윈세미나에서진화심리학을공부했다.교토대학교영장류연구소에서침팬지의인지와행동을공부하기도했다.박사학위는융합생물학의정점인진화발생생물학,이...

목차

들어가는말|공감의두힘,구심력과원심력간의투쟁7

1부
공감이만든혐오

1장느낌에서시작되는배제와차별19
2장부족본능,우리아닌그들은인간도아니야35
3장코로나19의대유행,혐오의대유행56
4장알고리듬,“주위에우리편밖에없어”89

2부
느낌을넘어서는공감

5장내혐오는도덕적으로정당하다는믿음115
6장첫인상은틀린다136
7장느낌의공동체에서사고의공동체로147
8장처벌은어떻게공감이되는가161
9장마음의경계는허물어지고있다171

3부
공감의반경을넓혀라

10장본능은변한다,새로운교육을상상하라189
11장누구나마음껏비키니를입는다면210
12장편협한한국인의탄생222
13장한국인의독특함이족쇄가되다234
14장타인에게로향하는기술254
15장접촉하고교류하고더넓게다정해지기263

나가는말|멸망의길과생존의길273
감사의글277
주279
그림출처292

출판사 서평

어떤공감은분열을낳고어떤공감은화합을이루는가
정서적공감은우리편에게만공감하는부족본능을자극한다
1954년여름,미국오클라호마대학교의심리학연구팀은22명의아이를야생상태에둔다면어떤일이벌어질지실험해보기로했다.아이들은윌리엄골딩의소설<<파리대왕>>에서처럼피비린내나는전쟁을벌일것인가,아니면똘똘뭉쳐서로도울것인가.
22명의아이는서로최대한유사성을가진아이들로만선별했다.모두개신교가정에서자란11살백인남자아이였으며안경을쓰지도몸무게가많이나가지도않았다.같은동네에서자랐기때문에말하는억양도다르지않았다.아이들은임의적으로11명씩두집단으로나뉘었다.한집단은‘독수리팀’이라명명했고다른집단은‘방울뱀팀’으로명명했다.이름은아이들이직접정했다.
연구팀은아이들이보통여름캠프에서하는일반적인활동을하게했다.두팀은상을놓고야구와줄다리기,보물찾기같은놀이를했다.연구팀은놀이를통해경쟁할때어느정도의적대감이생길것이라봤지만두팀의격돌은예상을훨씬뛰어넘었다.방울뱀팀과독수리팀은첫번째로한야구경기에서부터욕설을주고받았다.경기에서진독수리팀아이들은화를이기지못하고방울뱀팀의깃발을찢고불태워버렸다.그모습을본방울뱀팀은독수리팀에게달려들었고결국패싸움이벌어졌다.
상황은날이갈수록나빠졌다.이번에는독수리팀이줄다리기에서이기자방울뱀팀은한밤중에독수리팀숙소를습격했다.그들은물건을훔치고모기장을찢고침대를뒤집어놨다.독수리팀은가만히있지않았다.대담하게도낮에방울뱀팀의숙소를덮쳐똑같이보복했다.사태가이지경이되자두팀은전쟁에대비했다.돌멩이를모으고야구방망이를손에쥔것이다.그리고이모든일은아주짧은시간안에벌어졌다.
집단간갈등에관한이고전적연구는인간본성에관한지독한역설을보여준다.인간은아무것도아닌이유로집단을형성해주어도일단자기집단이생기면그집단에애착하고공감한다.그때외집단은적이되며그들을비난하고폄훼한다.그들은우리와같은인간이아니라고인식하는것이다.공감이타인을비인간화한다니이얼마나역설적인가.
인간은우리구성원의고통을보면즉각자신도고통을느낀다.이런정서적공감은집단구성원을향한이타적동기를일으켜구성원의생존과번식에도움이됐겠지만인류탄생이후로끊임없이벌어진살육과전쟁의원인이기도하다.그래서정서적공감의다른이름은‘부족본능’이다.정서적공감은그범위가매우좁고안쪽으로향하는공감의구심력이다.
사회적네트워크가전세계로뻗어가는오늘날우리는정서적공감의위험한영향력에대해숙고하고개선의방향을찾아야한다.부족본능을극복해야한다.그런데숙고는커녕오히려정서적공감을더자극하고있다.팬데믹을구실로타국가및인종에대한비난,다른사람의의견을모두지워버리고극단끼리만어울리게하는맞춤형알고리듬이범람한다.우리시대의혐오와분열은공감이부족해서가아니다.우리는공감을너무많이한다.그것도좁고깊게.인류는정서적공감을바탕으로‘느낌의공동체’를이루어번성했다.그러나이제는기후위기,팬데믹,핵전쟁등공감의자가당착으로문명이붕괴할위기에처하고말았다.
오늘날문명붕괴의위기는결국공감이만든극단적인편가르기가원인이다.봉준호감독의아카데미수상작영화<기생충>은계급간갈등을‘선을넘는냄새’로표현했다.대저택에사는박사장은반지하냄새에원초적혐오를느끼며이를목격한기생자기택이라는인물은형언하기어려운분노와절망을느낀다.이두사람은절대로섞일수없다.전세계가<기생충>에찬사를보낸것은인간의구별짓기습성과내집단편애가문화를초월한보편적특성임을잘보여주었기때문이다.
우리집단에속하지않는사람은같은인간이아니다.아시아인은개를먹는미개인이고흑인은노예에불과하다.우크라이나에서전쟁을벌이는러시아군남편에게러시아인아내는“우크라이나여성은강간해도돼”라는충격적인말을하기까지했다.한국가안에서도우리는한남충,맘충,급식충이라면자기와다른범주의인간을벌레로만들어버린다.
정치인들은이런분열을통합하는것이아니라이용한다.우리편에게만예쁨받아당선만되면그만이다.이런태도는진보와보수를막론하고한치의차이도없다.이런어두움을목격하며우리는묻는다.도대체인간이계속성공적인종일수있는가?

외집단,비인간동물,기계에게로확장되는진정한공감
이성적공감이라는인간의특별한공감력
그러나우리마음에는안쪽을향하려는공감의구심력에저항하는공감의원심력이있다.공감의원심력은느리고에너지가많이들지만즉각적인감정에매몰되지않는다.이성을사용해타인의입장에서봄으로써,스스로타인이되어봄으로써나와타인사이의경계를지운다.이런인지적공감은오로지인간만이가진인간본성의독특성이다.
인류는자원을둘러싼전쟁을벌이며타자에대한증오를키우기도했지만이성적인판단으로공감하는범위를넓히면서외집단과의공존과평화를구축해온것도사실이다.즉“공감의범위는확장가능하며이때의공감은단지타인의감정을내것처럼느끼는데서그치지않는다.타인도나와같은사람임을인지하는것이다.과학기술이문명의물질적조건이라면이런공감력은가히문명의정신적조건이라할만하다.타자/외집단까지포용하는공감이없었다면집단적성취인문명은축적될수없기때문이다.”(12쪽)
인지적공감에바탕을둔공감의원심력은그한계를모른다.소수자를넘어비인간동물,이제는기계에까지공감이미치는범위는넓어지고있다.그리오래지않은과거에는동물에도권리가있다는생각을하지못했다.지금은동물의입장에서동물도인간처럼고통을느낄수있음을인지하며그래서아무리인간을위한다는명목이라하더라도불필요하게동물을학대하거나오용하는행위를금지하는목소리가크다.
공감의확장은여기서그치지않는다.인간을닮지않았더라도,심지어인간의신체가없더라도우리는그누군가의마음을헤아리며그에게공감한다.상처받은한남자가인간처럼마음을가진인공지능프로그램과깊은사랑에빠지는이야기를담은영화<그녀Her>는기괴한이야기아니라아름다운로맨스였다.인간마음에는애초부터경계가없었다.
인지적공감능력은우리사회를더진보시키도록행동을일으키는동인이라는점에서중요하다.한난민소년의안타까운주검사진은세계인의마음을울렸지만그힘은난민정책의방향을바꿀만큼지속적이지는못했다.반면에50년이란세월이걸렸지만한국사회내대표적성차별제도인호주제를폐지한것은여성의고통에대한정서적공감을넘어여성이입장이되어보는역지사지가촉발한수많은토론과설득,정치적운동을통해가능했다.
“정서적공감이따뜻한감정의힘이라면인지적공감은따뜻한사고의힘이다.아무리감정이불꽃처럼일어나도차분히사고하지않으면상대의상태를정확히이해할수없다.이이해가없이는상대의문제를해결하는데도움을주기힘들다.”(160쪽)우리사회는느낌의공동체가아니라사고의공동체가되어야한다.인지적공감이라는원심력을이용해공감의반경을넓혀야한다.

내공감은당신에게닿을수있을까
공감의반경을넓히는새로운공감교육을위하여
이제혐오와분열이만드는문명의위기를타개하려면과제는분명하다.공감의반경을넓혀라.어떤사람들은공감이인간본성이고본성은고정된것이므로공감교육같은것은소용없다고절망에빠진다.그러나이책에저자장대익은단호히말한다.“공감은가르칠수있으며가르쳐야한다.”공감은외부환경의자극없이무조건적으로발현되는것이아니다.우리가받는자극,그리고우리가발딛고있는환경에따라인지적공감을통한공감의반경은확장될수있다.이에저자는인간행동의변화를일으키는문화와환경조건은어떠해야하는지살피고의식적으로인간의공감수준을바꾸려했던과학연구들을조명하면서공감본능의변화를일으키는해법을제시한다.
예를들어보자.놀랍게도인지적공감력은훈련과노력으로증가시킬수있다.사회심리학자애덤갈린스키와고든모스코위츠는미국대학생들에게젊은흑인남성의사진을보여준다음에이남성의전형적인하루는어떨것같은지글로써보라고했다.여기서미국대학생을세집단으로나눠실험을했다.첫번째집단(대조군)에는글쓰기지시외에다른지시는주지않았다.두번째집단에는그흑인남성에대한고정관념을적극적으로억제하라는지시를줬다.마지막세번째집단에는역지사지를해보라고다음과같이말했다.“당신이그남성이라가정해보고그의하루를상상해보라.그의눈을통해세상을바라보고그의관점에서세상을걸어다녀보라.”실험결과흑인남성에대해가장긍정적인태도를보인집단은역지사지를주문받은집단이었고그다음으로는고정관념억제를지시받은집단이었으며최하위는대조군이었다.
최근우리사회는공감교육을위한새로운기술도도입하고있다.바로메타버스와가상현실이다.가상현실에서아바타를통해자신과전혀다른타인이되어보는경험은실제로그사람의공감수준을바꾼다.한VR연구에서는실험참여자를두집단으로나누어한집단은적록색맹아바타들이되어보게하고했고,다른집단은그저적록색맹을갖고있다면어떨것같은지를상상만하게했다.그러고는실험이끝난뒤색맹을위한웹사이트를개선하는과제를주었다.그결과색맹아바타집단의경우상상만하게한집단에비해그과제에할애하는시간이두배나길었다.
그런데저자는단순한해법을제시하는데만족하지않는다.인지적공감을통한공감반경의확장은다양한요인이개입해야하는중층적문제이다.타인의관점을수용한다는건한가지방법만으로는지속적효과를낼수없다.우리문화와환경,가치관의변화는물론이요,기술적,제도적,정책적,개인적노력이수반되어야할전인류의과제이다.“인류는이정도공감의반경에서주저앉아서는안된다.그러기에는후계자가없다.사피엔스는지구라는행성에서문명을만든유일한종이기때문에인류의멸절은문명의붕괴다.(중략)그래서우리가나아갈길은오직하나다.공감의반경을넓히는쪽으로의이행.우리는멸절이라는운명에순응하기를거부하고새롭게문명을재건해야한다.”(27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