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가는, 길 (시설사회를 멈추다)

집으로 가는, 길 (시설사회를 멈추다)

$18.87
Description
오직 스스로의 의지로 문을 닫은 최초의 시설이 되기까지,
‘향유의집’ 거주인과 임직원이 함께 통과한
놀랍고, 치열하고, 아름답고, 험난했던 연대의 기록
“더 이상 우리를 시설에 가두지 마십시오. 여기서 당신들과 함께 살겠습니다.” 2021년 4월 30일, 한국사회 최초로 장애인 거주시설이 문을 닫았다. 관할 지자체 등 외부의 압력에 의해서가 아닌, 오직 시설/법인 측이 스스로의 의지로 행한 ‘자발적인 폐지’였다. 이제 더 이상 운영되지 않는 이 시설은 경기 김포에 위치한 ‘향유의집’이다.

발단은 한 장애 당사자 거주인(한규선)이 시설 내부의 비리를 최초로 고발하고 공론화한 사건이었다. 시설을 운영하는 석암재단 측이 거주인 개인에게 지급되는 장애수당을 오랫동안 갈취해온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몇몇 거주인은 대부분의 일상을 같이 보내는 직원(생활재활교사)들에게 비리 폭로에 함께해줄 것을 부탁하고, 거주인과 직원들이 합심해 재단의 각종 비리를 증명할 자료들을 모으기 시작하면서 투쟁의 물결은 급속도로 확산된다. 직원들은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같은 외부의 장애운동단체 및 탈시설운동가들과 접촉하며 비리 문제를 세상에 터뜨린다. 거주인들은 향유의집 관할 지자체인 양천구청 앞에서 1인시위를 하고, 서울시청과 마로니에공원에서 노숙농성을 벌이며 본격적인 투쟁의 시작을 알렸다.

시설 내부 비리를 척결하자는 취지였던 애초의 투쟁이 탈시설운동으로 확장되고, 시설이 스스로의 의지로 문을 닫게 되기까지는 탈시설 장애운동가들의 역할이 컸다. 이들은 투쟁이 단지 비리 사실 폭로에 그치지 않고 시설 자체를 폐지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고, 실제로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직접 시설 내부로 들어가 임원/운영진이 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시설을 해체하러 온 시설 운영진(장애운동가), 거주인, 시설 직원들이 서로를 의지하며 ‘탈시설’과 ‘자립’을 일궈내기까지, 그 치열하고 아름답고 험난했던 연대의 과정을 이 책에 고스란히 담아냈다.

한국사회 최초의 자발적 시설 폐지라는 이 전례 없는 사건은 ‘시설사회’와 ‘시설 vs 탈시설’ ‘가족 vs 시설’ 따위의 이분법을 뒤흔들며 탈시설운동의 대전환을 일으키고 있다. 국가와 재벌 사회복지법인이 공고히 해온 침묵의 카르텔과 그것이 만들어낸 전제(‘장애인이라면 당연히 시설에 살아야 한다’)를 이제는 깨부술 때가 되었다. 향유의집 거주인과 임직원이 보여준 뜨거운 투쟁은 앞으로 무수히 많은 탈-시설들을 만들어낼 것이다.
저자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문제그자체보다그문제를겪는사람에게관심이있고차별받던사람이저항하는사람이되는이야기를좋아한다.《노란들판의꿈》《그냥사람》을썼고,《나를보라,있는그대로》《아무도내게꿈을묻지않았다》등을함께썼다.

목차

여는글그들이온다_홍은전|032
용어설명|042
구술자소개|047

임직원이말하다

하나의시설이사라지기까지
:프리웰이사장이된탈시설운동가김정하|054

실패한자립은없다
:모두가떠난자리에남은사무국장강민정|102

두려움을넘어시도할때
:20년차생활재활교사박종순|132

그들과나모두를변화시킨투쟁
:20년차생활재활교사김만순|144

들릴때까지듣는태도
:간호조무사로일한생활재활교사권영자|154

탈시설당사자가보여준길
:탈시설을지원한사회재활교사정영미|164

탈시설이라는시작점
:프리웰초대이사장이된사회복지연구자박숙경|178

시설종사자의탈시설을그리며
:향유의집마지막원장정재원|196

거주인이말하다

나를움직인건분노였어요
:시설비리최초고발자한규선|212

시설이참작고초라해보였어요
:비리투쟁에합류해탈시설의권리를외친김동림|230

자립생활에도공동체가필요해요
:10년차자립생활인황인현|242

이곳을나가는게좋아요
:탈시설을앞둔거주인문영순|260

시설과탈시설,반반의마음이에요
:마지막탈시설주자양남연|270

아무래도거기있을때가더좋았지
:탈시설을반대했던거주인이정자|286

부록
연혁|311
향유의집폐지,그이후|314
해제프리웰사람들이쏘아올린탈시설의지도_전근배|336

출판사 서평

한국사회최초의장애인거주시설폐지사례:비리·인권침해고발에서탈시설운동까지
한국사회최초로스스로문을닫은시설이되기까지,사회복지법인프리웰(구석암재단)산하시설향유의집(구석암베데스다요양원)거주인과임직원은장장12년에걸친투쟁과정을통과했다.그결과2021년3월3일모든거주인이탈시설을마쳤고,4월30일향유의집은설립36년만에역사속으로사라졌다.(향유의집을폐지하기에앞서)탈시설장애운동가들은2009년옛비리세력을몰아내려애쓰며석암재단을사회복지법인프리웰로탈바꿈했다.새로이운영권을쥔이들은시설내부로들어가거주인들의탈시설을적극지원했다.그저‘탈시설’만이아니었다.거주인은물론그들과오랫동안함께해온직원들까지,‘그누구도배제하지않는탈시설’을실현하기위해고군분투했다.
한때120명이상의거주인을거느렸던대형시설이폐지되기까지의과정은놀랍고도험난했다.처음에는그누구도알지못했다.이싸움이시설자체를거부하는지난한투쟁의시작이라는것을.재단측의비리와횡령,인권유린행태가어느정도해결되면시설에복귀하는것이일반적인시나리오였다.실제로2007~2008년석암베데스다요양원의거주인과직원들은거주인의장애수당을오랜시간갈취하고각종학대행위를일삼아온석암재단운영진일가를퇴출시키는데성공했다.내부에서는장애당사자조직‘석암재단거주인인권쟁취를위한비상대책위원회’(석암비대위)와직원조직‘민주노총공공운수연맹공공노조사회복지지부석암재단지회’(석암노조)가꾸려졌고,외부에서는시민사회연대조직인‘석암재단비리척결과인권확보를위한공동대책위원회’(석암공대위)가조직되어비리책임자13명을검찰에고발했다.
그러나거주인들을둘러싼세계는이미손쓸수없이달라지고있었다.2009년,비리척결과인권보장,재단이사진전원교체를요구하며싸우던일부거주인들은문제가해결되자보란듯시설을박차고나가버린다.“시설은인권이보장되는곳으로거듭났고장애인들은행복하게살게되었다……”라는결말로마무리될줄알았던이야기는이날을기점으로급반전을맞이하게된다.그렇게탈시설과자립생활을향한이들의진짜투쟁이시작되었다.

세계가달라지는시간:집을만드는싸움을시작하다

“그때우리내부에서는형님들을계속시설에살게할수없다는생각이모이고있었어요.아무리싸운다해도그삶이근본적으로바뀌는건아니니까요.투쟁을하면할수록결국대안은시설에서찾을수없다는걸더절실히알아갔어요.”(김정하)

2009년6월4일,석암베데스다요양원에살던장애인여덟명이시설을퇴소해대학로마로니에공원으로향했다.탈시설을위한노숙농성채비에들어가기위해서였다.그런그들을맞이한건장애운동가들만이아니었다.수백여명의사복경찰들이공원을에워싸고있었다.하지만그것도잠시,이들의이삿짐을확인한경찰들은금세물러난다.장롱두짝,작은냉장고하나,전자레인지하나,서랍장하나,옷가지와이불,자잘한가재도구를담은종이박스가전부인초라한세간들이공원한복판에끌러졌다.앙상했던시설생활을증언하는살림살이였다.훗날‘마로니에8인’으로불리며두고두고회자될이들의이름은김동림(48세),김용남(51세),김진수(59세),방상연(38세),주기옥(63세),하상윤(37세),홍성호(56세),황정용(53세).대부분은시설에서20년이상을산이들이었다.
2009년당시마로니에공원농성을조직했던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활동가겸프리웰법인이사장김정하는탈시설운동은곧‘주거권운동’이라고강조한다.시설에사는장애인이지역사회로나오기위해반드시필요한것이활동지원서비스,소득,집세가지인데,이중가장중요함에도해결되지않은문제가주거공간이었던것이다.전장연과힘을모으기로한김정하활동가는석암재단투쟁당사자들에게그‘집’을함께만들기위한싸움을제안한다.
2009년의마로니에공원농성은바로그연대의산물이다.동시에이는먹고자고씻는사소한일상생활이전부문제가되는무모하고전례없는투쟁이었다.그러나될때까지한다는모두의의지는결국‘기적’을이뤄내고만다.이들은오세훈시장과접촉해한국사회최초의탈시설정책을마련한다.이로써시설에서나온사람들이자립을준비할수있는체험홈과최대5년까지거주할수있는자립생활주택도입계획이발표되고,여덟명의중증장애인들은사회복지재단이운영하는자립주택평원재에정식으로입소하게된다.장애당사자들과비장애활동가들이노숙농성을하며매일함께밥을지어먹은두달의시간이일궈낸쾌거였다.

탈시설을주도하는시설의탄생:석암재단에서사회복지법인프리웰로
바깥에서이런변화가이루어지는동안,마로니에8인이박차고나간시설내부에서도치열한투쟁이계속되었다.탈시설운동가들의끊임없는문제제기와영향력행사끝에2009년석암재단은‘사회복지법인프리웰’로이름을바꾸고과거의역사와단절할수있게된다.장애당사자들의인권과사회통합을기치로내건진보적운영진들이석암재단측비리세력을완전히몰아내는데성공한것은2013년에들어서였다.그후프리웰은거주인의탈시설을적극적으로지원하기시작한다.탈시설운동을최전선에서이끈김정하활동가는2018년이사장으로부임하자마자산하시설인향유의집(구석암베데스다요양원)거주인전원의신속하고도안전한탈시설추진계획을발표했다.3년이지난2021년,그계획은현실이되었다.
향유의집폐지직전부터폐지이후까지두차례에걸쳐진행된인터뷰에서거주인들은한층더자유롭고생기있는모습이었다.황인현은투쟁을같이했던거주인한규선과(김동림을포함한)마로니에8인방이자립해서나갔을때,서운하면서도이해가되었다고털어놓았다.2010년향유의집산하체험홈을통해자립생활에도전한그는현재김포의임대아파트에살고있다.기초생활수급비와장애연금을합친101만원남짓의돈으로풍족한생활을꾸리긴어렵지만,24시간활동지원을받으며자신이원하는일을원하는시간에할수있음에만족한다.2011년그는동료들과김포장애인자립생활센터활동을통해김포시장애인콜택시확충을이끌어내기도했다.
2021년3월3일향유의집마지막탈시설대열에합류해시설을나온양남연(71세)과문영순(60대)도장애인지원주택에서자립생활을하고있다.양남연은지역사회에서살아가는데아직적응이필요하다면서도,“갇혀사는건아니”라고분명히말한다.문영순역시“징글징글”한시설에선가질수없었던자신만의공간이생겼다는데크게기뻐했다.그는가족들을초청해마음껏담소를나누는풍경을그리고있었다.

그누구도배제하지않은탈시설:시설직원들의탈시설이야기
이러한대전환뒤에는탈시설을마냥기쁘게받아들일수없었던사람들의아픔도있었다.거주인과수십년을함께생활해온시설직원들이그랬다.2008년일부거주인(마로니에8인방)이석암재단측과의투쟁이끝난뒤에도복귀하지않고시설을나갔을때,그후2009년석암재단의비리세력을몰아내고새롭게태어난프리웰이거주인전원을대상으로한탈시설계획을발표했을때직원들은크게절망할수밖에없었다.거주인들의세계가급격히변할때,직원들의세계는무너져내렸다.
모든거주인이떠난향유의집에서시설폐지과정을마무리한마지막사무국장강민정은2002년향유의집이석암베데스다요양원이던시절입사했다.생활재활교사로일을시작한그는식사,목욕,여가등가장가까이에서거주인들의생활을지원하며호흡해온베테랑이었다.그런그에게‘탈시설’이라는말은자괴감을안겼다.“나쁜기억만있지는않을텐데향유의집이그정도로싫었나?내가근무하는곳이누군가에게는한시라도빨리벗어나고싶은곳이라는걸확인하니종사자로서죄짓는느낌도들었어요.우리가거주인을가둬놓고있는건가?”
20년차생활재활교사박종순과김만순역시그랬다.억압적인시설환경에서이리저리눈치를봐가면서도최대한의힘과마음을쏟아거주인을지원했던그들이었다.그들은오랜시간거주인들에게자행되어온학대와인권유린을매우심각하게여겼고,그런행태를막기위해안간힘을썼다.거주인들이석암재단과의싸움을시작했을때함께투쟁현장에나서물심양면도운것도,거주인에대한깊은존중과애정,연대의식때문이었다.거주인의투쟁에동참하며직원들역시노조를꾸릴수있었고,그활동을통해재단의케케묵은검은진실들을파헤쳤다.
그러나재단이사진을겨냥했던투쟁이탈시설운동으로확장되자,직원들은더이상거주인들의싸움에함께할수없게된다.거주인들의탈시설을이끌며2018년프리웰의이사장이된활동가김정하는그분열과갈등이필연적인수순이었다고이야기한다.“싸우면싸울수록권리의식이높아지고그러니까보이는게달라지는거예요.구체적사건과계기를통해분열하고멀어진것처럼보이지만사실은장애당사자들의권리의식이높아지면서더이상시설직원들과같은선상에있을수없는시기로들어갔다는생각이들어요.”
탈시설운동가들과시설직원들은그럼에도서로를포기하지않았다.탈시설운동가들은직원들에게투쟁에나서지않아도좋으니뒤에서지켜봐달라고부탁했고,직원들은자립한거주인들의삶이바뀌는것을목도하며탈시설에회의적이었던자신들의태도를성찰하기시작했다.이는곧자신과거주인이오랜시간함께겪어온시설생활전체를곱씹는과정이기도했다.향유의집이폐지된이후열린집답회자리에서직원들은탈시설한거주인들에게서자신이알지못했던표정을보았다고,그가완전히다른사람이되어있었다고입을모았다.그런근황을주고받는직원들의얼굴에는웃음이떠나지않았다.“저분표정이달라졌다고같이일하는사회복지사가그러더라고요.그게무슨의미인지아시겠죠?내가계약한집에서내가원하는모습으로살아가는것자체가다른삶인거죠.그분얼굴표정만봐도그냥알게되는것들이있어요.”(강민정)
프리웰은끝내직원들을포기하지않았다.김정하이사장은시설을폐지하면서도직원들의고용승계를위해애썼고,세명을제외한모든직원들이새로운곳에서일을시작할수있게됐다.대부분의생활재활교사들은시설밖활동지원사로직무를전환했고,프리웰산하의다른시설이나체험홈,지원주택으로일자리를옮긴이들도다수있다.프리웰은그누구도배제하지않은탈시설을오직스스로의힘과의지로이루어냈다.

반대혹은두려움의진짜이유:‘시설-탈시설’의이분법을넘어
《집으로가는,길》은마지막까지탈시설을반대했던거주인,탈시설을통해자립을이루고도여전히시설과탈시설에반반의마음을두고있는거주인의목소리에도주목했다.이들의발화는한층더세심하고복합적인독해를요한다.일례로,‘아무래도시설에있을때가더좋았다’고서슴없이말하는장애당사자이정자의이야기가우리에게던지는함의는무엇일까?이것을과연문자그대로탈시설에대한반대혹은시설예찬론으로받아들여야할까?이물음에답하려면먼저그의삶을들여다보아야한다.
기차사고를당해중도장애인이된이정자는46세에석암베데스다요양원에입소했다.그는시설을비리와폭력,인권침해가들끓는곳으로만든주범인옛비리세력이부일이사장/회장을지나치게찬양하는한편,그런사실을세상에알리며투쟁을조직한거주인들에대해서는무섭고삭막하다며거리를둔다.“회장님이이요양원안해놨으면우리는어디서살았겠어.”“그돈(장애수당)타고나서부턴식구들이아주야박해지고다나갔어요.애들이건방져지고이상하더라고.무서워.”
그러나이부일회장에대한이런식의찬양은아이러니하게도오랜시간그가겪어온노동착취에기인한다.시설측은중도장애인인그에게더중증인장애인들을케어하도록시킴으로써일손을덜었고,실질적으로월급을주지않으면서직원으로등록해그앞으로나오는월급을다른직원에게심부름값으로주곤했다.그에게주어진것은겨우외부업체에서후원한물품이나식료품일부뿐이었다.다시말해‘돈생각없이기꺼운마음으로일했다’던그의발화안에서우리는역설적으로그의돌봄노동을무상으로착취한시설측의행태를확인하게된다.하반신이마비되어꼼짝할수없던자신에게시설이노동을통한회복의기회를제공했다고믿는그가탈시설을두렵고번거로운변화로인지하는것은너무나당연한결과일지도모른다.이는노동에대한그의자긍심과별개로다뤄져야하는심각한인권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