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는어떻게고통을대변하는말이되었나
오늘날테러현장에서정신과의사를보는것은익숙한일이다.자연재해전쟁,사고등의사건현장에서그들이피해자들의정신적트라우마를돌보는일은당연히여겨지고있으나과거에도그러했던것은아니다.정신적트라우마라는개념은19세기말이되어서야나타났고,오랫동안의심의시선을받아왔다.《트라우마의제국》은피해자가어떻게문화적으로정치적으로존중받게되었는지,또트라우마가어떻게그자체로의심의여지가없는도덕적범주가되었는지를짚는책이다.
저명한인류학자이자의사인디디에파생(DidierFassin)과리샤르레스만(RichardRechtman)은두가지계보를따라전세계의다양한예시를제시하며트라우마개념을면밀히살핀다.하나는정신분석을거쳐정신의학에서트라우마를정의해나간지식의계보이고,다른하나는피해자를이해하는데에초점을맞춘사회적계보이다.트라우마는어떻게피해자의고통을입증하는개념으로대두되었는가?그과정에서누가드러나고누가은폐되었는가?피해자는어떻게정치적으로활용되고있는가?트라우마는그과정에서어떻게사회적불평등을확산하는가?
저자들은이러한질문을통해트라우마로재난과고통을말할때그결과가개인적으로,사회적으로,정치적으로어떻게귀결되는지,이때문제되는것은무엇인지를짚으며트라우마의현대적정치성과피해자의식을인류학적관점에서풀어낸다.트라우마를치유하거나그것에서해방하자고말하는대중서적과교과서적인정신의학이론서,그도아니면트라우마의타당성에대한비판일색의소수의책사이에서이책은어느한쪽에도치우치지않고인류학자의시선으로시대적구성물인트라우마의사회적현상을분석하는귀중한업적이다.
정신적고통은어떻게정치화되는가
트라우마라는질병의정치학
2014년4월6일,세월호가바다에가라앉는장면을본전국민이충격에휩싸였다.무능력한해경과지휘체계,비윤리적인선원을비난함과동시에피해자들에게애도의마음을표했다.정부에서는‘정신건강트라우마센터’를마련하여피해자들에게심리적지원을했다.그러나얼마지나지않아정신과적진단은공식대표만이말할자격을지닌듯해보였고,피해자들의고통은‘트라우마’라는단일한이름으로거론되기시작했다.언론에서피해자개개인의이야기는사라졌다.이후정치적이념이덧씌워지면서문제는처음의애도분위기와는전혀다른방향으로나아갔다.피해자개개인은사라지고그자리에정치구호만남은것이다.피해자들의고통에함께울고걱정하며어린싹들을위한새질서와안전한‘우리나라’의재건을기대하던대중은왜극심한피로를느끼게되었을까?
이과정은2001년9월11일세계무역센터사고당시와흡사하다.사고직후국가는테러범을추적하는한편,정신적육체적고통을호소하는피해자들에게의료적,물질적,법적혜택을제공했다.국가는‘트라우마’라는말로피해자들의정신상태를규정짓고,치유자를자처했다.피해자는규격화된‘치료받을환자’가되었고,피해자들을애도하는사람들역시보편적이고단일한‘병적정신상태’로규정되었다.미국은한동안‘트라우마의나라’가된듯했다.테러를가한절대악과피해를입은선한시민이라는구도로사건이재편되었고,세상은전쟁으로나아갔다.
이렇게두사건이비슷한과정을거쳤던까닭은트라우마의제국적특성에서비롯된다.트라우마는피해자와가해자를명확히구분하고,선과악의구도를세운다.정신적으로고통을앓게된사람은피해자로인정받기위해이질서에따른다.무엇을내세우고무엇을숨길지,어떤정체성을선택하고어떤정체성을포기할지결정한다.이때개인의개별성은트라우마의기표에가려진다.이책의제목은이렇게고통의세계를독점하고점차그영역을넓히고있는트라우마의특성을의미심장하게드러내는표현이다.
트라우마라는개념이확산되면서
무엇이드러나고무엇이은폐되었는가
트라우마,즉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라는진단명이‘발명’된이후,피해자는정치적으로나도덕적으로지위를보장받게되었다.PTSD라고진단받음으로써정부나보험회사측에보상을요청할수있고,정서적으로도사람들에게공감을얻고위로받을수있다.그러나수십년전만해도상황은완전히달랐다.정신적고통을호소하는자들은‘보상금이나노리는꾀병환자’혹은‘사기꾼’으로치부되기일쑤였고,그들의고통은대중에게공감을얻지못했다.제1차세계대전당시에는겁쟁이로,제2차세계대전시에는무의식적자기애환자로의심의눈초리를받던환자들은홀로코스트와베트남전쟁패전을계기로PTSD환자라는이름을얻게되었다.
PTSD가공식적으로처음DSM-III에등재된1980년직후만해도학계에서는이개념을놓고논쟁을벌였다.과연이증상이실재하는지여부,누구에게까지이진단을내려야하는지등에관한문제가제기되었다.영화<배트맨>을보고난이후방에혼자있기를무서워하게된어린아이에게까지이진단명을내려야하느냐며비아냥거리는사람도적지않았다.그러나9.11사건을기점으로트라우마는모두에게받아들여지고있고,일상용어로도사용되고있다.한국에서는삼풍백화점붕괴사고를계기로이개념이알려졌고,세월호침몰사고를기점으로일상용어가되었다.
그러나저자들의비판적분석에따르면,PTSD는여러문제점을안고있다.우선,트라우마는경험의본질을말소시킨다.일어난사건과경험한사건사이를일련의증상으로연결지음으로써경험의다양성과복잡성을은폐해버린다.툴루즈폭발사고에서살아남은사람,팔레스타인폭격으로집이파괴된사람,혹은다른어떤사건을겪은사람이든그경험은그사건만으로제한되지않는다.하나의사건은생생한삶의순간에다양한의미를지니기마련이다.그러나남들에의해‘피해자’라고규정되고나면이표식에최대한자신을맞춘다.자신의여러정체성중피해자라는정체성을강조하는것이다.트라우마가부여한질서속에편입되기위해서는이런인증과정을필히거쳐야한다.
트라우마는객관적이고정치와는무관해보이는그저하나의진단명처럼보이지만,트라우마는사실상피해자를‘선택’한다.누군가는선택되고누군가는배제된다.고문과박해피해자를대상으로활동하는단체는국적과상관없이공평하게대하고자하나,고문가해자와공범자들이망명을원할때는어떤태도를취해야할지항상고민해야한다.환자가팔레스타인사람인지이스라엘사람인지에따라단체의성향에따라피해자를가려야하는상황이계속발생한다.또파키스탄에지진이일어났을때보다태국에쓰나미가일어났을때국제적지원활동이더활발했다.이유는단순하다.태국에는서구여행객이있었던반면,파키스탄지진현장에는서구인이없었다는점때문이다.이처럼피해자와의거리감,피해자의정치색등에따라트라우마는‘선한’피해자와‘악한’피해자를재발명하고,피해자들사이에합법성의순위를매긴다.
또트라우마는너무많은대상을포괄한다는특징이있다.사고피해당사자는물론사고현장을직접목격한사람,대중매체를통해현장의모습을본사람까지모두특정증상을보이면PTSD진단명을받을수있다.쓰나미나지진등자연재해피해자는물론,성폭행피해자,전쟁피해자까지정신적고통은하나의진단명으로통하는셈이다.심지어전쟁범죄자가스스로저지른범죄의피해자라주장해도PTSD를진단받을수있다.저자들은묻는다.이들을하나의진단명아래두는것이과연타당한가?과학자로서직무유기는아닌가?
피해자중심의새로운정치화를위하여
그럼에도트라우마가당연하게받아들여지는이유는,트라우마가개인과집단사이를미묘하게구별하여개인에게는통제를,집단에게는응집력을부여하기때문이다.피해자는경제적권리를보장받고,사람들에게자신의상태에대한동의를얻을수있다.정신적고통에대한의심의시대는끝났기때문이다.반박의여지가없는테러가일어났을때대부분의사람에게보상이보장되므로집단전체가위로받을수도있다.
그러나트라우마개념은사람들사이에새로운분열을만드는데에사용되고있다.심지어거의보이지않게사회적불평등에기여한다.저자들은현대사회가당면한문제들을어떻게‘문제화’하는지에초점을맞추어최대한객관적인시선에서트라우마의근본적인특징을보여주는사례를연구했다.1995년파리테러공격과2001년툴루즈산업재해의피해자들에게피해정신의학이활용된방식,제2차인티파다당시팔레스타인과이스라엘양측에인도주의정신의학이관여한방식,박해와고문을피해망명처를구하는난민에게추방자의심리외상학이적용되는방식을조사했다.
이를통해저자들은트라우마가어떻게피해자의고통을인증해주는지드러내는동시에,우리시대의중요한도덕적정치적문제를제기한다.그리고더나아가피해자가소외된현재의트라우마의정치성이아닌,피해자중심의새로운정치화를위한단초를마련한다.그것이외상후성장과화해로나아가는길이기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