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학보 (양장본 Hardcover | 전 4권)

태극학보 (양장본 Hardcover | 전 4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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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1906년 8월 24일 일본 도쿄에서 태극학회가 창간한 기관지.

태극학회는 제국주의 침략하에서 나라를 구하는 방법은 국민 교육이라고 생각하고 서북 지방의 유학생을 중심으로 1905년 9월 조직된 단체이다. 1906년 8월 24일 기관지로 『태극학보(太極學報)』를 창간하였고, 1908년 12월 24일 총권 27호로 종간되었으나 『공수학보(共修學報)』, 『대한유학생회회보(大韓留學生會會報)』 등 일본 내 다른 유학생회의 기관지 발행에도 영향을 주었다.

『태극학보』는 태극학회의 창립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1906년 8월 24일 창간되었다. 『태극학보』의 창간호 서문에는 “아동포국민(我同胞國民)의 지식(智識)을 개발(開發)하는 일분(一分)의 조력(助力)”이 될 것이라 하면서 발간 목적을 밝혔다. 학보의 발간 경비는 처음에는 전적으로 회원들의 의연금에 의지하였으나 점차 학보의 판매 대금과 이갑(李甲) 등 국내 서북 지역과 서울 지역 유지의 출연으로 확대하였다.

『태극학보』의 구성은 3호까지는 강단(講壇), 학원(學園), 잡보(雜報)로 나누었으나 4호부터는 강단과 학원을 구분하지 않았으며, 11호부터는 논단(論壇), 강단, 학원, 잡찬(雜纂), 잡보 등으로 세분하였다. 주된 내용은 애국 계몽 단체가 추구하였던 교육 구국 운동, 언론 계몽 운동, 실업 구국 운동, 국채 보상 운동, 신문화 신문학 운동, 국학 운동, 민족 종교 운동, 해외 독립운동 기지 건설 운동 등의 내용을 종합적으로 추구하였다.

『태극학보』는 매월 1회 발간하였으며, 8월에는 하기 휴간하였다. 3호까지는 일본 유학생을 중심으로 배포되었으나 4호가 발간된 1909년 11월부터는 국내 배포를 위하여 경성 중서에 위치한 주한영사관에 『태극학보』 출판 지점을 설치하였고, 12월에는 캘리포니아 한인공동신보사에 배포소를 설치하였다. 1907년 7호부터는 국내 각 지역의 학교에도 잡지를 발송하였다. 『태극학보』는 태극학회 회원만이 아니라 국내의 지식인과 학부모까지를 망라하는 매우 폭넓은 필진을 보유하였다. 이는 『태극학보』에 대한 당시의 관심을 반영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태극학보』는 개항기 일본 유학생이 조직한 태극학회의 기관지로 발간되어 태극학회가 목적으로 하였던 애국 계몽 운동의 주요한 선전 도구의 역할을 다하였다.

츌처: 세계한민족문화대전(한국학중앙연구원)
저자

태극학회

1905년일본도쿄(東京)에서서북지방출신유학생들이결성한친목단체·계몽단체.
1895년결성된대조선유학생친목회(大朝鮮留學生親睦會)와그뒤를이은1898년의제국청년회(帝國靑年會)가해산된이후일본에서처음조직된재일(在日)유학생단체였다.1905년9월15일도쿄혼고구(本鄕區)모토마치(元町)2정목(丁目)에서북지방출신유학생50여명이주일한국공사관참서관겸유학생감독이었던한치유(韓致愈)의승인아래어학강습소를설치한것이시초였다.강습소를운영한인물들은동경제국대학공과대학재학중이던상호(尙灝)를중심으로장응진,박용선(朴容善)과일본인후지이(藤井孝吉)등이었다.

선배유학생들이후배유학생들에게일본어와기본과목의예비학습을시키기위해어학강습소를설치하였고,이를통해유학생간친목을도모하고학술을연마하는것이었으나점차출판활동을통해국민지식을개발하기위해설립되었다.

처음에는학술연마와친목을목적으로한순수한유학생의친목모임이었으나,계몽단체로서민족운동의일익을담당하였다.학회지(월간)인『태극학보』를발간하고,산하에태극학교(초기에는강습소)를두었다.

목차

태극학보1(喜)-自1호∼至제7호
태극학보2(貳)-自8호∼至제14호
태극학보3(參)-自15호∼至제25호
태극학보4(肆)-自21호∼至제26호