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양자론의 옷깃을 다시 여민다.
지금까지의 양자역학은 선분논리 속에 있었다. 땅은 네모이고 하 늘은 둥글다는 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우리는 양자에 대해 첫 단 추부터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신비한 현상을 보았을 때 영감을 받아 소설을 쓰는 것도 좋지만 내 눈에 장착된 렌즈부터 살펴보아야 한다. 우리는 렌즈를 통해 세상을 인식한다. 렌즈를 교체해서 세상을 보면 평소에 보이지 않던 무늬들 이 춤을 추며 노래를 한다.
파동과 입자는 길이와 각도의 관계에서 유래한다. 길이는 선형의 1차원이고 각도는 원형의 2차원이다. 길이의 양 끝은 0과 ∞이어서 끝이 없지만 우리는 선분으로 인식한다. 길이는 0과 ∞가 만나 원을 이루면서 각도가 탄생한다.
길이와 각도는 본래 같은 것인데 우리의 눈이 다른 것으로 구분했 다. 길이로 펼쳐져 있는 것은 파동이라고 불렀고 각도로 회전하여 양 끝맺음을 이루면 입자라 말했다. 파동과 입자는 인식으로 구분했 을 뿐 본래 구분이 없었다.
양자 역학은 파동과 입자의 관계에 대한 해석이다. 양자의 척도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입자에 대한 해석도 달라진다. 선분논리의 눈 은 파동이 입자가 되는 것을 양자화라고 말하는데, 이 논리의 전제 는 시간 이후의 시공간을 배경에 두고 있다.
시간 이전의 동시공간을 전제로 한 회전논리의 눈으로 보면 세상 이 달라진다. 시간의 평면파가 동시공간을 형성하고 공간에 존재하 는 수량으로 나타난다. 이 수량을 공간량이라 부르고 입자를 대표하 는 양자가 된다.
우리는 시간이 무엇인지 잘 몰랐다. 그러나 시간이 상대적 관계 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데는 무리가 없어 보인다. 회전논리는 시간 의 탄생을 0과 ∞의 관계에서 찾았다. 그리고 광속을 초월하는 방법 에서 시간을 멈추는 관점을 소개한다. 그것이 동시공간이다. 광속뿐 아니라 어떤 속도도 0보다 빠른 것은 없다.
알고 나면 당연하다. 시간을 멈추는 것으로 광속을 초월한다. 시간 을 느리게 하려면 얼리면 된다. 물리적 관계는 시간을 의미하기 때 문에 온도가 낮아지면 그들의 시간이 느려진다. 우리는 냉동기술로 이미 그 사실을 상식으로 알고 있지만 낫 놓고 기역 자를 모른다.
극저온의 임계점에서 공간 분기 현상을 일으켜 양자막이 깨지면 초전도와 같은 현상이 나타난다. 사실은 초전도 현상이 나타나는 것 이 아니라 고전역학의 공식이 0입자로 작용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 는 항상 나의 환경을 기준으로 생각하는 습관이 있어서 초전도 현상 이 나타난다고 말한다.
당연한 양자 얽힘이 신비한 현상으로 보이는 것은 나를 기준으로 생각한 착각에서 비롯한다. 세상이 존재하는 것은 끊임없이 연속된 흐름 위에 있기 때문이다. 이런 연속된 시간의 흐름은 선분논리의 눈에 "인과(因果)"로 해석된다.
알고 보면 신비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은 없다. 단지 지금 당 장 그 인과를 해석하지 못했을 뿐이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전부라 고 생각하는 천재는 "인간은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을 한다. 물론 그 당시의 대중을 두고 한 말일 것이다. 경험하지 못해서 이해할 수 없 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어린 시절부터 선분논리와 회전논리가 있다는 것만이라도 들을 기 회가 있다면 그들이 누릴 수 있는 세상은 우주가 무한한 만큼 넓어 질 것이다. 우리는 뒤늦게나마 회전논리의 소용돌이를 타고 양자의 심장 박동을 느끼면서 태초의 우주로 여행할 것이다.
참고로 수학적 유물들은 중등교육 수학 수준에서 여정의 지팡이를 쥐고 체험할 수 있도록 전시해 두었다. 회전논리가 쥐여주는 수학의 지팡이는 계산을 빨리하는 경주가 아니다. 논리의 흐름을 따라 여행 하다가 주변에 널려 있는 0입자들과 대화를 나누는 일상이다.
그런 일상 속에 석학들이나 알 법한 지식이 상식으로 변한다. 상식 은 다시 우리의 일상을 자연스레 윤택하게 한다. 수학의 난제나 양 자역학의 난제들도 모두 알고 보면 당연한 상식의 수준에서 내 옆에 잠들고 있다.
지금까지의 양자역학은 선분논리 속에 있었다. 땅은 네모이고 하 늘은 둥글다는 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우리는 양자에 대해 첫 단 추부터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신비한 현상을 보았을 때 영감을 받아 소설을 쓰는 것도 좋지만 내 눈에 장착된 렌즈부터 살펴보아야 한다. 우리는 렌즈를 통해 세상을 인식한다. 렌즈를 교체해서 세상을 보면 평소에 보이지 않던 무늬들 이 춤을 추며 노래를 한다.
파동과 입자는 길이와 각도의 관계에서 유래한다. 길이는 선형의 1차원이고 각도는 원형의 2차원이다. 길이의 양 끝은 0과 ∞이어서 끝이 없지만 우리는 선분으로 인식한다. 길이는 0과 ∞가 만나 원을 이루면서 각도가 탄생한다.
길이와 각도는 본래 같은 것인데 우리의 눈이 다른 것으로 구분했 다. 길이로 펼쳐져 있는 것은 파동이라고 불렀고 각도로 회전하여 양 끝맺음을 이루면 입자라 말했다. 파동과 입자는 인식으로 구분했 을 뿐 본래 구분이 없었다.
양자 역학은 파동과 입자의 관계에 대한 해석이다. 양자의 척도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입자에 대한 해석도 달라진다. 선분논리의 눈 은 파동이 입자가 되는 것을 양자화라고 말하는데, 이 논리의 전제 는 시간 이후의 시공간을 배경에 두고 있다.
시간 이전의 동시공간을 전제로 한 회전논리의 눈으로 보면 세상 이 달라진다. 시간의 평면파가 동시공간을 형성하고 공간에 존재하 는 수량으로 나타난다. 이 수량을 공간량이라 부르고 입자를 대표하 는 양자가 된다.
우리는 시간이 무엇인지 잘 몰랐다. 그러나 시간이 상대적 관계 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데는 무리가 없어 보인다. 회전논리는 시간 의 탄생을 0과 ∞의 관계에서 찾았다. 그리고 광속을 초월하는 방법 에서 시간을 멈추는 관점을 소개한다. 그것이 동시공간이다. 광속뿐 아니라 어떤 속도도 0보다 빠른 것은 없다.
알고 나면 당연하다. 시간을 멈추는 것으로 광속을 초월한다. 시간 을 느리게 하려면 얼리면 된다. 물리적 관계는 시간을 의미하기 때 문에 온도가 낮아지면 그들의 시간이 느려진다. 우리는 냉동기술로 이미 그 사실을 상식으로 알고 있지만 낫 놓고 기역 자를 모른다.
극저온의 임계점에서 공간 분기 현상을 일으켜 양자막이 깨지면 초전도와 같은 현상이 나타난다. 사실은 초전도 현상이 나타나는 것 이 아니라 고전역학의 공식이 0입자로 작용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 는 항상 나의 환경을 기준으로 생각하는 습관이 있어서 초전도 현상 이 나타난다고 말한다.
당연한 양자 얽힘이 신비한 현상으로 보이는 것은 나를 기준으로 생각한 착각에서 비롯한다. 세상이 존재하는 것은 끊임없이 연속된 흐름 위에 있기 때문이다. 이런 연속된 시간의 흐름은 선분논리의 눈에 "인과(因果)"로 해석된다.
알고 보면 신비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은 없다. 단지 지금 당 장 그 인과를 해석하지 못했을 뿐이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전부라 고 생각하는 천재는 "인간은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을 한다. 물론 그 당시의 대중을 두고 한 말일 것이다. 경험하지 못해서 이해할 수 없 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어린 시절부터 선분논리와 회전논리가 있다는 것만이라도 들을 기 회가 있다면 그들이 누릴 수 있는 세상은 우주가 무한한 만큼 넓어 질 것이다. 우리는 뒤늦게나마 회전논리의 소용돌이를 타고 양자의 심장 박동을 느끼면서 태초의 우주로 여행할 것이다.
참고로 수학적 유물들은 중등교육 수학 수준에서 여정의 지팡이를 쥐고 체험할 수 있도록 전시해 두었다. 회전논리가 쥐여주는 수학의 지팡이는 계산을 빨리하는 경주가 아니다. 논리의 흐름을 따라 여행 하다가 주변에 널려 있는 0입자들과 대화를 나누는 일상이다.
그런 일상 속에 석학들이나 알 법한 지식이 상식으로 변한다. 상식 은 다시 우리의 일상을 자연스레 윤택하게 한다. 수학의 난제나 양 자역학의 난제들도 모두 알고 보면 당연한 상식의 수준에서 내 옆에 잠들고 있다.
새로운 두 수학 5 (양자의 심장(Pulsing Quant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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